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성장과 고용이 전년 동기 대비 모두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어떻게 경기가 회복됐다고 할 수 있느냐"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계속 가져가겠다는 입장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위기상황에 대응한 그간의 확장적 통화 및 재정정책이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정책 전환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윤 장관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반드시 같이 갈 필요는 없다"고 시각 차이를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증현 장관은 경기부양에 방점을 찍고 있고, 이성태 총재는 물가안정에 우선해야 하므로 입장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일한 시점에 인플레이션 우려냐, 디플레이션 우려냐 상반된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은 현 경제상황이 사상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대공황의 교훈'으로 각국 정부는 일제히 과감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썼고, 그 덕분에 경제지표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어느 시점에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느냐는 각국이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분명한 점은 유동성 공급으로 인한 부동자금의 증가는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고,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며, 화폐 가치하락은 물가상승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또 현재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부동산가 상승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이다.
"인플레 우려로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
▲ 올해 상반기 서울 강남권 4개구 재건축 아파트의 80%가 상승했다고 한다. ⓒ뉴시스 |
강남권 뿐 아니라 여의도·뚝섬 등 한강변 재건축 아파트 값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여의도 지역의 경우 호가가 종전 최고치보다 높은 아파트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만이 아니다. 경기도 성남 판교신도시 등 일부 지역의 상가 투자 열기도 후끈 달아올랐다. 지난 5월 주택공사 단지 내 상가가 100% 낙찰된 데 이어 최근 서판교에서 분양된 4층짜리 근린상가(스타식스 로데오) 1개 동이 개인 투자자에게 통째로 팔렸다.
시중의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모양새다. 특히 상가 통매각 사례 등을 볼 때 현 부동산 시장 열기는 수요가 늘어났다기보다는 투자 차원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현재 부동산 열기는 단기적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라기보다는 인플레이션 헤지"라고 해석했다. 이미 실수요자들이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높은 부동산가로 추가 상승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부동산으로 쏠리는 이유는 현금으로 쥐고 있거나, 주식 투자를 하는 것보다 부동산에 묻어두는 게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홍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오게 되면 금융 자산은 사실상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돈이 자꾸 부동산으로 쏠리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이 심리를 빨리 잡지 못하고 내버려두면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 유럽,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은 이미 부동산 거품이 빠진 상태지만 한국은 거품이 안 빠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면서 "한국이 구조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규제 완화로 과잉 유인"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현재 부동산 쪽으로 비정상적인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경기침체 상황에서 정부가 금리 인하, 유동성 공급 등 확장 정책을 취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재건축 규제완화 등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해 부동산으로 과잉 유인된 측면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금리와 부동산 규제를 둘 다 풀어버리니까 유동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도록 물꼬를 터준 꼴이 됐다"며 "현 시점에서 확장기조를 긴축기조로 돌리지는 못할지라도 재건축 규제완화 등 기존의 투기억제책을 한꺼번에 풀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재검토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재건축 관련 규제가 완화 또는 폐지됐다. △조합원 지위양도가 허용돼 오는 8월 7일부터 시행되며 △재개발·재건축 절차가 간소화돼 사업기간이 기존 3년에서 1년 6개월로 줄었고 △ 시공사 선정 시기도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겨졌다. 또 △소형주택 건설 의무비율 기준(60㎡ 이하 20% 이상)을 폐지하고 △임대주택 비율을 높이면 용적률을 더 줘 사업성을 확보하도록 했다.
"돈의 양이 아니라 비정상적 흐름이 문제"
은행들의 가계대출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것도 부동산으로 자금 유입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이 16일 발표한 '4월중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예금취급기관(시중은행 등 일반 예금은행+ 상호저축은행, 신협,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519조 7910억 원으로, 3월에 비해 2조 4542억 원 늘었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줄어들었던 가계대출 규모가 올들어 3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또 4월 증가 규모는 3월(1조 8342억 원)보다 커졌다. 은행들도 최근 들어 다시 가계대출영업을 강화하는 등 경영 방침이 바뀌고 있어 저금리 추세가 계속되는 한 가계대출 증가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기업들의 경기 판단은 훨씬 더 보수적이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 사정은 여전히 좋지 못하다. 지난 4월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전년 대비 -25.3%로 1분기(-23%)에 비해 더 줄었다. 기업들의 투자가 살아나야 고용사정이 좋아지고, 소득이 증가하며, 소비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홍종학 교수는 "문제는 돈의 양이 아니라 돈의 흐름"이라면서 "돈이 가야할 곳에 안 가고 안 가야될 곳에 너무 많으니까 보는 사람에 따라 경기 판단이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돈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금리를 올리고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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