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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한류는 편도 티켓이었다"

[나도원의 '대중음악을 보다'] 한류는 지속 가능한가?

많은 아시아인들이 한국 연예인들에게 손을 흔들고 우리말을 배우고 바다를 건너온다. 밖으로 흐르고 안으로도 흐르는 한류는 정체된 시장을 벗어나 넓은 시장을 개척했다는 산업적 의미가 있다. 문화콘텐츠는 공산품과 관광 등 여러 산업과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며, 이른바 '국가브랜드' 제고에 무시 못할 역할을 한다. 정서적인 면에선 보이지 않는 유대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란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란영화의 감독들과 어린 배우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의식적인 면에서도 서구와 일본 대중예술의 일방적 수입자에서 수출자 입장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부여했다. 이렇게 한류의 긍정적 효과를 나열하는 일은 해마다 바뀌는 나이를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깊은 의미에서는 어떨까? 우리 내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선 얼른 그렇다고 답하기 머뭇거려진다. 외부적으로도 소수 대형회사들의 성과만이 부각되고, 많은 독자들이 간파하고 있듯이 동남아시아의 10대와 일본의 중년여성층 등 특정 세대에게 제한적으로 어필하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잠재된 모종의 패권의식에 세계화 시대의 경쟁 이데올로기가 더해져 한류스타의 해외진출이 경쟁사회의 성공담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적인 지지기류가 강해질수록 외부에선 '혐한류'가 거세졌다.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의 결과 중 하나가 수용편중현상이다. 영화의 경우, 소규모·마니아 성향 작품의 상영공간과 향유계층이 축소되었다. 열등감을 벗어던져야 열린 태도를 지닐 수 있다. 한국영화의 발전이 영화광과 마니아급 영화인력 그리고 비평의 역할을 기반으로 했음을 상기하면 위험한 징후이다. 한류가 시드니오페라하우스처럼 각인과 유인의 역할은 했으나 내실이 약하지 않느냐는 물음이 공유되고 있다. 상품의 단점을 알리는 광고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짚어볼 때라는 것이다.

한류는 지속가능한가?

국제스타는 크게 비틀즈(The Beatles) 모델과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 On The Block) 모델로 나눌 수 있다. 비틀즈도 처음엔 '뉴 키즈'와 유사한 형태의 인기와 팬덤을 거느렸고, '뉴 키즈'는 '제2의 비틀즈'라 불리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런데 '뉴 키즈'의 엄청난 업적은 몇 년 만에 곧장 붕괴되었다. 지금 그들이 추억의 대용품이 된 반면, 오히려 훨씬 오래 전 흑백TV 속에서 머리를 흔들던 비틀즈의 콘텐츠는 계속 생산·소비된다. 2009년에도 해산한지 한참 된 이 아저씨들의 각종 음반들이 출반되었다. 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이 생명력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대중의 아티스트로 존중받으며 유효한 콘텐츠를 생산한 것은 캐릭터와 함께 음악성도 중시했기 때문이다. 대단하고 작가주의적인 무엇이 아니라 '무겁지 않은 의미로서의' 음악성을 말한다. 그런데 현재 한류스타들은 캐릭터만 선량함과 불량함, 젠틀함과 섹시함 사이를 오갈 뿐 대개 '뉴 키즈 모델'에 몰두하는 시즌용 기획에 가깝다. 그나마 음악의 주권과 일관성, 그리고 공연 중심의 활동방식을 고수하는 신승훈의 사례가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 홍콩영화의 기세는 대단했다. 영화 <영웅본색>의 한 장면. ⓒ뉴시스
1980년대 후반에 홍콩영화의 기세는 한국 중학생들의 입에 성냥개비를 물릴 정도로 대단했다가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홍콩 반환이라는 중대한 변화도 있었지만 당시를 대표하는 홍콩감독 스스로 회고하듯, 갱영화 혹은 귀담영화 하나가 성공하면 연관성 없는 속편과 비슷한 아류를 양산한 자기복제의 결과였다.

한국 드라마의 경우도 점검대상이 될 자격을 취득했다. 근래의 사극 바람은 수출용 상품가치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처음엔 그럴 듯하게 시작하며 색의 범람으로 화면을 호화롭게 꾸미지만, 주인공의 출생과 숨겨진 신분, 불굴의 의지와 고난이라는 비슷한 패턴의 영웅담 공식을 반복한 후 궁중암투로 세월을 보내버리곤 한다. 드라마 제작시스템과 안전지상주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볼 일이다.

발 빠른 기획이란 성공 포인트는 위험도도 높다. 좀 지난 잡지에서 드라마 '꽃보다 남자' 열풍의 경제효과를 분석한 기사를 훑다가 허망해졌다. 불과 얼마 전인데 먼 옛날이야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 대선 직후에 서점에는 세라 페일린(Sarah Palin)에 대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마치 1세기 전의 이름처럼 보일 뿐이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트렌드에 편승하여 추억의 히트송으로는 남지만 쓸쓸히 잊혀진 예가 수두룩한 반면, 더 오래되었지만 더 가까이에 있는 음악도 있다. 눈앞의 성과 추구는 딱 그만큼의 이윤만을 남기고 생명을 단축시킨다. '브라운관 음악'만이 아니라 뉴메탈 같은 장르음악 역시 유행에 편승하면 금방 촌스럽게 시들어버린다. 첨단은 때때로 덜어냄과 뒷걸음에서 가능해진다.

물론 동아시아의 한류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통합한 '한국형 기획사 시스템'이 강점을 발휘했다. 그런데 강점은 약점이기도 해서 성장 동력이 브레이크가 될 수도 있다. '동방신기' 등 여러 가수들과 소속사 사이에 불거지는 계약문제는 양자 모두에게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가수 입장에선 부당하고, 회사도 전 과정의 비용을 부담하여 가수를 키우고도 낮은 성공률이란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트렌드 추종과 획일화된 스타일 역시 투입금 회수를 위해선 히트, 즉 흥행을 목표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종문제를 고려한다고 해도, 동남아시아에는 통했지만 일본과 서구에선 미진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선진국들에선 발굴과 제작, 매니지먼트 에이전시가 전문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스타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길어오는' 식이라 모험적인 위험부담이 적고, 당연히 기형적인 계약을 할 이유가 없다. 일본의 조그마한 클럽에선 무명의 댄스가수들이 그날을 기다리며 활동하고, 미국 대중스타들의 일과는 행사돌기와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아니라 연중 계속되는 공연투어이다. 폭넓은 저변과 전문화된 분담이 튼튼한 체질을 만들고 있다.

'음악만 좋으면' 서로 존중할 수 있도록 문화의식이 성숙하면서 드물어졌지만,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짚으면 막연히 주류음악에 대한 폄훼로 착각해버리곤 했다. 마치 재벌의 과점에 대한 지적을 반기업정서로 호도하고(누구 맘대로 '재벌=기업'인가. 태반이 중소기업인데…), 여성주의자가 남편을 싫어하는 사람인양(억압자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매도하는 식이었다. 요지는 산업적으로 대체가 아닌 보완, 문화적으로 부정이 아닌 공존이다. 그럼 한국에선 왜 세계적인 음악스타가 나오지 않을까? 이 흔한 물음에 대한 답이 나올 차례다.

▲한류는 지속적인 생명력을 얻을 수 있을까. 사진은 최근 계약문제로 논란을 빚은 동방신기의 4집 홍보용 자료. ⓒ뉴시스

내부교류가 외부교류를 가능케 한다

이런저런 장르를 해보다가 당대에 생명을 끝내고 추억의 매개로 남는 것과 달리 장르에 충실하여 지속적인 생명을 얻은 경우가 많다. 장르성은 언어의 벽까지 넘어선다. 프로그레시브 그룹 뉴 트롤즈(New Trolls)와 고딕 밴드 라크리모사(Lacrimosa)는 각각의 모국어인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로 노래함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는다. 뉴 트롤즈는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갔고, 라크리모사는 중국에서도 공연했다. 포크 아티스트 김두수, 할아버지 로커 한대수, 재즈 뮤지션 나윤선의 팬들은 한반도에만 있지 않다. 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뮤지션들, 한국에서 활동하다 돌아간 외국인 뮤지션들의 교류도 수면 아래 흐르고 있다. 물론 규모는 한류스타들에 비하면 작다. 그런데 규모와 효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2009년에 야구관중이 600만 명을 돌파했다고 난리였다. 따지고 보면 흥행영화 한 편의 관객 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파급과 기대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장르 역시 세계로 연결되어 있고, 한 나라에서 훌륭한 뮤지션이 나오면 다른 음악도 찾게 만드는 연쇄효과가 있다. 아래로부터의 확산과 지속이 가능하다. 동요·민요와 통하면서 '이야기'라는 보편성을 가진 포크와 대중음악의 주된 표현수단인 록은 여러 세대와 국경을 건너다닌다. 한국도 장르 추구와 전문 프로듀서의 등장이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되어 어느 정도 역량을 쌓은 상태이다. 벼락스타도 좋지만 장르스타의 배출을 기다려봐야 하는 시점이다.

야구를 대입해보면 흥미로운 것이 또 있다. 막 배출된 메이저리거들이 활약하던 무렵에 국내 야구는 위축되었으나 올림픽과 WBC에서 '팀'으로 거둔 좋은 성적은 야구붐으로 이어졌다. 개인스타의 부각과 신(scene), 즉 동네 역량의 부각에서 온 차이다. 뜨거운 물을 나눠 담으면 더 빨리 식는다. 신의 역량과 교류, 그리고 몇몇 레이블이 제시한 지속적인 관계유지가 효과적인 사례도 있다. 미국과 유럽, 그리고 중남미를 여행한 이들은 무수한 로컬(지역·동네) 뮤지션들의 실력에 놀란 경험담을 전하고 있다. 드물어야 귀한 건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뛰어난 음악이 나오고 다른 산업에도 순작용한다. 생활체육의 강점과 엘리트체육의 한계는 주지하는 바, 일상 속의 예술문화는 산업의 전제이자 본질적인 목적이다.

통합형 서비스와 융합형 산업이 추세라지만, 전제조건이 있는 것이다. 외국에선 악기를 연주하는 컴퓨터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연주와 감상이 흔한 취미라서 가능하다. 감독 데뷔작인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부터 DJ로 등장하여 몬테레이 재즈 페스티벌을 영화에 담았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전쟁영화에마저 깊은 여운을 던지는 음악애호가이자 작곡가였다. 명화에는 명곡이 있고 다큐멘터리도 좋은 음악과 결합할 때 수작으로 기억된다. 《연을 쫓는 아이》를 영화로 옮긴 마크 포스터의 <몬스터 볼>이 기억에 남는 이유도 음악 때문이고, 그냥 독특한 발상의 소품일 수 있는 <캐쉬백>을 보러 극장을 반복하여 찾은 이유도 음악 때문이었다. 영화와 음악이 시너지를 발휘하도록 하는 기획은 할리우드의 습성이기도 하다.

음악만이 아니다. 신비로운 캐릭터와 풍경으로 가득한 영화 <반지의 제왕>은 한꺼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소설 《반지의 제왕》을 그림으로 옮겨온 판타지 전문 미술가들이 있었고, 판타지 미술이라는 서브 장르가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영화가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이 소설을 음악으로 옮긴 작품들도 무수히 많다. 그 이름들을 하나씩 나열하려면 밤을 새워야 할 지경이다. 오스트리아의 서모닝(Summoning)처럼 아예 《반지의 제왕》에 음악여정을 거의 바친 밴드까지 있다. 이러한 문화배경에서 콘텐츠의 재생산과 확산이 가능하다. 일본에서 훌륭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만화가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 풀에서 스토리·작화·생산·소비가 이루어지고 그 한 쪽 굴뚝으로 애니메이션 명작들이 피어오른다.

더하자면 할리우드 영화를 미국인들만 만들지 않는다. 전 세계의 유능한 인력을 흡수한다. 인력은 자금력과 직결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누구에게 오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일까? 우리 음악인과 예술인 다수는 소득불규칙성 속에 사는 경제적 소외계층에 가깝다. 시장은 편중되어 있고 수익분배는 상식적이지 않으며, 예술인 복지는커녕 사회복지마저 열악하다. 1000만 관객시대라는 영화계 역시 다수의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음악과 예술 하는 사람들을 베짱이 취급하는 문화까지 있으니 한 마디로 예술하기 어려운 사회다. 효율 중심 사고로는 고된 일을 하며 에너지를 소모하는 노동요도 비효율적인 행위일 테지만.

공연·뮤지컬 시장의 과열과 위기에 대한 리포트에는 비싼 티켓가격에 대한 얘기가 종종 나온다. 기획사간 경쟁이 주원인이 아니다. 수용자가 적다보니 수익을 위해 티켓가격이 비싸지고 다시 수용자가 제한되는 악순환 구조이다. 우리보다 소득은 낮아도 예술문화를 더 즐기는 나라들에 비하면, 일상의 향유 빈도가 매우 낮다(물론 노동시간은 문화산업에도 관계가 있다). 북유럽 국가들이 괜히 친근한 이유는 1990년 중반부터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곳의 젊은이들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다양성과 과감함은 복지와 무관하지 않으며, 음악과 대중예술이 공공영역으로 존중받을 때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예술문화의 다양도는 사회권력의 집중도에 반비례한다.

한류를 의식하지 않게 될 때, 그런 말 자체가 사라질 때…

원래 단편영화는 초기에는 단막극과 에피소드 같은 소품이었다가 TV의 출현과 장편영화의 일반화를 거쳐 실험성의 대명사가 되었다. 1970년대 말의 대학가요제 등 각종 경연대회가 젊은이들을 자극하고 밴드를 결성하게 만들고 창작곡을 중시하는 풍토에 영향을 주었다. 일렉트로니카라는 음악이 쓰이는 용도가 변하면서 아예 장르의 행동양식이 변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스템과 장치는 내용도 변화시킨다. 이 고리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지원과 후원이다. 장르다양성, 동네의 역량, 내부교류, 일상의 예술, 즉 문화가 먼저 있어야 산업도 가능하다. 문화향수권의 확대와 예술 확산에서 건강한 문화산업도 가능하다. '선문화 후산업'이다.

▲'꽃남' 김준이 한류 전문 일본 잡지 '브로코리(Brokore)의 12월호 특별판 표지모델로 나섰다. 한류를 의식하지 않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지도 모른다. ⓒ뉴시스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오래 걸릴수록 오래 살아남는다. 해서, 단기성과에 연연하면 불가능한 일이라 연속성이 중요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되어야 할 정책이 있다. 점령군처럼 작대기를 들고 자리를 밤털이 하듯 교체하는 건 연속성을 저해한다. 사전준비가 철저하면 오히려 비용이 절감되며, 과실을 거두기보다 씨앗을 뿌리는 것이 정책이다. 또한 고상(高尙)하고 고상(高償)한 품목 위주인 기업의 문화사업 역시 대중예술에 대한 재인식 후에야 '문화와 감성이 만난 경영'에 이를 수 있다. 존폐론이 끊이지 않는 영국 왕실이 대중스타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는 게 참고가 될지 모른다.

지금까지 한류는 편도티켓을 쥐고 있던 건 아닐까. 자기도 백조라고 착각하는 오리는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전환 없이는 쇠퇴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너무 앞서나갔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할 수도 있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다 좋은 약이 되진 않는다. 여러 사례들처럼 독약도 있으니까. 기둥이 모두 부러져야 건물이 무너지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이제 다음 계단에 올라설 단계이다. 일방진출이 아닌 쌍방향 교류, 바깥만이 아니라 내부와의 교류라는 방향성이다. 단지 한류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한류를 의식하지 않게 될 때, 한류라는 말 자체가 사라질 때, 진정한 한류의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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