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최근 큰 관심을 모으는 '사회적 기업(social entrepreneur)'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더 나은 모습을 찾는 새로운 인터뷰 연재를 마련한다. 전문 인터뷰어 권은정 씨가 직접 한국의 다양한 사회적 기업가를 찾아가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는다. 이 연재는 총 20회에 걸쳐 매주 목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이 연재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소장 이영환 교수)는 사회적 기업가 인적 자원 개발 교육과 사회적 기업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을 하는 성공회대학교 부설 연구기관이다. (☞사회적기업연구센터 바로 가기) ① "'금호동 철거민' 유 이사, 사고 치다" ② "20대 청년의 반란…빗자루 들고 아줌마와 함께 청소를!" ③ "일하고 싶은 실업자는 다 모여라" ④ "중고를 새 컴퓨터로…덤으로 세상도 재생합니다" ⑤ "'대박' 연극 흥행 비결은? '옆집 아저씨·아줌마!" ⑥ "귀농? 농사 지을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세요" ⑦ "바리의 '유혹'…"연해주 땅 10평을 1만 원에 펴냅니다" ⑧ "이런 건설회사가? "집이 아닌 '착한' 세상을 짓는다" ⑨ "원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⑩ 아줌마들의 '무한도전'…"도시에서 농사 짓자" ⑪ "쉿! 쓰레기 더미라고?…'희망 창고'라니까!" |
▲ '사랑의 손맛' 백미선 대표. ⓒ프레시안 |
창밖에는 제법 굵은 비가 내리는데 방안은 참 아늑했다. 엄마들이 모여 도시락을 만드는 사업장이라서 그런 것일까?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사랑의 손맛' 대표 백미선(43) 씨와 앉은뱅이 상을 마주 두고 앉았다.
오후 세 시인데도 벌써 저녁 도시락 배달이 시작되었다.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라 사무실 안은 조용했다.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사업장은 전문도시락 제조업체답게 일반 주방과는 사뭇 모습이 달랐다. 전처리장, 조리실, 포장실로 공간이 잘 나뉘어 있고 설비 자체도 위생적으로 아주 잘 관리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집 부엌과 많이 비교되는 주방이었다. 이런데서 만들어내는 밥과 반찬은 믿을 만하고 맛도 좋을 것 같았다.
"석식 도시락 300개가 배달되고 있어요. 6시 식사를 위해 5시 이전에 배달이 완료되어야 하거든요. 도시락 유통 시간이 제조에서 식사까지 보통 4시간으로 잡고 있는데 집집마다 따뜻한 도시락을 배달하려고 다들 서둘러 나간 거지요."
도시락 배달 업체 '사랑의 손맛'은 작년 10월에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2003년부터 시작한 도시락 제조 사업은 2006년 행복나눔재단의 지원으로 시설 보강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 된 사업장이 되었다. 현재 노원구 내 각 기관으로부터 위탁받아 지역 내 결식 이웃에 도시락과 반찬을 지원해주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현재 참여 인원은 모두 15명. 아침 일찍부터 나와 이들이 만든 도시락은 대부분 결식 아동에게 간다.
"주로 부모가 없는 집 아동들이지요. 조부모 가정이 제일 많아요. 편부, 편모가정, 더러 부모가 있긴 해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이들 돌보는 게 어려운 집도 해당됩니다."
'사랑의 손맛'이 맡고 있는 이 지역에는 도시락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다른 곳보다 유독 많다. 도움과 지원을 필요로 하는 가정이 많다는 말이다. 저소득층 아동들이나 독거노인들에게 가는 도시락 배달은 그저 배달이 아니다. 그들의 안부를 물어보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마치 야쿠르트 아줌마 배달처럼.
"사회복지 전달 체계 과정 중에서 정보 면으로 보면 우리가 제일 빠르지요. 하지만 우리는 개입은 못해요. 어느 집에 도시락이 이틀째 손대지 않은 채 있을 경우 동사무소로 연락을 하지요. 그러면 일시적으로 배달을 중단해요. 그 뒤에 왜 안 갖다 주냐고 불평이 오면 또 다시 가고 그러지요. 아동들은 그냥 이사를 가버리니까 사정을 알 수가 없게 되고 노인들 도시락에 차질이 생기면 사고가 생겼다고 보면 맞아요. 노인 분들은 오매불망 도시락을 기다리기 때문에 일부러 밀쳐두는 경우는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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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들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의 저소득층에서 부모가 동사무소로 신청할 경우 동에서 결정해 '사랑의 손맛'으로 명단을 넘겨주면 배달을 나간다. 노원구에서 365일 내내 석식을 제공하는 아동 수는 900명, 상당히 많은 편이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워낙 많아서 차상위 계층일 경우 순서가 안 되어 못 받아먹는 수도 있다.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사랑의 손맛'에서는 선정 과정에 개입할 수는 없다. 배달 갔는데 주위에서 '이집은 부모가 다 멀쩡한데 왜 도시락을 갖다 주느냐?"고 해도 그냥 넘어간다.
평소 '사랑의 손맛'의 업무 능력으로는 하루 300개 정도의 석식 도시락 배달이 적정선이지만 방학만 되면 아주 '죽는다'고 백 대표가 말한다. 학교에서 무료 급식을 받던 아이들에게 점심 도시락 배달이 몫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들 명단이 와서 무조건 다주라고 한다. 업무량은 2배로 늘어난다. 중식만 600개를 준비해야한다.
처음에 못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이 식당에 가는 것을 '낙인'이라고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다 배달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방학 때는 6시 출근해서 9시에 600개를 들고 배달을 나간다. 11시에 배달이 끝나면 1시간 겨우 쉬고 다시 저녁 도시락 준비를 해야 하니 정말 방학은 '사랑의 손맛' 직원들에게는 '쥐약'인 거다.
백 대표는 특히 여름방학 도시락 배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식중독이 문제거든요. 아이들이 늦잠을 자느라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절대 안 나오거든요. 그냥 두고 올 수 없어 와버리면 애들이 2시 정도 일어나서 도시락 안 왔다고 동사무소로 전화를 해요. 그러면 동사무소에서는 우리더러 왜 안 갔다 줬느냐고 난리고.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꾀를 냈지요.
계속 당할 수 없으니 스티커를 제작해서 흔적을 남기고 왔지요. 1창 방문 스티커를 붙여두었지요. 아이들이 제시간에 도시락을 받도록 길들이는 작업을 방학 시작하면 1주일 정도하는데 맨 날 싸우지요. 그렇게 7년 했더니 이제는 우리 도시락 받는 아이들은 방학 때가 되면 당연히 받으러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하하하."
'사랑의 손맛' 사람들이 배달 나가는 곳은 주로 복지관도 없고 식당마저 없는 낙후된 지역이다. 아직 개발이 안 되어 산길로 갔다 오는 데도 있다. 처음엔 배달 팀이 아침 9시에 나갔다가 오후 4시에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그 공도 모르고 도시락 제때 안 왔다고 민원이 장난이 아니었단다.
"6년간 도시락 배달을 하니 노하우가 생겼어요. 이제는 우리한테 도시락 명단을 1주일 전에 넘겨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팀장과 운전기사가 답사를 해서 배달 동선을 짜요. 시스템이 정착되어서 이젠 방학 때가 되어도 혼란스럽지 않아요."
'사랑의 손맛'의 도시락을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받아먹는 아동들도 있다고 백 대표가 말해준다. 그래서 배달원들은 자연히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직접 보게 된다고. 고맙다는 쪽지를 빈 도시락에 넣어주는 예쁜 아이들도 있다는 게 배달원들에게는 큰 기쁨이고 보람이란다.
백 대표는 자신이 일손이 모자라면 전처리도 하다가 조리도 하다가 배달도 나가는 '스페어'라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가정을 이야기해주었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가 아들 도시락을 대신 받아먹으며 불평은 있는 대로 다해서 몇 년간이나 직원들이 애를 먹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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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선 대표는 2006년부터 '사랑의 손맛'에 들어와 일하고 있지만 지역사회 사업 쪽에서 일한지는 그보다 훨씬 전이다.
"상계동에 있는 '노원 나눔의 집'에 1997년에 들어왔지요. 사실 그때 저는 극작 공부를 위해서 발을 들여놓았어요. 1990년대 노동운동이 한창일 때 현장에서 마당극을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연출자 선생님이 '너는 너무 행복하게 살아서 리얼리티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몸으로 체험할 필요가 있다.' 하시면서 빈민운동하는 단체에 들어가서 일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백 대표는 '노원 나눔의 집' 김홍일 주임사제 휘하로 들어가 현장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자활 지원 업무를 처음 시작할 때였다. 사업 내용 중에, '임대아파트 슬럼화 문제'를 풀기 위한 미션이 그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임대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주민 자치 조직과 지역 자원을 연결해서 주민들이 스스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코디네이터 임무를 맡아 그는 현장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극작하려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엄명을 받은 것이다.
"3년 일해 보겠다 마음먹고 들어갔는데 아이고, 준비는 무슨 준비요, 전혀 안 된 상태였어요. 완장 의식만 팽배한 주민들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던지…. 주로 한 일이 아파트에 통장 만나러 갔다가 통장님이 술 마시면 같이 술 마시고, 고도리 치고 있으면 같이 고도리 치고 그랬지요. 소위 인간관계 맺기를 시도한 거지요."
현장 속으로 들어가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꿈꾸던 백 대표가 실망한 나머지 김 신부에게 못해먹겠다고 할 때마다 김 신부는 이렇게 말했단다. '너 제스처 하지마라. 주민을 친구로 생각하면서 사랑으로 대해봐라.' 그렇게 해보지도 않으면 불평할 자격도 없다는 말에 백 대표는 다시 주저앉곤 했단다.
그러다가 IMF가 터졌고 김 신부가 벌인 '사랑 나누기 운동' 실무자로 일하기도 하다가 우연히 '노원 나눔의 집'에서 하는 노인 간병 일을 맡게 되었다. 그 일은 당시 사회적 서비스와 일자리가 만나는 하나의 주요한 포인트로 보였다고,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의 눈이 뜨여진 것 같다고 백 대표는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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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대표가 도시락 사업에 뛰어들기로 한 것은 당시 자활 공동체에도 실무자가 필요하다는 확신 때문이다.
"기껏 돈 왕창 들여서 자활 공동체 만들어 봐야 망해서 다시 돌아온단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자활 근로 사업을 시범 운영 기관이라고 본다면 자활 공동체는 시장 진입을 위한 훈련 기관이거든요. 그런데 혼자 해보라고 할 게 아니라 누군가가 붙어야한단 말이에요. 안 그러면 망할 게 뻔해요."
그는 이사업에 자신을 실무자로 '박았다'. 그때부터 그는 도시락 사업에서 변화를 이끌어내기로 작심했다. 현재 참가인원 15명 중에 9명이 사회적 일자리 지원을 받고 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일한다. 신입인 경우 95만 원에 초과수당이 지급된다. 설날, 추석, 여름휴가 때 상여금을 지급한다. 괜찮은 일자리가 아니냐고 백 대표가 지적한다.
참가자들의 평균연령은 50대. 일반 노동시장에서는 썩 환영받는 인력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사랑의 손맛'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인재들이다. 영양사, 조리팀, 전처리팀, 배달팀 등, 팀별로 인력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사랑의 손맛'의 운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결식 도시락으로는 재료비나 운영비 메우면 다행이지요. 요즘은 판매비용 7~80%를 재료비로 쓰지 않으면 도시락을 만들어낼 수가 없어요. 엉터리로 만들면 큰일 나잖아요. 사회 시선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니 결식 도시락으로 수익 내기는 어렵지요. 일반 유료 판매를 통해서 어느 정도 해내고 있지만 현재는 적자 운영이지요.
지난해는 행복나눔재단에서 운영비 지원을 받았는데, 올해부터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본격적으로 유료 사업을 해야 할 시기이지요. 근데 겁이 나요. 허구한 날 망하는 게 자영업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는 간식 시장을 내다보고 있어요. 타깃은 일반시장이 아니라 지역 사회적 시장이지요.
일반 시장에서는 승부가 어려워요. 지역아동센터, 국공립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하려고요. 간식 시장은 결식 도시락보다 좀 더 나은 시장일 것 같아서요. 유료 사업으로 갈 생각입니다. 그러나 일반 시장을 외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이 겸해 나갈려고요."
백 대표에게 노원센터에서 만들어내는 도시락 맛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평균."
그가 약간 머뭇거리더니 대답한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말인데 그는 좀 욕심이 있는 것 같다.
"아쉽지요, 조금만 더 하면 훨씬 맛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제가 늘 영양사, 조리사 분들에게 말합니다. '전문가 티를 좀 내시라, 우리는 1+1=3을 만들어야한다. 그래야 우리가 성공한다. 내 것이다 하는 마음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는 느낌이 있는 도시락은 맛에서 차이가 있다고 믿는다. 즉 만드는 사람들이 도시락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면 맛이 다르게 나온다는 말이다. '도시락도 알아듣는 것 같다. 도시락을 만들 때 음악을 들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그는 주방에 스피커를 달까 고려중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는 올해 맹세했단다. 절대 현장 일에 간섭하지 않기로. 현장일은 영양사와 각 팀장들이 알아서 맡고 자신은 대외 영업이나 홍보 쪽을 맡기로 했다.
지역사업에 발 들여 놓고 한창 괴로워하며 울적마다 백 대표는 자신이 양은솥인지 무쇠솥인지 매일매일 되물어보았단다. 자신은 사실 그저 작은 존재인데 너무 큰 꿈을 꾸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자책도 많이 했단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구분하지 않는단다.
"구별 짓는 게 귀찮아졌어요. 내가 뭐면 어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하하."
그의 웃음소리에 자신감이 묻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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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대표가 요즘 작품을 쓰고 있을까, 궁금했다.
"다 까먹었죠.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그것인데 요즘은 일기도 못써요. 아쉬움이 있지요. 지금보다 젊었을 적에 작품을 쓰고 싶어 했던 그 열망, 그 느낌을 가져야지, 가져야지 하는데 잘 안되네요. 하하하."
그는 아마 온몸으로 작품을 쓰고 있는 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노원구를 무대로 자신의 꿈, 리얼리티 넘치는 그 꿈을 실현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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