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곡을 쓰고 녹음 하는 과정은 몇 단계의 순서를 밟아야만 한다. 일단 가사를 쓰고 곡을 써야 한다. 그렇게 곡이 하나 탄생하면 곡의 반주와 스타일을 결정하는 편곡작업을 해야 하고 그 후에는 연주자들이 여러 번의 연습을 통해 곡을 녹음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녹음과정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기타, 드럼, 베이스, 건반, 보컬이 일단 함께 연주해서 가이드 녹음을 한 뒤 파트별로 다 다시 녹음을 해야 한다. 기타는 기타대로, 드럼은 드럼대로, 베이스는 베이스대로, 건반은 건반대로 여러 번 고쳐가며 파트별 녹음을 하고 마지막으로 보컬 녹음을 해서 비로소 녹음을 마친다. 하지만 그렇다고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개별적으로 녹음된 연주들을 합치는 믹싱(Mixing) 과정이 남아 있고, 곡의 사운드를 조정하는 마스터링(Mastering) 과정이 또 남아 있다. 여기에 음반을 제작하게 되면 음반 디자인을 해야 하고 완성된 음반을 들고 홍보를 해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철인 5종 경기에 준하는 긴 레이스이다.
그런데 블랙홀은 이 번거로운 과정을 통해 완성된 곡을 3곡이나 보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곡을 새롭게 녹음해주기로 약속하며 이번 작업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것은 사실 블랙홀이 사회현실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표현해온 밴드이기 때문이다. 강남대학교 록밴드로 출발한 블랙홀은 1989년 데뷔 앨범 [Miracle]을 발표하며 등장한 후 수록곡 <깊은 밤의 서정곡>으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이들의 음악은 그같은 메탈 발라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블랙홀은 지금까지 8장의 음악을 꾸준히 발표하며 완성도 높은 한국적 헤비메탈 사운드를 선보여왔다.
특히 이들의 4집 [Made In Korea](1995)와 5집 [City Life Story](1996)는 이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수작이다. 그리고 2005년에 발표한 최근작 [Hero] 역시 제 3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록 앨범 부문과 싱글부문을 동시에 수상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앨범이었다. 이들은 이처럼 20여년동안 한결같이 음반을 발표해왔을뿐만 아니라 무수한 라이브 공연을 소화해내며 라이브 현장을 지켜왔다. 말이 쉽지 무려 20년 동안 흔들림 없이 활동을 지속해온 록밴드가 거의 드문 한국현실에서 오는 11월 27~28일 2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둔 블랙홀은 당연한 역할로 더욱 소중한 밴드이다.
▲ 블랙홀은 지금까지 8장의 음악을 꾸준히 발표하며 완성도 높은 한국적 헤비메탈 사운드를 선보여왔다. ⓒ블랙홀 |
그동안 블랙홀은 자신들의 음반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이나 광주민중항쟁을 노래로 표현해왔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한반도 대운하를 비판하는 곡을 만드는 등 꾸준하고 한결같이 사회적 발언을 진행해왔다. 이들의 발언은 단지 음반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 문화제 무대에 오르고, 지난해에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문화제에 올랐으며, 올해는 용산 참사 유가족 돕기 자선 공연 무대에 오르는 등 의미 있는 공연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지난 7월에 발표된 음악인 선언에도 함께 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실력과 연륜을 두루 갖추고 활발한 사회적 발언을 해온 블랙 홀이 2009년에 발표한 디지털 싱글이 바로 [Living In 2009]이다. 이들은 지난 해에 이어 같은 제목의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블랙홀 음악의 모든 것이고 기꺼이 노래해야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제작 소감을 밝혔다. "모두가 원하는 밝고 건강한 아름다운 삶, 그러나 그것은 거저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사는 그 시대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라며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신 많은 분들께 감사하며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의미에서 음반을 제작한다고 음반의 사회적 지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처럼 또렷한 취지를 가진 앨범 수록곡 가운데 먼저 소개할 곡은 <The Press Depress>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언론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곡은 공정언론을 위해 애쓰는 많은 언론인들을 위한 응원가로 만든 곡이다. 밴드의 보컬이자 리더인 주상균은 "신뢰할 수 있는 언론, 공정한 보도는 함께하는 사회를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지만 늘 권력과 자본은 언론을 장악하려 한다"고 비판하며 "일제시대와 군사정권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양심의 소리를 지키려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든 언론관계 종사자들에게 감사하고 부탁드리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고 밝혔다.
이처럼 곡에 담긴 의미는 매우 깊지만 실제로 연주되는 곡은 매우 경쾌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그동안 건반 연주를 잘 사용하지 않았던 블랙홀의 음악에서는 드물게 사용되는 건반 연주가 인상적으로 리프(Riff)를 대신하며 강력한 기타 연주와 함께 프로그레시브한 느낌으로 곡의 포문을 연다. 이들이 염원하는 것은 "어두운 날이 다시 와 빛을 가려도 흔들리지 않고 잠들지 않는 용기와 자부심"으로 "진실을 말해"주는 언론. 바로 그런 언론이다. 그같은 언론을 염원하며 블랙홀은 시종일관 호쾌하고 대중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전형적인 메탈의 떼창과 연주는 과거의 메탈 키드였던 이들과 현재의 메탈 키드인 이들이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모두의 머리를 흔들게 만든다. 명확한 멜로디와 메시지를 잘 결합시킴으로써 듣는 이의 가슴까지 금세 뜨겁게 하는 곡은 블랙홀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진정한 전설의 밴드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오는 29일 언론 관련법 강행 처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 결정을 앞두고, 국경없는기자회가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가 지난 해에 비해 22단계나 떨어진 69위라고 발표한 이 시점에서 이 노래만큼 간절한 노래가 또 있을까. 거짓과 왜곡, 편파보도로 불평등한 사회 질서의 파수꾼이 되는 언론이 아니라 냉정하고 공정한 비판과 여론의 매개체로서 자유롭게 제 역할을 다하는 언론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을 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