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비타협적 당파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나라당과 자신을 선출하여 준 계층과 지지자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정책이라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체의 타협 없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강운태 의원은 재정 분석을 통해 90조원에 달하는 감세의 88%가 서민과 중산층이 아니라 상위 20%의 고소득층에게 돌아갔음을 밝혔다.
미디어법도 그렇다. 헌재 판결의 핵심은 절차상의 흠결을 해소할 국회에서의 재논의이건만 방송통신위원회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행령을 의결해 버렸다. 이명박 정부의 비타협적 당파 정치의 하이라이트는 세종시 처리과정에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기반은 지역적으로는 영남이고 계층적으로는 강남이며, 이념적으로는 수도권 중심주의이다.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인 세종시는 이미 얼마가 투자되었든, 이전에 어떤 정치적·사회적 합의를 거쳤든, 충청지역과 야당의 반대가 어떠하든 영남·강남·수도권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면 조속히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 여당의 확고한 태도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타협적 당파 정치는 좋게 말하자면 자신을 뽑아준 지지자의 이익에 부응하는 책임정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두 가지의 치명적 결함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신의 정치적 당파성과 정책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이들을 전투적 반대 세력으로 돌려 세운다는 점이다. 그동안 정부 여당은 반대세력을 설득하려는 노력보다는 의석수를 앞세운 힘의 정치와 대규모 홍보를 통한 여론 형성에만 골몰하여 왔다. 불과 석 달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사회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통합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 석 달 사이에 한국사회의 사회적 분열은 완화되기는커녕 나날이 거세어지고 있고 그 중심에 대통령이 있다. 설득과 소통을 무시한 노골적 당파 정치의 필연적 귀결은 비타협적 사회갈등의 만연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국민정치의 상실이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자기 지지자들을 넘어선 우리사회의 공적 이익과 국민 다수의 요구에 부응하는 국민정치 또는 그러한 정책의제를 발굴·실행하는 데 거듭 실패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교통체계 개편이나 청계천 복원 등 서울시장 시절에는 기득권과 맞서 누구보다 보편적 시민정치를 잘 구사하였던 정치인 중 한 사람이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추상적 국민정치
노무현 대통령은 정반대이다. 그가 지향하고 추진하였던 한미 FTA나 대연정, 개헌 등은 한국사회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서는 필수적 과제라는 대통령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대통령은 종종 한국의 개혁문제를 논의하면서 캐나다의 멀루니 총리를 언급하곤 했다. 멀루니 총리는 적자에 허덕이는 캐나다 재정을 살리기 위해 1991년 '연방부가가치세법'을 통한 증세로 재정흑자를 실현했다. 반면, 소속 정당인 진보보수당은 총선에서 2석 만을 건진 채 소수당으로 전락하였다. 국가의 중장기 발전과 같이 옳다고 판단하면 설령 자신이나 소속 정당이 패하더라도 결단을 감행하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다.
한미 FTA나 대연정의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은 한나라당이나 보수언론이 아니라 대통령과 여당을 만들어준 진보개혁 성향의 열렬한 지지자와 정치 세력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정치를 지향하였지만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집권 여당은 이러한 의제에 대해 지지자들은 물론 당원이나 노사모조차 설득하는 데 실패하였다. 임기 말 국정 장악력의 급격한 하락은 '게도 잃고 구럭도 잃은' 노 대통령의 추상적 국민정치의 귀결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국민정치는 어떻게 가능한가?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청와대에서 회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주 독일의 유력일간지 쥐트도이췌(Sueddeutsche)는 역대 총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이룬 헬무트 슈미트 전 수상(1974-1982)이 압도적으로 1위(41%)를 차지하였다. 2위가 바로 동방정책을 추진하였던 빌리 브란트(1969-1974) 수상이다. 그의 동방정책은 사민당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책을 통해 지지자들을 결속하고 외연을 확장하는 데 성공한 생산적 국민정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동방정책에 대한 지지가 동서독 출신이나 특정 정당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고르게 나타난 데서 확인된다.
<표> 역대 독일 총리의 업적에 대한 설문 조사
또 다른 사례는 캐나다 역사 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는 토미 더글라스라는 정치인의 이야기다. CBC 홈페이지의 그에 대한 소개 앞머리에는 '평생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에 충실했고 수백만 명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의료보험의 아버지'라고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주지사로 있던 사스캐쳐완(Sascatchwan)주에 최초로 공공 자동차 보험, 무료의료보험, 빈곤층 생활보조금, 출산수당 제도, 공공서비스 부문의 노조 허용 등을 도입해 캐나다 복지제도의 초석을 마련한 이로 평가되며, 후에 사회주의 정당인 신민주당의 당수를 지냈던 사람이다(보다 상세한 내용은 http://www.tommydouglas.tv/).
꼭 다른 나라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언론매체의 이념적 성향과 상관없이 줄곧 60%를 상회하였다. 야당과 일부 보수 단체들은 대북 퍼주기라고 비난하였지만 햇볕정책의 지지율은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보다 평균 20% 이상 높았으며, 세대·계층·지역을 가로질러 국민들로부터 폭 넓은 지지를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중에 단행한 교통체계 개편 역시 이러한 범주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의 공통점은 다수의 관점에서 그 시대의 역사적 과제를 완성하였다는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붕괴시키는 자살행위를 감행하지도 않았고, 협소한 당파적 이익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구비한 설득 능력이다.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사회주의 붕괴를 우려한 동독을 이해시키고 야당인 기독교민주당을 설득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여 대화하였고 많은 노력을 경주한 것으로 유명하다. 초원의 거인(prairie giant)으로 불리는 캐나다의 토미 더글라스 역시 포괄적 의료보험제도의 도입 당시 의사들의 전면 파업과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하였다. 그는 일방적인 날치기 통과나 엄정한 법적 대응이 아니라 정당 지도자들과의 원탁회의와 의회에서의 길고 지루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였다.
결론적으로 진보와 보수를 불문하고 지금 우리에게 없는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것은 정치적 당파성과 공동체의 전체 이익을 멋지게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 있는 정부와 정당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