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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철 밟는 오바마…'빨갱이' 덧칠에 '권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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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철 밟는 오바마…'빨갱이' 덧칠에 '권총'까지

[복지국가SOCIETY] 오바마 의료 개혁, 성공할 수 있을까?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 개혁안을 놓고 벌이는 미국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점입가경이다.

미국 상·하원 여름 휴가 기간(8월) 동안 주요 쟁점안에 대한 여론 수렴을 목적으로 미국 전역에서 지역 단위 소규모로 진행되는 타운 홀 미팅(Town-Hall Meeting)이 오바마 의료개혁 반대 세력에 의해 연이어 난장판으로 전락하고 있다. 위협을 느낀 민주당 의원들이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는 한편, 분위기 반전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타운 홀 미팅에 나서고 있다. 지난주에만 세 번의 일정을 긴급히 잡아 국민과의 대화와 설득에 직접 나섰다.

지난 14일자 <한국일보>를 보면, 오바마가 참석한 11일 뉴햄프셔 주 포츠머스 고교의 타운 홀 미팅에서는 '1인 권총 시위'까지 등장했다. 윌리엄 코스트닉이라는 사람이 권총을 허리에 찬 채 의료보험 개혁 반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대통령을 기다렸는데, 주 법률 상 총기를 숨기지 않고 소지할 경우 불법이 아니어서 경찰이 제지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급기야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이 47%까지 떨어졌다는 소식마저 전해진다. 지난 6월 중순까지만 해도 오바마 대통령 지지율이 63%, 의료개혁안에 대한 지지율이 72%에 달했는데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본격적인 의료 민영화 논쟁을 앞두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 궤적을 들여다보자.

미국 의료의 문제점

미국 의료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2009년 현재 미국 의료비 규모가 GDP의 18%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고, 2030년에는 28%, 2040년에는 34%에 달해 국가 재난 사태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55% 정도가 고용주(employer)가 부담하는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데 1996년 가구당 평균 고용주 부담 의료보험의 연평균 보험료가 6462달러에서 2008년 1만1941달러로 증가하였으며, 지금과 같은 증가 속도가 계속된다면 2025년에는 2만5200달러, 2040년에는 4만5000달러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2008년 기준).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감당하기 쉽지 않은 숫자다.

미국 의료의 또 다른 문제는 실직이 곧 의료보장 손실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65세 이상에 대해서만 국가가 제공하는 의료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65세 미만에서 직장을 잃은 사람은 의료보험도 함께 잃어버리게 되는데 직장이 없는 사람이 그 비싼 의료보험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에서는 큰 걱정거리의 하나이다.

이렇다보니 미국에는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4500만 명이 넘는다. 실직자들, 세탁소나 조그만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들, 소규모 사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늘을 믿고, 자기 몸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 이외에 다른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민간 보험회사의 과거 병력자에 대한 보험 가입 거절과 보험 가입자에 대한 급여 지급 거절 행태도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 건강하다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과거 중증질환을 경험한 적이 있어 고비용이 예상되는 사람의 경우 보험 가입을 받아주지 않는다.

병·의원에 가면 모든 의료비를 개인이 직접 부담해야만 하는 신세가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비교적 저렴한 보험일수록 중증질환 치료에 적용되는 신의료 기술에 대해 보험회사의 지급 거절이 많아 최적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미국인들이 민간 의료보험회사에 진절머리를 내는 이유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미국 의료제도가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괜찮은 직장을 갖고 있고, 경제력이 웬만큼 되는 사람들이 누리는 의료서비스 수준은 세계 최고다. 그리고 그 절대수가 결코 작지 않다. 지난 6월 중순 미국 뉴욕타임즈와 CBS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개인이 체험하는 의료서비스 만족도 조사에서 서비스 질에 대한 만족도가 77%, 비용에 대한 만족도는 50%에 이른다. 내가 어떤 계층에 속하는가에 의해 상당한 차이가 벌어진다고 보면 틀림없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 버지니아주 브리스톨의 크로거 수퍼마켓에서 가진 의료보험개혁 관련 타운홀미팅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오바마가 제시한 의료개혁안

오바마는 전국민의료보험을 실현하겠다는 공약으로 대통령이 되었고, 그가 제출하여 현재 의회에서 논의 중인 개혁안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개혁안의 완료 시점에 미국의 모든 국민이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목표다. 보험 미가입자에 대해서는 수입의 2% 이상의 벌금을 물리도록 제안하고 있다.

○ 의료보험 가입이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해 연방정부 빈곤선(Federal Poverty Level) 133%미만까지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전액 부담하는 의료부조 프로그램 메디케이드(Medicaid) 가입 자격을 확대한다.

○ 연방정부 빈곤선 133%에서 400%까지는 의료보험가입 지원을 위해 세액공제(tax credit) 혜택을 적용하되, 빈곤선 대비 수준에 따라 세액공제 비율은 차등 적용한다.

○ 모든 민간 의료보험회사들은 과거 병력,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른 가입 거절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강제한다.

○ 중규모 이상 사업장(연 인건비 25만 달러 이상)의 고용주들은 직원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하거나, 직원들 인건비 대해 부가적인 세금(인건비 총액별 차등, 최고 세율 8%)을 부담해야 한다. 고용주는 개인별 보험료의 72.5%, 가구당 보험료의 65%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 소규모 사업장 고용주에게는 직원에 대한 보험료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세액공제를 적용한다(25인 미만 사업장에 직원 의료비 부담의 50%까지).

○ 연방정부가 4가지 유형의 기본급여(basic package)를 제안하고, 연방정부가 미국인들과 소규모 사업자들의 합리적인 보험 선택을 지원하기 위해 각 지역에 개설할 의료보험상품거래소(Health Insurance Exchange)에 상품 등재를 희망하는 민간보험회사는 이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등재를 원하지 않으면 기존과 같이 자율적인 상품 설계와 상품 출시가 보장된다.

기본급여의 유형은 본인부담 수준에 따라 차등화 되는 데 '최고 30%, 15%, 5%, 5%+부가급여' 네 가지 유형이 제안되어 있다.

○ 보험상품거래소에는 정부가 제시한 기본급여 기준을 충족하는 민간 의료보험상품 유형 이외에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공보험(public option)이 선택 항목의 하나로 포함되어야 한다. 오바마는 민간보험과 경쟁할 공보험을 의료시장에서 민간보험을 정직하게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참고로 '공보험'의 보험료, 진료비 보상 방식과 수준은 65세 이상에 적용되는 메디케어(Medicare)를 기본 모델로 하고 있다고 언급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협상력을 기반으로 민간의료보험보다 보험료가 저렴하고, 보상 수준도 더 낮을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개혁을 집행하는 데 향후 10년간 1조 달러 가까운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심각한 재정적자, 경상적자에 처한 상황에서 쉽게 부담을 결정할 돈은 아니다. 그런데 돈의 규모가 핵심 관건은 아닌 듯싶다.

핵심 쟁점은 공보험(public option)의 포함 여부와 설정될 역할 수준에 있다. 강력한 공보험이 시장에 출현하여 저렴한 보험료를 기반으로 시장에 일대 돌풍을 일으키면 민간의료보험회사로서는 답이 나오질 않기 때문이다. 만약 공보험을 사장시킬 수만 있다면, 파이가 커진 시장,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손해 볼 일 없는 장사인 것이다. 강력한 공보험을 존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사장시킬 것인가? 논란의 핵은 여기에 있다.

오바마 의료개혁의 추진경과

오바마 대통령은 의료개혁법안의 승인 과정을 초당적 협력과 합의에 기초하여 추진하겠다는 원칙을 일찍이 내세웠다.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다수당인 상황을 반영한 정치적 행보라 볼 수도 있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소위 '블루 독(blue dog)'이라 불리는 민주당 보수파의 눈치 보기 탓이다. 공화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며 의원이 된 이들이 지역주민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보험회사 등의 막대한 물량공세가 만만치 않다. 이들은 이미 상하원 논의 과정에서 오바마 개혁안에 반기를 들거나 타협안을 내세우며 일정을 지연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이들이 결정적인 순간 어떤 선택을 할지 아무도 장담 못하는 상황이다.

오바마를 지지했던 풀뿌리 조직들 그리고 의료보험개혁을 열망하는 다수의 시민들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들 의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가 애초에 설정한 합의 시한 8월초까지 상하원 모두 최종안 합의와 의결에 이르지 못했다. 하원 에너지·상무위원회에서 7월 31일 의보개혁 법안을 찬성 31표 대 반대 28표로 통과시킨 것이 유일한 성과다. 그마저도 민주당 의원 5명이나 반대표를 던지며 건져낸 결과일 뿐이다.

일주일 간격을 두고 여름 휴가에 들어간 양원 의원들이 9월 초 의회 개시 전에 지역에 내려가 타운 홀 미팅을 통해 지역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 들어섰는데, 여기서 사단이 벌어졌다.

초기부터 오바마 의료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진영 인사들이 집단적으로 민주당 의원이 주최하는 타운 홀 미팅을 주요 대상으로 삼아 행사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예정된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고, 민주당 의원들은 잔뜩 움츠려든 상황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반대의 명분과 주장을 들어보면 일면 수긍할 수 있는 대목도 있지만, 제3자가 보기에도 상당한 과장과 왜곡이 난무하고 있다. 과거 소련과 같이 '배급제 의료제도'를 도입하려 한다, '사회주의 의료'를 강행하려는 것이다, 심지어는 노인의료비를 줄이기 위해 '사망판정위원회'를 도입하여 정부가 생사 여부를 관장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판이다.

이 과정에서 영국 NHS를 들먹이자 영국 사람들이 화가 났다는 외신까지 전해지고 있다. 대선 당시 오바마를 지지했던 풀뿌리 조직들과 민주당 좌파에서는 의료보험회사들이 뒷돈을 대고, 공화당 등 보수우파들이 조직적으로 선동하여 극우 보수진영을 타운 홀 미팅에 내세워 오바마 의료개혁안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지만, 이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진보와 보수가 전면전으로 치닫는 이유는 오바마가 의료개혁에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초당적 협력과 합의를 주창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의 운동이 이 순간을 위해서 조직된 것'이라며 자신을 지지했던 풀뿌리 운동 조직의 동참을 간절하게 호소했다. 이를 한국의 상황에 빗대보자. 2004년 말 참여정부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등 4대 개혁법안 국회처리를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노사모를 비롯한 지지 세력들에게 전면적 지지와 적극적 참여를 호소하는 장면과 그 이후 예상되는 조중동의 날선 논조와 보수우익의 준동을 떠올리면 이해에 도움이 될 듯싶다. 이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공화당과 보수파들도 전략적으로 전면전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가 7월 22일 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직접 언급했듯이 '공화당의 한 전략가가 말하기를 의료개혁안에 타협을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무력화(kill)시키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이 공화당의 기본 입장이자 판단이란다.

이후 전망

오바마가 애초에 제시한 8월초 시한은 이미 지났다. 민주당 상원의원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으로는 올 연말 크리스마스까지도 합의가 어려울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보수 우파들이 타운 홀 미팅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민주당 의원들을 일정정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9월초 워싱턴에 돌아와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민주당과 진보진영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듯싶은 데 두고 볼 일이다.

보수 우파의 공격의 핵심은 민간의료보험과 경쟁하는 공보험이다. 이것만 오바마가 양보하면 초당적 합의는 쉽게 진행될 것이다. 공보험을 포기할 수도 있고, 형식만 남겨둘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정치적 의사도 이미 밝혔다.

반면, 미국 의료제도에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왜 그렇게 비효율적인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반격이 쉽게 예상된다. 다른 한편에서, 민주당 좌파를 비롯한 미국의 진보진영은 그들대로 사실상 공보험이 해체된 의료개혁안을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향후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한다. 2009년 12월까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올 연말 본격적인 의료민영화 논쟁이 예고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은 얻을 수 있다.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주체가 보건의료체계의 주된 행위자가 되었을 때 올바로 교정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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