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정치연구회>가 진행 중인 정치개혁 특강을 연재합니다. <희망정치연구회>는 정치제도개혁에 관한 정치, 사회, 법률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입니다. <프레시안>은 정치개혁, 제도개혁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전문적인 강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해 게재합니다. 글과 함께 하단에 있는 '강의 듣기' 서비스를 통해 생생한 육성 청취도 가능합니다. 이번 정치개혁 특강을 맡은 선학태 전남대 교수의 강의는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편집자> |
연방제형 지방분권제에 친화적인 상하 양원제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도입되면(제7편 참조) 되레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의 발전을 지체시키고 경제발전과 재정자립도의 차이를 보인 수도권과 지방 간, 지역과 지역 간에 불균형 발전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적 견해가 있다. 또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자칫 수도권과 지방 간 혹은 지역과 지역 간에 연방정부의 재정배분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대립과 갈등을 격화시킬 우려도 없지 않다. 이런 비판과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 간, 혹은 지역과 지역 간의 차별과 불균등발전, 이로 인한 갈등을 완화 해소하는 지역 등권주의를 실현하는 장치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연방제형 지방분권제와 제도적으로 친화성을 갖는 상하 양원제 의회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양원제 의회는 상원과 하원 간에 상호 견제와 균형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도록 권력을 나누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양원제 의회를 설치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실행되었을 경우 소외와 배제를 받을 여지가 있는 소수 지역을 보호하는 데 있다. 즉 소수 지역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원에서 소수 지역에 특별 대표권을 부여하여 진정한 지역균형발전을 유도하고자 한다.
선진국의 상하 양원제
연방제 국가가 통상적으로 채택하는 양원제 의회에서 하원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반면, 상원은 연방을 구성하는 각 자치주(州)를 대표한다. 하원은 연방 국가를 구성하는 지역(자치주)단위 인구수에 따라 할당된 의원 수가 선출되어 국민을 대변하는 대표들로 구성되는 반면에, 상원은 연방을 구성하는 각 지역(자치주)단위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들로 구성된다.
연방제를 채택하는 미국과 스위스는 상원과 하원이 동등한 권한을 보유하는 양원제 입법부를 갖는데 연방을 구성하는 모든 주는 상원에서 동등하게 대표되기 때문에 주들은 상원에서 보다 강력하게 대표된다.
미국의 경우 주의 평등성을 반영하는 지역대표성과 함께 유권자의 평등성을 반영하는 인민대표성을 함께 실현한 상하 양원제이다. 특히 미국 상원은 인구 및 면적과 관계없이 각 주마다 2명씩 선출되는 의원으로 구성되고 외교 국방 등 대외적인 문제를 입안 감독한다. 반면에 연방하원은 인구비례에 따라 각 주마다 선출되는 의원으로 구성되고 국내 문제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스위스의 양원제 역시 미국과 거의 유사하다. 즉 상원과 하원은 거의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으며 상원은 평등하게 각 주를 대표하고 하원은 인구비례에 따라 선출되어 국민 전체를 대표한다.
독일 연방제도 국민의 대변기관인 연방하원과 지역정부(또는 자치주)의 대변기관인 연방상원을 두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연방상원 의원 수는 각 주의 인구비례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다. 즉 인구 200만 명 이하인 주는 3명, 200만 명 이상인 주는 4명, 600만 명 이상인 주는 5명, 700만 명 이상인 주는 6명을 선출한다. 상원의원은 주의회에 의해 추천되면 최종적으로 주정부에 의해 지명된다. 그들은 보통 주의원 혹은 주정부 행정 각료인 경우가 많다. 16개의 주를 대표하는 연방상원은 정원 68명 의원으로 구성되는데 그들의 임기는 정해져 있지 않고 회기에 따라 주의 대표자로 참석한다. 독일에서 상원과 하원 간의 권력분점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이유로 하원의 권한이 상원보다 약간 우위를 보이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상원도 하원을 통과한 법률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무시할 수 없는 실질적 권한을 갖는다.
그밖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제외한 서유럽 국가의 대부분도 상하 양원제 의회를 채택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은 상하 양원제 의회를 채택함으로써 지역갈등을 효과적으로 관리 해소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지향하는 제도적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정치의 상하 양원제 설계
한국정치가 현행 중앙집권제를 대체하는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를 도입한다면 이와 구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상하 양원제 의회를 채택하는 게 순리이다. 연방제형 지방분권제와 상하 양원제는 제도적으로 친화성을 갖기 때문이다. 양원제에서 하원은 인민대표성을, 상원은 지역(자치주)대표성을 갖게 된다.
하원 의원 선출에는 지역구 중심의 다수대표제와 권역별(자치주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유기적으로 조합하는 독일식 '2표 연동형 혼합제'(제1, 5편 참조)가 적절할 것이다. 이 경우 하원을 구성하는 지역구 의원의 수는 기초자치단체의 개편에 따라 적정하게 조정되어야 하지만 연방제형 지방분권제가 도입되면 연방(중앙)정부의 기능이 크게 줄어든다는 점을 반영하여 감축하는 게 합리적이다. 대신에 현행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가 자치주별로 선출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개편되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수는 대폭 늘리는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상원의 경우 선거구 획정, 의원 정수, 선출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상원 의원을 선출하는 단위 선거구는 자치주에 해당하는 광역자치단체와 특별자치주가 될 것이다. 즉 경기주, 호남주, 충청주, 대경주, 부경주, 그리고 서울 강원도 제주도 등으로 획정할 수 있을 것이다.
상원의원 정수와 선출 방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미국과 스위스처럼 연방을 구성하는 각 주를 평등하게 대표시킬 것인가, 아니면 독일처럼 주의 인구수에 따라 차등적으로 대표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망국적인 지역주의 문제 극복을 위해서는 미국과 스위스에서처럼 상원의원 선출방식은 하원 의원 선출방식과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게 맞다. 즉 상원은 지역(자치주) 크기와 인구규모에 관계없이 지역 등가대표 원칙에 따라 자치주별 적정 규모(예컨대 3명)로 동일한 수의 의원을 주민 직선에 의해 선출하여 구성될 필요가 있다. 만일 독일처럼 주별 인구비례에 따라 차등적으로 주에 상원 의원 수를 할당하고 간선으로 하면 인구가 많은 자치주의 대표성은 인구가 적은 자치주의 대표성을 압도하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상원은 지역통합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상원의원 선출에 적용되는 지역 등가대표 원칙은 모든 자치주의 상원 의원들이 지역(자치주)의 크기 및 인구 규모에 관계없이 다른 지역의 상원 의원들과 대등하게 상원의 입법 및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데 목적이 있다. 인구비례에 따라 의원 수가 할당되는 의원들로 구성되는 하원의 법안 및 예산안 심의 과정은 항상 상원에서 그 법안과 예산이 어떻게 재조정되고 제대로 통과될 것이냐 여부를 따지면서 진행될 수 있다. 이로써 인구 규모가 큰 자치주 내 선거구에서 선출된 하원 의원들의 다수파 횡포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
일반적으로 상하 양원의 권력과 권한을 대등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하원에게 우월성을 부여할 것인가는 그 국가의 권력구조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연방제형 국가이면서 대통령직이 존재하는 경우 상원과 하원에게 권력과 권한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상원이 하원과 균형된 권력과 권한을 가질 때 지역의 재정 행정 등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을 효과적으로 심의, 의결하고 지역공동체 간의 화합과 균형발전에 관해 토의하고 법제화하는 최고의 대의기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정치가 대통령직을 유지하면서 연방제형 지방분권화제와 한 짝으로 상하 양원제 의회를 채택할 경우 상원과 하원의 권력과 권한을 대등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즉 인구비례에 따라 지역 의원수가 할당되는 의원들로 구성된 하원에서의 다수파 횡포를 견제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치주를 대표하는 상원의 권력과 권한이 하원과의 균형을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상원이 소수 자치주를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향후 남북한 통일과정에서도 북한 여러 지역과의 정치통합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하원과 균형된 권한을 갖는 상원의 역할이 막중할 것이다. 따라서 북쪽 지역(예컨대 함경주, 평안주)의 권익을 대변하는 지역대표성을 갖는 상원이 인구가 많은 남쪽 지역 출신 의원들의 독무대가 될 여지가 있는 하원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 것이다.
연방상원의 비토권
개정될 헌법은 연방상원이 연방(중앙)에 대한 주(지역)의 평등한 협상기회를 보장하는 헌법적 기구로 규정되기를 요구받고 있다. 즉 상원은 자치주(주 정부)를 대표하여 연방정부의 행정부문,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연방 차원의 입법기능에 참여하는 데 매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각 주의 이해관계와 관련되는 재정이나 행정권에 관련되는 법안 등 헌법에 규정된 일정한 법률은 반드시 상원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 이는 상원의 비토권 행사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상원의 비토권은 자치주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정치적 안전망이다. 상원의 비토권은 상원의 정당구성이 연방정부 정당구성과 다를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즉 연방정부 내각에 참여하지 못한 야당이 상원의 과반수, 혹은 3분의 2를 장악하면 상원의 비토권 행사 때문에 연방정부는 상당히 어려운 정치적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이 경우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정당은 상원의 다수당인 야당과의 정치적 타협이 불가피해진다. 그렇지 않는다면 연방정부의 국정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정상적인 국정 수행을 위해서 연방정부의 집권여당은 야당과 대화와 소통,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상원의 비토권은 연방정부를 견제하는 제도적 안전망이기도 하다. 이로써 총선 결과로 인해 하원의 정당 의석 분포가 급격하게 변하는 경우에도 연방차원의 국정 기조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어 하원 의원수가 적은 자치주도 정치적 피해와 소외를 받을 소지를 줄여 나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원에서 다뤄지는 주요 법안 논의는 상원의 거부권을 의식해 무리하게 진행되는 일이 없을 것이고 우리 국회에서 늘 되풀이 되는 '날치기 통과'라는 의회민주주의의 폭거는 사라질 것이다. 상원의 거부권은 또한 하원의 다수파에 의해 무리하게 진행되는 불합리한 입법과정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상원의 거부권은 연방정부의 국정운영을 상원, 그리고 이에 의해 대표되는 주정부의 동의와 협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연방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 드라이브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상하 양원제의 기대효과
의회는 사회여론을 수렴하여 입법과 정책에 반영하고 사회의 이해관계를 조정해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며 사회통합을 이끌어내는 장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국회는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졌던 국회헌법자문위원회는 8월 31일 헌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현 국회를 상하 양원제로 구성하자는 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현행 중앙집권제 틀 속에서 상하 양원제를 도입하는 건 그 효과가 반감되거나 무의미해 질 것이다.
'87년 헌정체제'의 단원제 국회는 인구비례에 따라 지역별 의원 수가 결정되기 때문에 현재 우리 국회는 사실상 수도권 국회(약 110명), 영남권 국회(약 70명)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소수 지역은 제대로 대표될 수도 보호될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 지역주의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바 그대로이다. 이에 반해 상하 양원제 국회에서는 인구비례가 아닌 자치주별로 동일한 의원수가 배정된 지역대표들로 상원을 구성하기 때문에 인구가 소수인 지역(자치주)의 권익이 연방정치의 입법 및 예산심의 과정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상하 양원제 국회는 연방제형 지방분권제로 인해 발생하는 수도권과 지방 간 혹은 지역과 지역 간의 이해대립과 경제력 격차를 조정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이는 양원제 국회에서 상원이 연방에 대한 자치주(지역)의 평등한 협상 기회를 보장하는 헌법적 기구라는 점에서 그렇다. 즉 상원은 자치주(혹은 주정부)를 대표하면서 연방정부의 행정, 정책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연방 차원의 입법활동에 참여하는 매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상원은 연방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드라이브를 막고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자치주와 자치주 간의 이해관계를 협상과 타협으로 조정 관리해 낼 수 있다. 이로써 지역갈등과 대립은 완화되고 지역균형발전을 유도해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연방정부에 대한 연방상원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은 지역, 특히 소수지역의 이해관계를 보호해 망국적인 지역주의 문제를 조정하는 정치적 안정망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나아가 상하 양원제 국회는 87년 헌정체제에서 이뤄지는 단원제와 대통령의 조합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현행 단원제 국회-대통령제는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이나 정치적 결정에 의해 국정이 좌우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비민주적 제도의 조합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도의 조합은 우리 사회에서 분출하는 다양한 갈등과 분열과 긴장을 관리 조정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제-단원제 의회는 집권여당이 과반수를 넘는 다수당일 경우에는 정치적 독주가 가능하고 집권여당이 소수당일 경우 여소야대의 정국 속에 책임정치를 구현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대통령제-단원제 국회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크게 넘는 상황에서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등 여야 간에 사사건건 날선 대립각이 세워지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장외투쟁을 일삼는다. 여소야대의 국회인 경우는 어떤가. 야당의 횡포로 말미암아 집권여당이 책임정치를 안정적으로 이행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우리는 이를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목도했다.
반면에 양원제 국회를 도입할 경우에는 상하원 간의 상호 균형과 견제 메커니즘이 작동함으로 단원제 국회로 인한 여야 간의 극한 대립을 해소할 수 있는 정치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물론 양원제 국회는 단원제 국회보다 입법이나 의사일정에 있어서 시간과 비용이 더 소요될 수 있어 단기적으로는 국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우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상하 양원제 국회에서는 입법절차가 심의와 토론 과정에서 신중히 진행될 수 있고 대통령(행정부)과 의회(특히 하원) 간의 충돌을 조정 완화하는 기능을 함으로써 오히려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을 준비하는 측면에서 상하 양원제 의회는 효과적일 수 있다. 통일한국의 국회가 인구비례에 의해서만 구성되는 단원제 형태로 설계된다면 인구가 더 많은 남한이 인구가 적은 북한을 정치적으로 압도해 남쪽에 기반을 둔 정치세력이 통일국회와 통일정부를 거의 싹쓸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 지역 주민들은 정치적으로 소외될 것이고 남북한 지역갈등과 지역불균형발전은 심각해질 것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상원 양원제가 효과적이다. 상하 양원제 의회는 소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에서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하원은 인구비례로 구성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상원은 지역 등가대표 원칙에 따라 인구비례가 아닌 지역대표들로 구성하는 의회제도가 향후 통합된 남북 사회를 관리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특히 통일국가의 상원은 북한지역 주민들의 권익을 입법과정에 반영시키는 효과를 크게 증대시켜 그들의 소외감과 상실감을 덜어 주고 통일국가의 정치적 안정을 가져오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제도는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분출하는 여러 갈등과 분열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지금까지(제5~8편) 우리는 다수제 패러다임에 바탕을 둔 87년 헌정체제의 부적합성을 논하고 그 안티테제인 합의제형 헌정체제를 디자인해 보았다. 즉 2표 연동형 혼합제 - 다당제 하의 균형 잡힌 보수·중도·진보 정당체제' - 연합정치의 제도화 - 연방제형 지방분권제 - 상하 양원제 의회 등이다. 이러한 제도적 매트릭스는 기능적으로 상호 연계되어 작동한다. 따라서 한 부분의 제도만을 선별적으로 발췌하여 개혁하고자 할 때 헌정체제의 작동이 민주주의 발전에 미치는 효과는 무의미해진다.
합의제형 헌정체제는 정치시장을 보다 유연화하여 우리 사회의 갈등조정과 사회통합을 유도해 내는 한국민주주의 발전모델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우리의 헌정체제를 합의제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법률 개정(예컨대 입법권의 분점을 위한 비례대표제) 수준에서 합의제적 요소를 도입하고 헌법적 한계로 더 이상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때 개헌(예컨대 정부형태, 연방제형 지방분권제, 양원제 의회)을 통한 합의제적 정치 요소를 도입하는 수순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법률개정 및 헌법개정이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합의제형 헌정체제가 과연 한국 정치에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동일한 제도는 문화적 조건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때문에 제도개혁은 그 제도가 작동하는 문화적 조건이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관점은 일종에 제도 작동의 문화결정론적 함정에 빠지기 쉽다. 물론 문화는 제도의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이다. 제도가 어떠한 문화적 토양에서 어떠한 성향의 정치행위자들에 의해 작동되느냐에 따라 동일한 제도도 다르게 작동한다.
그러나 문화결정론적 비관론은 문화의 고정 불변성을 전제하여 제도에 대한 문화의 일방적 영향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설득력이 취약하다. 그러나 문화는 정치행위자들의 전략적 선택에 따라 도입된 제도의 변화와 혁신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제도의 변화와 발전이 개인이나 집단의 사고와 행동을 규율하는 구속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도가 문화를 바꿀 수 있다는 관점을 존중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경험적 사례는 많다. 서유럽 국가들은 합의제형 헌정체제라는 제도로 바꿔 언어 종교 이념 계급 계층 지역 등 사회갈등과 분열을 관리 조정하는 대화와 타협, 상생과 공존과 합의 문화를 점진적으로 창출해 냈다. 비서유럽 국가인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또한 합의제형 헌정제도를 통해 민주정치를 정착시켰다. 남아프리카의 정치지도자인 만델라는 집권 후 합의제형 헌정제도를 부분적으로 채택하여 흑백 간의 뿌리 깊은 적대감과 갈등을 극복하고 상생과 공존 문화를 창출했다. 인종 종교 언어 갈등이 상존한 인도에서도 합의제형 헌정제도를 채택하여 비교적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이러한 경험적 사례들은 한국 정치엘리트들이 전략적으로 합의제형 헌정제도를 창출하고 이를 작동시킨다면 그들의 행동패턴을 대화 타협 상생의 문화로 바꿔 한국민주주의 발전을 구축할 수 있음을 강력히 뒷받침해 준다.
우리의 이런 문제의식이 향후 있을지도 모를 개헌 정국에서 합의제형 '제도적 어젠다' 개발과 설정에 '한 장의 벽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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