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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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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5>

[특집] 전교조 문제 정면으로 다룬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

국내 영화계가 부침을 계속할 수록 강우석 감독의 '화려한 부활'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강우석의 귀환이 꼭, 충무로 황금기의 또 다른 도래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국내 영화계가 산업화 고도화 전문화의 규격에 묶이기 이전, 인간 네트워크로 진행되던 그 무엇의 시절에 대한 향수같은 것이 담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우석은 여전히 현재진행적 인물이다. 그는 최근 <백야행>을 제작배급하고 있고 <이끼>는 직접 연출중이다. 하지만 강우석에 대한 평가는 늘 조금씩 왜곡돼 왔거나 저평가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강우석의 '화려한 부활'을 원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비교적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작업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행하는 영문판 감독론 책자 <강우석>의 국문 원고를 일부 수정, 분재해서 싣는 것임을 밝힌다 – 편집자)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로 대대적인 성공을 한 강우석은 1991년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와 1992년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등 두 편의 하이틴 영화를 더 만든다.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는 전작인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에 비해 사회문제에 한 걸음 더 나아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사실 청소년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척하면서 당시 한국사회에서 보수주의자들의 표적이 됐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과 이들에 대한 해직사태의 문제까지 중첩시켜 놓은 내용이다. 한국의 기득권자들의 상당수는 학교와 종교재단을 통해 과세되지 않는 엄청난 부를 쌓아 왔으며 오랜 시간 사회갈등의 씨앗이 돼왔다. 진보적인 의식을 지닌 일부 교사는 학교 내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이에 대항했으며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은 이들을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불어 넣는 불순분자들로 기존의 제도와 법을 동원해 억압해 왔다.

강우석은 이 영화에서 학교와 종교를 싸잡아 비판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는 씬에서 학부모들이 해직후 출근투쟁을 하는 두 명의 선생들을 막고 행패를 부리는 장면을 넣는다. 학부모들은 당신들 때문에 아이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강변하고 교장은 교장대로 중심인물로 나오는 선생 제철에게 전인교육이다 참교육이다 어쩐다 하면서 선생들이 제대로 대학입시 수업을 하지 않는다며 이념적으로 억압한다. 정학을 4번이나 맞을 정도로 문제아인 준석이 비뚤어진 심리를 갖게 된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에선 귀가하면 늘 현관 가득 모여 있는 교회 신도들의 신발들을 보여 준다. 준석이 엄마는 아들의 교육보다는 오로지 자신의 종교적 구원에만 관심이 있지만 자신도, 아이도, 가정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성공 이후 강우석 감독이 만든 또 한 편의 하이틴 영화다. 여기서 강우석 감독은 전교조와 해직교사 문제를 중첩시키면서 사회문제 비판에 한걸음 더 나아간다.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에서 주인공 준석이 정신을 차리게 되는 것은 항상 반항의 대상이었던 선생이 '선생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면서'부터이다. 그렇게 된 데는 새로 그의 담임을 맡게 된 제철 때문이다. 하지만 제철은 동료선생이 전교조 소속이라는 이유로 해직을 당하게 되자 고민에 쌓이게 된다. 제철과 준석, 준석이 좋아하는 같은 학교 여학생 채옥(제철의 여동생이다), 준석과 채옥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문학소년 형수는 점점 더 골이 깊어지는 학교 측과 전교조 교사들간의 긴장이 깊어지는 가운데 점점 불안한 파국으로 향하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에서 재밌는 것은 이후 강우석 영화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액션 신과 그에 따른 군소 캐릭터들의 단초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오프닝 장면에서 선생 제철이 밤거리를 가다가 준석 패거리에게 린치를 당하는 장면, 준석 일당이 보여주는 아마츄어 조폭의 행패는 이후 <투캅스>에서 <공공의 적> 시리즈에서 나오는 강우석의 악인들의 초기적인 캐릭터들이어서 흥미롭다.

1992년에 만든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는 강우석의 전작인 하이틴 사회물 두 편에 비해 그리 주목할 구석이 있는 작품은 아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에서 음악감독을 맡았던 유명가수 출신 김창완의 개인담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골수암에 걸려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청소년 관객들의 정서를 담아 내는데 있어 일정한 자신감을 갖게 되서인지 전작 두 편에 비해 극적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던 것에서 한걸음 물러나 사회적 미담을 소재로 삼았다. 강우석의 초기작 가운데 휴먼 드라마의 유형에 속하는 작품이다. 비평적으로 볼 때 주목을 끌지 못했던 이 영화는 흥행 면에서도 평이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계속)
<시리즈 이전 글>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4>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3>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2>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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