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이 노무현의 죽음에 결코 사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명박의 사과'는 곧 '검찰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이미 검찰, 경찰을 사냥개 부리듯이 하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더해 준 것이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이다. 천성관은 ①공안 검사 출신이며 ②사시 22회 출신이며 ③노무현 구속을 주장했던 자이다. 이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천성관은 공안 검사 출신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공안 검사는 위상이 추락했지만, 검찰 내에서 특별한 존재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안 검사가 바로 검찰의 '하나회'였다. 공안 검사 출신 천성관의 내정을 보면서 공안 검사 전성 시대와 공안 통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올해 초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특수부 검사들이 약진했던 것에 비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2009년 1월 검사 인사에서 공안 검사 출신들이 전진 배치되었다. <조선일보>는 아래와 같은 해설 기사를 첨부했다.
13일 단행된 검찰 검사장급 이상 고위급 인사에서 대검의 주요 간부 대부분이 지방으로 자리를 옮긴 것에 대해, 임채진 검찰총장에 대한 정권 핵심부의 평가가 부정적인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존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신 그 참모들을 후진(後進) 배치하고 현 정권이 미는 인사들을 전진 배치함으로써 '이명박 검찰 진용'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권재진 대검차장이 일선 수사에서 한 발짝 떨어진 서울고검장으로 이동하고, 박용석 중수부장과 박한철 공안부장은 각각 부산과 대구지방검사장으로 발령 났다. 대신 그 자리에는 문성우 차관과 이인규 대검 기획조정부장, 노환균 울산지검장이 기용됐다. 이에 대해 검찰 안팎에선 새 정부 출범 이후 불법 촛불 시위와 사정 수사에 대한 권력 핵심부의 불만이 이번 인사에 집약적으로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검 간부 인사는 임채진 총장의 지난 1년간 성적표"라면서 "이번 인사를 통해 드디어 '이명박 검찰' 진용이 꾸려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대검의 일부 검사장들은 유임을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검찰 인사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향후 국정 운영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 군데군데 엿보인다. 대표적으로 '공안 외길'을 걸어온 천성관 수원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노환균 울산지검장이 대검 공안부장으로 발탁된 것은 앞으로 검찰 운영 방침을 헌법 질서 수호, 친북 세력 척결, 노사 안정 등에 중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천 검사장은 대검 공안과장과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등 검사 시절 대부분을 '공안' 파트에 주로 몸 담았다. 천 검사장은 또 작년에 남파 간첩 원정화 사건을 지휘해 주목을 받았었다. (<조선일보>, 2009년 1월 14일)
<월간중앙> 2009년 3월호는 당시 검사 인사를 <조선일보>와 유사하게 해석하면서 천성관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지난 1월13일 검사장급 이상 고위간부 인사가 단행되자 검찰 내부는 물론 언론은 일제히 "'공안통'들의 전진 배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와 법무부의 의중이 읽힌다"며 "검찰의 공안 수사 역량 강화를 강조해온 결과"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는 상대적으로 '특수통'이 약진했던 지난 정권의 인사와 비교해 확연히 구분되는 배치다.
대표적 예가 공안통으로 알려진 천성관(52·사시 22회) 전 수원지검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 발탁한 것. 뿐만 아니라 김수민(56·사시 22회) 인천지검장, 신종대(49·사시 23회) 춘천지검장, 안창호(52·사시 23회) 대전지검장, 박한철(56·사시 23회) 대구지검장, 황교안(52·사시 23회) 창원지검장, 김학의(53·사시 24회) 울산지검장 등이 모두 공안 '베테랑'으로 명성이 자자한 검사장들이다.
이는 지난해 '촛불 사태' 등을 염두에 두고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엘리트'를 곳곳에 전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지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상대적으로 활동 폭이 좁았던 공안 파트를 확대하겠다는 의도 섞인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1998년 공안4과에 이어 2005년 폐지됐던 대검 공안3과가 부활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 같은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 : 공안 수사 능력 탁월한 '정의파'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흔들거나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세력에 엄정히 대처하고 불법 노사분규나 폭력적 집단행동에도 적극 대응하며 '사후필벌'하겠다." 사시 22회, 연수원 12기인 천성관(52) 서울중앙지검장의 취임일성이다.
충남 논산 출신인 천 검사장은 수원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1과장, 대검 공안기획관 등을 연달아 맡았던 소문난 '공안 박사'다. 지역색이 엷고 각종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과 위기 돌파 능력이 뛰어나 검찰 '빅4'로 불리는 요직에 발탁됐다는 후문이다. 천 검사장은 평소 온화하면서 특유의 친화력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임무를 수행할 때는 '칼날'로 돌변한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 치밀한 업무 스타일을 보인다.
수원지검장 재임 시절 안양 초등생 살해 사건, 위장 탈북자 원정화 사건, 조달청 차장 등 고위 공직자 비리 사건 등을 일사천리로 처리해 2008년도 상반기 검찰 기관 평가 1위라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천 검사장은 어느 자리에서든 "일 잘하는 검찰, 검찰다운 검찰"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내세우는 '정의파'로 통한다. (<월간중앙> 2009년 3월호)
간단히 정리하자면 올 초의 검찰 인사부터 공안검사들이 전진 배치되기 시작했다. 천성관은 그 공안 검사의 진출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천성관의 검찰총장 내정으로 그러한 추세가 본격화되게 될 것이다.
천성관은 사시 22회
언론과 검찰내부에서는 임채진이 사시 19회이므로 차기 검찰총장은 20기나 21기에서 배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검찰은 군대만큼이나 서열이 엄격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외로 22기 출신인 천성관이 내정되었다. 게다가 그는 일찍 학교에 들어가고 일찍 사시에 합격했기 때문에, 기수로는 임채진(사시 19회·1952년생)보다 3기 아래지만 나이로는 6살이나 아래다(대다수 언론은 그의 생년을 1958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만 중앙일보는 1957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결국 천성관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되면 그보다 선배 기수는 물론 동기, 그보다 나이가 많은 검찰 간부들이 대거 옷을 벗게 될 것이다. 천성관의 임명은 검찰 핵심부의 대거 물갈이와 자리이동을 수반할 것이다.
결국 기수나 나이가 적은 천성관을 검찰총장에 내정한 것에서,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자기 사람들로 검찰 핵심부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천성관은 노무현 구속을 주장한 강경파
<조선일보> 5월 6일자 기사에 의하면, 천성관은 임채진의 불구속 주장에 반발하며 노무현 구속을 주장했다. 아래는 관련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
임 총장의 전화를 받은 검찰 간부들 중 절반 이상은 임 총장의 불구속 기소 의견에 동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과 신상규 광주고검장은 원칙에 따라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불구속 수사를 의중에 둔 검찰총장이 OX로 묻는데 누가 구속영장을 청구하자고 주장하겠느냐"고 했다. (<조선일보>, 2009년 5월 6일자)
이 내용은 <조선일보>에만 실려 있다. 당시 임채진의 불구속 입장을 <조선일보>가 불만스러워 했던 것을 그 지면에서 확연하게 살필 수 있다. <조선일보>는 불구속으로 기울어진 임채진을 압박했다. 또 <조선일보>는 국가정보원에서 검찰에 불구속 압력을 넣은 사실을 위의 기사가 나온 다음 날인 5월 7일 폭로했었다. 국정원이 이 압력설을 부정하자 다음 날 구체적 정황과 일자까지 거론하며 아래와 같이 반격했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부하 직원을 시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불구속 기소 메시지(본지 7일자 A1·A3면)를 전한 대상은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의 국정원 직원은 지난달 21일 이 중수부장을 찾아가 메시지를 전했으며, 이 중수부장은 이 직원에게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2009년 5월 8일)
또 <조선일보>는 이와 동시에 국정원이 박연차 구명 로비와 노건호의 미국 집 구입에도 개입했다고 폭로하며 국정원을 압박했다. 결국 5월 6, 7, 8일에 걸쳐 연이어, <조선일보>는 노무현 불구속 입장에 기울어 있던 임채진과 국정원을 압박했다. 왜 <조선일보>는 권력 내의 불협화음을 누설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를 폭로했을까. 노무현 구속을 간절히 선호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에 이러한 고급 정보를 제공한 '빨대'는 과연 누구였을까. 노무현 구속을 주장하는 천성관과 이인규를 비롯한 검찰 내 강경파일 것이다. 적어도 6일자 기사를 두고 보면, <조선일보> 기자는 천성관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고 그 실명을 거론했을 리 없다. 그것이 보통 사안인가. 검찰 조직이 보통 조직인가. 천성관의 운명이 걸린 사안이 아닌가.
이상의 사실을 두고 보면, 천성관의 내정에는 <조선일보>와 권력 내 (특히 검찰) 강경파의 커넥션이 작용했다고 추리하는 것이 과도한 것일까? 이명박이 천성관을 내정한 것은 <조선일보>와 강경파의 손을 들어 준 꼴이다. <조선일보>가 천성관을 검찰총장으로 옹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천성관을 검찰총장 물망에 그 이름을 올렸다(6월 4일자). 역시 <조선일보>는 대통령도 검찰총장도 만들 수 있는 1등 신문인가 보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이 특종 기사들(5월 6일자) 때문에 천성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좀 시련을 당할 것 같다.
이 기사들은 인사 청문회에서 천성관을 가장 괴롭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천성관은 노무현 구속이 '법조인으로서의 소신'이라고 답할 용기가 과연 있을까? 최근 추세를 보면 천성관이 그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조선일보> 기사는 오보라고 답할 가능성이 더 크다.
쌀 직불금 부정 수령 사건 당시에도 천성관의 이름이 오르내렸다(<국민일보>, 2008년 10월 18일 04면). 하지만 이명박은 인사 청문회와 여론 따위와는 관계없이 그 임명을 강행할 것이다. 이미 누차 그래왔고 천성관의 검찰총장 내정 자체가 그런 결사항전의 자세를 말해주고 있는 것을.
노무현은 죽음으로서 검찰 개혁의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검찰 개혁의 내용과 수준은 산 자의 몫이다. 그런데 검찰은 사생결단의 배수진을 치고 있다. 노무현 죽음에 검찰의 잘못된 관행으로 지목된 것들이 MBC <PD수첩> 사건에서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명박도 사생결단의 배수진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듯이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도 또한 그런 처지에 있다. 청와대-검찰-<조선일보>(<동아일보>)식의 수구동맹(강경파)의 절박함과 강공 드라이브를 천성관의 내정에서 읽는다. 참 우울하다.
한상률과 임채진은 모두 노무현이 임명했다. 임기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다른 자리는 무리수를 동원하며 갈아치웠지만 국세청장과 검찰총장이란 핵심적인 자리는 의외로 상당 기간 교체되지 않았다. 그것이 노무현의 죽음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한상률과 임채진은 구 정권이 임명한 자라는 점에서 치명적 약점이 있었고, 이명박 정권은 이들의 약점을 적극 활용했다. 정말 야비한 수법이다.
노무현 관련 중수부 수사에 차출된 검사들의 면면에서도 이러한 야비한 수법을 살필 수 있다. 차출된 일반 검사가 십수 명이라는데, 언론에 이름이 거명되어 필자가 그 참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검사들은 모두 非서울법대 출신이었다. 서울법대 출신들은 손에 피를 묻힐 정치적 사건에 동원되기를 꺼려했던 소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非서울법대 출신 검사들의 치명적 약점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던 탓일지도 모른다. 참으로 야비하다.
야비한 권력의 폭주를 휴일에 접하고 이런 글이나 써야 하다니 정말 우울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