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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중도'?, '유치원 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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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중도'?, '유치원 실용'?

[손호철 칼럼] 진중권 사태로 본 MB정권의 '격(格)'

밴댕이, 유치원. 지난 주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두 단어였다. 물론 지난주 이명박 대통령이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로 내정하는, 중도실용노선의 충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 같은 뉴스의 충격도 개인적으로 대표적인 진보논객인 진중권씨가 한예종 객원교수와 중앙대 겸임교수를 탈락한데 이어 그동안 강의를 해오던 주요대학들의 강의마저 취소됐다는 소식의 충격을 가시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안타깝게도 나와 달리 사회적으로는 진중권 사태는 이슈화가 되다가 정 전 총장 인사 뉴스의 충격에 밀려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 여러 공직의 사람들이 당연히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니고 대학 강의담당자까지 자신들과 입장이 다르다고 갈아치우니, 밴댕이와 유치원생들에게 미안하지만, 속 좁기가 밴댕이 같고 지적 수준이 유치원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유치한 정권이다. 그러고도 중도와 실용을 이야기하니 '밴댕이 중도', '유치원 실용'이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정 전 총장을 총리로 모셔오면 무슨 소용이 있나?

사실 진중권씨에 대한 부당한 조치가 이명박 정부의 지시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즉 이명박 정부의 지시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별대학들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긴' 것이거나 자신들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그 같은 결정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개운치가 않다. 우선 한 두 대학도 아니고 여러 대학들이 마치 사전에 공모라도 한 듯이 일제히 겸임교수 탈락, 강의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것이 정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우연의 일치란 말인가?
▲ 진중권 교수. ⓒ프레시안

또 다른 정황증거는 그간의 행태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공기업 등의 인사들까지 전 정권이 임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열한 방식으로 갈아치운 바 있다. 그리고 시민사회분야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과 협력을 끊도록 압력을 넣어왔다.

그 결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희망제작소가 여러 기업, 지자체 등과 추진해온 여러 사업들이 이명박 정부의 압력으로 무산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최근에도 "나는 이념, 정부 성향을 떠나 실용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실천해온 사람이다. 참여정부 때는 몇 개 프로젝트를 지방정부, 중앙정부와 해왔는데 그게 이 정부 들어오면서 전부 무산됐다. 나도 아마 이제 '박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분류된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 이사 같이 합리적인 사람까지 포용하지 못하고 박멸대상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정말 밴댕이에 유치원수준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다. 2006년 9월부터 최근까지 3년간 한 달에 한번 만나 우수 도서를 선정해 발표하는 위원회의 정치학분야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위원회 관계자를 만나자 이명박 정부 쪽에서 나를 교체하라고 압력이 들어왔는데 한번 위원이 되면 3년을 하는 것이 관례이며 이에 따라 이미 한 달 전 임기를 1년 더 연장했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거절을 했다고 귀뜸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이 무슨 큰 벼슬이라고 그만두라고 하느냐. 미리 알았으면 임기 연장 때 그만 둘 걸 그랬다"고 대답하며 이명박 정부라는 것이 정말 유치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설사 순수가정으로 진중권 사태가 이명박 정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별대학들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보기에 사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이명박 정부가 이 같은 문제들과 관련해 그동안 얼마나 밴댕이와 유치원생 같이 행동했으면 관련대학들이 진중권씨 같이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 초특급 인기강사를 시장논리에 반하면서까지 해임시켜 정권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겠는가?

몇 년전 '국격', 즉 '국가의 격(格)'이라는 문제를 다룬 <국가의 품격>이라는 책이 일본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단순히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개인적으로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도 집단도 이념을 떠나 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일간지에 다음과 같은 논쟁적인 글을 쓴 바 있다("김용갑을 다시 생각한다", <한국일보> 2008년 5월 26일자).

"요즈음 이념과 인간이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아니 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클래스 내지 격이라는 생각이다. 한 마디로, 나는 '나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진보적이지만 인간이 안 되고 격이 없는 사람보다는 보수적이어도 인간이 되고 격을 갖춘 사람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이 같은 생각을 더욱 갖게 된다. 그 같은 생각을 갖게 한 것은 대표적인 '극우' 내지 냉전적 보수 정치인인 김용갑 의원이다.

사실 그의 냉전적인 정치행태와 관련해 나는 평소 그를 매우 싫어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시 민주노동당의 두 명에 불과한 지역구의원 중 한 명이었던 조승수 의원을 위한 서명에 김 의원이 서명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자신과 정치철학이 전혀 다른 조 전 의원을 위해 서명을 하는 것을 보고 김 의원을 다시 보게 됐다. 이로부터 얼마 뒤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하자 그는 보수정권이 권력을 되찾았으니 이제 안심하고 정계를 떠나겠다고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놀랐다. 특히 이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 개인적인 노욕에 눈이 멀어 진보정치운동을 위기로 몰고 간 것과 너무도 대조를 이루어 더욱 돋보였다."

그렇다. 이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 인간, 그 집단의 격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많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비판을 받은 것은 정책적 내용도 있지만 그 집단, 특히 386 등이 "싸가지가 없다"는 느낌을 국민들에게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비하면 정말 엄청나게 격이 있었다.

최소한 내가 아는 한, 노무현 정부는 보수논객이라고 겸임교수나 시간강사직을 자르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지는 않았다. 사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한 뉴라이트의 대표적인 논객의 경우, 노무현 정부 하에서 바로 내가 소장으로 있던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정부가 발주한 연구프로젝트의 연구교수로 있었고 이후에도 서강대학교의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국가의 격인 '국격'이 있다면 진보, 보수와 같은 이념적 성격과는 별개로 정권의 격인 '정격'내지 '정권격'이 있을 터이다. 그간의 여러 인사논란과 희망제작소 사태, 그리고 이번 진중권 사태를 보면서 이명박 정권은 이념적 보수성과는 별개로 '정격'내지 '정권격'이라는 면에서도 정말 속 좁기가 밴댕이 같고 지적 수준이 유치원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수준 이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도도 좋고 실용도 좋다. 구체적으로, 최근의 중도선회가 단순한 포장이 아니라 진짜 변화이냐는 논란은 있지만, 그래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손뼉을 쳐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중도실용으로 선회하기 전에 우선 밴댕이와 유치원생 수준을 벗어나 '격'부터 갖추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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