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해임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서태환 부장판사)는 16일 김정헌 전 위원장이 유인촌 문화부 장관을 상대로 낸 해임 무효 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 전 위원장에 대한 해임 처분은 본인에게 사전에 통지하거나 의견 제출의 기회, 소명 기회 등을 전혀 주지 않고 처분의 법적 근거 및 구체적인 해임 사유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재량권을 일탈·남용해 이뤄진 것으로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 전 위원장이 방송발전기금으로 미술가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임대해 운영한 것, 아르코미술관에 프로젝트형 카페를 운영하기로 계약한 것, 사무처 직원인 박모 씨를 사무처장으로 임명한 것은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 해임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문화예술진흥기금을 운용하며 등급이 낮은 위탁 운용사에 기금을 맡긴 것은 업무 매뉴얼에 따른 것이므로 법을 위반한 행위라 할 수 없다"며 "또 최종 결재권자인 위원장에게까지 담당 실무자와 같은 수준으로 내부 규정을 숙지할 것을 요구하기 어렵고, 지난해 경제 위기로 인한 주가 하락 등을 감안할 때 50억 원의 손실이 내부 규정 위반 때문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정헌 전 위원장은 문화부가 해임 사유로 꼽은 기금 손실분 40여억 원에 대해 제기한 2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지난 10월 승소했다. 또 김 전 위원장 해임 당시 같이 해임된 박영학 문화예술위원회 전 사무처장 역시 해임 무효 소송에서 승소했다.
앞서 지난해 3월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유인촌 장관은 전 정부에서 임명한 문화부 산하 기관장들은 임기와 상관없이 자진 사퇴할 것을 촉구했으며, 이를 거부하는 기관에는 집중 감사와 징계가 잇따라 이뤄졌다. 김 전 위원장 역시 이 같은 과정 끝에 지난해 12월 해임됐다.
이처럼 전 정권에서 임명했다는 이유만으로 해임된 기관장들이 행정소송에서 줄줄이 승소하고 있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 역시 지난 11월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무효 소송에서 해임 절차의 위법성과 임명 기관의 재량권 남용이 인정돼 일부 승소했다.
"부조리한 사회 상황 상징적으로 보여줘"
김정헌 전 위원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특히 인사에서 황당무계한 일들이 진행됐다"며 "아직 1심 판결이지만 여러모로 의미있는 판결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일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법치를 입으로 외치기만 하고, 정작 일은 정권 입맛에 맞는 기준과 원칙만 가지고 하려 하니 소통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위원장은 "특히 문화부는 문화와 예술의 자존심을 지키고 자율성을 보존해야 하는 기관인데, 문화와 예술 존엄성을 해치는 것은 수장으로서 갖춰야 할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며 "인사 조치에 있어서도 기관장을 함부로 해직하는 부서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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