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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승리, 약인가? 독인가?

[손호철 칼럼] '축복으로 위장된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1995년 봄은 한국정치사에서 중요한 해이다. 군사독재세력이 5.16 쿠데타 이후 없애버린 지방자치가 부활되어 30여년 만에 서울시장 등 광역단체장를 비롯한 지자체선거가 치러졌기 때문이다. 당시는 DJ가 1992년 대선 패배 후 정계를 은퇴한 상태로, 부산지역의 정치인으로 3당통합 당시 YS를 따라가지 않은 이기택씨가 당권을 쥐고 있었다.

이같은 상태에서 DJ의 텃밭인 전남 도지사후보 당내 경선에서 DJ가 미는 후보가 패배하고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YS의 텃밭인 부산시장에 출마해 선두를 달리는 등 지역주의 구도가 와해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위기의식을 느낀 DJ는 지역등권론이라는 지역주의전략을 들고 나오며 정계에 복귀했다. 이어 세계화를 내세워 3김정치의 청산을 추진하려는 YS에 저항해 민자당을 탈당한 JP와 손을 잡고 DJP 공조체제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조순 서울시장 승리 등 지자체선거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에 오만해진 DJ는 통합야당인 민주당으로 돌아오지 않고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신당을 만들어 공식적으로 정치에 복귀했다. 이에 노무현, 김원기, 제정구, 이부영, 이철, 김부겸 등 개혁적 소장정치인들은 DJ의 분열주의적인 신당창당을 비판하고 통합야당 추진을 위한 통추를 만들어 3김정치 비판에 나섰다.

한편 선거에서 패배한 YS는 와신상담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실종됐던 개혁의 드라이브를 재가동시켰다. '역사 바로세우기', 아니 정확히 표현해 '역사 비스듬히 세우기'가 그것이다. 노태우의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전두환, 노태우라는 군 출신의 전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구속하고 12.12와 5.18을 군사 쿠데타로 단죄하는, 제3세계 역사상 유례가 별로 없는 과감한 과거청산을 시도했다.

그 결과는 JP의 탈당에 따른 지역할거 체제의 부활에도 불구하고 1996년 총선에서 YS가 예상 밖으로 다수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총선에서 승리한 YS가 오만해졌다. 96년 말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불러왔고 이후 김현철 게이트 등과 맞물려 YS는 긴 레임덕에 빠지게 된다.

10.28 재보궐 선거 결과를 바라보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2005년부터 이어진 일련의 정치적 사건들이다. 친서민 행보에 따른 MB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역시 민심은 다시 한 번 '정권심판' 아니 정확히 표현해 '정권 견제'를 선택했다. 1999년 6.30 재보궐 선거 이래 치러진 지난 11차례의 재보궐 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여당이 패배함으로써 여당의 12연패라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이 같은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김제동, 손석희 교체 같은 상식이하의 돌격전(자신들이 내세운 '중도실용 노선'과도 어울리지 않는)에 제동을 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민심을 경고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 그 자체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연합뉴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민심이 10.28 선거에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민주당 스스로도 잘 알겠지만 결코 민주당이 잘 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당은 친서민 행보 등 변화하고 진화하는 MB정부와는 대조적으로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내세운 '유훈통치'에나 매달려 있었다. 나아가 그간의 반서민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발본적인 자기반성을 하고 새롭고 진정한 친서민적 민생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너무 분배만 강조했다는 헛소리나 하는 '뉴민주당 플랜'이라는 후진이나 하고 있었다.

이번 선거도 이 면의 "민주당의 자살골 정치"(2009년 10월12일자)에서 지적했듯이 수원 장안의 경우 손학규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했다가 손 전 대표가 거절하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고 안산도 야 3당들의 임종인 전의원 공천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후보를, 그것도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던 정치인을 공천하는 패권적 태도로 자살골이나 넣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선거의 승리는 DJ에게 1995년 지자체 선거의 승리가 독이 됐던 것처럼, 그리고 YS에게 1996년 총선 승리가 독이 됐던 것처럼, 민주당에게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뼈를 깎는 자기혁신에 나서기 보다는 승리에 안주하여 내년 지자체선거 등에서 큰 화를 부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이번 승리는 '축복을 위장한 저주'일 수 있다.

사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의 승리로 기고만장해 있지만 이번 선거는 99년 이후 10년간 지속되어온 재보궐 선거에서의 야당승리의 경향이 그대로 반복된 것에 다름 아니다. 아니 오히려 2002년 8.8 재보궐 선거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여당이 재보궐 선거에서 일부 선거구에서나마 승리해 당선자를 배출했다는 점을 주목하면, 오히려 이번 선거는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양산선거에서 간신히 박희태 한나라당 전대표가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며 "빛나는 승리" 운운했다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겸허하게 민심을 수용해야 할 한나라당이 그 같은 오만을 보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민주화 진영에서는 2002년 8.8 재보궐 선거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여당이 재보궐 선거에서 일부 선거구에서나마 승리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겸허해져야 한다.

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외양상의 승리에 도취된 민주당이 반MB진영 내에서 앞으로 보여줄 패권주의적 행태가 매우 우려된다. 사실 이번 선거의 최대의 패배자는 한나라당이 아니라 진보신당,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들이다. 이들은 아무런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고 이들이 창조한국당과 함께 공조해서 밀었던 임종인 무소속 후보는 15.6% 득표에 그쳤다. 그리고 임 후보와 후보단일화의 압박을 받았던 김영환 민주당 후보가 40%대로 쉽게 승리를 가두었고 임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33.2%)의 절반수준의 득표에 그친 것에 대해 비관적인 목소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15.6%란 한국 진보정당들이 현 단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실력의 '극한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나아가 창조한국당이 지지율이 15%를 넘은 적이 있었는가? 그리고 만일 진보진영이 15%대의 지지율을 꾸준히 이끌어 낼 수 있다면 진보정당은 한국정치의 '유의미한 제 3세력'으로 충분히 자리잡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지역들의 경우 15%대의 득표도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10.28 승리가 '축복으로 위장된 재앙'일 수 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더 늦기 전에 자기혁신에 나서야 한다. 언제까지 이명박 정부의 자살골과 국민들의 견제심리나 먹고 살 것인가? 그리고 그 혁신의 방향은 뉴민주당 플랜 류의 우경화가 아니라 진정한 민생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진보정당들 역시 이번 재보궐 선거의 결과를 냉철하게 분석해 내년 지자체선거, 그리고 그 이후를 대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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