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그것은 이기용의 프로젝트 스왈로우의 세 번째 앨범이다. 그의 다른 밴드인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이 1998년부터 4장의 앨범을 냈으니 12년 동안 7장이나 작품을 낳았고, 조만간 허클베리 핀도 새 앨범을 낼 태세이다. 스왈로우의 지난 앨범 [aresco]에 실린 '밤은 낮으로'에서 "쉬지 않고 지쳐가리"라고 노래한대로 부지런히 뇌와 정신을 괴롭히며 '사막'에서 영감을 퍼 올리고 있다.
스왈로우가 허클베리 핀과는 또 다른 공간을 형성하고, 노벨상처럼 수상거부가 이력이 될 정도는 아니지만 꽤 괜찮다는 음악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고 건조하게 설명할 수 있다. 사실 어느 시점까지 소수의 전적인 지지를 받은 만큼 반감의 대상이기도 했다. "좌파라서 지지 받는다"는 너그러운 평가였다. 하지만 이제 한 포털의 음악메뉴에서 많은 평자들에게 만장일치의 호평을 받고 지성인과 자발적인 음악애호가들로부터 존중받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몇 년간 달에 있었거나 피라미드에 갇혀있다 방금 구조되지 않았다면 알만한 사실이다.
아무리 옳은 명분과 아름다운 의지를 가진다한들 음악의 시작점과 종착지는 같다. 음악 자체이다. 가사 역시 마찬가지다. 한대수는 "음이 인간의 몸매라면 가사는 옷이다. 일단 몸매가 완벽해야 무슨 옷을 입혀도 매력적이다.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고 썼다. 강박적인 표출보다 자연스러운 표현이, 저렇게 살라는 훈계보다 이렇게 산다는 고백에 여운이 있다. 미래에서 과거로 낙오된 것 같았던 이기용은 스스로 길을 냈고, 음악으로 충분히 설득해냈다.
'그것'은 쓸쓸하면서 아름답다
▲스왈로우 [IT]. ⓒ샤레이블 |
오랜 동료인 임지영의 비감어린 바이올린, 그리고 루네의 투명한 건반과 허스키한 코러스가 'Show'의 긴박감을 돕는다. 악기와 주법마다 색이 달라 멜로트론은 공간감과 시간성을 부여하고, 보틀넥 주법은 신비롭고 몽환적인 공기를 만들며, 오보에는 목소리처럼 포근하다. 그런데 'Hey You'와 '하루'에서 멜로디카는 다른 표정을 짓는다. '눈 온다'와 '나는 고요하다'를 거의 홀로 부르는 루네 자체가 새로운 악기이다. 깔끔한 어쿠스틱 기타와 음성으로 여백을 만든 'It'와 '하루'는 포크로 빚은 팝이고 '비늘'은 북을 내리치는 록이다. 이렇게 다양한 제스처를 취한다. 지난 앨범에서 일렉트릭 기타의 단음 리프가 지녔던 매력을 이번엔 정교한 진행과 편곡이 대신한다. 이 부산한 문장들은 한 줄로 줄일 수 있다. 표현이 다채롭다고.
처음 스왈로우는 모든 걸 너무 알아버려 운명보다 무거운 체념을 읊조리는 듯 했다. 회수당한 기억을 잡으려 애쓰고,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점차 보편적인 공감대를 넓혀왔다.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솔직해서였다. 장필순은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아니라 노래하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자극도 있었던 모양이다. 페스티벌의 확장은 음악인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마련인데, 허클베리 핀이 처음 듣는 이들까지 싱얼롱 할 수 있는 신곡들을 만들어낸 것도 그런 경험과 무관치 않다. 그들은 적절한 변화를 모색 중이다.
그렇다고 [It]이 더 화사해진 건 아니다. 지난 앨범보다 어둡게 주름졌다. 물론 어슴푸레한 저녁과 같은 어둠이다. 어떤 비의를 담은 양 "또 다른 삶도 있겠지"라고 노래하는 'Hey You'와 누군가를 위한 추모곡인 'Giant'는 흥겹게 들린다. 주름은 고통스러울 때에만 생기지 않는다. 웃을 때에도 주름이 잡힌다. 웃는 얼굴로 쓸쓸한 이야기를 하듯이 밝은 선율에 어두운 독백을 실어 보내는 법을 알아차린 것이다. 날개를 붙인 아교가 녹지 않도록 말이다.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며 뻗어 나온 가지에서 좋은 멜로디를 가진 미소가 피어난다.
하지만 좋은 재료로 공들여 요리를 해도 마지막에 엉뚱한 양념을 뿌리면 엉터리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차라리 멈추었을 때 더 좋았을 음악이 많다. 보컬 때문일 수도, 연주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면 [It]은?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들 중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나다. 시간의 상자 안에서 발효된 보컬이 보여준다. 흠결 없는 연주가 보여준다. 능숙한 매무새의 편곡이 보여준다. 물론 잘하는 것과 감동을 주는 건 다르다. 기교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음악교본에도 인쇄되어 있고, 진공상태의 전문가가 추구하는 테크닉은 촌스러울 뿐이다. 가장 능동적인 관계맺음인 감동은 느낌이(感) 움직인다(動)는 뜻이 아니었나.
▲스왈로우의 이기용. 이기용은 철거되는 모래내 시장을 바라보며 "한 시대가 저무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샤레이블 |
'그것'은 사람의 음악이다
젊은 음악인들은 도시생활과 개인주의가 만든 단절과 고독, 무력감을 감상적이거나 농담조로 표현하는 풍조를 즐기고 있다. 반대편엔 짧은 대중성을 의식하다 긴 대중성을 잃어버리는 산업의 공식이 있고, 또 아이디어는 탄성을 자아내지만 오라와 감동은 없으며 후광들의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그늘 속에 머무는 예술계가 있다. 증류되고 표백된 대중예술에는 우리가 입은 내상이 표현되지 않는다. 음악도 시대상을 비춘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한다면 고상한 틀에서 해방시키려다 가능성을 부정해버리고, 미리 낙담함으로써 사람과 사회 속에서의 알리바이를 지워버리게 된다. 계몽적 사고를 부정하지만 실은 같은 일을 하고 마는 셈이다.
그런데 공상가의 독백처럼 들리는 스왈로우의 노래는 없어져버린 이상과 완벽하게 잊혀진 기억의 꼬리뼈를 매만진다. "가려운 나의 심장"처럼 독특한 어휘를 끄집어내고 서사를 생략한 복선은 여전하다. 숨김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의한 부득이한 선택인지, 그냥 잔 버릇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은유는 월담이다. 전에도 사연을 감춰 여지를 넓힌 가요가 가까이에 있었다. 해먼드오르간이 아련한 이문세의 '휘파람'이 그렇다. "시골의 많은 젊은이들이 서울을 동경하며 몰려들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곡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말릴 수 없어 떠나보내지만, 도시에 가서 얻을 직업이 뻔한데도 보내야 했던 한 남자의 슬픔을 상상하며 썼다." 지금은 멀리 떠난 작곡가 이영훈이 적어 남겨두었다.
삶은 취미가 아니다. 그래서 문예인의 삶은 '마음은 바다에, 몸은 땅에 두는 것', 즉 보편성과 예술성을 향한 욕망을 구현하면서 세계 또한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 스왈로우 같은 음악이 알리바이가 되어준다. 그리고 전작에 실린, 맹자가 말한 '옛사람과 벗이 됨'을 떠올릴만한 '몇 세기 전의 사람을 만나고'는 만남에 대한 곡이었다. 이기용 또한 부인 가족과의 소풍에서 날린 연이 나무에 걸려 쩔쩔맸다는 범인일 뿐이다. 이렇게 [It]은 세계에 대한 사유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특유의 탐미적 서정을 향해 나아간다.
곡의 틀을 중시하는 습성은 풍성한 표현으로 채우고, 음악조류에 민감하지 않다는 불평에는 다양한 기법으로 답한다. 특히 "사람"과 "바람"이 각운을 만드는 '두 사람'은 자주, 그리고 오래 듣게 될 것 같다. 어쿠스틱 무드와 서정적인 선율과 밴드의 받쳐줌이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몸을 이루는 노래다. 그림자 길어지는 계절, 빠른 걸음을 늦춰볼 만하다. 강의 유속이 느린 곳에 갈대가 자라듯 "내 맘 속에 숨어 있는 두 사람"을 어루만질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거미가 몸에서 뽑아낸 실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듯, 그리고 다시 그 실로 훌쩍 여행을 떠나듯, '그것'은 또 다른 산책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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