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의 외계인 학자가 미션을 받아 지구에 왔다. 그것은 인류의 삶과 사상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온 지구의 대표 지식인을 선별하고 그들의 주요 저작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다. 그는 먼저 지구 최고의 과학자 목록부터 만들기로 했다.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이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고, 갈릴레오,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왓슨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외계인 학자는 선정 이유란에 '물질과 생명의 본질에 관해 깨우침을 준 지구 천재들'이라고 적더니, 갈릴레오 항목의 비고란에는 다음과 같이 써 넣는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해 파문을 당하다니 참 딱한 인류일세!'
그렇다면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의 비고란에는 과연 뭐라고 적혀 있을까? '갈릴레오보다 한 발 더 나간 친구.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 생명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하는 통에 자존심 강한 인간들과 일부 종교로부터 왕따를 당하곤 했음. 참 무식한 인류일세, 쯧쯧'
물론 이런 일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다윈을 좋아하든 혐오하든, 그를 인류의 대표 과학자 목록에 넣는데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인류의 역사상 최고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 중 단 한 명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다윈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도입해 의미와 목적이 없는 물질 영역과 의미, 목적, 그리고 설계가 있는 생명 영역을 통합시켰기 때문"이란다.
올해는 다윈 탄생 200주년이면서 동시에 그의 대표작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딱 15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150년 전 딱 이맘 때 출간된 이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함께 인류의 역사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온 지구의 3대 대표작으로 통한다. 이미 다윈은 과학자의 범주를 넘어 인류의 역사를 변화시킨 혁명적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역사가는 한술 더 뜬다. "지성계의 거두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중에서 유일하게 다윈만이 오늘까지 건재하다"고. 이것이 바로 올해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들 떠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런 다윈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저평가된 과학자 중 하나다. 지나가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붙들고 한번 물어보라. 다윈을 아냐고. 그들이 열거할 수 있는 과학자들이란 대개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정도다. 은근히 '다윈 특수'를 기대하며 야심차게 준비했던 국내의 한 '다윈 특별전'도 앙코르 없이 쓸쓸히 막을 내렸다. 나는 어떤 엄마와 아이가 전시장 앞에서 나눈 짧은 대화(현장에서 우연히 들었다)를 잊지 못한다. "엄마, 다윈이 누구야?" "음, 과학자 아니니?" 그러고 보니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의 우유가 있고, 뉴턴이라는 이름의 학습지와 잡지가 있지만, 다윈에겐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일까?
반갑다! <다윈 평전>
단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국내 모 인터넷 서점의 검색 사이트에서 세 과학자와 연관된 도서 상품들을 각각 검색해보면, 적어도 양적인 면에서 아인슈타인, 뉴턴, 다윈 순이다. 그렇다면 다윈 또는 그의 작품에 접근하기 힘든 근본적인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보자. 하나는 원본이 라틴어로 되어 있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똑똑한 사람들이나 읽지만 스스로 이해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글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못 올라갈 나무'들이다.
반면 다윈과 그의 업적은 어떤가? 그는 아버지로부터 한때 '루저' 취급을 받았을 정도로 비범한 인물도 아니었고, 그의 책을 당시 런던의 일일 노동자들에게도 읽혔던 어렵지 않은 과학자였다. 의대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공부가 힘들어 낙향한 그에게 아버지가 "우리 가문의 수치"라고 한탄했던 일화는 꽤나 유명하다. 인류의 지성사에 혁명을 몰고 온 이가 그런 루저였다니, 이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한 마디로 그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저 멀리 있는 천재과는 아니다. 그의 삶에는 인간 냄새가 폴폴 난다.
그렇다면 대중성 면에서도 다윈은 누구 못지않은 티켓 파워를 가진 과학자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그동안 다윈의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을까? 내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다윈이 저평가된 이유 중 하나는 최근 몇 십 년 동안에도 다윈의 삶과 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전기(biography)가 국내에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본격 전기'란 연구자들에 의해 일차 사료를 바탕으로 쓰인 평전(評傳)을 뜻한다.
사실, 그간 전기 비슷한 것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위한 짧은 위인전에서부터 저명한 과학저널리스트가 쓴 산뜻한 전기까지 그 형태도 다양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개 원 사료에 접근하지 않은 채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는 짜깁기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다윈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논의들은 대개 주변만을 맴돌았다.
▲ <다윈 평전 : 고뇌하는 진화론자의 초상>(에이드리언 데스먼드·제임스 무어 지음, 김명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프레시안 |
우선, 이 어려운 작업을 성실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해낸 번역자(김명주)가 고맙고, '다윈의 해'에 이런 훌륭한 책을 기획하고 진행한 출판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의 출간은 앞으로 국내에서 벌어질 다윈 및 진화론 관련 논의의 품질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윈의 '사회적 초상' 그린 역작
<다윈 평전>은 몇 가지 측면에서 여타 다윈 전기들 가운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선, 부제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다윈의 '사회적 초상'을 그리고 있다. 저자들은 당시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정치, 종교, 문화가 다윈의 생애와 사상에 어떻게 녹아들어가 있는가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시골에 칩거하며 비밀 공책에 자신의 '불온한' 생각(자연선택 이론)을 적어갔지만 진화론의 파장이 두려워 20년 동안이나 발표를 미루고 묵혀두었던 일, 그리고 자신의 이론이 국교회를 공격하던 급진파에 의해 악용될까봐 심히 걱정했던 다윈의 '인간적인 모습'을 저자들은 당시의 사회적 맥락에서 추출해냈다. 이런 측면에서 부제인 '고뇌하는 진화론자'는 자신의 생각과 욕망이 사회와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편두통과 구토에 시달릴 정도로 심히 고민했던 다윈을 적절히 지칭한다.
이렇게 그려진 '다윈의 사회적 초상'은 개인의 천재성과 업적 중심으로 인물을 묘사해온 1990년대 이전의 주류 전기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적 과학사학자 로버트 영의 '사회적 다윈의 초상'과도 구분된다. 영은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이 경쟁과 진보를 중시한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문화적 산물로서 인간 사회의 가치를 자연계에 투영한 경우라고 해석했다. 말하자면 당시 영국 사회가 아니었다면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발상이다. 이런 관점은 과학에 대한 사회 구성주의적 역사 서술 방법론(historiography)의 한 형태다. 물론 <다윈 평전>의 두 저자들도 과학의 사회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는 구성주의자들과 같은 노선이다. 하지만 사회적 결정론자에 가까운 영처럼 위대한 과학자의 개인적 성취를 사회의 뒤주에 가두진 않았다.
두 저자가 800쪽(원서)이 넘는 분량으로 다윈의 사회적 생애를 치밀하게 추적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다윈 인더스트리에서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활발히 전개된 아카이브(archive) 분석 때문이다. 역사는 아카이브 싸움이고, 다윈은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에게 매우 고마운 존재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 동안 엄청난 기록을 남겼으며 거의 어떤 것도 파기 하지 않은 수집가였기 때문이다. 공책, 비밀 공책, 오래된 초고, 오려낸 페이지, 주석을 달아놓은 발췌 인쇄물, 편지 등 거의 모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 타임캡슐들이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하나씩 하나씩 베일을 벗고 있다. <다윈 평전>은 1980년대 후반까지 발굴되고 해석된 거의 모든 다윈 관련 자료들이 종합된 한 편의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기본 플롯은 다윈이 수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들에 기초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다윈은 거의 2000명의 사람들과 평생 수만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커뮤니케이터였다.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은 '다윈 서신 프로젝트(Darwin Correspondence Project)'라는 이름으로 현재 남아있는 편지 1만4500통을 분류하고 엮어서 선집을 내고 온라인으로도 그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바로 가기).
다윈이 4년 10개월간의 비글호 탐험 이후에 고향 집에 칩거하며 여생을 보내면서 가장 열심히 한 일 중 하나는 서신 교환이었다. 그는 찰스 라이엘, 토머스 헉슬리, 허버트 스펜서와 같은 당대의 저명한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비둘기 사육사, 농장 일꾼, 무명의 탐험가처럼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과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래서 '다윈 서신 프로젝트'는 다윈 사상의 궤적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 사회의 과학과 사회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다윈 평전>은 이런 편지들을 비롯한 관련 아카이브를 통해 사회적 존재로서의 다윈의 고뇌와 성취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풍부한 아카이브 분석을 통해 두 저자가 힘 있게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위에서 언급된 그런 고뇌들 때문에 다윈이 20년 동안이나 자신의 자연선택 이론을 숨겼다는 것이다. 즉,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2년 후인 1838년에 이미 다윈은 종 변형(transmutation) 이론에 도달했지만, 사회적이고 내적인 갈등 때문에 20년 동안이나 출판을 미뤄왔고, 월리스의 편지로 인해 급하게 출판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두 저자는, 1844년 어느 날 다윈이 식물학자 후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종이 영구불변하지 않다는 사실을 거의 확신합니다(마치 살인을 자백하는 것 같군요)"라고 했던 고백, 익명으로 출판된 <창조의 자연사의 흔적> 같은 책(출판업자 로버트 체임버스의 저작임에 밝혀졌음)에 쏟아진 혹평을 지켜보며 몸을 사리게 된 과정 등을 묘사하고 있다.
풍성한 '다윈의 해' : 할 말이 많아졌다
하지만 최근에 다윈 연구자들 사이에서 '20년간 출판 연기' 또는 '20년간 이론 은폐'와 같은 주장들이 과장되어 있거나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예컨대 다윈 서신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는 존 밴 웨이는, 다윈이 한 '살인 자백'은 일종의 고급 유머이기에 문자 그대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 체임버스의 책에 대한 반응에 다윈이 그렇게 민감하지 않았다는 점, 당시 학계가 요즘과 같은 출간 전쟁("publish or perish")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 종 변형 아이디어의 이단성이 과대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 다윈이 1859년 이전에 이미 자신의 이론 스케치를 출간하려고 모종의 노력을 해왔다는 점, 항해기와 따개비 연구 등을 업데이트하는 일에 매달린 나머지 자연 선택 이론을 정교화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 등을 반대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다윈 아카이브가 1980년대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발굴되고 연구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출판 연기'를 주장했던 그 이전의 과학사학자들은 그런 풍부한 자료들을 반영할 기회도 없이 연기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그의 반론이 옳다면 <다윈 평전>도 최종판은 못된다. 딛고 넘어서야할 산이다.
전기에 어디 최종판이 있겠는가? 역사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다면, 과학자의 평전도 매번 다시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윈 평전>은 20년 전쯤 과학사 학계에 불던 사회사의 바람을 타고 순항했던 역작이며, 그 누구에 대한 평전들보다 더 치밀하고 생생한 전기 문학의 걸작이다. 이제 우리도 이 책으로 인해 다윈과 진화론의 역사에 대해 할 말이 많아졌다.
혹시 2000년대 나온 자넷 브라운의 두 권짜리 다윈 평전도 고대하고 계신가? 데스먼드와 무어의 이 <다윈 평전>을 읽지 않고 브라운의 전기를 더 재밌게 읽기는 꽤 힘들다. 이들의 다윈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한번 비교해보시라. 정말 풍성한 '다윈의 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