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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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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강우석을 말한다 <1>

[특집]

국내 영화계가 부침을 계속할 수록 강우석 감독의 '화려한 부활'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강우석의 귀환이 꼭, 충무로 황금기의 또 다른 도래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기엔 국내 영화계가 산업화 고도화 전문화의 규격에 묶이기 이전, 인간 네트워크로 진행되던 그 무엇의 시절에 대한 향수같은 것이 담겨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우석은 여전히 현재진행적 인물이다. 그는 최근 <백야행>을 제작배급하고 있고 <이끼>는 직접 연출중이다. 하지만 강우석에 대한 평가는 늘 조금씩 왜곡돼 왔거나 저평가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강우석의 '화려한 부활'을 원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비교적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이 글은 바로 그러한 작업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행하는 영문판 감독론 책자 <강우석>의 국문 원고를 일부 수정, 분재해서 싣는 것임을 밝힌다 – 편집자)

한국 영화계에 있어 강우석만큼 논쟁적인 인물도 흔치 않다. 그를 둘러싼 논쟁은 미학적인 것이라기 보다 미학 외적, 곧 산업적인 측면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선 종종 강우석이 1988년부터 2009년 현재까지 21년간 17편의 영화를 만든, 노련한 상업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이 간과돼 왔다. 강우석과 비슷한 세대급으로서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활동한 영화감독 가운데 16편 이상의 영화를 만든 감독은 배창호밖에 없다. 해외에서 많이 알려진 한국 영화감독, 예컨대 이창동이나 홍상수, 박찬욱, 김지운 감독 등은 연출 편수가 아직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강우석 감독

강우석 감독이 작품성 면에서 제대로 조명된 적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건 한국영화계가 그만큼 상업영화의 역할을 무의식적으로 평가절하해 온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강우석과 그의 작품을 재평가하는 작업은 따라서, 한국 상업영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열어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영화작가로서의 강우석 감독이 지금껏 비교적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데는 그의 영화인생이 매우 경계에 서있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는 감독이지만 투자제작자이기도 했고, 영화를 만드는 '장인'이지만 그것을 파는 판매상이도 했다. 한편에서는 영화예술을 옹호하고 지원함으로써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지만 한편에서는 철저하다 못해 냉혹한 비즈니스 룰을 적용함으로써 꽤 많은 비판론자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한국 영화계에서 강우석은 한때 투자배급사와 제작사, 극장까지 소유한 독점론자로 공격받았지만 그럴 때에도 그를 정면에서 공격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강우석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가 사업적 이익을 무시하고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과 <하류인생>에 막대한 제작비를 주저없이 투자하는 모습에 경외감을 가져왔다. 영화사업에서 뛰어난 수완을 보이자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은 영화감독으로서의 강우석을 더욱더 폄하했지만 강우석은 그럴 때마다 <실미도>나 <공공의 적> 시리즈 등을 통해 메가 히트를 기록함으로써 비판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 실미도
비록 최근들어 다소 주춤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영화가 세계영화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던 시기 곧 2000년에서 2005년까지, 임권택 감독과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등이 칸과 베를린, 베니스, 카를로비 바리 등 주요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타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던 데는 그만큼 자국의 영화산업이 탄탄한 기반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으며 그 중심에 강우석이라는 인물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강우석 감독은 한국영화계에서 근 10년간 파워맨으로 배후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1988년 데뷔 이후 감독으로서는 17편의 영화를 연출하는데 그쳤지만 1997년 이후 약 10년간 그가 투자했거나, 기획 혹은 제작을 담당한 작품은 120편에 이른다. 임권택과 이창동 등도 그에게 꽤 큰 빚을 지고 있는 감독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영화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영화계에서 강우석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은둔형에 속한다. 그의 영화는 지금껏 해외에서 올바로 조명된 적이 별로 없다. 일부에서는 한국의 코미디 영화 전문감독 쯤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강우석의 영화들은 지난 20년간 급변해 온 한국의 정치사회 상황을 특유의 방식, 곧 풍자와 해학을 통한 대중 화법의 방식으로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그의 영화를 순서대로 보다 보면 한국 자본주의의 굴곡된 역사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때에 따라 강우석은 직설적인 정치영화를 만듦으로써 자신의 장르적 관심이 폭넓다는 것을 과시해 왔다. 그런 시도들은 실패도 적지 않았지만 총량으로 볼 때 그가 지금까지 이룩한 흥행 성과는 한국 영화계에서 신화에 가깝다.

▲ 공공의 적

강우석은 한마디로 한국 영화계에서 대중과의 소통에 가장 성공한 감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영화는 역으로, 한국 영화대중들의 지난 20년간 어떻게 변해 왔으며 또 영화에 대한 이들의 태도와 취향이 현재 어떠한 수준인지를 가늠케 하는 중요한 기준점이 되기도 한다.

이 글은 지난 20년간의 강우석 영화인생에 대한 기록이다. 동시에 한국영화가 다양한 영화의 원천을 지니고 있음을, 상업영화의 저력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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