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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는 올림픽 유치에 매진할까?

[정희준의 '어퍼컷'] 사면으로 다시 태어난 '한국의 진시황'

사면이라는 게 원래 '초법적'이라고 하지만 이번 이건희 전 회장 사면은 '초상식적'이다. 지난 십수년간 비리와 탈법을 거듭했던 단 한명의 경제인 이건희 전 회장을 위해 시행된 이번 '특별 사면'은 이 전 회장을 '사면 2관왕'에 등극시켰을 뿐 아니라 국가의 근간인 법질서와 국민들의 상식과 우리 사회의 가치를 거침없이 걷어차 버렸다. 그 자체로서 국기 문란 행위이다.

이제까지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요하며 들이대왔던, 그 무시무시하고도 말 그대로 사람 잡는 '법질서'라는 몽둥이를 생각해 보면 이번 사면은 우리를 헷갈리는 정도가 아니라 멍~하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이거다. "니가 지켜라. 법질서."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우리나라는 '삼성 공화국'이 아니라 '이건희 왕국'이었다는 사실이다. 체육계, 재계, 정계, 관계, 법조계에 수많은 졸개들을 거느린 이건희 전 회장은 우리나라의 국기를 농락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역시 정권은 짧고 재벌은 길다. 대통령조차 이 전 회장의 눈치를 보며 정책을 고민한다. 도대체 마무리가 되지 않는 세종시를 위해서는 이 전 회장에게 구걸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많은 국회의원과 장관과 정몽준 대표와 정운찬 총리를 가지고도 꺾을 수 없는 박근혜 전 대표의 아성을 이건희만 도와주면 산산히 부셔버릴 수 있는 것이다.

▲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뉴시스
자신이 지닌 '금권'을 통해 이건희 전 회장은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힘든 '경제 반칙'의 고수 이 전 회장은 이제까지 1조 원이 넘는 돈으로 자신의 감옥행을 피해오더니 이번 '사면 세탁'을 통해 아예 깨끗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진시황이 따로 없다. 21세기 한국에선 돈이면 다시 태어난다.

이건희 전 회장을 기쁘게 하기 위해 이명박 정부는 많은 공부를 한 듯 하다. 정말 준비 많이들 했다. 논란이 당연시 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국익'과 '올림픽 유치' 등 정말 다양한 변명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 중 눈에 띄는 게 있다. 법무부는 특히 경제인 1명을 단독 사면해 주는 문제에 대해 "프랑스 정부도 2006년 뇌물 수수로 유죄가 선고된 기 드뤼 IOC 위원을 사면해 준 바 있다"며 해외 사례까지 수집해 여론을 무마하려 들고 있다. 그렇다면 기 드뤼와 이 전 회장을 비교하는 것이 과연 합당할까.

기 드뤼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10미터 허들 금메달리스트로서 은퇴 후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1990년대 중반 프랑스의 청소년스포츠부 장관을 지냈고 결국 IOC 위원이 된 인물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오랜 지지자였던 그는 그러나 2005년 5만 유로의 벌금과 함께 15개월 집행유예형을 받는다.

시라크 대통령이 파리 시장으로 있던 1990년대 초반, 파리 시내 공공주택 건설과 중등학교 보수 공사를 한 건설 회사에 몰아주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아 불법 정치 자금을 조성한 것 때문에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당시 시라크 대통령이 직접 조종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프랑스 정국을 강타했지만 대통령이 된 그는 대통령 면책권을 앞세워 대응했고 결국 그와 관련된 40여명의 정치인들이 줄줄이 구속됐던 그런 사건이었다.

드뤼 위원이나 이 전 회장이나 범죄를 저질렀고 이후 사면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똑같겠지만 사면이 정치사회적 고려의 산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둘 간의 차이는 엄청나다. 사실 비교 불가다. 뇌물 공여에 더해 수조 원 대의 차명 계좌 운영과 탈세, 불법 경영권 승계 등 한 국가의 경제질서를 문란케 하고 벌금 등의 죄값으로 미화 10억 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한 사람에 비하면 당의 정치 자금 조성에 가담했다가 벌금 6만 달러를 낸 드뤼 위원은 '잡범' 축에도 못 낀다. 같은 IOC 위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드뤼 위원과 이 전 회장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이제 따분한(?) '윤리' 이야긴 그만두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그렇다면 이 전 회장의 사면이 우리에게 동계올림픽을 가져다 줄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첫째, 정부는 이 전 회장이 사면과 함께 올림픽 유치의 전면에 나설 것이라 주장하지만 IOC의 내부 사정은 좀 다르다. 시라크 대통령은 2006년 드뤼 위원을 사면하면서 "스포츠 영역에서 프랑스의 이익을 수호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IOC 윤리위원회는 그가 사면을 받았음에도 IOC 구성원의 윤리 문제는 범죄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며 드뤼 위원은 올림픽 운동의 명성을 손상했다고 결론내리며 그를 질책했다. 아울러 윤리위원회는 드뤼가 향후 5년간 IOC 내 어떤 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도 앉지 못하도록 권한을 정지시켰다.

두 번째, 올림픽 자체가 서구의 백인들이 주도하는 이벤트이기도 하지만 특히 동계올림픽은 유럽의 입김이 강하다. 현 IOC 부위원장이자 차기 위원장에 도전하는 토마스 바흐가 버티고 있는 독일의 뮌헨은 시설이나 환경 면에서 가장 앞서 있다. 프랑스 안시는 2012 하계올림픽을 영국 런던에 뺏겼던 충격을 만회하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경쟁하면 평창이 어부지리를 얻을 것이라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개최지 선정 투표 방식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평창이 1차 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어 과반수 투표를 얻지 못하면 2차 또는 3차에서 유럽표의 결집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투표가 1차에서 끝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2010과 2014 모두 평창은 그렇게 쓰러졌다.

세 번째, 21세기 들어 올림픽 개최지는 해당국 IOC 위원의 역량보다는 해당국 지도자의 인기에 영향 받기 시작했다. 독일의 메르켈과 프랑스의 사르코지의 영향력과 인기를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넘어설 수 있을까.

네 번째, 이 전 회장이 과연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을 다 할 것인가. 아쉽게도 이 전 회장, 아니 삼성은 동계올림픽의 유치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삼성은 이미 IOC 최대 스폰서다. 그런 상황에서 하계도 아닌 동계올림픽의 국내 유치 여부는 삼성의 올림픽 마케팅에 별다른 변수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삼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대부분의 매출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평창올림픽'의 탄생이 삼성의 인지도 상승이나 매출 증대에 추가로 영향을 미칠 여지는 사실상 없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하나 있다. 아니 인물이다. 바로 88올림픽 유치신화의 주인공 정주영 회장이다. 사실 88올림픽은 그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바쁜 기업인이었던 그는 왜 그토록 올림픽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뛰었을까.

1980년 반란과 '광주 학살'을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 일당은 올림픽에 눈독을 들이고 이를 정주영 회장에게 떠넘긴다. 당시 그는 올림픽에 관심이 없었을 뿐 아니라 전경련 회장까지 맡아 정신 없이 바쁜 상황이었지만 신군부의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 정주영 회장의 현대는 이병철의 삼성과 각축을 벌이던 상황이었는데 신군부가 신현확을 '경제사부'로 모시면서 저울추가 삼성으로 기우는 상황이 되자 위기감을 느끼던 차였다. 또한 1970년대 중동 건설붐 당시 구입했던 엄청난 물량의 장비와 인력이 중동붐이 사그라들자 애물단지가 되어가던 상황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결국 그는 현대의 해외지사를 총동원하다시피 유치전에 매진해서 결국 1981년 9월 30일 나고야를 누르고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한마디로 기적에 가까운 역전극이었다. 1980년 12월 유치신청서를 접수시킨 후 채 열 달도 안 되는 기간 유치전을 벌여 4년을 준비했던 나고야를 격파(?)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5공 출범 초기 삼성에 유리하게 돌아갔던 재계 판도를 현대에 유리한 국면으로 바꿔버렸다. (참고로, 정주영은 IOC 위원을 해 본 적이 없다.)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에겐 굳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을 다해야 할 동기가 없다. 이 전 회장에게 당분간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 이재용에게 회사를 온전하게 물려주는 것 뿐이다.

다섯 번째, 평창유치위 사람들은 아마도 다 알고 있을 사실인데 강원도 지역의 온난화 문제다. 최근 평창 지역인 적설량이 현저하게 줄었다. 눈이 오지 않는 것이다. 이는 유치 도전에 나서는 지역에겐 치명적인 결함이다. 경쟁도시보다 더 무서운 게 바로 적설량 감소다. 세 번째 도전인 이번에는 이 문제가 보다 부각될 것이다.

여섯 번째, 재미있는 변수가 하나 있다. 2022년 월드컵 유치에 나선 정몽준 의원이다. 얼마전 정 의원은 지난 14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이건희 전 회장의 사면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다소 이른 감이 있는 것 같다"며 제동을 걸었다. 친형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에 대한 사면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니까 진의를 믿고는 싶지만 2022년 월드컵 개최지가 당장 내년인 2010년 12월에 결정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공교롭다.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이 경쟁하는 상황도 가능하다.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시기(2011년 7월)보다 앞서 결정되기 때문에 만약 한국이 2022월드컵 단독 개최가 덜컥 결정되어 버리면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에 당연히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실 개인적 의견이지만 개최 가능성이나 개최 여건은 월드컵이 동계올림픽보다는 앞선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아무리 국익과 올림픽 유치를 강조, 강변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이건희 사면은 여러모로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이며 비상식적이다. 사실상의 '도박 사면'이고 여기에서 확실하게 '건더기'를 건진 사람은 이건희 뿐인 것이다.

이번 사면으로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다. 마침 미국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데 여기 와있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확실하게 동감하게 된 사실이다. 교육, 주거 등의 환경을 따지면 아무래도 살기는 미국이 한국보다는 더 낫다. 그런데 최근 몇몇 사람과 나눈 말이 이렇다. "한국이 미국보다 살기 더 좋아. 돈만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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