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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LG 돈 받았으면 검찰이 집요하게 달려 들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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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LG 돈 받았으면 검찰이 집요하게 달려 들었겠나"

[현장] 봉하마을 분향소…"정권에서 작정하고 달려드니 이리됐지"

분향소 입구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까지는 '노사모'의 상징인 노란색 리본이 걸려 있었다. 김해 봉하마을에 차려진 공식 분향소 맞은편 건물에는 검은색 천에 하얀 글씨로 '우리는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대형 현수막이 펼쳐져 있었다. 이 건물은 당초 노무현 기념관으로 만들 예정이었지만 현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도로변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더위에 지친 조문객을 위해 "행복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무료로 생수를 나눠주고 있었다. 하지만 생수를 받아드는 조문객의 얼굴에서는 '행복'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도리어 전직 대통령을 잃은 슬픔으로 어둡기만 했다.

▲ 봉하마을 분향소에 걸려있는 노란 리본. ⓒ프레시안

30도의 날씨기다림보다 슬픔이 힘들게 만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3일째인 25일,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다 구름 한 점 없는 뙤약볕은 조문객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게다가 차량 통제로 인해 30분 넘게 도보로 이동해 분향소를 방문해야 하는 점도, 조문을 위해 평균 2~3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대기 시간도 조문객을 괴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어버렸다는 슬픔이 이들을 가장 힘들게 만들었다.

김해소방서와 진영 세영병원이 봉하마을 입구에 차린 '현장 응급의료센터'에는 이날 하루 실신하거나 탈진, 두통 등을 호소하는 환자 10여명이 치료를 받았다. 또한 보건복지부와 경남도가 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 설치한 '현장 응급의료소'에도 탈진하거나 두통을 호소한 조문객 50여명을 돌봤을 정도다. 응급센터 관계자는 "더운 날씨와 심적 충격이 겹쳐진 것 같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한 조문객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행렬은 낮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분향소에서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퇴근 시간인 6시를 넘어가자 행렬은 더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정권에서 작정하고 달려들었으니 이렇게 됐지"

"애매한 놈 돈을 먹어서 이렇게 됐어. 있는 놈의 돈을 먹은 놈들은 잘 먹고 잘 살잖아. 있는 놈 돈 먹었다면 검찰이 사돈 팔촌에 당숙까지 이렇게 이 잡듯 샅샅이 뒤지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야. 정권에서 작정하고 달려든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아."

김해 봉하마을에 차려진 공식 분향소 입구에서 만난 50대 박흥식 씨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못내 아쉬운 듯 이렇게 말했다. 그는 아직까지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죽지 말아야 할 사람이 죽었다는 것.

그는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쳤다"며 "그런 분이 자살을 하다니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검찰의 전방위적 표적 수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만약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에서 돈을 받았어 봐라. 검찰이 그렇게 집요하게 수사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결국 표적 수사에 걸려 죽음을 당한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산에서 왔다는 50대 김 모씨는 박연차 회장이 검찰에 진술한 것을 두고 "데려가서 막 쪼으니 안 불수가 없지 않는가"라며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는데 현 정부가 아예 작정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이려고 한 것 같다"고 분노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으니 박연차 회장이야 그렇다치고 형인 노건평의 짐은 어떻겠는가"라며 "다행히 형 집행중지를 받고 겨우 동생 마지막 가는 길을 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 봉하마을에 차려진 분향소 ⓒ프레시안

"사저 직접 보니 소박하네. 으리으리하다고 하더니"

"직접 와서 본께 억수로 소박하네"

역시 부산에서 왔다는 이영신(49) 씨는 노 전 대통령의 생가를 본 뒤 "이런 깡촌에서, 겨우 이런 집 하나 짓고,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TV에서는 노 전 대통령 생가가 으리으리하게만 보이더니 실제 보니 이리 시시할 줄은 몰랐다. 전직 대통령이 저 정도도 못사나? 그런데 이 시골바닥에서 이걸 가지고 크다고 난리를 치고…. 아까운 사람을 그만 좀 놔두지 못하고 왜 그렇게 괴롭혔는지 모르겠다."

대구에서 왔다는 60대 박인숙 씨는 "너무 없는 사람이 이렇게(대통령)되면 안 되는데 자기 분수에 넘쳐 죽게 된 거 같다"고 한탄했다. 그는 "안타깝지만 이렇게 죽는 건 그가 대통령이 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인 것만 같다"며 "앞으로 그와 같은 인물은 우리나라에서 다시는 나오지 않을 거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이십대 박수진 씨도 이날 동생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그는 "대통령일 때는 몰랐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 TV와 인터넷을 통해 그분의 걸어온 역정을 알게 됐다"며 "정말 소탈하고 서민적인 분이었다고 느꼈다"고 소회했다.

그는 "좀 더 일찍 그 분을 알았다면 이렇게 아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며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편 이날 분향소에는 고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 씨,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이희아 씨, 해병대 현역 중위 등도 조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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