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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의 전쟁'…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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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의 전쟁'…누구를 위한 것인가?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부모들은 세뇌당한 것이 아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감사 결과에 항의하며 1인 시위 중인 학부모에게 한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 장관은 문광부 정문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던 학부모가 "부모 된 입장에서 생각해달라"고 말하자, "학부모를 왜 이렇게 세뇌를 시켰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학부모가 '자신이 몇살인데 세뇌가 되냐?'고 되묻자 유 장관은 "세뇌가 되신 것이지.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고, 학교 전체가 다 알고 있다"고 답하며 유 장관은 "(서사창작과)가 잘못된 과"라며 "학교에서 잘못 만든 과"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들이 한예종을 좋아하고 선망하는 이유는 세뇌당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 아이의 예술적 감수성을 살리는 학교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미술대학에 진학하고자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 자녀를 예체능대학에 입학시키고자하는 부모들도 많다. 학원이 대입 필수로 자리잡은 것은 미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 미술대학은 미술 학원을 통해 들어가고 외국대학은 포트폴리오를 통해 진학한다. 한국 부모들의 예술교육 선호 현상은 미국의 유명 미술대학도 예외가 아니어서 미국의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이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드, 뉴욕 쪽 예술 대학에는 한국 학생들 천지이다. 물론 미국 대학 내 미술교과가 설치된 수천 개 대학교 중 상위 20개에 집중되어있다.

이중 부모들이 해외 유학을 마다하고 국내 진학을 고려하는 학교가 있으니 이는 바로 한예종이다. 주변에는 출세가 보장된 유명대학 졸업생이 해외유학이나 명문 기업 취직을 보류하고 한예종에 학사편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예종은 창의성이 살아 있어야 진학할수있는 학교, 학원으로는 진학할 수 없는 학교로 알려져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양성과 창의성이 근간이 되어야할 한국 예술 교육은 지금 창의력 고갈과 획일화로 고사 직전이다. 이는 기계적인 반복 학습으로 기술자를 길러내는 예술대학 선발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대, 홍익대를 포함해 대부분 예체능 전공 대학들은 창의성을 중시한다면서도 실기시험이라는 명분아래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창의성을 고사시키는 방식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해왔다.

미술 지망생의 경우 미술대학에 진학하려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3까지, 때로는 재수를 하면서까지 하루 5시간 이상 미술학원에서 '썩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미술학원에서 썩는 동안 자녀의 창의성도 썩고, 학원비도 만만치 않게 든다는 점이다. 예체능 자녀를 둔 부모들은 너무 많이 지쳐있다. 오죽하면 세간에 '빨리 망하려면 주식을 하고 천천히 망하려면 자녀를 예체능 대학에 진학시키라'는 말이 나돌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한예종은 예체능 학원의 기계적인 기술 훈련을 무시하고 창의성과 감수성에 기초한 포트폴리오 제출 등 예술적으로 의미있는 선발 방식을 도입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중고등학교 자퇴생이 그후 한예종 영상과에 진학한다는 소식, 유명 연출가와 배우가 한예종 출신이라는 사실은 선발 방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더구나 한예종 졸업생들의 빛나는 예술적 성취 또한 엄마들의 한예종 선망을 부추기는데 이는 한예종이 추구하는 이론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한예종은 교육 과정에 실기와 이론을 접목시킴으로써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깊고 다양한 불안과 고민을 성찰하게하고 학문 간 영역을 두루 섭렵함으로써 발전된 예술 세계를 만들어가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 생각 있는 부모들이 한예종을 좋아하고 선망한다. 이는 한예종이 부모들한테 인기를 끌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의미있는 교육 과정을 만들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런 결과를 낳았으리라 짐작이 된다. 비록 학원 입시미술을 통해 다 죽어버린 창의성이지만 좋은 교수를 만나 제대로 배우면 학생의 예술적 감수성은 다시 꽃필 수 있는 것이다.

화랑 관계자들 말을 빌리면 '미술 쪽에서는 학벌이 파괴되었다'며 '얼마 전에는 경희대가 떴다'고 한다. 그는 "좋은 교수가 좋은 예술가를 키우는데 한국 대학들은 상위권 대학일수록 학벌 카르텔이 강고하여 좋은 교수가 들어갈 수 없고 그에 따라 좋은 예술가가 양성될 수 없는 한계가 있는데 일부 대학에서 좋은 교수를 초빙하면 학생들의 감수성이 살아나 기량이 발전하게 된다'"고도 했다.

또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서울대 출신 유명 화가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았나?"

예술 교육의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명박 정부는 한예종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부정하려고든다. 뜻밖이다. 세상이 거꾸로 가는것도 유분수이지 창의성과 다양성과 이론과 실기가 결합된 교육기관을 장려하고 육성하여야할 문화부가 이를 이미 실천하고 있는 한예종에 대해 감사라는 칼을 휘두르고 몇몇 교수를 좌파라고 낙인찍어 목을 치려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문광부 유인촌 장관은 취임 이래 문화예술과 언론을 비롯한 영역 전반에 걸쳐 정치적 목적의 감사와 보복 인사, 낙하산 인사 등을 수차례 자행하고 있다. 김정헌 예술위원장에 대한 횡포가 그러하고 김윤수 관장에 대한 것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최근 황지우 전 총장의 사퇴도 그렇다. 평생 예술만 알고 산 분들에게 치사하게 돈 문제와 엮는 것은 이 정부의 특기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돈 문제였다.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어 더 이상 자리에 머무르지 못하게 치욕을 주는 것이 그들의 주특기인 것이다. 이 모두가 유인촌 장관의 과욕과 이명박 정부의 '좌파 척결'이라는 망령이 합친 것이다.

특히 이번 사태의 이면에 새로운 학문에 대한 배척, 몇몇 예술대학의 헤게모니 싸움이 한 자락한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며 한국 예술교육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다. 문광부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 보복성 인사 처분, 부당한 구조 조정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 유인촌 장관이 부모들이 세뇌당했다며 자신이 벌인 한예종 사태의 심각성을 애써 축소시키고 왜곡시키는 것은 떳떳치 못한 일이다. 만에 하나 잘못된 학과, 잘못 만든 학과의 기준은 무엇이며 잘못 만든 과는 장관 마음대로 폐지시키거나 구조조정해도 되는가?

부모들은 한예종이 더욱 발전하여 기존의 학벌 카르텔을 적극적으로 붕괴시키고 선발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길 바라고 있다. 부모들은 예술 교과를 전공하려는 자녀가 더 이상 학원에서 썩지 않아도 되는 학교, 예체능 학원에서 말살된 창의성을 다시 되살리려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학교,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교육기관을 원하고 있다. 부모들이 운동권 좌파 교수에게 세뇌당했기 때문이 난생 처음 1인시위에 나서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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