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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구까지 막아야 한다"

[법률가들이 밥을 굶는 이유] 방송사 비정규직 B가 가르쳐준 진실

법률가들이 '릴레이 단식'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등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관계법을 막기 위해서다. 단식에 들어가며 이들은 "법률가는 법률의 정함에 따라 사회관계를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일주일에 두 번, '사회적 정의와 양심'을 위해 단식에 참여한 법률가들의 글을 싣는다.

지난 5월 4일, 나는 국회 앞에 서있었다. "비정규직법 개악을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말이다. 웅장하고 멋드러진 국회를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다가, 문득 2년 전 사무실 문을 두드렸던 B의 생각이 났다.

2007년 5월로 기억된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B가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B는 방송사에서 5년 가까이 아무런 문제없이 근무해 왔는데, 회사가 갑자기 자신에게 사업자등록을 내든지 회사를 그만두든지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고 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회사가 마련한 해법은 사업자등록을 통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탈색시키는 것이었다. B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사업자등록을 거부했다. 회사는 장담했던 대로 비정규직법이 시행되자마자 그를 해고했다.

정부는 2007년 7월에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등 노동관계법령을 대폭 제·개정하면서, 이를 '비정규직보호법'이라고 명명하고 그 취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재계 역시 마치 정부의 가락에 장단을 맞추기라도 하듯이, 이 제·개정안이 기업들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불만과 투정들을 연일 쏟아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당시에 필자 역시 비정규직법의 긍정적인 측면을 전혀 배제할 수 없었기에, 그 효과에 관해서는 반신반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B에게 두 달 동안 벌어진 일들을 가까이서 목도하면서,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알게 됐고, 재계가 쏟아냈던 불평과 우려들 역시 그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과장된 몸짓에 불과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어찌하겠는가! 뒤늦게 우둔한 내 머리만 때릴 수밖에. 비정규직 보!호!법! 덕택에, 성실한 노동자이자 한 가정의 유일한 가장이었던 B는 두 달을 꼬박 회사에 시달리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고, 결국 5년 동안 몸담았던 회사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이것이 정부가 이야기하던 '비정규직 보호법'의 실체였던 것이다.

▲ "자본에게는 언제나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여러 갈래의 비상구가 마련되어 있다. 비상구가 없으면 어떠하겠는가? 해고하고 소송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시간과 돈은 자본의 편이 아닌가!" ⓒ프레시안

비정규직 노동자는 애초에 법률의 미비로부터 양산된 것이 아니었다. 법률로만 치자면, 비정규직법이 탄생하기 이전의 법 체제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유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비정규직노동자와 정규직노동자간의 차별을 논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만들어지고, 차별시정제도와 같은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것이 긍정적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B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자본에게는 언제나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여러 갈래의 비상구가 마련되어 있다. 비상구가 없으면 어떠하겠는가? 해고하고 소송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시간과 돈은 자본의 편이 아닌가!

비정규직법이 그야말로 비정규직보호법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자체를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자본이 비상구를 찾지 못하도록 애초에 정문부터 막아 버리는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혹자는 이는 시장주의에 반할 뿐만 아니라 작금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꿈같은 헛소리라고 매도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시장주의에 부합하고 경제적 이익만 극대화될 수 있다면, 우리는 노예제조차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인간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라면, 그것을 반대하는 것이 시장주의에 반하고 경제 위기에 악영향을 주더라도, 목숨 걸고 끝까지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

비정규직법의 효과를 목 놓아 선전하던 정부가 이제는 법 시행 2년을 앞두고 대량 해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 법을 개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다시 목 놓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이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비정규직보호법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채 말이다. 이 정도 상황에 이르니, 정부가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의심이 민망스러울 정도이다. 정부는 스스로 거짓말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비정규직법이 진짜로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스스로 믿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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