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백 후보자는 지난주 인사청문회에서 앞으로 자신이 주무장관으로 책임져야할 여성정책에 대해 '듣보잡'의 태도를 보였다. 간통죄, 혼인빙자간음죄, 군가산점제 등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민감한 이슈에 대해선 "더 알아보고 대답하겠다", "개인 의견을 말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변을 회피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편안한 노후를 보내게 해드리겠다"고 답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여성들에 대한 성적 착취'라는 역사적 차원의 문제이지, 피해 여성들의 '노인복지' 문제가 아니다. 정말 '손발이 오그라드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백 후보자는 청문회 과정에서 결국 여성부 소관 5개 법률의 내용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문성 부족'을 시인했다.
▲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백희영 후보자. ⓒ뉴시스 |
1. 96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재건축이 예상되는 '복지아파트'(22평) 1채를 구입했고, 이 아파트는 2001년 40평짜리 동부센트레빌로 재건축됐다. 그는 이 아파트를 현재도 보유 중이며, 적지 않은 시세 차익을 올렸을 것이다.
2. 2000년 서울 양천구 목동 9단지 아파트 142.5㎡(43평) 1채를 매입했다가, 46일 만에 매도했다. 이때는 이미 이촌동 재건축 예정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매입가를 1억 8400만 원이라고 신고했으나, 당시 실거래가는 4억 7200만 원으로 밝혀졌다. 매입가를 낮춰 신고해 탈세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3. 2001년 서울 관악구 상도동 다세대 주택 39.6㎡(12평) 1채를 구입해 2003년 삼성 래미안 84.7㎡(25평)으로 재개발 된 뒤 2006년 4억5000만 원에 매도했다. 이 역시 적지 않은 시세 차익은 누렸다고 볼 수 있다.
4. 2005년 12월 22일 봉천동 오피스텔 1채 매입해 현재 임대 소득을 올리고 있다.
5. 2006년 제주 삼도이동 수익형 호텔 분양권 '오션스위츠' 구입했다가 2년 후 매도했다.
특히 서울 이촌동, 목동, 상도동의 재건축 아파트를 '절묘한' 시점에 매입해서 세금을 가장 적게 내는 '기묘한' 방법으로 파는 수법은 일반인은 범접하기 힘든 수준이다. 여성정책은 어떨지 모르지만 부동산 재테크에 있어서만큼은 백 후보자의 '전문성'이 청문회 과정에서 입증된 셈이다. 그는 투기로 돈을 번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시세가 조금 더 됐으면(올랐으면) 한다"고 황당한 답변을 하기도 했다.
그의 도덕성 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되는 또 하나가 아들 병역 기피 의혹이다. 그는 아들의 병역 처분이 공익근무로 바뀐 과정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진료기록서를 제출해 달라는 의원들의 요청을 처음에는 거부했다가 추후 비공개로 제출했다.
정운찬 총리라는 '빅 카드'에 묻혀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백 후보자가 의외의 주목을 받는 것은 이런 그의 '듣보잡' 행보 때문이다.
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여성의전화,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장애여성 공감 등 6개 여성단체들은 21일 국회 여성위원회에 백 후보자의 임명 철회를 요청하는 인사 의견서를 냈다. 이들은 백 후보자의 전문성 문제 뿐 아니라 도덕성과 관련해 "자기만 잘 살고 자기 자식만 병역의무를 편한 곳에서 받게 하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 여성을 대표하는 모델이 될 수 있을지 매우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백 후보자는 야당의 반대로 이날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이 무산됐다. 하지만 장관 인사청문회 결과는 대통령의 인사권에 별다른 구속력을 갖지는 못한다. 오는 27일까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하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별도의 조치 없이 임명할 수 있다. 인사청문회에서 백 후보자의 전문성과 도덕성에 치명적 결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정운찬 카드'에 묻혀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 여성단체들이 발 벗고 나섰지만 깃발을 들고 전면에 나설 '지원군'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한명숙 전 총리가 떠올랐다. 한 전 총리는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여성부 초대 장관을 지냈다. 여성부가 처음 만들어질 때 여성계가 환호했던 이유는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여성특위가 여성부로 승격됐다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운동의 '대모'격인 한 전 총리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됐기 때문이었다. 한 전 총리는 1970년대 크리스찬 아카데미를 거쳐 여성민우회 대표를 지내는 등 16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여성운동을 이끌어왔다.
여성부가 인력과 예산이 다른 부처에 비해 턱없이 작은 '미니 부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호주제 폐지 등 적잖은 성과를 낸 것은 한 전 총리 뿐 아니라 지은희, 장하진 등 자질과 능력이 갖춰진 장관들의 역할이 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여성부가 수난을 겪고 있다. 대통령 인수위원회 당시 정부 조직 개편을 하면서 '여성부 폐지'까지 검토됐었다. 이명박 정부 초대 내각의 여성부 장관으로 이춘호 씨가 내정됐다가 부동산 과다 보유 및 투기 의혹으로 자진사퇴했다. 이어 변도윤 장관이 취임했지만 1년 6개월 동안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 다음이 백희영 후보자다. 민주당에서 지난 18일 "1기 내각에서 낙마된 이춘호, 박은경 씨만 억울한 것 아니냐"며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논평을 냈을 만큼 이명박 정부 들어 여성부 장관 물망에 오른 인사들이 '닮은 꼴'이다.
이런 '여성부의 수난'은 이명박 대통령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준다고 할 수 있다. '효율'과 '경쟁'이라는 잣대로 바라볼때 '여성'은 일종의 결격 사유 내지는 불편한 존재라는 '사장님' 마인드가 '여성부 폐지'를 검토했던 배경이 아닐까. 여성부는 '아무나' 해도 된다는 생각이 아니면 어떻게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도덕성도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장관 후보자로 낼 수 있겠나.
'여성부의 수난'이 이쯤에서 그쳤으면 한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여성정책을 실생활에 접목시키겠다"고 포부를 밝힌 백 후보자가 장관이 된다면 어떤 여성정책을 펼지 심히 걱정된다. 여권의 유력한 대권후보라는 정치적 입지나 계산은 잠시 잊고 여성계 대모이자 초대 여성부 장관이라는 '대선배'의 입장에서 따끔한 한 마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래서 절실하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불안감에 시달리면서 사회 곳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여성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거명되는 여성 장관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솔직히 모욕감을 느낀다. 이런 여성들의 마음에 귀기울여야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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