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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문제는 대중이다

[손호철 칼럼] 탄핵정국-MB집권-촛불집회-조문정국, 그리고…

'광기의 순간'. 대중이 일상으로 벗어나 광장으로 뛰쳐나온 '광장의 정치'가 '제도정치'를 압도하는, 역사에 드물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지칭한다. 그렇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생겨난 '광기의 순간'과 조문정국은 6.10 민주항쟁 기념행사를 단락으로 하여 끝나가고 있는 것 같다.

검찰은 뻔뻔스러운 수사결과 발표로 사건의 종결을 선언했고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중단했던 속도전을 재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라디오연설에서 "시중의 여론을 경청하고 있다"며 "미국 방문을 끝낸 뒤 귀국해서도 많은 의견을 계속 듣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판단해 나가겠다"고 이야기해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이제는 밀려 있는 굵직한 일들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이 이대통령의 생각"이며 특히 '4대강 살리기'(라는 '4대강 죽이기')와 미디어법 국회 통과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다.

노전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사과와 사정 권력기관의 중립화 약속, 국정운영방향의 전환 등 국민들이 기대했던 쇄신책을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된 '북핵 정국'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조문 정국에 따른 광기의 순간이 지나가자 이제 냉엄한 현실이 다시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물론 지난 재보궐 선거에 나타난 한나라당의 참패를 시작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한나라당의 추락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후 가속화된 데다가 민주당의 지지도가 급등해 최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역전이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지지율의 변화가 현재 의석에서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나아가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을 포함한 냉전적 보수세력의 압도적인 우위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속도전이라는 국정운영방식을 바꾸지 않을 경우 6월 국회에서 언론관련법의 강행처리 등 최근 일련의 사태로 잠시 주춤했던 이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사과 등이 없으면 6월 국회에 응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밝힌바 있다. 나아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도 전의를 불사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등이 언제까지 등원을 거부하고 장외투쟁에 전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일단 국회가 열리게 되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그리 많지 않다. 사실 국회 차원에서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박근혜 의원을 비롯한 친박세력, 그리고 원희룡, 남경필 의원과 같은 한나라당내의 개혁파들이 반란을 일으켜 한나라당의 과반수 의석을 무너트리는 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 대통령에 반기를 들 의사와 용기가 있을지 회의적이다.

정치권 밖으로 나가,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이 또 다른 변수이다. 특히 진행되고 있는 쌍용자동차의 총파업을 비롯해 민주노총이 예고하고 있는 7월 총파업, 그리고 한나라당이 방송법을 강행처리하려 할 경우 일어날 MBC 등 언론노동자들의 총파업, 아직도 별 성과 없이 지난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용산참사 관련 투쟁 등 다양한 시민사회수준에서의 투쟁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해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이 투쟁 역시 일반 대중들의 지지가 없는 한 고립되어 각개 격파될 수밖에 없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장면. ⓒ프레시안

따라서 향후 정국을 좌우할 것은 다시 한 번 대중이다. 대중이 노대통령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성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오만에 분노해 다시 한 번 일어선다면 이 같은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다시 광장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가 광장을 외면한다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결국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문제는 대중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의 역사만 해도 그러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분노한 대중은 질풍처럼 거리로 달려 나와 노 전 대통령을 구해줬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은 자유주의세력으로는 처음으로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고 한나라당은 대중의 분노를 누그러트리기 위해 천막당사 생활까지 해야 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따른 사회적 양극화와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실망한 대중은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상 최대 표차의 승리와 한나라당에 총선에서의 압승을 선사했다.

이도 잠시,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은 다시 대중을 거리로 내몰았다. 장마도, 장대비도 꺾지 못한 대중의 분노 앞에서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 올라 끝없이 이어지는 촛불을 보며 자성을 했다는 굴욕적인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촛불이 사그라지자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용산참사와 여러 비극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침묵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격은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을 가져왔고 이에 다시 대중은 일어나 끝없는 조문 행렬을 이루었다.

조문 정국에서 나타난 국민들의 애도와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또 다시 민심에 귀를 닫고 속도전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이 같은 MB의 오만에 대중이 분노해 일어날 것인지, 아니면 지난해 촛불 이후처럼 조용히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갈지, 그것이 문제다.

그리고 해가 져야 비상을 시작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대중의 움직임에 대해 사후적 해석만을 할 뿐, 언제 대중은 분노하고 언제 대중은 침묵하는지, 알 수 없는 나의 무력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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