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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를 다시 생각한다

[손호철 칼럼] 중대선거구제는 지역주의를 완화시킬 것인가?

"문제는 '노무현, 그 이후'입니다. 그를 추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대한 장례식도, 기념물 건립도 아니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중략) 첫째, '바보 노무현'을 양산해야 합니다 (중략) 둘째, 특히 지역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바보 노무현'의 핵심에는 망국적인 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도전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고 지역주의는 아직도 강고하기만 합니다. 그가 그처럼 열망했듯이 지역주의가 사라질 때 그는 저 먼 곳에서 환히 웃을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접하고 지난 5월 25일 이 면에 썼던 "노무현, 그 이후"라는 칼럼의 내용이다. 그렇다. 부산을 지역구로 하여 선거 때마다 지역주의의 벽을 가장 처절하게 경험해야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가장 중요한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대)선거구제의 도입을 원했고 이를 반대하는 한나라당을 설득하기 위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라는 충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제의조차 실패로 끝나고 말았고 지역주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일정한 책임이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게 미안했는지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화두에 화답을 하고 나섰다. 즉 8.15 경축사에서 "현행 선거제도로는 지역주의를 벗어나지 못 한다"고 전제한 뒤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진통제로만 다스릴 수는 없는 것"이라며 "지역주의를 없애길 원한다면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제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중(대)선거구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중선거제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국민회의가 주장했고 노 전 대통령도 이를 다시 들고 나왔지만 한나라당이 계속 반대해 성사되지 못한 제도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이를 지지하고 나선다면 그만큼 성사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연합

그렇다면 중선거구제의 도입은 바람직한 것인가? 이미 다른 글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손호철,<신자유주의시대의 한국정치>, 1999, 310-318쪽) 그렇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중선거구제를 도입할 경우, 한 선거구에서 복수의 의원을 뽑으니까 지금과 달리 영남에서도 민주당, 호남에서도 한나라당의 의원이 탄생해 지역주의가 약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주목할 것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영남과 호남에서의 득표율간의 비대칭성이다. 민주당이 영남에서 평균 20%대의 지지율을 가지고 있다면 한나라당의 호남에서의 지지율은 훨씬 낮다(이는 호남이 영남보다 지역주의가 심해서가 아니다. 산업화가 영남중심으로 이루어져 영남에는 10% 이상의 호남사람이 사는 반면 공장이 별로 없는 호남에 사는 영남사람은 거의 없는데 크게 연유한다).

따라서 중선거구제를 실시하면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그렇게 될 경우 그 다음선거에서 영남이 '복수'에 나서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을 몰아내기 위한 몰표가 나타나 오히려 지역주의가 강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원래 국민회의안이 중선거구제 이외에도 비례대표도 현재와 같이 전국이 아니라 지역 광역별로 배분을 하는 지역 광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안이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앞에서 이야기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영남과 호남에서의 득표율의 차이로 인해 비슷한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또 비례대표를 지역광역을 기준으로 나누는 경우 소수정당의 경우 할당의원수가 소수점으로 나뉘어져 비례대표에서 한 석도 못 차지하는 사태가 올 가능성이 크다. 즉 사표방지라는 비례대표의 취지가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중선거구제는 여러 문제점이 많아 일본조차도 최근 포기한 제도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국민회의가 중선거구제를 주장하고 나섰을 때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비판한 내용이다. 당시 국민회의의 강령에는 "중대선거구제는 당내 파벌 성행, 막대한 선거비용, 정국의 불안정과 신진인사의 진출제약 등 폐해가 심각해서 세계의 주요 국가들이 폐기한 제도"라고 명시하고 있으면서 정략적으로 중선구제를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국민회의의 강령이 정확히 맞는 것이다. 중선거구제는 당내 파벌 성행, 막대한 선거비용, 정국의 불안정과 신진인사의 진출제약 등 폐해가 너무 심각한 제도이다.

그렇다면 어떤 선거제도가 지역주의 극복이 가장 바람직한가? 개인적으로 고민을 하다 고안한 것은 '교차투표제'라는 엉뚱한 제도이다. 대구 국회의원은 광주가, 부산국회의원은 전주가 뽑고 광주와 전주는 반대로 대구와 부산이 뽑는 것이다. 그러면 대구, 부산에는 민주당이 광주와 전주에는 한나라당이 당선될 것 아닌가? 그러나 이는 지역주의가 하도 답답해 생가해본 풍자성 극약처방일 뿐이지 실현가능성이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제도 중 가장 바람직한 것은 네덜란드나 이스라엘처럼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는 순수한 비례대표제이다. 이렇게 되면 '어느 지역의 의원'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모든 국회의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의원이 될 뿐이다. 이 경우 지역민원 등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이 없어지지만 이제 지방자치가 활성화되고 지방자치단체장도 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이상 지역대표성 기능은 지방자치체에 맡기면 된다.

이 제도가 지역대표성이라는 점에서 너무 급진적이라면 덜 급진적이면서도 사표방지를 통한 민주주의의 제고 등 다른 문제까지 고려한 종합 점수 면에서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것이 시민단체들이 정치개혁을 위해 도입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독일식 선거제도(소선거구.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병용제)이다. 이 제도는 우리가 현재 채택하고 있는 일본식의 병립제와 달리 각 정당의 득표율에 의해 각 정당의 전체의석을 정한 뒤 소선거구 선거에서 승리한 의석수를 빼고 나머지 의석을 비례대표의석을 배정함으로 득표율과 전체의석수가 일치하도록 만들어주는 이상적인 제도이다.

그만큼 사표가 없어지고 진보정당 등 소수정당의 성장에 유리한데 이 같은 제도가 지역주의 극복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앞에서 인용한 '노무현, 그 이후'의 뒷부분을 마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사실은 지역주의는 이를 아무리 비판해도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지역주의 보다 강력한 다른 정치적 균열구조가 생기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낡은 '민주대 반민주'의 구도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한국정치가 본격적인 '진보 대 보수'의 경쟁으로 나아갈 때 지역주의가 깨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긴 이야기를 하기는 뭐합니다만, 현재처럼 영남은 영남대로, 호남은 호남대로, 재벌부터 노동자까지 모두가 한 후보와 정당을 찍는 '초계급적 지역연합'을 호남의 노동자와 영남의 노동자는 지역을 초월해 노동자라는 자신의 입장에 기초해 진보후보를 지지하고 영남의 자본가와 호남의 자본가는 자신의 입장에 따라 보수후보를 지지하는 '초지역적 계급연합'으로 나가야 합니다."

정작 우려되는 것은 이 대통령의 선거제도 개혁의 화두가 정치권에서 굴절되어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즉 개악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의 임기 안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개헌을 준비해 왔는데 그 안에 따르면 국회를 상하 양원으로 개편하는 대신 의석수를 늘릴 수 없으므로 비례대표제를 완전히 없애 그 인원을 상원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식으로 가자는 것으로 이는 개혁이 아니라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이 대통령의 선거제도 개선 제안이 덜컥 겁이 나는 것이 바로 그 같은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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