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의 독립성을 과도하게 해석해서 입법·사법·행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라는 주장도 있고, "독립기구이기는 하나 행정부에 속하는 그런 것이다"라는 주장도 있는데 위원장은 전자와 후자 중 어떤 견해인지를 물었다. 전자, 즉 무소속기관설을 설명하며 과도한 해석이라는 토를 단 것을 볼 때 신 의원은 후자, 즉, 행정부소속설을 옹호하는 것이 분명했다.
신지호 의원도 놀란 인권위 독립성 포기 선언
현 위원장은 주저하지 않고 "법적으로는 후자"라고 대답했다. 신지호 의원도 인권위원장의 입에서 이렇게 쉽게 무소속 포기선언이 나올 줄은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예?"하며 오히려 반문한 사실이 그걸 말해준다. 현 위원장은 똑같은 답변을 반복한다. 현행법상 인권위는 행정부소속이라는 것.
그러자 신의원은 "법률적으로는 후자인데 본인은 어떻게 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법적 판단 대신 주관적 소신을 묻는 이 질문은 아마도 현 위원장이 법적으로는 무소속이라는 오랜 정답을 내놓을 것이란 가정아래 준비한 보충질문이었을 것이다. 이래야만 '개인적으로는 무소속인권위에 대해 위헌주장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라든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개인적으로는 무소속인권위에 위헌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원하는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인권위는 행정부소속'이라는 현 위원장의 공식답변으로 이미 대어를 낚은 신 의원의 입장에서는 보충질문을 건너뛰어도 무방했다. 중요한 건 인권위의 법적 성격이지 그에 대한 인권위원장의 호불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행법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묻는 보충질문은 위험할 수 있다. 소신파 인권위원장이라면 '인권위는 행정부소속보다는 무소속으로 있을 때 업무의 독립성이 더 잘 보장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엇박자 답변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낮지만 현 위원장도 이처럼 삐딱하게 답변할 수 있었다. 혹은 '인권위는 법적으로 행정부소속임이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권위의 독립성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인권위법상 위원회의 업무독립성과 위원의 신분보장이 확실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할 수도 있었다. 이것이 신지호 의원의 질문의도에 맞는 모범답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 위원장은 "아직까지 깊이 생각을 못했다"며 말을 삼갔다. 현행법을 개인적으로 지지하든가 반대하는 대신, 뚜렷한 소신이 없다며 뒷걸음질을 친 셈이다.
신 의원은 여기서 비판모드로 돌변했다.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되고 두 달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중요한 사안에 대해 본인의 의견이 없는 게 말이 되느냐며 힐난한다. 현 위원장은 이번에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겉치레 말로 응답한다. 위원장의 회피성 답변이 거듭되자 신의원은 직설적으로 아픈 데를 찌르며 짜증을 낸다. "인권위원장 되기 위한 무슨 준비도 전혀 없었던 것이네요?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고 하니…." 신 의원은 현 위원장을 무정견으로 몰아붙이며 질의를 마쳤다.
현병철 인권위원장, 국내외 인권공동체에 일전불사 선언
▲ 현병철 인권위원장. ⓒ뉴시스 |
그뿐 아니다. 지난 3월말의 인력감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의 질문에도 "다 이유가 있다"고 답변함으로써 전혀 이유가 없다는 인권위 전원회의의 공식입장과 180도 거꾸로 갔다.
이로써 현 위원장은 독립성을 이유로 인권위의 조직축소에 반대했던 유엔인권최고대표,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장, 전직 인권위원들, 독립성 수호 법학교수들, 국내외 인권단체 등 국내외 인권공동체와 일전불사의 뜻을 밝혔다.
현 위원장은 인권위가 행정부 소속이고 행안부의 직제개정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안경환 인권위가 공들여 제출한 권한쟁의심판청구의 뇌관을 해체했다. 새 위원장의 뜻이 드러난 마당에 인권위 조직이 현 위원장의 재직기간 중 권한쟁의심판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없다. 안 그래도 일에 허덕이는 헌재 역시 원고가 다투기를 포기한 골치 아픈 사안을 급하게 진행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헌재의 권한쟁의심판은 이제 해보나 마나가 됐다. 인권위원장이 권한쟁의심판청구를 사실상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슨 말 했는지 모르는 현병철
놀랍게도 현 위원장은 자신의 국회답변이 어떤 함의와 파장을 가지며 어떤 후폭풍을 불러올지 제대로 모르는 듯하다. 이를테면 자신의 "행정부 소속" 발언이 무소속 인권위를 만들어 낸 인권운동역사와 인권시민단체들에게 얼마나 큰 모욕이 되는지, 지금까지의 인권위 입장 및 관행과 얼마나 배치되는지, 향후 인권위의 대정부 독립성에 얼마나 큰 족쇄가 되는지, 자신의 진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전혀 알지 못한다.
현 위원장의 엉터리 법해석은 십중팔구 아랫사람들의 표피적이고 무책임한 '실무적 해석'에 쉽게 동조한 결과이기 쉽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하고 알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무지를 변명할 수 없다. 더욱이 그는 법학자다.
현 위원장은 '인권위가 행정부 소속'이라는 법적 명제가 개개인의 호불호나 주관적 가치판단과 상관없이 법적(=객관적)으로 손쉽게 논증이 가능하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근거는 몹시 박약하다. 고작해야 인권위의 조직과 인력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한 인권위법 조항과 인권위와 행정부 소속 기관 사이에 얼마든지 인사교류가 가능하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직제/인사규정은 무소속 독립성을 부인하는 법적 근거가 아니라 무소속 독립성에도 불구하고 법정기관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었던 법적 한계로 보는 것이 옳다.
인권위, 법률에 소속이 명시되지 않은 유일한 위원회
반면 인권위가 법적으로 무소속 독립기관이라는 증거는 확고하다. 무엇보다도 인권위법의 입법과정에서 대통령, 법무부, 한나라당, 민주당, 인권단체, 학계전문가 등이 모두 그렇게 이해했다.
인권위법은 인권위의 소속을 규정하지 않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인권위가 무소속 기관임을 밝힌다. 이와 대조적으로 인권위가 아닌 법정(法定)위원회는 모두 근거법률에 소속이 명시된다. 예컨대, 중앙노동위는 노동부장관 소속, 공정거래위는 국무총리 소속, 국민권익위는 대통령 소속으로 조직법에 규정돼 있다. 소속명시주의의 예외는 국가인권위뿐이다. 처음부터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 기관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법무부도 처음에는 무소속 독립기관 위헌론을 제기하였으나 머지않아 힘을 잃었다. 그 결과, 2000년 국회에 상정된 3개의 주요법안(정대철-이상수 등 정부여당법안, 안상수-이인기 등 한나라당 당론법안, 천정배-이미경 등 여야의원법안)은 인권위를 모두 무소속기관으로 설계한 점에서 같았다. 무소속 독립인권위 조항은 국회법안심사과정에서도 아무런 이의 없이 통과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인권위법은 위원회조직법 중 소속 문언이 결여된 유일한 법률이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인권위가 행정부소속이 틀림없다는 현 위원장의 확신은 인권위의 법과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와 무책임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무소속 기관은 상급기관이 없기 때문에 업무수행의 독립성과 조직운영의 자율성을 최고도로 보장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무소속 기관성은 헌법기관에 어울리는 속성이다. 실제로도 헌법기관이 아닌 법정위원회 중 무소속 기관은 인권위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인권위는 준헌법기관으로 불린다. 이렇게 볼 때 무소속인권위의 법적 위상은 헌법기관보다는 아래지만 행정부 소속 중앙행정부처보다는 한 수 위다. 반면 행정부 소속 인권위는 행정각부보다 한 수 아래다. 같은 행정부 소속 기관이더라도 행정각부는 1차 집행기관인 반면 인권위는 2차 권고기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준헌법기관으로 설계된 인권위
이처럼 무소속성 인정여부는 인권위법의 법리해석과 인권위의 운영실무에 알게 모르게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인권위 독립성 수호 법학교수 모임'이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 따르면 무소속성 법리는 수많은 하위법리들을 내포한 상위법리로서 인권위법 해석과 실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열쇠말(keyword)이다.
예컨대 무소속 인권위는 행정부 소속이 아니므로 행안부가 인권위직제령을 개정할 때에는 한층 더 인권위의 입장을 존중하고 더욱 긴밀한 협의를 거쳐야 마땅하다는 파생법리가 도출되는 식이다.
요컨대 인권위는 처음부터 헌법기관에 준하는 높은 무소속 지위를 갖는 법정 국가기관으로 설계됐다.
그 몇 가지 증거는 첫째, 인권위법에 예외적으로 소속이 규정되지 않았다, 즉, 무소속으로 돼 있다는 점. 둘째,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등 행정부는 인권위에 대해 업무감독은커녕 업무보고를 받을 권한조차 없다는 점. 셋째, 헌법재판소나 중앙선관위 등 헌법기관과 마찬가지로 3부 구성주의에 따라 구성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현 위원장의 이른바 행정부 소속 법리는 도무지 법적으로 지탱하기 어려운 사이비 법리가 아닐 수 없다.
▲ 현병철 위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인권단체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뉴시스 |
현 위원장의 행정부 소속 돌출발언은 다름 아닌 인권위원장이 대(對)정부독립성에 대한 인권위조직의 기존입장과 관행을 느닷없이 부정하고 나섰다는 의미에서 기관장에 의한 기관테러 혹은 궁정쿠데타로 비유할 수 있다. 인권위는 지난 8년간 무소속 독립기관이라는 자기정체성을 충실하게 구현하고자 무던히 노력해왔다.
예컨대 다소 번거롭더라도 징계위원회와 행정심판위를 자체적으로 설치하는 등 독자적인 규정과 제도를 구축했다. 행정부 소속이 아닌 관계로 행정부의 제도와 절차를 직접 이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소속 독립 기관성은 인권위가 자기정체성의 첫 번째 내용으로 홍보해 온 인권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지금까지 모든 대내외문건에서 빠짐없이 인권위의 제1속성으로 소개되었으나, 어떤 인권위원들도 이를 문제 삼은 바 없는 조직의 근본규범이자 많은 인권위 직원들에게는 강한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현 위원장이 과연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한 채 기존의 인권위 입장을 뒤집은 것인지 의문이다. 더욱이 인권위의 법해석을 바꾸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원위원회의 토론과 합의가 필요한 데 현 위원장은 이런 사전절차도 밟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행정부 소속" 발언은 인권위의 공식적인 기관입장이 아니라 위원장의 독단적인 개인 견해를 돌출적으로 표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 위원장의 돌출발언은 직무해태의 산물이기도 하다. 국회발언의 내용으로 미뤄볼 때 현 위원장은 지난 3월 30일 인권위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장문의 권한쟁의심판 청구이유서를 직접 읽어보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만약 한번이라도 정신 차리고 읽어봤다면 인권위가 행정부 소속이라는 법해석이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지를 알게 됐을 것이고 따라서 그런 자폭테러성 발언을 감행하거나 일방적 인원감축을 '이유 있다'고 두둔할 리가 없다.
신지호 의원의 지적대로 어떤 준비도 안 된 채로 취임한 현 위원장이 취임 이후에도 제일 큰 현안문제에 대해 아무런 공부도 않고 허송세월 한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MB정부, 법 개정 없이 인권위 성격 바꾼 셈
아무튼 현 위원장의 국회답변은 200% 틀렸다. 법적으로는 무소속이 분명한데도 행정부소속이 분명하다며 거꾸로 갔고, 마땅히 가져야 할 무소속기관위상 개인소신은 아직도 없다며 거꾸로 갔기 때문이다.
신지호 의원의 질문에 대해 제대로 된 인권위원장이라면 '다른 위원회조직법과 달리 인권위법은 의도적으로 소속을 규정하지 않은 소극적 방식으로 인권위의 무소속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무소속인권위를 행정부 소속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권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답변했을 것이다. 공연히 꼬투리 잡히는 논쟁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으면, '법적으로 어떤 견해가 옳은지는 머지않아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헌법재판소가 판단해 줄 것이다. 그 판단에 따르겠다'고 유유히 빠져나가도 아무런 뒤탈이 없었을 것이다.
설령 현 위원장이 법정기관 인권위의 무소속 지위가 가당치 않다는 그릇된 소신을 갖고 있는 경우에도, '법적으로는 무소속 독립기관이지만 이에 대해서 법학자 개인으로서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헌법기관에 소속하지 않는 무소속 법정기관은 삼권분립의 헌법원칙에 반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소속 독립기관으로 법을 바꾸자는 견해에 개인적으로 찬성한다'라고 답변하면 됐다. 이런 입장은 실제로 입법논쟁과정에서 제출된 이래 2008년 초 정권인수기간 중에도 대통령직속기구화의 논거로 재부상한 바 있다.
당시 박형준, 박재완 두 인수위원은 인권위를 대통령소속으로 전환하려다 실패했다. 이들은 인권위의 무소속성이 위헌이라는 형식논리를 들이대며 인권위법을 개정하고자 했으나 루이스 아버 유엔인권최고대표를 위시한 국내외의 반발이 워낙 거센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기에 현 위원장의 이번 "행정부 소속" 발언은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다. 인권위법 개정절차를 밟지 않고도 무소속 인권위를 행정부 소속 인권위로 바꿔낸 법개정효과를 얻은 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눈치 보는 인권위로 전락할 가능성 농후
만일 인권위가 지금처럼 무소속 독립기관이 아니고 행정부 소속 독립기관으로 바뀐다면 인권위의 독립성이 최고위정책과 현장실무에서 공히 현저하게 훼손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 소속 인권위는 우선 청와대가 조직하는 행정부 차원의 각종모임에 빠짐없이 나가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방침을 전달받고 주요 정책을 학습하는 범정부 차원의 장차관회의, 연찬회, 수련회 등에 인권위원장, 상임위원, 사무총장, 국과장이 참석해야 한다. 범정부 차원의 각급위원회나 태스크포스에도 다른 행정부처와 똑같은 지위를 갖고 참여해야 한다.
범정부 차원의 정책결정에 대해 독자적인 사후 목소리를 내는 정부바깥의 독립기관의 지위에서 내려와 정책결정과정에서 사전에 작은 목소리를 내고 그 결과에 공동책임을 지는 구성원의 지위로 떨어지는 것.
특히 문제되는 것은 소속심리라는 것이 생겨서 조직적으로 대통령과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고 대통령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알아서 처신하는 업무풍토가 자리 잡는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행정부 소속 기관을 통할하는 대통령실이 인권위에 수시로 보고 및 협의를 요청하며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인권위는 지금같이 대통령소속 감사원의 회계감사만 받는 게 아니라 직무감사까지 받게 된다. 이런 행정부 소속 구조에서는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대통령의 정책기조와 엇박자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 민감한 정책의제 설정과 진정조사 업무에서 독립성이 현저히 약화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개점휴업 인권위, 인권위원들이 위원장 불신임 결의해야
그렇다면 임박한 행정부소속화의 위험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졸지에 행정부 소속으로 전락한 국가인권위원들이 나서줄 것을 기대한다.
놀랍게도 인권위는 현재 개점휴업상태다. 신임위원장과 사무총장내정자에 대해 자격시비가 끊이지 않는 등 조직안팎이 어수선한 탓에 실무진들이 일손을 놓은 것. 매월 2, 4주 월요일에 개최하는 정례회의에 안건이 없어서 9월 28일자 회의를 건너뛴 것이 그걸 말해준다. 다음번 인권위 정례회의 일자는 10월 12일. 이때까지 넋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무소속 독립성 수호의지가 있는 인권위원들이 중심이 돼 당장 임시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해서 현 위원장이 자진 반납한 인권위의 무소속독립성을 재확인하는 특별결의를 해야 한다. 나아가서 독립성 수호는커녕 독립성을 자진 훼손한 책임을 물어 현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해야 한다.
물론 국내외 인권단체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은 이미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 위원장을 "무자격의 극치"로 규정하고 사퇴할 때까지 고강도 투쟁을 계속할 방침임을 밝혔다. 앞으로 1인시위 등 끈질긴 직접행동이 따를 것이다. 국제사회의 반응도 신속하다. 아시아의 유수한 인권단체들로 구성된 아시아국가인권기구민간감시단(ANNI)은 이미 현 위원장에게 보내는 강력한 항의서한과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제니퍼 린치 의장에게 진상조사단 파견 및 특별등급심사 회부를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작성하여 회원단체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무소속 인권위원장 현병철은 용인해도, 행정부 소속 인권위원장은 안 된다
요컨대 현 위원장은 인권시민사회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쟁취한 인권위법의 근본규범, 즉 무소속 독립성을 부정하고 인권위를 대통령과 행정부 품에 안겨줌으로써 인권위원장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럼에도 현 위원장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듯하다. 현 위원장의 행정부소속 발언은 인권위의 역사에 무소속 독립성의 토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위원장이 단독 돌진한 9.18.테러, 그것도 자폭테러로 기록될 것이다. 작금의 국내외 상황전개로 미뤄볼 때 현 위원장은 조만간 국내외에서 날아오는 십자포화 앞에서 사퇴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다.
무소속 독립 인권위원장 현병철은 몰라도 행정부 소속 인권위원장 현병철은 결단코 안 된다는 게 국내외적 공감대다. 스스로를 행정부 소속 인권위원장으로 자리매김한 현 위원장은 지체 없이 물러나는 것만이 국가와 조직, 그리고 본인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자 마지막 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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