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전 6시 30분 경 숨진 고 전용철(44, 보령) 씨 사망사건에 대한 진상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개최된 전국농민대회 과정에서 있었던 경찰의 과잉진압이 사망의 직간접적 원인이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59개 시민사회단체는 고인의 사인을 추정할 수 있는 주요한 정황적 증거를 25일 저녁 6시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했다. 사인을 추정할 수 있는 증거는 지난 24일 충남 보령 아산병원에서 실시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에 참가한 한 의사의 소견서와 15일 농민대회 당시 목격자의 증언, 고인이 17일 병원에 실려가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보령 농민의 증언이다.
다음은 전농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제시한 세 가지 증거의 요약이다.
1. 15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 전국농민대회 목격자 임나영(23, 호서대) 씨.
대학생 임나영 씨는 방학 때마다 보령군 주교면에 농활을 가서 고인과 친분을 쌓았고, 15일 전국농민대회에서 고인을 다시 만났다. 농민대회의 시위대열이 국회의사당 앞까지 진격했다가 경찰의 해산작전에 막혀 참가자들이 길가에서 쉬고 있을 때 임 씨는 고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고인이 먼저 인사를 건네자 임 씨는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물었다. 고인은 "다 괜찮다"고 하더니 머리 뒤쪽을 잡으면서 "방패에 맞았는데 뻐근하다"고 했다. 잠시 뒤 고인과 임 씨는 다시 조우했는데 이때 고인은 "다른 데는 괜찮은데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2. 농민대회에 함께 참여하고 고인을 병원으로 데려간 동료 이병훈(보령군 주교지회 사무장) 씨.
보령군 주교지회 사무장인 이 씨는 보령농민회 회원으로 15일 오전 버스로 타고 상경해 농민대회에 참여했다. 국회의사당 앞으로 행진할 때 보령농민회는 두 번째 대오에 속해 있었다. 이때 경찰은 농민대회를 제지하기 위하여 전의경 버스로 길목을 막고 소화기와 물대포를 사용했다. 또한 TV뉴스나 인터넷에 보도된 동영상과 같이 농민들을 곤봉과 방패로 마구 때렸다. 농민들도 대나무 막대기를 사용하여 이에 대응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양측의 공방은 저녁 때까지 계속됐다.
당시 경찰의 강력 제지로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진 가운데 이 씨는 보령농민회 회원들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다. 귀향버스로 돌아왔을 때 고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회원들은 제각기 고인을 찾아 나섰는데 30여 분이 지나 고인이 나타났다. 보령농민회는 귀향길에 올라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버스가 다시 떠나려고 할 때 고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 갔더니, 고인이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고는 "어지럽다", "힘들다"는 말을 계속 했다. 이 씨는 고인의 뒤통수에 난 상처를 보았다. 이 씨가 차안에서 '어르신'들이 기다린다고 재촉하자 고인은 "힘들다", "조금만 더 쉬다 가자"고 하여 길가에 앉아 몇 분 동안 안정을 취했다. 그 뒤 고인은 보령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령에 도착한 뒤 집회에 참석한 농민회 회원들이 청년회관에 모였다. 고인은 미혼이기 때문에 평소 집보다 청년회관에서 잘 때가 많았다. 회원들은 다같이 뒤풀이로 가벼운 술자리를 가진 뒤 헤어졌다. 이 씨는 다음날(16일) 밥을 사서 회관을 찾아갔다. 그때 고인은 밥을 먹다가 구토를 했는데 주위에서는 큰 일로 여기지 않고 식사를 계속했다. 이때 고인은 "방패에 맞으니 별이 많이 뜨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안색이 불편해 보여 "어디가 불편하냐"고 묻자 고인은 이때도 여전히 "머리가 어지럽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이 씨는 다음날(17일) 고인이 걱정이 되어 동료와 함께 고인의 집을 찾아가 봤다. 함께 밥을 먹다가 아무 말이 없어 살펴보니 고인이 몸을 왼쪽으로 20~30도 정도 기울인 채로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여겼는데 고인의 바지도 젖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 곧바로 인근 보령 아산병원으로 고인을 데리고 갔다.
3. 24일 보령 아산병원에서 실시된 고인의 부검 결과 소견서 요약(원진호 내과전문의)
◇ 부검경과 및 소견
- 보령 아산병원 영안실 지하 1층 부검장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 3인을 비롯해 5인에 의한 부검 집도를 24일 오후 6시 40분에 시작.
- 유족 측에서는 유족대표로 고인의 형, 보령시 농민회장, 전농 부회장, 전농 대외협력국장, 검사 및 형사 관계자, 본인이 참석.
- 먼저 외관상 나타나는 신체계측과 증후에 대한 평가 시작. 오른쪽 어깨 부위에 약한 충격에 의한 피멍자국과 왼쪽 엉덩위 부위의 표피박탈(벗겨짐), 좌측 후두부 부위의 표피박탈, 양측 상안감(눈 주위)에 피멍 자국 등이 발견됨. 사망에 이를 정도의 결정적인 상처는 보이지 않음.
- 이어 시행한 내부장기 손상 검사에서 고인의 병력에는 없으나 간경화와 비장비대가 있다는 소견이 있었고, 심장내막하 출혈이 보였지만 사인과는 직접적 증거는 없었음.
- 오후 8시를 넘어 본격적인 두부에 대한 검사 진행. 여기서 결정적인 소견들이 나타남. 좌측 후두부 부위의 표피박탈된 두피 바로 밑에 미세한 골절 선이 있었으며 두부 봉합선을 따라 약간 벌어져 있었음. 이는 충격으로 인한 손상으로 판단됨. 두개골을 열고 확인한 뇌실질에서는 양측 전두엽 실질내 출혈 응괴가 있었고 오른쪽 부위가 병변이 더 저명하였고 오른쪽 측두엽까지 출혈이 있었음. 이밖에도 부분적으로 골절선이 있었고, 출혈도 보임.
- 오후 9시 20분 부검 종료
◇ 결론
- 사망원인 : 두부외상에 의한 뇌손상
- 뇌손상은 좌상(맞거나 부딪쳐 생긴 상처)에 의해 발생했고, 전두부 실질내 출혈, 골절,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 등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음.
- 외측 후두부가 뭔가에 세게 부딪치고, 뇌의 대측 충격 손상에 의해 오른쪽 전정부 뇌실질에 저명하게 뇌좌상을 입히고 출혈을 유발했다고 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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