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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만도 못했던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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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만도 못했던 박근혜

[박동천 칼럼] 날치기 덕분에 확실해진 것들

대한민국 국회에서 또 한번 날치기가 벌어졌다. 이번에는 일사부재의 원칙도 무시하고 대리투표까지 불사한 모양이다. 일단 해치우고 본다는 무지막지한 발상이 한국 정치에서는 여전히 결정적인 순간일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회사 자금 또는 공적 자금을 법을 악용해서 착복해 먹어도 국민이 세금으로 막아주는 것과, 정치인이라는 자들이 이런 짓을 저질러도 결국 수습의 책임은 국민에게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 닮았다. 어안이 벙벙하고 수치스럽고 구역질까지 나지만, 그렇다고 규탄만 하면 다 잘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명박은 이치의 목소리를 들을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귀를 막고 살아야 자기 위신이 높아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잘못 뽑았으니 이럴 때일수록 수습은 인민의 몫이다. 수습의 수순을 찾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따져보니, 종전보다 확실해진 것이 몇 가지 있다.

▲ 박근혜 전 대표. ⓒ뉴시스
1. 박근혜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가망 없는 얘기로 보인다. 적어도 정상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결기를 보여주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박근혜 의원이 보여준 언행은 1969년에 김종필만도 못 했다. 박근혜가 "반대표" 운운한 것은 순전히 안상수가 자기 이름을 들먹였다고 심통을 부린 것일 뿐이고, 막상 이명박의 의도가 실리자 꼼짝도 못하고 얼어붙었다. 김종필도 단지 오치성에게 심통을 부리다가 박정희가 눈총을 주자 얼어붙었던 것인데, 그래도 김종필은 그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았다. 단지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반면에 박근혜에게는 미디어법의 내용과 공방이 미래에 대해서 가지는 종합적인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애당초 없다. 그걸 모르니 별 생각 없이 "반대표" 운운한 것이고, 아무 거리낌도 없이 "국민이 공감할 것"이라는 소리를 뱉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번 일로 말미암아 차기를 향한 경쟁은 지금부터 두고 봐야 하는 게임이 되었다. 여기서 "두고 봐야 하는"이라는 문구에는 2012년에 대통령 선거가 제대로 시행될지 여부, 또는 그 전에라도 대통령 선거가 필요하게 될지 여부 등에 관해 100% 확실하다고 장담은 못하겠다는 뜻이 포함된다.

2. 김형오 국회의장이 "분권형 체제"를 위한 개헌이라고 떠들었던 소리는 겉만 번지레할 뿐 속셈은 따로 있는 허언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현행 헌법 안에서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똘마니 수준의 돌격대 노릇을 방치하는 국회의원들이 그대로 있는 한, 헌법을 어떻게 고쳐도 "법치"의 이름을 빙자한 권력의 횡포는 방지되지 않는다.

2.1. 이윤성 국회부의장의 말버릇 역시 자기가 할 일은 안 하면서 남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무책임 어법의 전형이다. 미디어 법은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가 거센 만큼 시간을 들여서 공론의 여과를 거쳤어야 대의정치, 책임정치의 이념이 구현될 수 있었다. 백보를 양보해서 그 법이 설사 필요했다손 치더라도, 장차 몇 년 동안 토론을 계속한다고 해서 큰 탈이 날 리는 전혀 없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거들먹거릴 줄만 알았지, 철부지 아동처럼 무모한 짓으로 민족공동체 전체의 품위에 먹칠을 해놓고서 "정치문화개선특별위원회" 따위 말장난을 입에 담는 정치인만 퇴출되면 정치문화는 금방 개선된다.

2.2.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미디어 법을 날치기로 처리하려다가 부결된 상태에서 투표를 종결했다. 이 사람이 국회의 사회를 맡아 보여준 추태는 사사오입개헌 때의 최순주 부의장보다 더 심하다. 이런 수준의 추태는 자발적인 신념에 의한 행동이기가 어렵고 지령을 받아 꼭두각시 노릇을 할 때 전형적으로 벌어진다. 즉, 이명박 정권이 장기집권을 위해서 미디어 법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2.3.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고 해서 개인 책임이 다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윤성은 국회 의사진행의 절차도 잘 모르는 채, 의사국장이 불러주는 대로 앵무새 사회를 보겠다고 만용을 부렸다. 국회로 상징되는 인민의 의사를 의사국장이라고 하는 일개 관료가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판을 짜준 셈이다. 이것만으로도 이윤성 씨는 선거구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과도한 직책을 맡아 누를 끼쳤음을 전국의 유권자들에게 자인하기 바란다. 아울러 인천 남동구(갑)의 유권자들에게 재투표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용기를 발휘한다면 과오를 씻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퇴 성명서도 원고를 누가 써줘야 할 것 같아서 덧붙인다. "지난번 인천 남동구 갑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질이 말도 안 되게 모자란 후보가 당선된 관계로 표결이 불성립하였으므로 다시 투표해주시기 바랍니다" - 이렇게 말하고 물러나면 편안해 할 사람은 굉장히 많을 것이고 즐거워할 사람은 다음으로 많을 것이며, 칭찬할 사람도 꽤나 많겠지만 섭섭해 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3.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에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뭔지를 아예 모른다. 권력으로 반대의견을 짓밟을 줄 밖에 모르는 정부는 민주주의도 대의정치도 법치주의도 아니고 그 정반대인 전제정이자 폭정이다. 정치권력을 잡은 김에 횡포를 일삼는 자들은 인민이 일어나 주권을 발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다가 결국 인민에게 혼쭐이 나고 만다. 인민은 인제 이명박에게 위임했던 권력을 회수하기 위해 주권을 직접 발동할 필요에 관해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해야 한다.

3.1. 이번 일은 지난 18개월 동안 자행된 폭정이 인민의 힘에 의해서 응징 당하는 국면으로 넘어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촛불시위에 대한 저주와 모욕, 용산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만행, 그밖에 이루 열거할 필요도 없이 무수한 폭거들에 관한 의혹과 개탄과 분개들이 구체적인 힘으로 조직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이명박 씨는 면접만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날이 곧 온다는 따위 헛소리로 상황을 호도할 수 있다고 본다. 면접만으로 뽑는다면 고등학교 안에서 치르는 시험이 중시된다는 말이다. 앞뒤가 안 맞는 소리로 성인들을 기만하다 못해 이제는 청소년들에게까지 마수를 뻗치려는 모양이지만, 저런 소리에 넘어갈 사람은 별로 없다.

3.2. 정부의 위임받은 권력을 인민이 주권을 발동해서 회수하는 사태는 자칫 무력충돌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정부에게 질서유지기능을 맡겨서 살아가는 문명의 상태로부터 자연상태로 돌아가서, 인민이 어떤 종류의 정부를 원하는지에서부터 새삼스럽게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 이명박이 사회평화를 파괴하는 주범인지 아니면 그에게 항의하는 사람들이 그런지를 판정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상태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이윤성의 엉터리 사회를 올바르게 바로잡는다면 직접 행동의 여지는 크게 줄 것이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그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다면 인민과 정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태를 방치하는 셈이다.

3.3.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무엇보다도 이명박의 책임이 가장 크다. 반대와 항의의 권리를 인정하고, 반대의견에 들어 있는 일리를 경청해서 정책에 반영하기는커녕, 이견을 표출하는 상대를 표적으로 삼아 짓밟는 행태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공권력에도 마땅히 범위, 영역, 방식 등에서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찍어 누르기만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정부라는 이름을 달고 이런 짓을 벌이게 되면 인민의 저항은 불가피하다. 이런 경우 사회혼란은 정부가 도발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4. 정세균 민주당대표는 생전 처음으로 지도력이라는 것을 발휘할 만한 기회를 만났다. 단식이라는 수법 자체는 다소 구닥다리였지만, 장외투쟁을 위해 신속하게 접어버린 결단력은 돋보인다. 단, 지금부터가 정말로 문제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성토하고 규탄하는 데서 시작은 해야겠지만, 성토와 규탄만으로는 부족하다. 인민의 의견을 이치에 맞는 방향으로 정리하고 조직해야 하나의 선명한 대안적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희망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정부와 인민이 서로 유리되어 대결해야 하는 상황이 오히려 건설적인 창조로 이어지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으려면 오로지 선량한 희망이 밑바탕에서 흘러넘쳐야 한다. 정세균과 민주당, 그리고 정치계와 시민사회의 여타 모든 지도자들은 지금부터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한다. 긴 장정에 인내가 필요한 만큼 복수심이나 개인적인 야욕이 스며들지 못하도록, 오직 공동체의 평화와 발전을 향한 소망만이 모여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한다. 상대가 잘못하는 만큼 응징할지언정 잘못을 철회하는 순간 언제든지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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