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부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가 열린다. 18일까지 14일간 계속될 이번 회의에는 세계 105개국 정상과 192개국 대표 등 약 2만 명이 참여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만모한 싱 인도 총리 등 온실가스 감축의 열쇠를 쥐고 있는 세계 정상들이 마지막 날인 18일 정상 회의를 연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유럽연합(EU)은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등의 권고를 받아들여 이번 회의에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과 비교했을 때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 위한 의미 있는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미국도 이런 요구에 소극적이다.
100년 뒤 역사는 이번 코펜하겐 회의를 어떻게 기록할까? <프레시안>은 이 회의를 앞으로 2주간 독자에게 생생히 전한다. 이를 위해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소장 박진희)의 연구원들이 코펜하겐 현지에서 직접 현지에서 기고를 보낸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진우 상임연구원이 첫 번째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1990년 대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20퍼센트 이상 증가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이하 'COP15')가 코펜하겐에서 개막됐다.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가 2012년이면 효력이 끝나기 때문에 금번 회의는 2012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각국의 감축량을 정해야 한다. COP15는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COP13에서 2012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 논의를 마무리 짓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합의된 중요한 회의다. 따라서 COP15에서는 2050년까지의 중장기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각국의 감축량이 결정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2050년까지 현재 배출하고 있는 온실가스의 50퍼센트 이상을 줄이지 않으면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없다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배출량은 1990년 대비 2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인류의 폭주를 막기 위해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세계 각국이 COP15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적 이해관계로 합의 불투명
▲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 포스터. 100년 후 역사는 코펜하겐을 어떻게 기록할까? ⓒ프레시안 |
'Post 2012' 체제에서는 새로운 시장의 창출과 함께 기존 화석연료 사업을 안정적으로 쇠퇴시켜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대격변이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후 변화를 경제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보고서인 <스턴 보고서>를 보면, 각국은 2020년까지 매년 GDP의 1퍼센트 이상을 기후 변화 대응에 투입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2020년 이후에는 GDP 20퍼센트 이상을 기후 변화 대응에 쏟아 부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역설적이게도 COP 15가 가진 중차대한 의미로 인해 COP15의 협상 타결 가능성은 더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각국이 이러한 경제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전제를 버리고 오로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중순에 열린 UN 기후변화정상회의와 11월의 기후변화협약 부속기구회의는 이런 어려운 상황을 드러낸 단적인 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올해 새로운 기후 변화 협약 타결에 실패한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며 경제적으로는 근시안적 처사이고, 정치적으로도 현명치 못한 행위"라며 각국의 입장 전환을 호소했지만, 회의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아무런 성과 없이 끝이 났다.
오히려 그 이후의 APEC 회의에서 올해 최종 합의가 나오기 힘들 것으로 단정 짓는 사건이 벌어졌다. COP15에서는 Post 2012 체제에 대한 정치적 합의 정도만 도출하고, 구체적인 협상은 내년의 속개회의나 COP16에서 논의하자는 2단계 접근법이 제시된 것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각국의 감축 의무가 정해지면 세부 이행 사항에 대한 추가적인 협상도 몇 년에 걸쳐 진행되기 때문에 교토의정서 체제와 Post 2012체제 사이에 시간적 공백을 없애기 위해서는 COP15에서 구체적인 최종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세계 질서 재편을 둘러싼 복잡한 셈법
COP15는 교토의정서 체제와 같이 5년이라는 단기간의 규정이 아니고 2050년까지의 장기 규정으로 논의가 되고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한 포인트다. 교토의정서가 체결된 이후 세계 각국은 기후 변화에 실질적으로 대응하는 지표를 갖기 위해서는 장기 목표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Post 2012 체제는 2050년까지의 '전 세계 공유 비전(Shared Vision)' 논의와 함께 2020년까지의 중기 목표 논의가 진행 중이다. 미국 등 일부 국가의 반발로 인해 중기 목표 논의가 난항을 겪고 있지만 적어도 10~40년간의 각국의 감축량이 논의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COP15는 현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시발점이 될 만한 충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사용은 각국의 경제적 유동성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소인데, 대응 준비에 따라서 경제적 피해의 편차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후 변화 대응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유럽이 코펜하겐 합의에 적극적인 반면 미국이 방어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아직도 에너지 다소비 체제가 유지되고 거기에서 경제적 부의 상당 부분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후 변화로 인해 패권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화 정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부시 정권 8년 동안 유럽에 너무 많은 주도권을 빼앗겨 만회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미국이 COP15에 전향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이 얼마나 많은 양보를 하느냐에 따라 코펜하겐 합의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COP15를 대하는 양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기여도는 낮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의 70퍼센트가 집중되고 있는 상황을 역이용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온실가스 배출 권리를 이유로 선진국과 같이 감축 의무를 받는 것을 거부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후 변화 피해에 대한 적극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현 시대를 접는 공동의 출구 전략 필요
COP15는 시대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합리적이고 정의적인 체계를 만들어낼 것인지를 논의하는 광장과도 같다. 심각한 상태를 넘어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속도를 내고 있는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경제적 이익을 논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현 시대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기후 변화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공동의 출구전략이 필요한 시기다. 선진국의 기후 부채(climate debt)에 근거한 최대한의 감축 목표를 공약하고, 개발도상국, 특히 중국과 인도와 같은 다배출 국가들 역시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개발도상국 지원방안이 선행되어야 한다.
합의를 내년으로 미룬다고 해서 특별한 방안이 도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올해 안에 논의를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 중국, EU 등의 양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COP15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사건이 될 것인지에 대한 기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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