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주도형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 역시 이번 세계 경제위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 2008년 9월 이전에도 한국경제는 위기 징후를 보였다. 금융시장에는 '9월 위기설'이 파다했다.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이 보유한 채권 만기가 9월에 몰려 있는데, 이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국내 경제에 큰 충격이 올 것이란 관측인 '9월 위기설'은 정부가 직접 해명에 나설 정도로 시장 참여자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2008년 9월 한국,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환율 급등
▲ 지난해 환율 급등은 중소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키코 등 파생상품으로 인한 손실, 엔화 등 외화대출에 따른 원금 및 이자율 상승은 중소기업에 이중, 삼중의 부담을 안겨줬다. ⓒ프레시안 |
우선 환율이 치솟았다. 2007년 말까지만 해도 900원 대이던 원-달러 환율이 2008년 9월 1081원에서 1559.5월까지 치솟았다. 이번 세계 경제위기에 원화는 IMF 구제금융을 받은 아이슬란드 크로나화(67.5% 상승)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파키스탄(33.6%)보다도 많이 올랐다.
외환보유액도 급감했다. 2008년 3월말 2642억4566만 달러에 달하던 외환보유고는 8개월 연속 줄어 그해 11월 2005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가까스로 2000억 달러를 지켰다. 특히 9월에 274억2000만 달러, 10월에 117억4000만 달러 감소했다. 외국계 자금이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갔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전체 외환보유액의 1/3 수준인 637억3000만 달러가 감소하면서 적정 외환보유고로 여겨졌던 2100억 달러가 무너졌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물에 대한 불안감도 급격히 늘었다. 국제금융시장의 부도 위험 평가 지수라고 할 수 있는 신용부도 스와프(CDS) 프리미엄(해당 채권에 대한 지급보증 수수료를 연 이자율로 나타낸 것으로 수치가 클수록 부도 위험이 크다)이 급증했다. 한국의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해 상반기 1%포인트(100bp) 안팎에 머물렀으나, 9월부터 급등하기 시작해 10월29일 6.99%포인트까지 올랐다. 2007년초 대비 한국의 CDS 프리미엄 상승률은 약 20배로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결국 미국발 금융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5개국(아이슬란드, 우크라이나, 헝가리, 파키스탄, 벨루로시)에 이어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금융위기로 몰리고 있는 10여개국 중 하나로 한국을 지목했다.
실물경제 곳곳에서도 위기 징후가 포착됐다. 지난해 218개 건설업체가 부도 사태에 이르는 등 미분양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영세 건설업체의 줄도산설이 빠르게 확산됐다. 파생금융상품 키코(KIK0)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의 환차손 피해도 '화약고' 중 하나로 꼽혔다.
많게는 2006년 고점에 비해 40% 가까이 폭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도 급랭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말 66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문제도 '뇌관'의 하나로 지적됐다. 2007년 11월 2000을 넘었던 주가도 2008년 10월27일 892.16까지 떨어졌다. 주식시장에는 더 비관적인 전망도 제기됐다. 인터넷 경제논객인 '미네르바' 박대성 씨 뿐 아니라 증권사에서도 "2009년 주가가 500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신영증권, '2009년 증시 전망-부분적 구조조정, 일파만파')를 내놓았다.
2009년 9월 주가 1600, 서울 아파트 시가총액 700조 원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1년 뒤인 2009년 9월 1일 코스피 지수는 1623.06으로 연고점을 찍었다. 1년 전 예상과 달리 주가는 급락한 게 아니라 급등했다.
▲ 정부의 유동성 확대와 저금리 정책, 각종 규제완화로 인해 부동산 시장에 다시 투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8월 현재 서울의 평당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1821만 원으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뉴시스 |
외환시장과 국제금융시장도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리먼 사태 이후 급등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도 3월 1570원을 기록하는 등 한 차례 다시 요동쳤지만, 하락세로 돌아서 1200원 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한때 180억 달러까지 낮아졌던 외환거래량도 리먼 사태 이전 수준인 230억 달러 대를 회복했다. 2000억 달러 붕괴 위험이 있었던 외환보유액도 8월말 현재 2454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물의 위험도도 빠르게 안정화 됐다. 5년 만기 외국환평형기금채권국채의 CDS 프리미엄은 위기 이전 수준인 1%대로 내려왔다.
당장 가라앉을 것만 같던 한국경제가 현재 보여주는 모습은 단순히 안정세를 찾는 수준이 아니다. 지표상으로 한국은 매우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은 지난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3%로 중국(7.9%)을 제외한 주요국에 비해 높았다. 일본(0.9%), 독일(0.3%), 프랑스(0.3%) 등이 전기 대비 플러스 성장을 한 반면 미국(-0.3%), 이탈리아(-0.5%), 영국(-0.8%) 등은 여전히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지난 1년간, 숱한 위기설이 우리를 흔들었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해냈다"며 "지금 한국 경제는 OECD에서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자부했다.
지난 1년 한국경제는 정말 세계 경제위기라는 파고를 잘 헤쳐나간 걸까? 대한민국호는 방향타를 이대로 잡고 가면 앞으로도 순항할 수 있을까? 지난 1년의 성과에 환호하기에 앞서 짚어봐야할 문제들이다.
한국, G20 중 위기관련 지출 1위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살펴봐야할 문제는 재정이다. 한국경제가 이처럼 빠르게 부상하는 뒷심은 정부의 막대한 재정지출이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지난해 11월 종전 발표보다 10조 원 늘린 수정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4월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28조4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정부가 7월까지 푼 예산은 185조5000억 원으로 올해 예산의 68% 수준이다. IMF에 따르면, 한국은 G20 가운데 위기관련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 한국은 올해 위기 관련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6%로 러시아(4.1%)에 이어 2위, 2009년에는 GDP의 4.7%로 1위를 기록할 전망이다.
신속한 재정투입은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빠른 회복세를 가져왔다. 현 시점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낙관적 평가는 한국의 일방적인 기대 수준을 넘어선다. IMF는 "한국 정부의 재정 확장 정책은 칭찬받을 만하다"고 밝혔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최근 한국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재정지출이 크게 늘면서 재정수지 적자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IMF는 한국의 올해와 내년 재정수지 적자가 각각 GDP의 6.7%와 7.8%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국가 부채 증가율이 가장 빨리 늘어나고 있다. 지난 1년간 한국경제를 '수렁'에서 건졌던 재정 확장 정책의 '효과'에 더이상 감탄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림. OECD 회원국 일반정부 부채 평균 증가율 전망(2009-2010)>
(전년대비 증가율, %)
▲ 자료 : OECD, Economic Outlook No.85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
올해 재정적자 51.6조 원…내년 국가채무 400조 원 넘을 듯
기획재정부는 올해 관리대상수지 적자가 51.6조 원을 넘어서고 국가채무가 366.9조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도 50조 원에 육박하는 재정 적자가 예상돼 내년 국가 채무는 400조 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GDP 대비 35.6%로 OECD 20개국 평균 75.7%의 절반 수준으로 아직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내년 법인세-소득세 추가 감세를 예정대로 실시하고 3년간 22조 원이 소요되는 4대강 정비사업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이 모든 것을 다 하면서도 최근 발표한 '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잠정안'을 통해 2013년에 재정균형을 달성하겠다고 자신하고 있다.
정부의 이런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성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과소평가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은 "OECD 정부 부채 기준으로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2007년 말에 정부 부채가 689조-863조 원에 달한다"며 "이는 GDP 대비 59.9%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또 우리 정부의 회계 기준은 발생주의 방식이 아닌 현금주의 방식을 따르고 있어 수백조 원에 달하는 공적연금의 잠재부채가 통계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KDI가 2006년에 국민연금 잠재부채가 2005년 말 기준으로 286조 원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며 "이를 고려할 때 4대 연금 잠재부채 합계는 2010년 말에는 약 57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국가 채무에 4대 연금 잠재부채까지 합하면 970조 원으로 GDP 대비 93.3%까지 늘어나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재정적자가 수위를 넘어설 경우 경제에 끼치는 악영향은 적지 않다.
재정적자 부작용 1 : 막대한 이자, 이자율 상승에 따른 외환시장 불안 증대
국가부채가 증가하면 이에 대한 이자 부담도 커진다. 올해 국가채무에 대한 이자는 15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 13조3000억 원보다 2조4000억 원 불어났다. 내년에는 20조 원 가까이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올해 중앙정부의 사회복지 예산(20조4543억 원)이나 도로 철도 등을 포함한 교통 및 물류예산(19조1233억 원)과 맞먹는 규모다. 이처럼 이자부담이 늘어나면 세금을 걷어도 쓸 돈이 없게 된다. 재정 여력이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또 재정적자로 이자율이 상승하면 거시경제를 교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적자로 이자율이 올라가면 외국인들의 채권 투자가 증가해 외환시장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환율이 하락하고, 이에 따라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날 수 있다.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면 외환보유고에도 영향을 끼치고 문제가 심각해지면 외환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재정적자 부작용 2 : 구축효과
재정적자가 늘어나면 이를 메우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린다. 국채는 민간투자로 갈 수 있었던 자금을 대량으로 빨아들이는 효과가 있다. 이로 인해 시중에 돈이 그만큼 없어지고 이자율도 올라 기업은 돈을 빌리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민간 투자가 정부의 적자재정에 잠식당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고 한다.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결국 민간의 소비와 투자가 늘어야 하는데 재정적자가 늘어날 경우 민간 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재정적자 부작용 3 : 인플레이션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진다.
1차대전 이후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따른 부작용으로 1920년대 이미 한차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했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양적 완화에 나선 각국 중앙은행들을 겨냥해 "돈 풀기 정책을 되돌리지 않으면 10년 내 또다른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월가의 대표적인 비관론자로 '닥터 둠'으로 불리는 마크 파버도 "정부 부채 증가로 금리를 올려야 할 때 중앙은행이 제 역할을 못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경제평론가 박경철 씨도 7일 부산에서 가진 강연에서 "인플레이션 우려는 분명히 있다. 올해 말, 내년 초, 아니면 내년 말 등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고 전망했다.
재정적자 부작용 4 : 위기 대응 여력 감소
재정건전성 훼손은 외부 충격에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잃게 만든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V자형' 회복을 보일 수 있었던 배경에 '건전한 재정'도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지난해 9월 한 차례 충격이 지나간 뒤 세계경제는 최악의 파국은 면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루비니 교수는 지난 4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암브로세티 포럼에서 "선진국 경제가 최소 2-3년 동안은 (경기침체가 길어지는) U자형의 패턴을 보일 것"이라면서 "각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의 완료 시기를 못 맞출 경우 더블딥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경제의 '먹구름'이 걷히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적자가 쌓이는 것은 위험하다.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은 '정부가 만들어낸 한국의 경제회복 지표들'이란 보고서에서 "향후 더블딥과 같은 불안정한 요소들을 내포하면서 경기회복이 대단히 더디게 진행될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국가의 '신속 대응'도 중요하지만 '중장기 지속대응' 여부는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부원장은 "한국 정부가 단기적으로 경제지표를 바꾸기 위해 쏟은 비용은 역으로 중장기 지속대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며 "앞으로는 상당부분 민간 부분을 쳐다보는 것 외에 정부가 경제 지표를 바꿀 수 있는 여지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 작년 금융위기 직후 시장에서는 '리만 브라더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시장의 바람과는 거꾸로 가는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난하는 용어였다. 그로부터 1년 한국경제는 빠르게 회복하는 듯 하지만 그 비법은 다른 나라보다 과감한 재정 지출에 있었다. 당장 가장 손쉬운 해법이었던 재정지출 확대는 중장기적으로는 위기 대응력을 감소시키는 등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뉴시스 |
"국가부채 현재보다 10%이상 증가하면 위험"
결국 핵심은 재정적자의 증가 속도와 규모가 한국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냐는 점이다. 양준모 교수는 "현 수준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이런 재정지출로 향후 경제가 잠재성장률 수준(4%대)으로 올라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미국 등 선진국 경제의 빠른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 상황에서 당장 올해와 내년에는 어렵겠지만 내후년부터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겠느냐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또 이로 인해 세수가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재정적자를 메울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세수 증대다.
양 교수는 "재정지출이 현재 수준에서 컨트롤 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정지출은 한번 결정되면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계속 투입돼야 하는 경직성을 갖고 있는데, 이 수준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가 판단의 근거가 돼야 한다는 것.
양 교수는 "이런 전제조건들이 충족이 안 되고 현재보다 국가부채가 10% 이상 증가하면 빚이 빚을 불러서 재정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양상을 보일 것"이라면서 "일본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해에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속한 재정 지출이 필요했지만 올해부터는 다르다"며 "올해 예산 편성과 지출 구성이 상당히 중요하다. 효율적인 부분으로 자원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는 지금 '빚'과의 전쟁 중 지난해 9월 금융위기 직후 주요국은 G20회의를 통해 막대한 규모의 재정 지출을 통한 정책 공조를 합의했다. 이에 따라 미국 7870억 달러, 일본 27조4000억 엔, 중국 4조 위안, EU 2000억 유로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공황 때와 같은 경기 추락은 막았지만 세계 각국은 빚더미에 올라앉은 상태다. 한국과 마찬가지고 거의 모든 나라가 재정적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IMF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재정적자는 GDP의 13% 선인 1조85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현재 GDP의 87%인 미국의 국가부채는 2014년 106.7%로 치솟을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다음으로 이번 경제위기에 휘청이고 있는 영국도 올해 재정적자가 GDP의 12.3%인 1750억 파운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정부부채 비율은 2007년 63.4%에서 올해 81.2%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재정적자가 GDP의 6.5%로 12년래 최대치로 상승했다. 90년대 장기침체를 거치면서 국가 부채가 GDP의 148%에 이를 정도로 재정 문제가 심각한 일본도 올해 재정적자가 큰 폭(GDP의 9.9%)으로 늘었다. OECD는 일본의 재정적자 규모가 올해 GDP의 175%, 내년에는 194%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4조 위안이라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은 중국도 올해 GDP의 2.8%인 9500억 위안의 재정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지난 해 위기 직후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동원한 국가 재정이 이제는 경기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생겼다. 중국이 최근 담배 소비세를 최고 11%포인트 인상하고, 미국이 연봉 25만 달러 이상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늘리는 등 증세로 돌아선 것은 이 때문이다. 영국도 내년 4월부터 연봉 15만 파운드 이상 부유층 세율을 40%에서 50%로 올리고 고소득층 연금에 대한 세금 감면 혜택을 줄이기로 했다. 독일은 소득세 최고 세율을 현행 45%에서 47.5%로 상향하는 등 '부자 증세'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 상황에서 증세를 통해 재정적자를 메우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궁극적인 해법은 위축됐던 민간 수요가 정부 역할을 대체하는 것이다. 그동안 세계 소비의 중심이었던 미국이 다시 소비를 늘리거나, 이것이 안 될 경우 중국 등 다른 국가가 미국의 소비를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두 가지 모두 아직은 기대하기 이른 시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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