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5일부로 문화관광체육부(장관 유인촌, 이하 문광부)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특별조사' 결과, 「문화예술진흥법」과「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법령과 규정을 위반하였다고 한다. 나는 적법한 임명절차를 거쳐 2007년 9월 7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취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한나라당,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은 코드인사 운운하며 시비를 걸어 왔으며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를 무시하고 끈질기게 퇴진압력을 행사해왔다.
어느 정부건 정권을 잡으면 인사 교체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이 움직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자리도 있다. 바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여 공모로 뽑힌 공공기관장들이 그러하다. 특히 문화예술관련 사업들은 단시간에 성과를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으므로, 정권의 변화에 관계없이 적어도 법적인 임기만큼은 일관성 있는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법으로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유인촌 장관은 직간접적으로 사퇴를 요구해왔을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대해 간섭에 가까운 정책지시를 내렸다. 애초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한 것은 단순히 이름이 바뀐 것이 아니라 '관'의 입김을 차단하고 현장의 예술가로 구성된 위원들로 구성된 민간합의기구로서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유 장관의 사퇴종용과 간섭은 이런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한 가장 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 유인촌 장관이 "공연계에 활력을, 국민에게 감동을!"이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 내용은, 문화바우처 사업을 통한 장애인들의 문화향수기회 확대, 미판매 공연티켓 통합할인제 도입, 중소기업 및 지방단위 공연지원 강화 등이었다. 그러나 이 중 반 이상이 이미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중인 사업이다. 국회에서 어느 야당의원이 이에 대해 "(위원회의 일인데) 왜 위원회와 사전 협의가 없었느냐"고 질문하자 유 장관은 "위원회가 두 손 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서…"라고 무슨 대사 외우듯이 대답했다. 국회가 연극무대였던가?
이런 사업들은 위원회와의 사전 협의가 필수적이기도 하지만 장관이 나서서 발표할 일이 아니다. 과장 정도가 나서서 해도 될 일을 굳이 장관까지 나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 한국문화예술위원장 취임에서 해임까지 문화부와 조중동의 사퇴압력 일지 - 2007년 9월 7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기 위원장으로 취임 - 9월 7일 전후 : 동아일보 등 조. 중. 동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의원들의 코드인사 운운 공격. 공공기관에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공모 절차를 거친 정당한 임명을 무시, 소위 좌파쪽에만 지원예산을 몰아줄 것이라는 흠집내기성 기사들. - 2008년 3월 11일 :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 "지난 정권 추종세력..." - 2008년 3월 12일 : 유인촌 문화부장관 광화문포럼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나름의 철학과 이념을 가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키는 것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 - 2008년 3월 17일 : 유인촌 문화부장관 중앙일보 인터뷰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과 김윤수 현대미술관장 등을 거론하며)끝내 자리를 고집한다면 나로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공개할 수밖에 없다" - 2008년 3월 말 : 유인촌 장관과 식사시 유장관으로부터 앞서의 발언에 대해 사과 받음. 그러면서 크게 결심을 해주기 바란다는 요지의 말을 전달 - 2008년 8월 11일 : 문화부 예술국장 내방, 1기위원들과 같이 사퇴할 것을 종용 - 2008년 9월 9일 : 문화부 예술정책과장, 한국문화진흥 뉴서울 골프장 감사, 전무 후보자 이력서 가져와서 처리할 것을 부탁 - 2008년 10월 9일 : 조선일보, '청와대가 사표 제출을 요구했으나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관장과 감사들' 제하의 기사에서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등 4명의 공공기관 기관장과 23개 공공기관의 감사들 일람표 게재 - 2008년 11월 6일 : 문화부 김장실 차관이 문화부로 불러 10시에는 김윤수 현대미술관관장, 11시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정헌 위원장에게 '유인촌 장관의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며 11월 말까지 결단을 내려줄 것'을 요청. - 2008년 11월 12일 : 유인촌 장관 국회 예산감사에서 (본인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차관이 사퇴를 종용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거짓증언함. - 2008년 11월 26일 : 문화부 감사관실에서 4명의 직원들이 감사를 위해 나옴. 일주일 전부터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사항과 감사원감사에서 지적된 사항들을 중심으로 자료요구. 감사 나온 문화부 직원이'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지겠다. 아마 (위원장)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발언 - 2008년 12월 5일 : 해임 통고 |
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진다더니...
이러한 모든 압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퇴하지 않자, 유인촌 장관은 문화부 직원을 보내 특별조사를 했는데, 그 직원들은 "한 건이라도 나올 때까지 끝까지 뒤지겠다. 아마 (위원장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열심히 뒤져서 찾아낸 해임사유가 대부분 틀리거나, 부실하거나, 이미 감사원의 감사로 지적되어 더 이상 다른 기관에서 감사할 수 없는 문제들이라는 점이다.
해임사유 4건에 대한 반박
가장 큰 문제로 꼽았던 부분은 "기금운용관련 규정을 위반한 투자로 거액의 투자손실 초래"인데, 근거가 되어야 하는 '문화예술진흥법'과 '국가재정법' 어디에도 "상대평가를 통해 C등급 이하는 투자하지 말도록" 한 규정은 없다. 다만 감사원이 지난 봄 감사 시 '금융기관 선정기준'을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결과를 활용하도록 권고했을 뿐이다. 즉, 본래 그러한 등급이 있던 것이 아니라 기금을 나누어 넣어둔 11개 금융기관을 감사원이 사후적으로 A, B, C 등급으로 나눈 것이다. 뒤늦게 나눈 등급에 기준하여 그 이전에 넣어둔 돈을 잘못 운영하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또한, 감사원이 권고한대로 상대평가를 통해 C등급에 기금을 투자한 경우는 문화부가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관광기금'에도 해당한다. 그 기금도 벌써 70억이 넘는 손실평가를 받고 있다던데, 그렇다면 이 건으로 인해 유인촌 장관도 해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세계적인 금융 불안으로 모든 연기금기관들이 투자 손실을 입고 있다. 국민연금처럼 큰 연기금기관들은 손실액이 무려 8조 5천억 원에 달한다. 이 정도 규모면 대통령이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우리 위원회는 작년까지 내리 13개 연기금기관 수익이 매우 높아 자산운용부문에서 항상 1위의 자리를 지킨 바 있다.
이 외에도 인사미술공간과 아르코미술관 카페 계약 건을 문제 삼았는데 이는 억지춘향으로 끼워 맞춘 것들이다. 인사미술공간 게스트하우스(빌라) 임대는 방송발전기금 10억 원을 쓰고 있으며 방송위의 실사 시 관련 주거시설 임대가 적시된 임대차 계약서를 제출하였고 이에 따른 어떠한 조치도 요구받은 바 없었다. 기금을 지원해준 해당 방송위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화부만 이것이 마치 커다란 법령 위반 행위처럼 '뻥튀기'를 하고 있다. 그들이 지적한 사항 중에는 관리부실을 지적하며 '번호키를 사용하여 번호 유출 우려'라는 지적사항까지 있었다. 번호키를 사용한 것도 법령위반이란 말인가? 유장관! 정말 국가 공무원들이 이런 쓰잘데없는 일에 매달리게 해도 되는가?
아르코미술관 카페 수의계약 건은 아르코미술관 운영규정에 의해 고유목적사업으로 '테이크 아웃 드로잉'이라는 미술활동을 하는 단체와 계약을 한 것이라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이런 적법한 일들을 들추어 낸 다음 그들은 직원들의 책임을 면해줄 터이니 위원장과 처장에게 덮어씌울 것을 강요하며 직원들을 회유하거나 또는 반강제적으로 확인서를 받아갔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법적인 자문을 구해 보겠지만 그들은 정식 감사도 아닌 '특별 조사' 명목으로 위원장을 해임시키고 여러 가지 조치 사항들을 요구했다. 기관장인 나에게는 지적사항들에 대해 어떠한 해명이나 소명기회도 주지 않았다. 이 모든 해임과정이 형식과 절차에서 적법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들은 원하던 대로 나를 해임시켰다. 아마도 앓던 이를 뽑아낸 것처럼 시원하겠지. 정말 애들 많이 썼다. 지금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제 한파로 우리 사회는 한 치 앞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위기 상항이다. 내년 쯤 해서는 '청년실업과 대량실업으로 인해 체제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청와대실장이 말했다고 한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 한시가 급한 상항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런데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엉뚱하게 법적으로 보장된 기관장이나 노리고 있다. 한심스럽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요즘 '사냥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돌고 있으니 나도 개 이야기를 한 토막 꺼내야겠다. 우리 집에 '또모'라는 강아지가 있다. 먹는 것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이 식탐 강한 강아지도 한 가지 원칙은 지킨다. 그것은 지정된 곳에서 볼 일을 보고 '합격' 소리가 나와야지만 그 보상으로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에 의해 보장된 자리를 내 놓으라고 도에 넘치는 탐욕을 부리더라도 우리 강아지도 지킬 줄 아는 최소한의 원칙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2기 위원들에게 한마디 해야 하겠다. 12월 5일, 내가 해임 통보를 받은 그날 그들은 위원회 회의에서 10명 전원의 이름으로 성명을 냈다고 한다. 특히 나에 대해 기금운용관련 규정을 위반해 거액의 투자손실이 초래된 데 통한을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이 위원회가 새롭게 태어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참 한심한 사람들이다. 뭘 알지도 못하면서 문화부의 지시대로 성명서를 채택하고 10명 전원의 동의로 발표를 한 것이다. 내가 11시 넘어 해임 통보를 받았는데 같은 날 그 많은 안건 처리에도 바쁜 회의에서 어떻게 그런 성명을 준비하고 발표했겠는가? 문예진흥법에는 '위원회의 위원은 외부의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아니 한다'라는 엄중한 위원들의 의무와 권리에 관한 조항이 있다. 위원들의 독립성을 보장한 조항이다. 이 조항도 그렇지만 위원들의 자존심은 어디로 갔는가? 잠시라도 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나의 해명도 안 들어보고 문화부의 일방적인 '지시' 사항을 그대로 발표를 한단 말인가? 제발 당신들 스스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지 마시라.
어쨌든 결국 15개월로 위원장 임기를 마감한다. 위원장의 잦은 교체는 물론 문화부의 일방적인 지시나 간섭은 문화예술 지원기구의 존엄성과 권위를 훼손하는 일이다. 사무처의 업무 안정성도 크게 흔들린다. 이렇게 되면 문화예술계 전체의 손해다. 유인촌 장관은 제발 문화예술위원회를 동반자로 존중하길 바란다. 또한 나 다음부터라도 위원장이 임기를 다 채울 수 있도록 협조하기를 부탁한다. 훌륭한 위원장이라면 한 10년 이상 연임을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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