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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 울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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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 울고 싶은…"

[RevoluSong] 단편선의 <오늘 나는>

여기 인간 박종윤이 있다. 현재 살아있는 인간 박종윤, 20대의 수컷인 박종윤, 대학생으로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 박종윤, 단편선이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는 박종윤까지 모든 순간 그 자신인 박종윤이 있다. 그의 노래 <오늘 나는>은 바로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독특한 노래이다.

사소함과 무기력, 욕망과 투쟁, 좌절과 비루함을 모두 담지한 주체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노래는 현재를 살아가는 남성, 혹은 운동권 대학생, 혹은 20대, 혹은 한 사람으로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고백 같은 노래이지만 여느 노래와는 달리 욕망하는 주체와 투쟁하는 주체를 도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모든 것은 생활이라거나 삶이라는 이름으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동안 우리의 노래는 어느 한 편에 국한된 자아만을 보여주는 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와 추가 결코 다르지 않다거나 존엄과 비루가 결코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굳이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견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일견 불편하기도 한 모습 속에 우리 모두가 살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투쟁이나 진보라는 이름으로 이런 모습들을 지우는 것은 결코 예술의 몫이 아니라는 말은 꼭 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라고 외쳤던 1980년대 말 학생운동권의 초상과 "술 마시면 여자에게 추근덕대"면서도 기꺼이 "시위 현장을 가득 메운 붉은 깃발"의 일원이 되는 2000년대 학생운동권의 초상 사이의 거리와 변화와 차이와 공통점에 대해 이해하게 될 때 2000년대는 비로소 명료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일기이며 또한 단편선의 주장처럼 '가장 멍청하고 나약한 투쟁가'로 보아도 좋겠지만 그 무엇이 아니더라도 오늘에 대한 명징한 기록으로 개성적인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현재 경희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그는 군입대 전 '회기동 단편선'이라는 이름으로 자가제작한 시디를 판매하며 범상치 않은 재능을 보여준 바 있다. 제대 후 대학생 문화운동에 참여하며 용산참사현장과 이런 저런 시위 현장뿐만 아니라 빵이나 바다비 같은 홍대 앞 라이브 클럽들을 종횡무진 누비며 자신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그는 대중음악웹진 <보다>의 필진으로 맹활약하고 있는 리뷰어이기도 하다.

그는 이번 곡의 가사와 멜로디를 직접 쓰고 포크 기타와 베이스 기타, 탬버린 연주, 드럼 프로그래밍까지 직접 해냈으며 녹음과 믹싱, 마스터링까지 스스로 다 해냈다. 그 결과 필연적으로 다소 조악한 사운드가 탄생하기도 했지만 포크 송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곡이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와 결합하며 돌연 발칙해지는 사운드는 단편선의 진심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과연 그의 음악이 선배 민중음악인들과 어떻게 다른 풍경을 아로새길 수 있을지 주의깊게 지켜볼 일이다. 그의 홈페이지에서는 더 많은 곡과 글을 들을 수 있다.



<오늘 나는>

오늘 나는 입술에 잡힌 물집
오늘 나는 힘없이 새는 오줌 줄기
오늘 나는 모르고 뀐 방귀냄새
오늘 나는 매일 무심히 자라는 손발톱
오늘 나는 아침, 팬티에 식은 정액 자국
오늘 나는 앳된 AV배우의 신음소리
오늘 나는 분명 출처를 알 수 없는 담배빵
오늘 나는 말끝마다 습관처럼 붙는, 시발
오늘 나는 1호선 국철을 도는 미친 여자
오늘 나는 불타는 망루 위 말을 잊은 하늘
오늘 나는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쏟는 특공대
오늘 나는 벽에다 음담을 적고 시시덕대며 담배를 태우는 철거깡패들
오늘 나는 어느 전직 대통령의 자살과
오늘 나는 시위현장을 가득 메운 붉은 깃발과
오늘 나는 진하게 끓여 내온 순대국밥과
오늘 나는 87년 6월의 열사들과
오늘 나는 고시원에서 질게 된 밥을 푸는
오늘 나는 하루에도 열두번 울고 싶은
오늘 나는 매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오늘 나는 술 마시면 꼭 여자에게 추근덕대는 오늘 나는

▲ 단편선. ⓒ단편선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매주 화, 목요일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될 이번 릴레이음악 발표를 통해서 독자들은 당대 뮤지션의 날카로운 비판을 최고의 음악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 "다시 음악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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