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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 패자전몰' 다수제 민주주의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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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 패자전몰' 다수제 민주주의의 함정

[정치개혁 강좌]<1>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는 요원한가

<희망정치연구회>가 진행 중인 정치개혁 특강을 연재합니다. <희망정치연구회>는 정치제도개혁에 관한 정치, 사회, 법률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설립된 민간단체입니다. <프레시안>은 정치개혁, 제도개혁을 연구해 온 학자들의 전문적인 강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구성해 게재합니다. 글과 함께 하단에 있는 '강의 듣기' 서비스를 통해 생생한 육성 청취도 가능합니다. 첫번째 정치개혁 특강을 맡은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강의는 8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사실 민주주의의 구현은 불가능하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주의란 국가가 그 '주인'인 시민의 뜻과 선호에 따라 운영돼가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불가능 정리'(Impossibility Theorem)가 밝히고 있듯, 시민사회의 뜻과 선호를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Kenneth Arrow. Social Choice and Individual Values, 2nd ed.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63) 주인들 간의 선호는 서로 다르기 마련이고 그 선호의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데 어떻게 국가를 (파악 자체가 불가능한) 주인의 뜻에 따라 운영해갈 수 있겠는가.

이 불가능 상황을 극복하고 그나마 민주주의에 가까운 정치체제를 작동키 위하여 디자인한 것이 정당을 매개로 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이다. 다종다양한 시민사회의 선호와 이익을 복수의 정당들로 하여금 분담하여 대변케 하고 정당 정치인들이 선거 경쟁을 거쳐 (시민의 '대리인'인) 정부를 구성할 때 그 정부의 결정을 일반 시민의 뜻으로 인정하자는 일종의 사회계약을 제도화한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이러한 '제도 디자인'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1.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 제도 디자인의 내용에 따라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뉘어 발전해왔다. 하나는 흔히 영국식이라고 불리는 '다수제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이고, 다른 하나는 (대륙)유럽식이라고 하는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이다. Arend Lijphart, Patterns of Democracy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9) 제도 디자이너들의 의도에 따라 양 민주주의의 성격과 결과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그렇듯 민주주의에도 다양성이 존재하며, 따라서 어떠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켜갈 것인지는 운명이 아닌 선택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의 전형 혹은 이념형은 다음과 같은 5대 특성을 통해 명확히 식별할 수 있다. 첫째는 선거제도에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대표제 혹은 다수결형 선거제도를 통해 의회를 구성한다. 예컨대, 그 전형인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의 경우 지역구 득표율 1위에 오른 후보만이 그 지역의 다수를 대표하여 의회에 진출한다. 2위 이하의 후보들은 자신들의 득표율이 아무리 1위의 그것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할지라도 누구도 의회의 대표자격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2위 이하의 후보들에게 던져진 표는 모두 사표(死票)로 처리될 뿐이다. 여기서는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에 '비례성'(proportionality)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가령 A, B, C, D 네 정당이 선거 경쟁을 하고 각 정당의 전국 득표율은 각각 33%, 32%, 20%, 15%인 경우를 상정해보자. 여기서 A당과 B당의 전국 득표율은 30%대로 서로 비슷하지만 만약 과반의 지역구에서 A당 후보들이 (예컨대 33%를 간신히 상회할 정도의 지역 득표율로) 1위에 오를 경우 그 당의 전체 의석 점유율은 50%가 넘어 의회 내 단독 다수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B당은 A당과 비슷한 전국 득표율을 갖고도 대부분의 자당 후보들이 각 지역구에서 근소한 차이로 2위나 3위 등에 머물 경우 C당이나 D당과 함께 의석 점유율 10%대의 소정당이 될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채택한다. 유권자들은 기본적으로 개별 후보가 아닌 정당에 대하여 투표한다. 각 정당의 득표율이 산출되면 그것에 비례하여 의석을 나눈다. 만약 위 사례의 선거 경쟁이 비례대표제를 통해 이루어질 경우 A, B, C, D 네 정당의 의석 점유율은 그들 정당의 전국 득표율 그대로 각각 33%, 32%, 20%, 15%가 된다. 여기서는 다수대표에게 던진 표만이 의미가 있고 그 외의 모든 소수 대표들에게 던진 표는 사표가 되는 '소수 무시'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어느 정당이나 지지 받은 만큼의 대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특성은 정당체계에서 나타나는 바, 이것은 선거제도와 깊게 연계돼있다. 소위 뒤베르제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져 있듯,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양당제를, 그리고 비례대표제는 다당제의 발전을 유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소선거구 일위대표제에서는 선거경쟁이 거듭될수록 결국 지역구 1등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거대 정당 둘만이 각각 좌-우 혹은 진보-보수 진영 등의 대표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반면, 비례대표제에서는 등수 혹은 승패에 관계없이 자신들이 획득한 지지율만큼의 의석을 배정받으므로 여러 정당들이 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의 전형적인 정당체계가 각각 양당제와 다당제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특성이다.

세 번째 특성인 행정부의 구성 차이도 선거제도 및 정당체계와 연관돼있다.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로 양당제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과 같은 다수제 민주주의 국가의 전형적인 행정부 형태는 단일정당정부이다. 선거경쟁이 주로 거대 정당 둘 사이에서 벌어질 경우 어느 한 당이 의회의 다수당이 되는 것은 통상적인 일이다. 따라서 의원내각제라면 의례히 그 다수당이 단독으로 행정부를 구성한다. 대통령제가 반드시 다수제 민주주의의 권력구조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행정부 구성 측면에서 그것은 다수제적 성격을 띤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항상 단독으로 행정부를 꾸미기 때문이다. 한편, 대륙 유럽 국가들의 의원내각제에서 보듯, 합의제 민주주의의 행정부는 전형적으로 연립정부이다. 셋 이상의 유력 정당들이 비례대표제로 의석을 나누는 환경에서 어느 한 정당이 총의석의 과반을 차지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따라서 단일 정당에 의한 행정부 구성은 드문 경우이고 복수 정당들 간의 연립정부 형성이 통상적이 되는 것이다.

네 번째 특성은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힘의 분배 양상이다. 이것 역시 선거제도 및 정당체계 그리고 행정부 구성 방식과 밀접히 관련돼있다. 다수제 민주주의의 행정부는 권력 혹은 영향력 행사 측면에서 입법부에 대하여 압도적 우위에 있다. 영국의 예를 보자.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로 공고화된 양당제 하에서 의회는 통상 단일 다수당이 장악하기 마련이며 행정부는 그 다수당이 홀로 구성한다. 여기서 그 행정부의 수반인 수상 혹은 총리는 바로 의회 다수당의 최고 지도자이므로 사실상 그는 입법부까지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둘 수 있다. 명백한 행정부 우위제인 것이다.

그러나 비례대표제와 다당제 그리고 연립내각을 특성으로 하는 유럽식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어느 한 정당도 독립적으로 안정적인 행정부를 형성하기 어려운 제도 조건 하에서 오직 연립형태로 스스로를 지탱해야하는 행정부는 항시적으로 의회 구성원인 각 정당들의 선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합의제 민주주의의 행정부가 입법부에 대하여 힘의 우위를 주장할 수 없고 항상 힘의 균형을 도모해야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인 다섯 번째 특성은 사회경제적 이익집단들 간의 경쟁 구도에서 드러난다. 다수제 민주주의에서는 이익집단들이 각기 다원주의적으로 활동한다. 서로가 독립하여 분산돼있으므로 이들은 분쟁적이거나 심지어는 적대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 한편,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주요 이익집단들이 소위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corporatism) 체계를 구성하여 상호 협력적으로 경쟁한다. 예컨대, 전국의 노동자들과 사용자들이 각각 자신들만의 중앙집중적이며 독점적인 대표 체계를 갖추어 정부의 중재 하에 서로 정기적으로 만나 사회협약을 새로 맺거나 개정해가는 방식이다. 흔히 말하는 '노사정 3자 협약'의 정치경제를 의미한다.

이 다섯 번째 특성은 앞서 말한 네 가지의 정치 제도적 특성들, 즉 선거제도, 정당체계, 행정부 구성, 그리고 행정부와 입법부 간의 권력관계 등과 직접적인 제도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친화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후술하겠지만, 예컨대, 사회적 조합주의라는 사회경제 제도는 (다수제 민주주의보다는) 합의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치 제도들과 친화성을 갖는다.

▲ ⓒ뉴시스

2. 다수제 민주주의의 약점

이상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의 5대 특성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물론 이 특성을 이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민주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민주국가들은 다수제와 합의제의 원형을 양 극단으로 하는 연속선상의 어느 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중간 지점으로부터 전형적인 다수제나 전형적인 합의제의 어느 한 쪽에 가까이 갈수록 해당 국가의 민주주의는 다수제적 혹은 합의제적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한 기준으로 볼 때 현재 지구상에는 합의제적 민주주의 국가가 훨씬 많다. 특히 선진국들의 경우 합의제 민주주의는 확실한 대세를 이루고 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 선진국들은 모두 합의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된다.

한편, 위에서 본대로 민주주의의 유형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정치제도는 선거제도인데, 경제선진국들의 모임인 OECD 30개 회원국 중 다수제 민주주의의 전형적 선거제도인 다수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대여섯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합의제 민주주의의 전형인 비례대표제 혹은 비례성이 상당히 보장되는 혼합형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이 사실은 선진국 민주주의의 표준이 합의제 민주주의임을 확인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수제 민주주의는 영국 의회가 열리는 궁전의 이름을 따서 '웨스트민스터 모델'(Westminster model)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다수제 민주주의를 애초 영국인들이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이 모델은 그 후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영연방 국가들은 물론 그 외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로 수출되었다. 미국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역시 이 모델을 수입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상당수의 대륙유럽 국가들 역시 다수대표제 등 영국제 성격이 강한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 둘씩 모두 합의제 민주주의로 전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도 이 같은 전환이 목격되었다. 그 당사국은 놀랍게도 영국의 원형보다도 다수제적 성격이 더 강한 민주주의를 운영한다고 평가받아오던 뉴질랜드였다. 1993년의 선거제도 개혁으로 뉴질랜드는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를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대체하였다. 당연히 다당제의 발전, 연립정부 형태의 부상, 의회의 위상 강화 등의 변화가 이어졌다.

사실은 영국에서조차도 1970년대 초반 이후 비례대표제의 도입 요구가 날로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1970년대 중반 북아일랜드에서는 모든 지방선거를 비례대표제로 치르기로 결정하였다. 또한 1999년부터는 유럽의회의 영국의원 선출이 비례대표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같이 다수제 민주주의가 쇠락하고 합의제 민주주의가 대세를 이루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다수제 민주주의에 심각한 약점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다수제 민주주의의 특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승자독식(winner-takes-all) 또는 패자전몰(loser-loses-all) 제도라는 것인데, 다수제 민주주의의 근본 문제는 바로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영국인들은 의회의 다수당 지위를 차지한 특정 정당에게 정치권력을 몰아주는 제도로서 다수제 민주주의를 디자인했다. 단일 정당이 입법부와 행정부를 모두 장악하게 함으로써 정부가 임기동안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지속해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말하자면 민주국가의 주인인 시민의 뜻을 해석하고 구현해가는 권력을 다수당이 독점적으로 행사하도록 한 것이다. 당연히 패배한 정당과 그 정당이 대변하는 사회세력들은 이 권력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어쩌면 디자이너들의 의도대로 이 다수제 민주주의는 정부의 효율성 유지 혹은 제고에 유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효율성이란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될 수 있다. 오직 임기동안의 다수파를 위한 효율성이라면 (역시 민주국가의 주인임에 분명한) 소수파 국민의 이익은 배제되고 무시돼도 괜찮다는 의미인가. 더구나 많은 경우 다수제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의 다수파는 사실상 '제조된 다수'(manufactured majority)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어느 소선거구에서 A, B, C 세 당의 후보들이 각축을 벌인 결과 각각 33%, 32%, 31%의 지역구 득표율을 획득했다고 하자. 일위대표제이므로 오직 A당 후보만이 소위 다수대표로서 의회에 진출하게 된다. 그러나 실상 그는 겨우 33%의 지역구민을 대표하는 '소수대표'(minority representation)일 뿐이다. B당 후보를 지지했던 32%의 소수파와 C당 후보를 지지했던 31%의 소수파를 포함하여 지역구민의 절대 다수인 67%가 반대하는 후보가 그들의 명목상의 대표가 되어 의석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지역 사회에서는 실질적 다수가 모두 패자 그룹으로 분류되어 정책의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지역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상기한 A당이 위 지역구에서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소수대표 의원을 전국의 과반 지역구에서 배출했다고 하자. 이 경우 A당은 의회의 단독 다수당이 되겠지만 그것은 소수대표들로 구성된 '제조된' 다수당일 뿐이다. 이 정당의 전국 득표율은 30%에서 40% 정도에 불과하지만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라는 비비례적 선거제도로 인해 다수당으로 만들어져 의회를 장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원내각제라면 이 소수대표 정당이 행정부도 장악한다. 결국 이 민주국가는 60%에서 70% 정도의 다수 시민이 반대한 소수대표 정당에 의해 운영된다. 여기서도 패자 배제 혹은 소외의 정치가 주를 이룬다면 오히려 다수에 속하는 시민들이 상당한 고통 혹은 불이익을 (적어도 해당 정부의 임기동안) 받게 된다. 대통령제의 경우도 한국에서와 같이 대선이 상대다수제에 의해 치러질 경우 마찬가지의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30%에서 40%의 득표율로도 1등만 하면 대통령이 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의회 및 행정부 구성에서 일어나는 이 같은 소수대표 혹은 비비례성의 문제는 자칫 사회통합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비록 소수대표일지라도 일단 합법적으로 정부를 장악한 정치세력은 승자독식 제도의 특성을 활용하여 독선, 독주, 심지어는 독재에 가까운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해갈 수 있다. 이 경우 다 합치면 다수가 될 수도 있는 여러 소수파 그룹들이 정치 과정과 그 과실 분배 과정에서 소외됨으로써 사회 혼란과 정치 불안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사실상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3. 한국형 다수제 민주주의의 문제점

우리나라는 이 문제 많은 영국식 다수제 민주주의를 미국을 통해 수입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수정을 가한 부분, 즉 행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꾼 방식은 그대로 들여왔으나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삼권분립, 상하 양원, 연방 제도 등은 제대로 수용하질 못했다. 결과는 다수제 민주주의의 특징인 승자독식-패자전몰 현상이 정당만이 아니라 지도자 개인 차원에서도 지나칠 정도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위임 대통령제'의 고착이었다. (극단적 사례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 패자전몰 민주주의의 비극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은 마치 국민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것처럼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무시할 정도의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다종다양한 시민사회의 선호와 이익을 정치 과정에서 복수의 정당들이 분담하여 대변한다는 정당 및 의회 중심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본질에서도 크게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임 대통령제의 문제는 정당정치의 후진성과도 연결돼있다. 정당정치가 자리 잡지 못한 탓에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소속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기조에 의해서도 구속되지 않는 것이다. 무릇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조건은 정당정치의 활성화이다. 이는 정당체계가 상당한 정체성과 영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념이나 정책 중심 정당들로 형성돼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다종다양한 구성원들의 선호와 이익이 이들 정당들을 통해 제대로 표출되고 집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지역이나 인물 중심 정당들에 의해 전근대적으로 불안정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로 인해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 자영업자, 중소기업, 도시 빈민 등의 대규모 사회경제 집단들이 안정적인 정당 대리인 없이 정치적으로 방치돼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반면, 대기업과 부유층 등의 소수 집단들은 과도 대표되고 있다.

한국식 대의제의 이 지나친 불균형성은 다수제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인 (승자독식에 따른) 사회 혼란과 정치 불안에 대한 취약성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정치적 대리인을 확보하지 못한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이 모종의 위기에 봉착할 때 정당 등을 통하는 소위 '합헌적 채널'보다는 길거리에서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몸으로 호소하는 소위 '강압적 채널'을 통해 스스로의 이익을 표출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합헌적인 방법보다 강압적인 방법을 선호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들에겐 합헌적 채널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을 위한 유력한 정치적 대리인이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민주화 혹은 실질적 민주주의는 전혀 유의미한 발전을 못하고 있다. 양극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비정규직은 급증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회경제적 열등 시민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실질적 민주주의는 지금 퇴보 중인지도 모른다.

이 상황을 틈타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화는 날이 갈수록 확대 심화되고 있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퇴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대안 마련을 부르짖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음에 그나마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것일지라도 사회경제적 대안 작성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사실 신자유주의화는 정치적 기획의 산물이지 자연스러운 사회경제적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시민사회는 정치적 대안 마련에 오히려 더 많은 힘을 쏟아야한다. 후술하겠지만, 작금의 한국식 다수제 민주주의 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하거나 신자유주의의 사회경제적 대안 체제 형성을 꾀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의 건설을 제창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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