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이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등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관계법을 막기 위해서다. 단식에 들어가며 이들은 "법률가는 법률의 정함에 따라 사회관계를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일주일에 두 번, '사회적 정의와 양심'을 위해 단식에 참여한 법률가들의 글을 싣는다. |
몇 주 전 광주법률원에서 사건을 하나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작년 화물연대 투쟁 건으로 1심 유죄 판결이 난 사람인데 항소심을 맡아줄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였습니다. 올해 대한통운 사건으로 투쟁을 계속 하고 있어서 또 기소될 것이 뻔하니 그에 대비해서라고 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맡겠다고 하고 변호인 선임서를 내고 '아 기록 확인하러 광주에 가야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며칠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대한통운 택배 운송원 해고와 관련하여 화물연대 모 조합원 자살"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안타까운 죽음이…'라고 생각하면서 뉴스를 클릭하는 순간 돌아가신 분이 어쩐지 낯익은 "박종태"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난 적도 없고 심지어 통화해 보지도 않은 채 별 생각 없이 제가 변호인이 되었던, 바로 그분이라는 것을 알고, 마치 원래 알았던 사람처럼 인터넷 뉴스의 그 사진을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며칠 후 항소심 재판부에 "당사자가 사망하였으므로 공소를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건조한 항소이유서를 쓰면서도 대한통운을 내려다보면서 목숨을 끊은 그의 심정을 100분의 1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편리하게 '비정규직'이라고 뭉뚱그려 칭하는 이들 중에는 스스로를 노동자로 부르는 것도 법으로 금지되는 특수고용직들도 있고, 몇 달마다 계속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반복적 불안에 떠는 것이 일상이 된 계약직도, 물건 거래되는 것처럼 이곳저곳 파견나가는 파견노동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법률적' 구분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안타까움과 억울함과 한스러움이 있을런지….
다시 대한통운 이야기로 돌아가서, 지난 5월 16일 대전에서 열린 노동자대회 건으로 대한통운 택배 해고자 한 명이 구속되었습니다. 영장 실질심사 때 그는 앞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냥 계속 일하려고 한 것뿐인데, 왜 여기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하고 고개를 푹 숙였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의 바람일 것입니다. 놀면서 공돈 받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일하고 싶다는 것. 이 작은 바람이 이루어지는데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 건지, 뜨거운 5월의 햇살 아래서 피켓 하나 들고 국회 앞에서 서 있는 심정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 ⓒ프레시안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있는 지금 저는 실낱같은 인연 하나 맺은 박종태 열사의 죽음이 다시금 아픕니다. 그 작은 인연의 줄로 식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비정규직 없는 곳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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