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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미술·체육이 위험하다"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미래형 교육 과정? MB형 교육 과정!

오랜 시간 교육 운동을 하면서 늘 거대한 벽 앞에 서있다고 느낀 적이 많았는데 특히 교육부 교육 과정위원회 운영위원을 하면서는 더욱 그런 심정이었다.

한국 교육의 미래를 위해 교육 과정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대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 과정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연결되어 있어서 한국 사회의 발전만큼이나 교육 외적인 영향을 받거나 속 터질만큼 더디게 개편이 진행되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 운동 진영은 '사회적 교육 과정 위원회' 설치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이는 간단히 외면 당하고 교육 과정위 운영위원과 각급 각 과목 위원들에 교육·시민단체 구성원이 여러 명 보완되었지만 기존 틀로는 교육 관료, 교과서 개발업자 등 기득권 구도를 뛰어넘기 어려웠다. 역부족이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9일 교육소청심사위원회 대강당에서 2009 개정 교육 과정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동안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추진해온 미래형 교육 과정을 연내 고시하기 위한 절차의 일환이다. 교육 과정이란 학교에서 교육을 하면서 학생들이 국가 기준에 따라 배울 내용과 목표를 정해놓은 것으로 그동안 교육부가 주도해왔다. 흔히들 교육 과정 개편은 교육 개혁의 가장 마지막 관문이라고 칭한다. 특히 이번처럼 큰 규모의 국가 수준의 교육 과정 개정은 학교 교육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설계도로서 그에 따르는 교과서, 학사일정, 교원 수급과 양성 체계, 입시제도 등의 변화를 동반한다. 집짓기로 말하면 외형과 내부를 결정하는 설계도인 셈이니 거대하고 중요한 작업인 셈이다.

▲ 지난 7월 미래형 교육 과정 공청회에서는 정부의 성급한 교육 과정 개편을 반대하는 교사와 관계 학계의 반발이 이어졌다. ⓒ프레시안

과거 정부때는 통상 5년에 한번씩 교육 과정을 개편했으나 얼마 전부터는 수시 변화 체제로 들어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논술과목이 추가되기도 하고 영어수업을 초등 3학년에서 앞당기는 논의를 하거나 주5일제 수업에 따라 수업 시수가 조정되기도 하는 등 정부의 의지에 따라 교육 과정에 크고 작은 개정이 있었다.

이번 개정 방향에는 △국민공통기본교육 과정을 10년에서 9년으로 줄여 고등학교에서는 모두 선택형 교육 과정으로 한다 △초·중학교에서는 2~3년의 학년군으로 하고 국민공통기본 10교과를 7개 교과군으로 줄여 학생들의 학기당 이수교과목 부담을 줄이겠다 △교과목간 20%의 시수증감을 허용하는 교장의 학교교육 과정 자율화, 초등 수업시수 확대 등 학교 선택을 20% 보장하겠다 △국가 수준의 교과시수 편제를 없애 단위학교에서 교과군 범위내의 교과 시수를 자율적으로 정하고, 3, 6, 9학년 학업성취도평가로 질 관리를 하겠다 △교과목의 통폐합, 집중 이수제를 실시하겠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는 이번 개정 이유를 '교육의 고질적 병폐가 현행 교육 과정에서 비롯되고 21세기를 대비하여 글로벌 창의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출발하였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한국교육이 과거가치에서 몇걸음 나아가 문화, 평화, 인권, 환경 등 점차 중요해지는 가치들을 교과서에 담아내고 내면화시키는 것은 국내에서뿐 아니라 글로벌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하다. 공론화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교육·시민단체들도 학벌 철폐와 입시경쟁 교육의 대안인 공교육 개편안을 발표한 바 있다. 다행히 이번 교육 과정 개편내용 중에는 집중이수제등 일부 학부모들이 바라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입시교육 강화와 학교학원화로 이어지기 쉬운 내용들이어서 교육·시민단체와 교과목 교수들의 집단적인 반발을 사고 있다.

더구나 이번 미래형 교육 과정 추진 전략을 보면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의 성공적 정착을 고려하여 고교 교육 과정 개선을 착수한다'고 나와 있다. 즉, 교육 과정 개정이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 정책 등 평준화 해체 및 학교 자율화 교육을 지향하는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올해는 2007년 개정 교육 과정을 처음 시행하는 해이고, 그것이 2013년에 완성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 과정을 또 바꿔 2012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라니 절차상으로도 급히 서두르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과정특별위원회는 학교에 교육 과정 편성 자율성과 교원인사 권한을 주면 수요자, 즉 학생 학부모의 요구에 맞는 맞춤식 교육, 다양하고 창의적인 학교교육이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이는데 반대할 사람이 없지만 학교가 방과후 프로그램까지 개설해 0교시부터 야간 자율학습까지 묶어놓고 초등학생들까지 일제고사를 자주 치르도록 개편하는 시안을 보면 현실은 교육 과정 특위의 주장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고3 교사들의 말에 따르면 '입시와 직결되지 않는 과목을 억지로 강조할 경우 진로를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훼방 놓으려고 한다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고 고3 교실에서 수능 또는 내신에 관계되지 않는 교과 수업은 거의 자습이나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그 아이들 사정이 절박한 것이다. 대놓고 말하지 못할 뿐이지 학교나 교사들이 아무리 그 교과의 의의를 강조하더라도 한계가 있다. 지금도 붕괴되었다는 소리를 듣는 학교가 더 망가질 것이다.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주장대로 글로벌 창의인재를 키워내야 하고 세상이 바뀌고 가치가 바뀌면서 아이들이 배우는 교육 과정도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건 개인이건 절박한 과제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추세는 국가가 교육 과정을 정하면 각급 학교에서는 교사가 자율적으로 큰 취지에 맞게 교재를 선택해 가르친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와는 달리 한국은 시시콜콜 정부가 정한 교육 과정을 일사분란하게 배워서 국가 시험을 쳐서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니 교과목이 개설되거나 어느 한 주제를 교육 과정에 넣느냐마느냐가 대학의 한 학과의 존폐가 갈린다고 한다.

교육 과정 문제는 교과목 이기주의로 매도되어 왔고 실제 그런 점이 없지 않으니 옥석은 가려야할 것이다. 그러나 치열한 입시 경쟁의 현실 하에서 교과군이 7개로 축소되고 고교에서는 5개군, 예컨대 '국어와 사회', '수학과 과학', '영어와 외국어', '음악과 미술', '체육'이 하나로, 그리고 나머지 생활 교양군으로 축소하여 그 속에서 선택권을 강조하게 되면, 학교나 학생들은 입시에 유리한 과목만 선택할 것이다. 선택 교과라 하더라도 수능 과목이 아니면, 또 대학 입시에서 내신이 반영되는 국·영·수·과 정도가 아니면 학생들은 당연히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다. 음악, 미술, 체육 등 입시와 관련이 없는 과목은 외면당하고 획일적인 입시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가 조화로운 인격체를 양성하는 공교육의 이념을 포기하고 입시 교육에만 전념하는 학원으로 전락하는 벼랑 끝에 선 것이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번 미래형교육 과정 개편에 따르면 학생들의 부담도 줄어들지 않고, 민주 시민으로서 요구되는 교양과 상식을 제대로 쌓을 기회를 갖지 못하고 지적 편식을 하며 고교 생활을 학원처럼 입시 준비만 하고 끝날 우려가 있다. 물론 '교육 과정 개편을 하지 않으면 지금 공교육이 정상이냐?'고 묻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대답도 궁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미래형' 이라는데 반대한다면 교육 단체는 늘 반대하는 집단이라고 낙인찍히기도 십상이다.

교육 과정 문제가 간단치 않다보니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도 미안한 마음이다. 독자가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물으신다면 교육내용과 교육 과정을 교육부 뜻대로만 하지 않도록 사회 여러 계층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법정상설기구인 '사회적 교육 과정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제안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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