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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두 가지 거짓말"…해고 비정규직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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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BS의 두 가지 거짓말"…해고 비정규직 "두렵다"

18명 계약 해지 코앞…남은 400여 명도 자회사 이관·해고 가능성

국회의 비정규직법 관련 논의가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6월 30일로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일하던 18명의 비정규직 계약이 해지된다. KBS는 420명의 비정규직을 일부 자회사로 이관하고 일부 계약 해지하는 방안을 놓고 "국회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지만, 7월로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18명 운명의 갈림길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힘을 보태고자 노동·사회단체와 진보정당이 나섰다. 가칭 'KBS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사회시민단체 지원대책위'는 2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는 사회 갈등의 진원지가 아닌 갈등과 문제를 풀어내는 진정한 국민의 방송이 되기 위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모범이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 코드 맞춰주고자 자사 비정규직 문제 악용하는 KBS"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혜진 전국불안전노동철폐연대 대표는 "KBS는 지금 두 가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얘기한 첫 번째 거짓말은 "비정규직법 때문에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292명의 자회사 이관 및 89명의 계약해지 방침을 세운 KBS의 주장은 이렇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2년 이상 고용한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 전환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데, 지금 KBS는 최근 2년간 적자가 1000억 원을 넘어서는 등 경영 합리화가 불가피해 정규직 전환 여력이 없다.'

KBS의 "적자 운운"은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KBS가 덧붙인 다음의 설명을 염두에 두면 결과적으로 이 말은 거짓말이다. KBS는 지난 25일 "국회의 비정규직 관련 법 개정 추이를 보며 유연성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즉, 국회에서 현행 2년의 사용 기간이 4년으로 연장되거나, 법 시행이 유예되면 재계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사회에 보고한 운영 방안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는 KBS 관계자의 주장도 이런 맥락에 있다.

KBS뿐 아니라 최근 농협중앙회와 보훈병원 등 주로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해고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통해 '해고 대란' 주장을 현실로 증명해보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런 행태를 놓고 "정부의 정책에 코드를 맞춰주기 위해 자사 비정규직을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결국 경영 악화 등의 얘기도 "속이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 최근 농협중앙회와 보훈병원 등 주로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비정규직의 해고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정부가 공공기관을 통해 '해고 대란' 주장을 현실로 증명해보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프레시안

KBS계열사도 "폭탄 돌리기, 또 다른 비정규직 만들 것"

이들이 주장한 KBS의 '두 번째 거짓말'은 "자회사 정규직이 되면 고용이 보장된"는 말. KBS는 "자회사 정규직이 되면 인사에서 승진이 가능하고 현행 연봉이 보장되며 복리후생비와 성과급 혜택 등 처우가 지금보다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노동계나 시민단체의 주장은 다르다. 물론 KBS의 주장대로 표면적인 신분은 '(KBS의) 비정규직'에서 '(KBS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바뀐다. 그러나 노동계는 "자회사는 도급 계약에 따라 처우도 수시 변동이 가능하며 도급 계약이 해지되면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해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런 KBS의 행태는 "대량 해고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고 자회사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술책"이라며 "이는 자회사 경영을 더욱 어렵게 해 자회사의 구조 조정 악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KBS계열사 노동조합협의회도 "자회사 이관이라는 '폭탄 돌리기'식 땜질 처방은 조만간 또 다른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만들어 낼 것"이라며 강한 불만과 함께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다.

특히 자회사로 이관시키는 과정의 법률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최근 성명을 통해 "이른바 '전적'은 원칙적으로 해당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야만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며 "해고를 협박 수단으로 삼아 얻어낸 동의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당사자들 "그래도 전체 비정규직의 희망 되고 싶다"

▲ 법대로 정규직이 될 것인가, 법을 피해 외주화되거나 계약이 해지될 것인가, 아니면 정부와 국회가 나서 법 자체를 바꿔 버릴 것인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속 정국에서 "전체 비정규직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KBS 비정규직의 소망은 메아리가 없다. ⓒ프레시안
이런 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오는 30일까지 법 시행을 유예하거나 개정하지 않는 한, 기존의 계획이 현실로 옮겨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누구보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당사자들이다.

기간제사원협의회를 통해 목소리를 내 왔던 당사자들은 지난 24일 언론노조에 직접 가입해 KBS계약직분회를 만들었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3년까지 일했다는 이들이 새삼스럽게 노동조합이라는 울타리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최근 몇 주 동안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 탓이 컸다.

특히 이날 KBS 본관 앞에서 만난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KBS가 당사자들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정식으로 통보도 안 해주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2007년 말부터 시청자서비스팀에서 시설관리 일을 해 온 김영수(가명) 씨도 마찬가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김 씨는 계약 해지가 아니라 자회사 이관자에 포함됐지만 "너무 마음이 상했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회사를 통해 들은 것도 아니고 노조가 낸 성명서를 보고 우리가 잘린다는 사실을 들었다. 물론 처음부터 계약직으로 들어왔으니 해고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너무 일방적인 발표였다."

드라마제작국에서 일한다는 오지수(가명) 씨도 "정식으로 해고 통보를 받지 못했고 지난주에 구두로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함께 일했던 직원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조차 없다"고 하소연했다.

계약 해지 대신 자회사로 옮겨지는 290여 명의 경우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김 씨는 "한나라당이 비정규직법을 유예하건 말건 끝까지 정규직 전환 요구를 접지 않겠다"고 말했다.

"두렵고 또 두렵다"던 김효숙 씨도 마찬가지였다. 김 씨가 "두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일 큰 것은 자회사 이관 동의서에 내가 서명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수익 창출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KBS에서조차 우리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회사 뜻대로 자회사로 간다면 우리보다 더 열악한 곳에서 열심히 일했던 비정규직은 아무 희망도 없을 것이다. 혹여 어느 한 사업장에서라도 'KBS도 다 자회사로 갔는데 너희가 어떻게 정규직화를 요구하냐'는 말이 나올까봐 너무 두렵다."

법대로 정규직이 될 것인가, 법을 피해 외주화되거나 계약이 해지될 것인가, 아니면 정부와 국회가 나서 법 자체를 바꿔 버릴 것인가.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안개 속 정국에서 "전체 비정규직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KBS 비정규직의 소망은 메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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