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돌처럼 그냥 놓여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빵처럼 매일 다시 만들어야 하며, 늘 새롭게 빚어야 한다."
SF의 거장 어슐러 K. 르귄의 소설 <하늘의 물레>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사랑이란 결국 한 번 완성해 두는 박제된 감정이 아니라, 매일 새로운 마음과 정성으로 되살려내야 하는 실천일지도 모른다.
나는 법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근간을 만드는 법이 사람들의 감각과 질문을 잃은 채 굳어버린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약속이라기보다 방치된 구조물에 불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 40년 만의 헌법 개정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정쟁의 계산 속에 멈춰버린 39년 만의 개헌
39년 만에 국회 본회의에 오른 헌법 개정안의 표결은 끝내 무산됐다.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표결에 집단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명시하고, 대통령의 계엄 선포 권한을 제한하는 등 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바로 세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5·18과 부마항쟁을 함께 기록함으로써 민주화 운동을 전국적 역사의 반열에 올리고 민주주의의 계보를 확장하고자 했으며, 다시는 비상계엄이 군사 권력과 독재의 도구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동을 걸고자 했다.
2026년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동의할 법한 내용임에도, 국민의 힘이 표결조차 거부한 것은 결국 헌법을 사람들의 삶을 위한 '살아있는 규범'이 아닌 '정치적 유불리의 도구'로만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쟁의 계산 끝에 멈춰버린 논의는 단순한 절차적 무산이 아니다. 달라진 시대에 발맞춰 우리 민주주의를 혁신할 소중한 기회 자체를 박탈한 것이다.
'87년의 해방'을 넘어, '2026년 모두의 존엄'으로
헌법은 국가의 최상위법이다. 사회구성원이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인권을 명시한 것이 헌법이다. 일반 법조항과 달리 개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만약 당신에게 헌법 개정 투표에 참여한 기억이 있다면, 당신은 최소 1967년 이전에 태어난 사람일 것이다. 1987년 10월 27일 소위 '87년 체제'가 정립된 이후, 대한민국 헌법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39년 동안 세상은 얼마나 변했는가. 지금으로서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정조관념을 운운하던 뒤떨어진 인식을 지나, 이제 우리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인권을 논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던 간통죄의 시대를 통과해, 이제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의 해체와 대안적 가족 형태를 고민하고 있다.
또한 지난 광장에서 '여성, 청년, 성소수자'들이 보여준 참여와 목소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가 되었다. 평등과 존엄에 대한 열망은 이미 광장의 기록물 속에 가득히 새겨져 있다. 87년의 헌법이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중요하게 여겼다면 2026년의 새로운 헌법은 '평등, 소수자 인권, 기후위기에 대한 감수성'으로 그 지평을 넓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존엄한 삶과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한 우리 시대의 약속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돌 같은 헌법이 아니라, 빵 같은 헌법으로
지금까지 헌법이 고정불변의 틀이었다면, 이제는 투표를 통해 우리 손으로 직접 공동체의 규칙과 권리를 고민하고 논의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시대 흐름에 맞춰 헌법을 변화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민중의 목소리가 온전히 담긴 헌법을 향해 나아갈 때, 헌법의 얼굴은 비로소 성소수자, 장애인, 빈자, 이주노동자, 여성, 청년, 어린이의 모습으로 채워질 것이다.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고 모두의 평등이 담겨있는 헌법을 통해,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지평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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