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세기의 '반칙왕'이 올림픽을 유치한다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세기의 '반칙왕'이 올림픽을 유치한다고?

[정희준의 '어퍼컷'] 이건희 전 회장의 IOC 위원 사퇴를 촉구한다

지난 10월 경기도 용인의 한 가정집에서 냉장고가 폭발했다. 삼성전자의 지펠이었다. 얼마 후 삼성전자는 21만 대에 달하는 지펠 냉장고에 대한 리콜을 단행한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리콜 결정에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격노'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지펠 폭발 사고를 접한 후 지난 20여년 심혈을 기울인 '품질 경영'이 흔들린 데 대해 크게 화를 낸 것이다. 그의 격노는 삼성전자 최고위층의 문책인사로 이어졌다. 삼성전자 가전생활부문 최진균 대표, 최도철 전무, 박용정 상무 등 지펠 관련 임원들이 모두 문책성 인사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불량은 곧 암"이라더니

이 전 회장이 그 동안 고객과의 신뢰를 강조하며 앞세운 말이 하나 있다. "불량은 곧 암이다." 이에 대한 이 전 회장의 신념은 확고하다. 1995년 임직원에게 선물로 돌린 휴대전화와 무선전화기가 통화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그 해 3월 시중에 나간 제품을 모두 수거해 구미공장에서 직원들이 보는 가운데 불태워 버렸다. 15만 대, 500억 원 어치였다. 이 이른바 '화형식 사건'은 '이건희 주연'의 전설로 회자됐고 동시에 '애니콜 신화'의 밑거름으로 불린다.

그런데 품질 경영, 고객과의 신뢰를 강조를 넘어 강요하다시피 하던 이 전 회장은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했다. 우리의 상식과는 반대로, 확실하게 구분했다. 사는 확실히 챙기는 사이 공은 사실상 무시했다. 냉장고 문짝 날아갔다고 불같이 화를 내고 담당 임원들을 줄줄이 문책할 정도로 자신의 회사 제품은 그렇게 완벽하게 챙기는데 법은 잘 챙기질 않았던 것이다.

▲ "이건희 전 회장의 기업 경영은 탈법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뉴시스
그의 기업 경영은 탈법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그가 저지른 수조 원 대의 차명 계좌 운영과 탈세, 불법 경영권 승계 등은 국가와 법을 우습게 보지 않고서는 저지르기 힘든 중범죄들이다. 사실은 그가 한국 사회의 재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냥 재벌이 아니다. 재벌 중의 재벌이다. 그래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이 거쳐야 했던 '구속 수감'조차 거치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출퇴근하며 검찰 조사 받고 법원에서 형 확정 받고 그랬단 말이다. 그러고 받은 형량이 고작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다.

뭐 사실 우리나라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은 이제 재벌들에겐 일종의 '정액 형량'이다. 정몽구, 최태원 회장 모두 똑같았다. 그런데 이들은 사면 또한 초고속이다. 2008년 경제개혁연대가 발간한 '8·15 대기업 관련자 사면 결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8월 15일 사면된 대기업 관련자는 모두 45명인데, 이들이 최종 판결로부터 사면조치 받기까지 걸린 기간은 1인당 평균 16개월에 불과했다고 한다. 물론 상위 재벌이면 더 빨라진다.

그런데 재벌 중의 재벌 이건희 전 회장은 역시 다르다. 사실은 다소 엉뚱하게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와 대한체육회 등 체육계에서 출발한 그의 사면 청원은 곧 이어 재계를 한바퀴 돌더니 지식경제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찍고 이제 한나라당으로까지 이어지는 릴레이 청원이 되었다. 여기에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은 '사면 여론 확산'이라는 기사 제목을 달아 분위기를 한껏 띄우니 청와대는 사면 반대 여론도 무시할 수는 없다며 자못 고민하는 척하고 있다. 결국 형이 확정된지 고작 석 달 지났는데 '이제 그만 하자'고 나서는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엔 법이 있기라도 한 건가.

엔론 CEO들도 '성가대 어린이'로 만들어 버리는 이건희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미국에서 경제사범들이 받는 형량을 한 번 보자. 2001년 미국을 들썩이게 했던 엔론의 CEO 제프리 스킬링은 고작(?) 1조5000억 원대의 분식회계로 징역 24년을 선고 받았다. 53세의 나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종신형이다. 얼마 전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인 650억 달러의 다단계 금융 사기로 구속된 버나드 메이도프(71)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에겐 징역 150년형이 선고됐다.

2000년 뉴욕의 사업가 숄람 와이스는 4억5000만 달러,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5000억 원도 안 되는 푼돈 사기(?)를 벌였다가 845년형을 선고받았고 그와 공모한 케이스 파운드도 같은 사기 사건으로 74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미국엔 이렇게 얼마 되지도 않는 '저액 사기 사건'으로 구속되어 그 죄값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정도가 아니라 귀신도 지칠 때가지 치러야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그래서 한 외신은 범죄의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가지 않는 이 전 회장에 비하면 "엔론의 CEO들은 성가대 어린이(choir boys·미 속어로는 일종의 '바른생활주의자')처럼 보인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전 회장의 범죄 사실은 그 중함이 너무 크다. 경제 질서를 어지럽혔을 뿐 아니라 법을 우습게 봤다. 아니, 법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었다. 한 금융감독기관에 근무하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 및 조세 법은 '삼성 때문에 바뀐다'고 한다. 삼성이 여기저기에 존재하는 법의 틈을 파고들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면 그때서야 정부가 개입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삼성이 그렇게 공격적으로 법조인들을 스카우트 하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삼성은 이런 식으로 국가의 경제 질서를 어지럽힐 뿐 아니라 법질서에 도전하는 것이다.

사실 그는 세계적으로도 '챔피언급'이다. 각 나라의 경제 구조와 질서가 다르니 단순비교는 힘들지만 벌금이나 배상금 등 '뱉어낸 돈'만 따져보자. 이 전 회장은 2007년 에버랜드 전환사채 증여, X파일, 불법 대선 자금 등의 문제로 궁지에 몰리자 국면 전환용으로 사재 8000억 원을 냈고 또 올해 삼성사건 1심 공판을 앞두고는 주주들에게 끼친 손해액 2500억 원을 변제했다. 그리고 형 확정으로 벌금 1100억 원을 부과 받았다. 벌금 1100억 원만 해도 무려 1억 달러다. 전세계 기업인 중 벌금이든 '위기 탈출용'이든 간에 '죄값'으로 10억 달러를 낸 사람 봤는가.

그리고 (역시 전세계적으로) 이건희 전 회장만큼 온갖 반칙(?)을 구사해가며 자식에게 회사 물려주겠다는 사람이 또 있을까. 빌 게이츠는 자선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은퇴를 선언하며 세 자녀에게 1000만 달러만 물려주겠다고 선언했고 워렌 버핏은 440억 달러에 달하는 전 재산 중 85%를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등 자선단체 다섯 곳에 기부한다고 했다. 생전에 말이다. 이들은 회사는커녕 유산도 안 물려준다.

이 전 회장, '복귀'가 특기인가

지금 본인과 관련된 논란이 점차 커지는 와중에도 이 전 회장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삼성 측도 할 말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희 전 회장 사면'은 이제 첨예한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했을 뿐 아니라 국론 분열의 소재가 될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했던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잘못이 정말로 국가와 국민에게 죄가 되고 부담이 됐음을 인식하고 있다면 지금 벌어지는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며 기회를 엿보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이번 사면 논란이 시작된 것은 그의 IOC 위원직과 관련된 것인데, 그는 2008년 공판 진행 중에 IOC 위원직에 대한 직무 정지를 IOC에 요청했다. 스스로 자격 정지를 요청한 것인데 여기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1999년 솔트레이크시티가 2002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IOC 위원들에게 뇌물 공세를 펼쳤다는 올림픽 사상 최대의 추잡한 스캔들이 폭로된 이후 IOC의 윤리 규정은 강화됐고 윤리위원회가 신설된 바 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재판 결과에 따라 IOC에서 당장 퇴출이 논의될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는 일단 IOC에서의 퇴출을 면하고 시간을 벌기 위한 노림수였던 듯 하다.

재미있는 점은 IOC 위원으로서의 활동을 자발적으로 정지 요청한 것이 이 전 회장이 취하고 있는 국내에서의 처신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일단 총수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여론을 조성해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시나리오 말이다. 물러났다 다시 등장하는 건 이제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의 '특기'가 됐다. 영화로 '돌아온 회장님' 시리즈를 만들면 그 끝이 보이질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만.

▲ "이건희 전 회장은 여러모로 볼 때 이제는 더 이상 IOC 위원으로 적합한 사람은 아니다. 사실 거대 다국적 기업의 CEO로서는 세계적 '반칙왕'이다." ⓒ뉴시스

국익을 위해? '국위 손상'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여러모로 볼 때 이제는 더 이상 IOC 위원으로 적합한 사람은 아니다. 사실 거대 다국적 기업의 CEO로서는 세계적 '반칙왕'이다. 미국의 초특급 경제사범마저 '성가대 어린이'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말이다. 이 전 회장은 이런 논란이 계속 될수록 사마란치 전 위원장 이후 부패 집단으로서의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하는 IOC의 노력에 누가 될 뿐이다. 국내엔 재벌에 깜박 죽는 국민들도 있고 곳곳에 깔아 놓은 이른바 삼성 장학생도 있지만 외국은 그렇지 않다.

<포린폴리시>는 이미 작년에 '부패한 비리 집단' IOC를 비난하는 기사에서 이 전 회장을 포함한 몇몇 인사들을 지목하며 "평화와 인권을 중시한다는 조직에 왜 '범죄자 사진 대장(rogues' gallery)'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이 필요한지 미스터리"라고 했다.

이런 마당에 이 전 회장이 나선다고 올림픽 유치에, 그리고 '국익'에 도움이 되겠는가. 국위 손상이다. 그리고 이 전 회장은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올림픽 유치 활동에 나섰다가 두 번 다 실패하지 않았는가. 지금 상황에서 나선다고 도대체 뭐가 더 나아지겠는가. 그는 IOC 위원을 이제 사퇴하고 앞으로 좀 더 자숙하며 사회를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