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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희화화시켜라

[손호철 칼럼] 진보개혁정당의 총사퇴로 정권 심판해야

"사회적 관계들의 응축". 20세기 최고의 국가론 이론가라고 할 수 있는 니코스 플란차스는 국가를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다시 말해, 국가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세력간의 힘의 관계가 응축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이 같은 힘의 '관계'가 기계적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전략'들이 이들간의 힘의 벡터 속에 응축된다는 '전략관계적' 국가론을 주장했다.

비극적이다 못해 희극적이기까지 한 미디어법 날치기 사태를 바라보면서 바로 이 같은 '전략관계성'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미디어법 날치기 사태는 우리 사회의 힘의 관계와 전략들을 가장 응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니 어려운 정치학적 용어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 정치의 현실을 가장 응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레시안

우선 한나라당과 냉전적 보수세력의 압도적인 힘이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나라당과 냉전적 보수세력이 국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압도적 의석과 압도적인 힘을 바꿔 놓지는 못 했다.

둘째,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전략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중도실용론, 중도강화론을 내걸며 국정기조에 변화를 주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이번 날치기 사태는 이같은 중도강화론이 레토릭에 불과하며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축적전략, 헤게모니전략은 여전히 중도노선과는 거리가 먼 강경극우 신자유주의 노선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극우적 전략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무능이다. 소위 하드웨어와 하드파워만 있지 소프트파워와 스마트파워가 없는 것이다. 대리투표, 재투표논란과 이에 따른 헌재의 무효판결가능성이 이 같은 무능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죽 했으면 극우논객인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한나라당이 날치기 통과를 하더라도 "과거 선배들의 본을 받아 좀 더 매끄럽게 해 치웠어야죠."라고 개탄을 하며 "앞으로의 폭풍을 어떻게 이겨 내냐"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겠는가?

시선을 진보개혁진영으로 돌려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들은 군소정당의 한계로 정국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제대로 된 전략도 갖추지 못했다. 결국 미디어법 저지의 칼을 쥔 것은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을 대변하는 민주당이었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살신'의 덕으로 한 때 지지율이 한나라당을 앞서기도 했지만 이번 날치기 사태는 힘의 관계에서의 민주당의 한계를 잘 보여주었다.

힘의 관계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쉬운 것은 전략이다. 민주당은 지난 연말 1차 입법전쟁에서 오랜만에 투지를 되찾고 탁월한 전략을 구사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공세를 막아낸 바 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무언가 전략적으로 오류를 범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보개혁진영이 의석수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상황에서 미디어법과 같은 MB악법을 저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이 난의 "의원직 총사퇴만이 'MB'악법 막을 수 있다"(2009년 3월 1일자)에서 지적했듯이 진정으로 의원직을 버릴 각오를 하고 의원직 총사퇴를 무기로 배수진을 치고 싸우는 것이었다.

사실 민주당은 이번 투쟁에서 의원직 총사퇴 결의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원총회에서 신중론이 상당히 강하게 제기되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총사퇴도 불사한다"는 어정쩡한 결의에 머물고 말았다. 결국 의원직 총사퇴를 결의한 뒤 모든 의원이 당대표나 원내대표에게 사퇴서를 제출하고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이 같은 사퇴서를 들고 나가 한나라당을 상대로 협상을 벌렸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김형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발표가 났을 때 당대표가 이 같은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해 압박했어야 했다. 지난 연말의 투지도 전략도 다 어디로 간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물은 이미 엎질러진 것이고 문제는 앞으로의 전략이다. 안타깝게도 민주당은 아직도 어정쩡한 전략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가장 좋은 전략은 더 이상 민의의 전당이 아닌 국회의 해산을 유도해 총선거를 다시 실시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 한국의 제도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차선적으로 국회를 희화화, 무력화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민주당의원들이 정세균 대표에게 사퇴서를 제출해 당대표가 쥐고 있는 어정쩡한 전략을 취해서는 안 된다. 대신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진보개혁정당들의 국회의원들이 실제로 국회의장에게 사퇴서를 제출하고 총사퇴를 해 국회를 한나라당의 독무대 내지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친박연대와 같은 냉전적 보수세력의 독무대로 만들어 희화화시키고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민주당의원들이 전원 총사퇴하고 10월 재보선을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고 컴백해야 한다는 천정배의원의 주장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시절, 야당지도자였던 DJ와 YS가 우리에게 보여준 바 있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이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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