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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야, 미안해!"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정부의 모순된 행보, 혼란은 계속된다

한 학교의 존폐를 결정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도 어쩔 수 없이 사회와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면 지금쯤 외국어고등학교 존폐 혹은 외고 정상화를 고민해 보아야 하는 게 맞다.

특히 나처럼 출신 고등학교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경우는 남의 학교를 폐지하거나 일반고로 전환하라는 주장은 참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외고, 더 이상 이 방식대로는 안 된다. 외고, 한때는 빛나는 영예였으나 이젠 그 영예는 승자 몇 명을 제외하고 너무 많고 어린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 외고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얼마 전 수능 원점수 공개에서 모 외고가 전국 1위를 차지하고 성적 상위 30개 학교 중 다수 외고가 포함될 정도로 외고는 한국 최고의 학력을 보였다. 법조계와 금융권에서도 과거 어느 명문 고교보다도 더 큰 인맥을 형성하고 외고 출신들 중 일부는 글로벌 인재라고 불릴 만큼 똑똑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학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그 애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최근 교과부의 특별교부금도 외고에 편중 지원하고 지자체들도 외고에 특별지원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외국어고는 점점 더 학부모들의 꿈의 학교가 되고 있다.

▲ 서울특별시교육청 산하 외국어고 합동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 ⓒ뉴시스

그러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출신 가정의 경제적, 사회적 배경이 비슷한 학생들끼리 모여 있어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긴다. 외고 내 몇몇 학생은 '삐까 번쩍'한 봉사 활동 기록을 보유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여간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길이 없는 것이다. 태풍 앞의 삼림도 다양한 수종, 다양한 크기의 나무들이 혼재되어 있을 때는 큰 바람에 끄떡없지만 동일 수종만 있는 삼림은 큰 바람에 그대로 초토화 된다고 한다. 어느 그룹이나 그만큼 다양성이 필요한 것인데 외고는 본의 아니게 동일 수종만 모여있는 셈이다.

경기도의 한 외고는 한해 학비가 1131만 원이라고 한다. 교육 불평등을 우려하여 20~30%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하지만 입시 문턱이 워낙 높아 서울 지역 외고의 경우 국민기초생활수급자가 전체 학생의 0.6%에 불과하다. 균형있는 사회 발전에 저해 요소임은 분명하다. 그뿐 아니라 지난번 김포외고 사건처럼 문제지 유출 등 입시 부정 사건도 생기고 있다. 외고가 사회에 주는 부작용은 곳곳에 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불황 속에서도 사교육비가 잡히지 않자 사교육 시장이 불패 신화를 이어가면서 오히려 교육이 빈부 격차와 계층간 불신을 확대 재생산하는 현재 모순된 상황의 주범이 외고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더구나 외고 폐지 문제를 들고 나왔으니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그토록 외고를 옹호하던 것에 비하면 매우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외고 말고도 한쪽에서 또 새는 바가지가 있으니 다름 아닌 입시 경쟁률이 7.3:1 이라는 인기 고교 하나고등학교와 같은 10여 개의 자율형사립고등학교다. 지금 서울 지역엔 10여 개의 외고, 과고, 국제고, 영재고가 있다. 과거 중학교 성적 3~10% 학생만 지원했었는데 내년에 자사고 10여 곳이 문을 열면 입시에도 큰 변동이 있을 것이다. 이젠 특목고가 대입 경쟁의 지름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상황은 그렇게 변하고 있고 하나를 막아도 다른 곳에서 터지게끔 되어있다.

이명박 정부가 외고의 폐지 및 전환을 올해에 서두르겠다고 하자 외고 측에서는 입시 방법을 개선하겠다고 즉각 발표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잘못 대응했다가는 자칫 학교 폐지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고 관계자들이 지금 당장은 존폐 위기에 당황해 뭔가 입시 개선안을 내놓는 척 하지만 다시 사회의 관심이 옅어지면 지옥의 외고 입시 레이스를 펼칠 것이 자명하다.

3년 전, 내가 사는 아파트의 이웃 학생이 토플 만점에도 불구하고 어느 외고를 불합격했던 그 해 외고 입시를 보며 영어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듣기 평가 안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나? 더구나 외고 교육 과정이란 것이 입학 후에도 계속 선행 학습을 강제하고 야자에, 0교시에, 문제풀이 교육 일색이고 특별 활동은 거의 전무하며 진로 교육과 인성 교육을 소홀히 한 것은 분명 실패 사례다. 전국의 똑똑한 학생을 선점하고 등록금은 다른 고등학교보다 비싸면서 결국은 학생을 문제풀이 기계, 입시 기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외국어, 특히 영어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필수사항 아니던가? 그러니 외고는 듣기 평가 폐지라는 체면치레 말고 다른 전형은 모두 폐지하고 영어 성적 좋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첨제를 도입할 용단을 내릴 자신이 있다면 그것을 전제로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물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일반고와 다른 것도 없을테니 외고 입장에서 받아들일 리 만무이지만 말이다.

일부 외고 교장들은 '외고가 무슨 죄냐? 대학 입시가 잘못이지' 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근거없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그 주장은 일부만 맞다. 대학 입시 탓도 크다. 그러나 그동안 외고는 과욕을 부리며 한국 사회의 특권적 지위를 누려왔다. 지금의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도 학교 단위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이지 한국 교육을 고민하는 진정성은 보이지 않아 아쉽다.

한국 사교육 문제는 외국어고 입시뿐 아니라 대학 입시와 대학 경쟁력 부재, 학벌과 차별, 임금과 노동으로 이어지는 사회 문제의 응측된 결과이다. 지금 어른들은 입시의 이름으로 학교라는 우애의 공간,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먼저 도마에 오른 외고에게 미안할 뿐이다. 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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