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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손호철 칼럼] 영웅적 투쟁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들

투쟁은 끝났고 이제 냉철한 평가의 시간이다.

식수조차 부족해 에어컨에서 나오는 물까지 끓여 먹으며 버틴 쌍용차 노동자들의 77일간의 투쟁. 그것은 한국노동운동의 전투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영웅적 투쟁'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사실상 '노동조합의 항복'이라고 해야 할 만큼 너무 보잘것없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노사관계 전문가들이 이번 투쟁에 대해 "최악의 선례가 될 것"이라는 혹평을 한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번 투쟁이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국 문제는 이번 투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이냐는 것이다.

이번 투쟁은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는 역시 구제불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번 사태가 엄청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를 중재하고 해결하려는 태도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공안논리에 의해 물리력을 동원해 이를 진압하는 데만 열중했다. 아니 처음부터 노조와 노동자들의 항복을 받아 전례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에 의해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고 옥죄어갔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적 공안국가의 벌거벗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프레시안

그러나 이번 투쟁이 비극적으로 종결된 데에는 이명박 정부의 반노동적 태도 이외에도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연대투쟁의 부족에 따른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립이다. 물론 민주노총과 민중단체, 시민단체, 나아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 그리고 민주당의 지원과 연대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너무도 부족했다. 이번 투쟁은 아무리 영웅적 투쟁도 광범위하고 강력한 연대투쟁 없이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인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경쟁인 신자유주의의 현실 앞에서 힘 있은 연대는 너무도 이루어지기가 어려웠다. 사실 개인적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머리에 떠오른 것이 17세기의 정치사상가 토마스 홉스였다. 그는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그린 바 있는데, 신자유주의가 우리를 바로 그 같은 모습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정리해고 명단에서 빠진 소위 '사측 직원' 중에도 동료들을 위해 끝까지 파업현장을 지킨 '아름다운 노동자'들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이중 상당수는 공장정상화를 요구하며 파업의 반대편에 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가족 중 일부는 모임을 만들어 파업지지를 온 단체들에게 달려와 항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쌍용차 노동자조차도 갈기갈기 찢긴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에 못 지 않게 안타까운 것은 현대, 기아, 대우와 같은 대기업 완성차노조가 보여준 "나 몰라"라는 방관적 태도였다. 금속노조는 쌍용차 파업 지원을 위한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현대차지부가 동조 파업안을 부결시키는 등 연대투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운동의 핵심인 연대의 정신은 사라지고 개인주의와 실리주의만이 남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96년 말-97년 초 노동법 개악에 반대하는 총파업 직후 쓴 글에서(손호철, <신자유주의시대의 한국정치>, 1999, 381-382쪽), 총파업 승리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의 제도화를 바라보면서 한국 노동자계급이 고용불안에 따라 개별화할 위험을 심각하게 우려했는데 그 같은 우려가 '민주적 노동운동'의 핵심에서 조차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쌍용투쟁을 통해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 못지않게 불편한 또 다른 진실을 우리는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쌍용차 사태와 77일간의 투쟁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무비판적인 외자유치론(해외매각론)이 어떠한 사회적 폐해를 가져다주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쌍용차가 이렇게 된 것은 노조의 잘못이 아니라 정부를 이를 상하이차에 잘못 매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산자유주의와 무비판적인 외자유치의 문제점을 국민들이 몸으로 체험할 수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국민교육 기회였다.

그러나 쌍용노조와 진보진영은 현재의 상황대처에 급급했을 뿐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이 이번 사태의 원인인 '상하이차 먹튀' 문제를 여론화시키지 못해 쌍용차 노동자들이 여론에 한층 고립됐다"고 진단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이와 관련, 우리는 쌍용차 사태에 대한 불편한,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진실의 핵심에 주목해야 한다. 이 난의 "부두(voodoo) 경제학과 부두정치를 넘어서: 쌍용차와 GM대우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2009년 6월 22일자)에서 지적했듯이, 그것은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인 외자유치론에 기초해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해 현재의 사태를 야기시킨 당사자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이라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위에서 지적한 이번사태에 대한 한심한 대응책 문제와는 별개로) 쌍용차 사태에 관한 한, 이명박 정부는 '억울하게' 이전 정권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김대중 정부가 김영삼 정부와 한나라당 세력이 저지른 1997년 경제위기의 설거지를 하느라고 '억울하게' 신자유주의의 악역을 해야 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보진영은 쌍용차 사태의 모든 책임을 MB 탓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주된 책임이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에게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 한 탓인지, '상하이차 먹튀' 문제와 무비판적인 해외매각이라는 원죄문제를 거의 쟁점화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여론화시키지 못했다.

아니 무비판적인 해외매각의 폐해에 대해 국민적인 여론화와 교육을 시키지 못했더라도 좋다. 최소한 이번 사태를 통해 중요한 반MB세력 중 가장 힘이 강하며 가장 유력한 수권세력인 민주당이 그동안 자신들이 주도해온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해외매각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정책적 전환을 했다면, 이번 사태는 충분히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것 같지 않다. 즉 이번 사태를 통해 민주당이 쌍용차 해외매각 등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무비판적인 해외매각에 대해 자성을 하고 정책적 전환을 했다는 증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민주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잘못 매각을 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에 대해 쌍용차 노동자들과 국민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사과한다"는 사과 성명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노파심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의 주장의 핵심은 단순히 쌍용차 사태의 진짜 책임소재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를 통해 미래를 배우자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다시 쌍용차의 해외매각설이 등장하고 있다. 77일간의 영웅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런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못한 채 또 다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죄문제를 쟁점화하지 못한 진보진영의 잘못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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