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최근 큰 관심을 모으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더 나은 모습을 찾는 새로운 인터뷰 연재를 마련한다. 전문 인터뷰어 권은정 씨가 직접 한국의 다양한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이 연재는 총 20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소장 이영환 교수)는 사회적 기업가 인적 자원 개발 교육과 사회적 기업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하는 성공회대학교 부설 연구기관이다. (☞사회적기업연구센터 바로 가기) ① "'금호동 철거민' 유 이사, 사고 치다" ② "20대 청년의 반란…빗자루 들고 아줌마와 함께 청소를!" ③ "일하고 싶은 실업자는 다 모여라" ④ "중고를 새 컴퓨터로…덤으로 세상도 재생합니다" ⑤ "'대박' 연극 흥행 비결은? '옆집 아저씨·아줌마!" ⑥ "귀농? 농사 지을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세요" ⑦ "바리의 '유혹'…"연해주 땅 10평을 1만 원에 펴냅니다" ⑧ "이런 건설회사가? "집이 아닌 '착한' 세상을 짓는다" ⑨ "원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⑩ 아줌마들의 '무한도전'…"도시에서 농사 짓자" ⑪ "쉿! 쓰레기 더미라고?…'희망 창고'라니까!" ⑫ "노원구는 내 원고지"…온몸으로 작품을 쓰는 여자 |
▲ 안성의료생협 김보라 전무이사. ⓒ프레시안 |
안성 시내에 들어서서 구버스 터미널 쪽으로 가다보면 '안성의료생협'이라는 큰 간판이 걸린 건물이 보인다. 건너편 시장가에는 한가득 쌓여있는 마늘도 보인다. 농민의원, 농민한의원이란 이름이 아주 제자리를 잡은 듯 편안하게 느껴진다. 안성소비자의료생협은 가정의학과, 한의원, 치과의원을 두루 갖추고 진료 활동을 한다.
생협 사무국은 이층에 있다. 직원 몇몇이 선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김보라(43) 전무이사는 아주 바빠 보였다. 요즘 부쩍 생협에 견학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오전인데도 벌써 한 팀이 다녀갔다고 한다.
"그동안 의료생협에 관심이 좀 떨어진 편이었는데 요즘 사회적 기업 이야기하면서 높아진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협동조합이 사회 서비스 분야에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모색하면서 의료생협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요."
안성의료생협은 작년 4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사회적 기업 인증으로 어떤 실질적인 변화가 이뤄졌는가?
"운영에 관련해서 보자면 사실 별 변화는 없어요. 그동안 조합원이 늘어나고 활동 내용이 많아지면서 사실 지역 주민을 상대로 한 운동보다는 조합원의 요구에 부응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의료생협이 그런 게 아니거든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지역 전체를 위한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원래 취지를 다시 한 번 천명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지요."
그리고 사회적 기업으로 준비하면서 안성의료생협은 숫자에 좀 더 강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저희가 그동안 좋은 일을 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얼마만큼, 어떻게 했는지 따져보자고 하면 나타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동안 신경 쓰지 않았던 분야, 즉, 사회적 회계라고 할 수 있는 부분, 가치와 목적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고 본격적으로 숫자로 표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게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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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죠. 처음부터 지역 주민들이 함께 시작한 것입니다. 대략 의료생협이 만들어진 유형은 세 가지인데요. 지역 주민이 먼저 관심을 가지면서 생겨난 것, 의료인들이 자기 운동 역량을 키워나가면서 만든 것, 지역 주민과 의료인들이 함께 만들어 낸 것인데 안성은 여기 해당되지요. 주민들과 안성진료회가 먼저 한의원을 설립하고 그 뒤에 한·양방 공동 진료를 목적으로 '안성공동의원 설립추진위원회'를 만들었죠. 1994년 4월에 안성의료생활협동조합으로 시작해서 2001년 법인 설립으로 안성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된 것입니다."
사실 안성의료생협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시작은 소나무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청춘들의 모임이었다. 1980년대 후반 서울의 대학 동아리 주말 진료팀과 안성 지역 마을 청년회가 지역 주민의 건강과 더 나은 삶을 일궈내기로 작정하면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안성의료생협은 '제일 큰 규모와 높은 재정 자립도, 안정화된 경영'으로 타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을 감탄시키는 것은 이들의 발전상뿐만이 아니다. 활동 내용을 보고나서는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한단다. 이유는, '너무 무식한 방식!, 즉 조합원 참여 구조가 너무나 모범적이기 때문이다.
김 이사가 차분하게 브리핑을 시작한다.
"지금 전체 조합원이 3150가구 정도 됩니다. 한 세대당 3명 잡으면 적어도 1만 명인데(안성 인구 16만) 안성 인구 7% 정도가 우리 조합원이지요. 우리는 조합원이 실제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구조, 즉 대의원제도를 운영해요. 120명의 대의원을 선출하는데 25~30가구당 1명을 선출하고 임기는 2년. 2년마다 한 번씩 두 달에 걸쳐 120군데 동네를 들어가 선거를 하거든요. 문제는 각 마을마다 출석인원 3분의 1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직 대의원, 이사, 실무자가 밤마다 전화를 하면서 출석을 독려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직선제로 대의원을 선출해서 그분들이 1년에 두 번 예결산 총회를 하지요. 총회를 거쳐 20명을 임원으로 뽑아 지역별 읍면동소속 대의원 10명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지고 조합 운영을 의논합니다. 그리고 각위원회, 이사회를 통해서 의논하고 같이 실천하고 그렇게 하지요."
김 이사의 설명을 따라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슨 회의가 그렇게 많고 또 무슨 절차가 그렇게 복잡한지 도저히…. 김 이사가 살짝 웃으며 설명한다.
"우리도 고민이에요. 이런 방식으로 계속 나가야 할지. 한 가지 결정을 하기 위해 절차가 복잡하다보니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부분이 있지요. 그러나 조합원들과 실무자들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고, 결정자와 실천자가 일치하는 부분이 아주 큽니다. 직접 민주주의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들의 직접 민주주의 방식에서 가장 큰 수단은 전화 통화이다. 회의 날짜를 알리고 참여를 권장하기 위해서 이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전화를 한다. 김 이사는 스스로 '지겹게'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가령 신입조합원일 경우 6개월 안에 신입환영회에 참석을 해야 하는데 참석을 미룰 경우 매달 한번 씩 전화를 받아야한다.
"나중에는 전화 좀 안 받으려고 회의에 나왔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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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체 조합원의 참여정도를 보자면 조합원 중 30% 이상의 인원이 진료가 아닌 다른 형태로 조합을 이용하고 있다. 지역 모임, 조합 전체행사, 소모임 등등 각종 모임에 참가한다는 것이다. 매달 소식지를 만들어 나누어 주지만 일이 있을 적마다 전화 연락을 주로 한다.
그러나 좀 더 파헤쳐보면 '집요한 전화'는 조합원 사랑의 다른 말 같다. 가입 따로 활동 따로 가는 조합원으로 두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다 같이 가는 조합운동을 하자는 말이다. 여기에 누가 토를 달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조합원이 되면 건강걱정은 붙들어 매놔도 괜찮을 듯 했다. 1구좌당 1만 원. 조합원 평균 출자는 25구좌 정도 된다. 다른 곳과 비교해 볼 때 높은 편이다. 일단 가입을 하고나면 어떤 혜택을 받는지 궁금했다.
"건강 검진을 무료로 해드리지요. 그리고 저희가 시행하는 주치의 사업 안으로 들어오면서 건강 체크를 늘 받을 수 있게 되요. 검진 후에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경고도 못 받고 그냥 넘어가잖아요. 하지만 당장 치료가 필요 없어도 방치할 경우 몇 년 지나면 질병이 발생하거든요. 그런 경우가 전체 검진자의 약 40%에 해당 되요.
그 위험군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3~6개월마다 전화해서 리콜한다든가 각종 건강 교육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조합원에게는 비보험진료의 경우나 한의원, 치과병원에서는 5% 할인을 받을 수 있고요. 또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고 조합 운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지요."
작년 한 해 동안 주치의 사업으로 이상 소견자 455명을 추적관리했다. 주로 이런 전화내용이다.
'고혈압이신데 혈압 재러 나오셔야 합니다. 언제가 괜찮으세요? 요즘 음식은 좀 싱겁게 드시나요?'. ' 비만이신데 살은 좀 빼셨나요? 이번에 체중 재러 한번 나오세요.'
성실한 건강 관리라는 측면에서도 보자면 고마워할 일이다. 또 5대암 검진 시스템이 갖춰진 병원이니 조기 발견으로 큰 병의 위험을 미리 막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귀찮아하는 이들이 다수 있는 게 현실이다. 조합원들 중에는 잊고 살만 하면 전화로 몸에 이상이 있다고 알려주는 생협 직원들이 성가시게 느껴질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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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건강챙기라고 간섭하고 회의, 행사, 각종 교육에 나오라고 채근 당하는 게 피곤하다면서도 안성의료생협의 조합원 수는 별 변동이 없다. 출자액에 대한 수익 배당도 안되는데 말이다. 왜 그들은 조합 활동에 그토록 긍정적일까?
"열성 조합원 분께 저도 궁금해서 여쭤봤지요. 자기를 인정해주는 분위기 때문에 일한다고 그러시더군요. 먹고사는 문제 말고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이해관계 없이 만나는 인간 관계가 좋다, 그래서 열심히 한다고 그러시고요. 일반 조합원들의 경우 좋은 일에 내가 동참한다는 느낌, 헌신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감동해서 약간의 도움을 주고 싶어서라고요."
조합원들의 건강 체크를 위한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실질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활동은 결국 안성생협의 가장 큰 목적사업인 '환자 중심의 믿을 수 있는 의료기관을 통한 질 좋은 의료 서비스 제공'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4개 의원은 일반 의료기관과 진료비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적정수익을 유지해야만 병원 운영이 가능하기도 하고 의료보험가격은 정해진 대로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료 내용이나 처방 내용은 많이 다르다. 다른 병원에서 권하는 이런저런 검사도 여기서는 글쎄요, 정도다. 처방일수도 길다.
혈압 약의 경우 한 달 치를 준다. 거의 돈을 못 버는 시스템이다. 더구나 위생적인 의료 용품 사용, 기구 소독, 전문 인력 구성에서 지출이 많이 나간다. 농민의원에서 사용하는 내시경이 하도 말썽을 부려 수리 나온 직원에게 항의를 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아, 세척을 너무 자주해서 그렇지요. 한 사람 검사했다고 그때마다 일일이 세척하는 데가 어디 있어요? 큰 병원에 환자 많아도 이렇게까지 안하거든요. 오래 쓸려면 세척을 덜하셔야지요.'
철저한 소독 때문에 내시경 렌즈는 망가지지만 안성의료생협의 진료는 적정선을 절대 넘지 않는다. 항생제처방률은 전국의원 평균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래도 환자들은 여기 오면 잘 낫는다고 믿는다.
"우리 의원에 오는 환자들은 다 착한 분들이지요. 여기 의사들은 나를 위해서 잘해 줄 거야, 나한테 꼭 필요한 치료만 해줄 거야, 그런 믿음이 있으니 의사가 환자와 편하게 이야기가 되고 따라서 치료율도 높다는 것이지요."
안성의료생협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과도한 진료건수 때문에 쫓기지 않는다. 또 서투른 병원 경영 때문에 고민하는 일도 없다. 동료들이 있으니 소외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양방 의사를 구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젊은 의사들이 의료생협이라는 기치에 눌렸는지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는단다. 지금 양의원은 처음 주말 진료 동아리를 함께했던 그 멤버가 계속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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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한국 사회 변화에 근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지요. 지역 주민의 변화를 위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장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생협 일을 택했어요. 근데 제가 처음에 한일이 약조제, 접수 그런 것이었는데 정말 너무 재미없었어요. 그래서 보건예방 일을 하겠다고 나섰지요. 주위에서 그래 넌 주사 놓는 일 잘 못하니까 그거 하라고 했어요."
김 이사 자리 뒤로 보이는 캐비넷에는 조합원 건강 관리 자료 파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안성생협의 보물'이라고 김 이사가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자료 파일은 맨 처음 200명분이었던 게 이제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처음에 안성 온 동네를 물어물어 다녔었어요. 조합 가입했다고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듣고 그랬지요."
김 이사는 그때 지역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변화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인정한다.
"제가 좀 차가운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그때 어떤 당뇨병 할머니가 저더러 자꾸 와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링거주사를 놔달라고요. 그거 맞으면 안 되는 건데 말이지요. 나중에 갔더니 그 할머니가 제 손을 잡고 왜 이제야 왔느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분은 우울증을 앓고 계셨는데 그걸 몰랐던 거죠. 아무도."
환자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르고 위장약만 주었던 당시 대학병원의 의사와 이른바 지역 운동을 한다고 뛰어다니면서도 주민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지 못하는 자신이 뭐가 다른지, 김 이사는 그때 오래 생각했다고 한다. 그 이후 지역 주민과 건강이란 화두는 내내 김보라의 등에 업혀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김 이사는 자신이 이 조직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평가받는 인물일 것이라고 평가한다. '가장 좋아하는 사람', '가장 싫어하는 사람' 그 첫 번 째에 자기이름이 올라있다며 웃는다. 생협 일을 시작할 당시 스물여섯 새파랗게 젊은 처녀였던 그는 안성 지역 누구와 맞서도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죽어라고 일만 하며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마디로 '원만한 성격'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좀 나이가 많았으면, 여자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일을 해오면서 인생 공부도 많이 했어요. 그렇다고 성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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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의료생협과 함께 한지 16년. 김보라 이사의 초등생인 두 아이는 이제 어느 요일에 어떤 회의가 있는지, 그 회의는 몇 시 쯤 마치는지 훤히 꿰고 있다. 그는 지금도 사무실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다. 주위에서 그런 그를 보고 혀를 내두른다.
"제가 일욕심이 좀 많은 편이지요. 그래서 주위에서 힘들어하는 줄 알긴 하지만…. 어떤 분이 그러셨어요. 제가 욕을 얻어먹다 못해 그만 두는 날이 우리 생협이 완전히 일어서는 날이라고요. 그러니 더 열심히 해야겠지요!"
안성의료생협의 산증인인 그는 창립기념일 같은 날이 되면 하루에 전화를 5~60통 씩은 걸어야 한다.
"그날 행사에 오시는 거 아시지요?"라는 김보라 이사의 전언을 '지겹게' 듣고 싶어하는 안성의료생협 조합원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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