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은 요지부동인데 소수야당은 "대통령 사과"를 순진하게 기다리느라 탄핵발의의 기회조차 흘려 넘겨버린 것 같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테니스 사건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재량권을 발휘한 정병두 검사는 <피디수첩>에 대한 수사를 포퓰리즘으로 바람몰이하기 위해 대본작가의 사생활을 공표해버리는 야만을 저질렀다. 용산 참사 이후 최소한 사후약방문으로 "제도개선"은 하겠다고 여당에서도 목청을 높이더니,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여기저기서 철거가 강행되는 모양이다. 한예종에서, 국세청에서, 서울광장에서, 연세대에서 내가 보기에는 정상인의 행태라고 볼 수 없는 치사한 작태들이 만발인데, 그래도 나라는 어쨌든 굴러가고 있다. 다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불안한 것이 영낙없이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린 이란 꼴이다.
토건주의 대통령은 여전히 둔감하다. 무념무상한 모습을 과시해서 기독교 장로가 되면 열반에 들기 전에도 해탈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지 모르겠다. "근원적 처방"을 얘기해 놓고서 그게 뭐냐고 물으면, "기회를 봐서 내용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할 수 있다"는 "후문"을 일방소통수단인 <연합뉴스>를 통해 편리하게 흘리는 식이다. 이심전심으로 "귀 있는 자"들만 알아듣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여론을 상대로 선문답 또는 스무고개를 하자는 것인지는 아리송할 뿐인데, 내 귀에는 일단은 순전히 공허한 말장난으로 들린다. 선거 판에 무슨 말은 못하느냐는 심보로 "747"을 말했듯이, 라디오 연설에서 특별히 할 말도 없으니 "대증요법보다는 근원처방"이라는 그럴듯한 문구로 한 번 허세를 부려본 것이다.
저런 허황 어법을 타박만 한다는 것은 재미도 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원처방"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사항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읽고 뭔가를 깨닫는데 도움이 되면 다행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저 사람이 보이는 행보를 관찰하면서, 그 의미를 잴 수 있는 하나의 잣대는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선 대통령이 퇴진한다면 확실히 "근원처방"이라 일컫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칼럼을 통해 반복적으로 밝혔듯이 이 대통령이 임기를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걸음마 단계인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아무리 형편없는 대통령이라도 임기는 채우는 편이 낫다고 본다. 그런데 이 정부는 다짜고짜 공직자든 민간조직이든 "임기"라는 것을 아주 하찮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정연주 KBS 사장부터 시작해서, 전윤철 감사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종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이외에도 여러 명이 임기와 상관없이 퇴진해야 했다. 하다못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있던 진중권 교수마저 계약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해촉을 강행한 학교더러 문광부는 연봉의 절반을 돌려받으라고 압박했단다).
▲ 이동관 대변인. ⓒ뉴시스 |
이 증세가 그런데 완전히 고질병인 모양이다. 이동관이라는 이름을 가진 청와대 대변인은 국제적인 우세거리에 불과했던 미네르바 재판의 판박이로 흘러가고 있는 <피디수첩> 기소사건에 관해, "이런 사건이 외국에서 일어났다면 경영진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총사퇴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을 한단다. 대통령 퇴진은 그래서 하는 말이다. 촛불시위에, 전직 대통령 투신에,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고,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과 조롱이 홍수를 이뤄서 마침내 교수와 종교인과 각종 시민단체와 다양한 직업의 시민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이런 사건이 외국에서 일어났다면 대통령과 내각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총사퇴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대통령이 "근원적 처방"으로 퇴진을 고려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처방은 도처에서 나온 시국선언에서 자주 거론된 내용이다. 국민을 주인으로 받드는 것이 아니라 진압대상으로 여긴 발상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 시대착오적인 말과 행동으로 국익과 국위에 누를 끼치는 한승수 국무총리 이하 내각의 전면 개편, 유치한 오기 싸움에서 평화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 전면 전환, 서두를 이유가 없는 쟁점법안 강행을 포기하고 공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 모색, 검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사권과 공소권의 분산과 당사자주의 배심재판을 포함한 발본적인 사법제도 개혁,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무슨 뜻인지를 '70년대 토건 마인드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성싶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잘 모르는 내용을 만났을 때 보이는 반응은 모르면서 아는 척 맞장구를 치든지 아니면 모르면서 아는 척 반대하는 것인데, 두 갈래 다 말보다는 표정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맞장구는 어색한 웃음으로 하고, 거부는 못 들은 척 무시한다는 말이다. 지금 이명박 씨의 경우 미국 가서 오바마에게 보인 태도는 딱 전자고, 국내에서 봇물 터지듯 나오는 시국선언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딱 후자다. 맞장구를 치든지 거부를 하든지 무슨 말인지 내용을 모르고 하는 사람이 대개는 제일 곤란한 상대다. 그러니까 소통이 불통이라는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따라서 두 번째 안도 실제로 현재의 경색된 상황을 미래지향적으로 풀 수 있는 "근원적 처방"임에는 분명한데, 우리의 행정부 수반에 의해 채택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다른 사람의 말을 못 듣는 난청증상이 심할수록 자기 몸값이 올라간다고 여기는 고정관념에 만족해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그의 입장에서라면 어떤 것을 "근원처방"으로 여길 만할지를 따져보자. 사실 나라를 위해 바람직한 방향을 생각하기 전에 저 사람이 어떻게 나올지를 예측하는 의미라면, 처음부터 토건을 숭배하는 가치관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는 결론을 살폈어야만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몸소 참석하지는 않고 행정안전부 장관을 시켜 대신 읽힌 6·10 항쟁 기념사에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법을 어기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애써 이룩한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는 소신을 표명했다. 이것도 기본적으로 747공약과 비슷하게 반드시 어떤 구체적인 결단의 반영은 아니라고 보이는데, 문제는 747과는 달리 언제든지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나타날 수가 있다는 데 있다. 일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는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허풍을 쳤다가 안 되면 "아니면 말고" 이상으로는 별로 할 일이 없다. 하지만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문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가 범법자를 만들어내기는 여반장이다.
황지우 한예종 전 총장이 밤늦게까지 일한 보직자들과 맥주 한두 잔 마시느라 3년 간 들어간 돈 300만 원을 "횡령"으로 걸고넘어진 다음에, 그 뻔뻔함과 부도덕함에 항의해서 그가 사표를 내자 얼씨구나 수리하고 나서, 그 300만 원 건은 없던 일로 돌리는 마귀의 광란극을 공권력이 자행하고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인격을 쓰레기 언론사들을 동원해서 두 달 동안 모욕하고 나서, 그가 마침내 자살로써 항의하자 박연차 사건 자체를 서둘러 덮는 것으로 입을 씻는 후안무치와 정확히 닮은꼴이다. 조직폭력단이 이래도 기가 막힐 텐데, 기회만 있으면 "법률"이니 "감사"니 핑계를 삼는 검찰과 관료가 이러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정도가 아니라 연쇄살인범에게 총을 사주고 경비원으로 고용한 셈이 아닌가? 법과 규정을 이런 식으로 악용하는 버릇이 국가기관에게 되살아나고 있는데, 대통령은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있으니 앞으로 "근원처방"이 어떻게 나올지 대강 예상이 된다.
한나라당의 쇄신파들은 자기들 좀 쳐다봐 달라고 어리광 좀 부리다가 대통령이 한번 웃어주거나 아니면 예의 그 실눈에 힘만 한번 주면 스스로 알아서 진압될 것이다. 개각은 없을 것이고, 따라서 김경한, 유인촌, 현인택, 원세훈 등 선봉장들은 자기를 알아준 주인을 섬기기 위해 용기백배 난투극에 앞장을 설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과 같은 언론 환경에서 시위대에게 폭력을 뒤집어씌우기는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올라 <아침이슬>의 가사 기억하기보다 쉽다. 멀쩡한 평화시민에게 경찰이 달려가 다짜고짜 두들겨 패는 등 도발을 계속하면, 그것이 도발인줄 알면서도 자기 보호를 위해서라도 무력으로 맞대응은 할 수밖에 없고, 중무장한 경찰을 상대로 맨주먹은 가당치 않기 때문에 죽창이 등장할지 쇠파이프가 등장할지 모를 일이다. 당연히 이 나라의 유력언론사와 그 주변의 무력한 똘마니 언론사들은 거두절미하고 "죽창"과 "쇠파이프"를 주제로 작문한 유치원 수준의 글들을 기사랍시고 논평이랍시고 내놓을 것이다. 청와대와 대법원에서는 오비이락이라고 잡아떼겠지만, 마침 대법원은 경찰이 집회를 불법적으로 원천봉쇄하더라도 무력으로 저항하면 유죄라는 괴상망측한 판결을 내놓았다 (☞ 바로가기). 세금으로 무장한 공권력이 불법으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더라도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선고다. 참고로 말하지만, "악법도 법"이라는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적이 없다.
이 시나리오는 선거일정을 생각해도 상당히 그럴 듯하다. 대부분이 관측하듯, 이명박 정부의 오만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에서 패배한다면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내가 이 칼럼을 통해 누차 지적했듯이 한나라당 의원 중 최소 23명에서 넉넉잡아 30명 정도만 국회에서 정부에게 반대표를 던진다면 여소야대 국면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현재 한나라당 의원이 비례대표 포함 170명인데, 그 중 서울, 인천, 경기 출신이 83명이다. 2012년 선거가 불안해질 때 이 가운데 30명만 움직이면 이명박은 국회 다수의 지지를 상실한다. 그러니까 오히려 그렇게 되기 전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해서 정부에 대한 반대 의사가 확실하지 못한 부동층을 겁박하고 싶은 유혹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 경찰, 검찰, 대법원이 법을 자의적으로 악용하면서 저지르는 전횡이 조금만 더 강화되면,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방관하는 부동층을 확실하게 "침묵하는 다수"로 묶고, 그들의 침묵을 깡패권력에 대한 묵시적 동의로 견강부회할 수 있다. 공포정치는 다가오는 선거에 대해서도 효과를 가질 수 있고, 설사 그렇지 못해도 아직 패거리문화에 매몰되어 기껏 "쇄신"을 요구한다고 해봤자 칭얼거리는 수준을 넘을 줄 모르는 한나라당 수도권 출신 의원들에게 기강을 잡는 효과도 있다.
이 세 번째 의미의 "근원적 처방"이 MB가 낸 스무고개의 답이라면, 마지막으로 네 번째 의미의 "근원적 처방"은 결국 국민이 열쇠를 쥔다. 노무현을 찍었다가 이명박으로 이동한 최소 300만 명의 유권자가 공포에 굴복해서 이 명박하기 짝이 없는 전제정치를 승인한다면, 이 나라는 필리핀 수준의 신분사회로 바뀔 것이다. 국가와 자본이 결탁해서 이건희를 필두로 한 재벌이 정점에 위치하고, 부패한 관료조직이 그 하수인을 맡으며, 형식적 선거에서 혹시나 되바라진 놈이 당선되면 우익 조폭 신문들이 집중적으로 조져서 왕따시키는 방식이 관습헌법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물론 유권자 다수가 조작된 공포에 굴복하지 않고 누가 나라의 주인인지를 선거를 통해 당당하게 표현할 줄만 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그러니까 앞으로 1년 동안은 특별한 확신이 없이 선량하기만 한 부동층 시민들이 촛불에 대한 이명박의 공포를 얼마나 끈질기게 혐오할 수 있는지가 한국의 미래를 좌우하는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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