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당시 제1차관과 함께 강만수 장관은 여러 차례 외환시장에 '구두 개입'을 했다.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여 수출기업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의도적으로 환율을 띄웠다. '7% 고성장' 약속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선 수출을 늘려야 했다.
강만수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환율이 급등하자 '역풍'을 맞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원-달러 환율은 900원 대에서 1500원 대로 60% 가까이 오르면서 가장 '취약한' 통화가 됐다. 환율이 단기간에 급등하자 강만수 경제팀은 이번에는 반대로 환율을 내리겠다며 외환보유액을 풀기 시작했다. 미국과 통화스왑 체결 효과 등으로 외환보유고가 다시 늘어나긴 했지만, 강만수 경제팀은 작년 연말까지 전체 외환보유고의 1/4에 달하는 600억 달러 가량을 허비했다.
고환율 정책이 야기한 '허둥지둥' 외환정책에 대해 후카가와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작년 11월 한 토론회에서 "한국 정부는 위기 상황을 예측할 만한 충분한 정보 수집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은 환차익을 노리는 전 세계 투기꾼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환율 1200원 대로 떨어지자 '비상'
▲ 환율이 1200원 대로 떨어지자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수출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고환율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뉴시스 |
윤 장관은 취임 직후 외환시장에 대해 "지나친 쏠림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다. 전임인 강만수 장관의 '구두 개입'이 어떤 혼란을 가져왔는지 그도 모를리 없었다.
그러나 내심 고환율에 대해 불편하지 않은 속내를 드러냈다. 윤 장관은 지난 2월 25일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환율 문제는 잘 활용하면 수출 확대 발전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만수 전 장관과 똑같은 주장을 편 셈이다.
시중의 '3월 위기설'이 '설'로만 끝나고 4월 들어 주가가 급등하고 환율이 떨어졌다. 5월 들어서는 1200원 대로 들어서 13일 1244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3월2일 1570.3원까지 치솟았던 것과 비교하면 급락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2007년 말까지 900원 대를 유지하던 때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환율이 안정되면 수출엔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한국기업의 실적 호조가 환율 효과에 따른 착시 현상임이 드러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 10일 발표한 '최근 글로벌 기업과 한국 기업의 경영성과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자국 통화 기준으로 한국 기업의 매출 증가율은 2007년 13.2%에서 작년 24.3%로 상승했다. 그러나 달러를 기준으로 한 매출 증가율은 한국은 2007년 16.4%에서 2008년 5.1%로 낮아졌다. 반면 일본 매출 증가율은 5.6%에서 14.4%로 증가했다. 유럽 지역 역시 17%에서 13.1%로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환율 효과를 뺀 한국기업의 수출증가율은 일본, 유럽, 미국(7.8%)보다 낮았다는 얘기다. 환율이 떨어질 경우 기업들의 실적이 급격히 나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래서 수출대기업들은 최근 환율이 떨어지자 정부에 '대책'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오는 14일 수출관계기관회의를 열고 최근 환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과 관련해 업계의 애로사항을 듣고 달라진 환경에 맞게 새로운 수출 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경부는 이미 환율 1200원 선이 무너지면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윤증현 장관도 1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진행된 수요정책포럼에서 "1분기에는 환율상승이 수출기업에 도움을 줬지만 최근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며 "환율이 안정되면 기업 채산성이 상당폭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환율에 울상 짓는 중소기업…올라도 너무 오른 서민물가
그러나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주체는 수출기업들만이 아니다. 강만수 경제팀의 고환율 정책이 한국경제에 큰 혼란을 가져왔던 이유도 고환율로 이득을 보는 경제주체들만이 아니라 손해를 보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수출대기업은 고환율로 이득을 봤겠지만 내수 중소기업, 자영업자, 일반 서민들은 손해를 봤다. 상당수의 수출 중소기업들도 손해를 봤다.
환율이 오르면 물가가 오른다. 환율이 1% 오르면 소비자물가가 0.08%포인트 가량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에 비해 3.6% 올랐다. 세계적인 경제침체기를 맞아 주요 선진국의 물가상승률이 0%대인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유독 높은 이유는 '환율' 때문이다.
특히 생필품 물가는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크게 웃돌았다. 생선·채소·과일 등 서민 먹을거리의 가격은 전년동월 대비 14.7%나 올랐다. 또 이명박 정부가 물가관리를 위해 특별히 관심을 쏟고 있는 52개 주요생필품, 이른바 'MB 물가 품목' 중에서 배추는 1년새 44.6% 올랐고 양파와 참외는 각각 47%, 25.9% 상승했다. 고등어는 54.6% 상승했고 닭고기와 돼지고기는 각각 33.4%, 27% 상승했다. 따라서 한국의 서민들은 경기침체에 따른 소득 감소와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고환율은 상당수의 수출 중소기업에도 부담을 준다. 지난해 '키코(KIKO) 파동'에서 드러났듯이 환헤징 파생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환율이 올라가면 큰 손해를 본다. 태산LCD 등 일부 중소기업들은 흑자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환헤징 파생상품 때문에 도산했다.
강만수 "적정 환율은 1002원 수준"
이처럼 상당수의 경제주체들이 고환율로 '고통'을 받지만, 최근 들어 환율이 하락세로 반전하자 정부는 큰일이 난 듯 대책을 세우겠다고 한다. 정부 입장에서 수출대기업은 가장 중요한 '고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얘기하는 대기업의 이익이 늘어야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늘어나고, 중소기업이 잘 된다는 이른바 '적하효과'는 현실에서는 일어난 적이 없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10월 '최근 외환시장 동향 및 대응방안' 보고서를 통해 "주요 7개국의 교역가중치와 물가 등을 고려한 적정 원·달러 환율은 1002원 내외"라고 제시한 바 있다. 강만수 전 장관은 그 보고서가 나온 직후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적정 환율은 그 정도 수준(삼성연이 지적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1200원 대의 현재 환율은 강 전 장관도 동의한 '적정 환율'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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