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들 자식들이 학교에서 대접 받고 싶지? 선생님들한테 잘 해. 달봉 잘 챙겨 드리고."
(여기서 달봉이라 함은 학부모가 담임교사에게 매달 챙겨드리는 촌지를 뜻하는 특정 지역의 표현. 학생 한 명이 학교 재정과 직결되기 때문에 학부모를 괴롭히는 정도가 다소 덜한 사립학교보다는 학생이 오든 가든 교사와는 상관이 없는 공립학교가 더 심하다고 한다.)
수십 명의 학부모들을 앞에 놓고 노골적인 돈 요구를 하는 것도 기가 막혔지만 처음 만나는 학부모들에게 말을 놓는 건 이 무슨 경우? 하도 황당해 모임이 끝나고 다른 부모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어떻게 이런 경우가 있을 수가 있냐며 불만을 이야기했다 한다. 그러곤 집에 왔는데 얼마 후 학교에서 보자며 전화가 왔단다. 찜찜한 마음으로 갔는데 '그 때 그 교사'가 나타나 자길 앉혀 놓더니 그러더란다. "니 주둥이 조심해라."
"설마~"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자식을 학교에 보낸 적 있는 학부모들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이런 기상천외하고 때로는 포복절도할 이야기들은 너무나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땅의 학부모들 중 당장 학교로 쳐들어가 그 교사의 멱살을 잡고 '끝장'을 봐야겠다는 상상만 하다가 결국 포기한 이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이 방면에 경험이 별로 없는 분이나 내가 지금 너무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지금 인터넷 들어가서 '촌지'를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교사들의 파렴치와 학부모들의 서글픈 비애를 느끼고 결국 함께 분노하게 될 것이다. 상당한 흥분이 동반되므로 노약자는 삼갈 것.)
그래도 받아야겠나
▲ "올해도 어김없이 오월이 찾아왔다. 오월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정작 신경 써야 하는 날은 바로 스승의 날이다." ⓒ연합뉴스 |
'이보다 더한 경우는 없다'며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센' 이야기를 날린다. 그것으로 다들 입을 쩍 벌리며 나가 자빠지고 이 자리가 평정될 줄 알았다. 그러나 저쪽 학부모가 곧 맞받아친다. 웬걸, 더 센 놈이다.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학부모가 자신의 '비장의 무기'를 표창처럼 날린다. 이렇게 절정의 무림고수들이 장풍을 날리듯 서로 나가 떨어지며 상대의 장풍에 탄성을 지른다. 각자 꺼내는 장풍이 끝이 없어 이렇게 몇 시간이고 보내게 된다. 이 장풍들만 모아도 온 국민이 함께 나가떨어질 절정의 책 한권이 될 것이다.
대부분 대도시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매해 학년초 반배정 때면 부모들은 긴장한다. 누가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되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결과가 나오면 어떤 학부모는 로또 당첨된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고, 또 어떤 학부모는 '1년 동안 죽었다~' 하며 탄식을 하기도 한다. 왜? 새로 담임을 맡게 될 교사들의 성향(?)에 따라 일희일비 하는 것이다.
설사 담임교사가 촌지를 받더라도 너무 밝히지만 않으면 부모들은 만족해 한다. 반면 잘 못 걸린(?) 부모들은 그 교사의 '적정선'이 얼마인지, 상품권을 좋아하는지 현금을 좋아하는지를 파악하느라 한바탕 난리가 난다. 다음 기사 내용은 매우 흔한 사례 중 하나다.
"최모(37·서울 서초동) 씨는 학기 초 동료 학부모들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들었다. 아들 담임교사의 '적정' 촌지 액수가 분기당 최저 30만 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달 중순 찾아가 한꺼번에 30만 원을 줬다'고 밝혔다."
다시 오월이 왔다
사실 학기초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열심히, 그러나 힘들게 살아가던 한 지인이 어느날 먼산을 바라보며 내뱉은 말이 지금도 내 귀에 생생하다. "에이~ XX, 설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추석이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하이라이트는 5월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월이 찾아왔다. 오월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정작 신경 써야 하는 날은 바로 스승의 날이다. 이 스승의 날 때문에 부모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심지어 부부싸움을 하는 집도 생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오월을 "달력에서 파버리고 싶다"고까지 하는 것이다.
스승의 날이 다가와서인지 지난 달 국가권익위원회는 학교 현장 촌지 단속을 했는데 이게 논란이 됐다. 경기도 분당의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교실로 찾아 온 학부모가 과자가 든 쇼핑백 하나를 교탁에 내려놓자 조사관들이 들어와 과자상자를 꺼내 촌지가 있는지 확인했고 그 교사는 3만9000원짜리 과자를 받았다는 확인서를 써야 했다고 한다. 같은 지역의 또 다른 교사는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이 준 사과상자를 받은 게 빌미가 돼 퇴근길에 트렁크 검색을 당했다.
언론이 전한 이들의 소감은 "30여 년간 교직생활 중 가장 큰 수모"였고 "촌지 단속을 이유로 학생들 앞에서 망신"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총은 '50만 교원을 '촌지 도둑'으로 몰며 인권을 유린'했다며 권익위를 항의방문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래 그게 정말 수모였고 망신이라는 것은 잘 알겠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궁금한 건, 그렇다면 그 수모와 망신을 당한 교사들은 평소에 촌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일까? 평소 촌지를 거절해 왔는데 촌지를 받았다는 의심을 받아 억울하다는 것일까? 그리고 3만9000원짜리 과자는 괜찮다는 것인가? 또 그 3만9000원짜리 과자를 아무 날도 아닌데 선물한 학부모는 스승의 날엔 뭘 들고 갈 것인가? 그건 받아도 되는 것인가? 나는 그것이 정말 알고 싶다.
'극소수'의 문제?
촌지 수수가 문제가 돼 정부가 이런 비리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겠다고 하면 교사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저항한다. 그 논리는 지난 수십년간 반복되는, 판에 박힌 것이다. 촌지 문제가 근절돼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극소수의 문제 교사 때문에 교사 전체를 촌지 수수 집단으로 모는 꼴이고 대다수의 성실한 교사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취지에는 동감한다면서도 수십년 동안이나 제도에 저항해 온 이상한 집단이 바로 교사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극소수의 문제'일까. 과연 그럴까. '촌지를 당연시하는 교사들'이 우리 사회에서 지겹게도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극소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50만 교사 중 '상당수'는 될 것이고 특정 지역에서는 '대다수'가 되기도 할 것이다. 특히 앞에서도 언급했듯 학교교육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공립학교의 교사들 중엔 '돈독'이 오를 대로 오른 무시무시한 '괴물교사'들이 정말 많다. 이들은 정말 아무도 못 말린다.
사실 이제까지 촌지문제를 다룬 모든 언론 기사들은 이 문제가 심각하다면서도 항상 '일부' 또는 '소수' 교사들의 문제라며 이들 때문에 다수의 교사들이 피해를 받는다는, 기존의 언론답지 않은 배려의 사족을 기사내용에 굳이 집어넣는다. 그러나 이는 50만 이익집단의 위력을 감안한 기사 쓰기일 뿐이다. '소수'의 문제인데 어떻게 이렇게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촌지 문제가 '소수 교사'의 문제라는 인식에 반대한다. 소도시나 촌으로 가면 우리가 말하는 '성실하게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교사들'이 꽤 많지만 대도시의 경우는 이와 거리가 멀다.
권익위가 지난 3월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강남 학부모의 36.4%가 지난해 교사에게 촌지를 준 경험이 있고 전남(36.2%), 부산·광주(31.9%)이 그 뒤를 이었다. 전국적으로는 학부모 1660명 중 18.6%, 즉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촌지를 줬다고 한다. 대도시의 경우엔 세 명 중 한 명꼴이다. 그렇다면 촌지를 받는 비율을 어떻게 될까.
'당신은 촌지를 받습니까'라는 설문에 교사들이 응할 리가 없기에 위 결과를 가지고 추론을 해 볼까 한다. 대도시의 경우 학부모 셋 중 한 명은 촌지를 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촌지 받는 교사도 셋 중 한 명일까. 교사 셋 중 둘은 촌지를 거절할까. 학부모 여러분, 그런 학교 본 적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 정도만 돼도 이 세상은 참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적어도 대도시, 특히 강남, 분당처럼 소위 '물 좋은' 학군에서는 아마도 교사 대부분이 (아니라면 상당수가) 받을 것이다. 강남 학부모의 36%가 촌지를 줬다고 해서 교사의 36%만이 촌지를 받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모든 학급에 촌지 주는 학부모가 36%는 존재하기 때문에 학급 간 편차가 있긴 하겠지만 얼마나 많이 받느냐가 문제이지 대부분은 받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촌지는 뇌물
촌지란 얼마 되지 않는 적은 선물, 또는 자기의 선물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촌지는 별로 작지도, 겸손하지도 않다. 현금이 수십만 원 오가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유독 교육계만 사실상의 '뇌물'을 '촌지'라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직업집단은 물론 같은 국가공무원들에게도 가차 없는 처벌이 뒤따르지만 교육계에서는 요상한 이름으로 포장된 채 계속 유지되어 왔다. 이건 특혜 정도가 아니라 반칙이다.
학부모들은 "스승의날(5월 15일)을 앞두고 학부모들은 속앓이를 한다"는데 많은 부모들은 "뜯겼다"고까지 한다. 그래서 이들은 "촌지 관행을 없애려면 단속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권익위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6.8%는 촌지 성격에 대해 '뇌물'이라고 답했다. '뇌물은 아니지만 없애야 할 관행'이란 응답도 똑같이 46.8%였다. 이는 자신이 뇌물을 한다는 자괴감을 피하려는 타협접 응답 아닌가 싶다. '감사의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라고 답한 비율은 6.4% 뿐이었다.
촌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뇌물이다. 개학 하자마자 뭘 배웠다고, 뭐가 감사하기에 촌지를 하겠는가. 그리고 촌지엔 요즘 뇌물죄 성립 여부를 따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가성'이 듬뿍 담겨 있다. 아니 넘쳐흐른다. 학부모들이 "우리 애, 잘 부탁드려요" 하면 교사는 "걱정 마십시오" 그러지 않는가. 그리고 실제로 차별하지 않는가. 부모가 촌지 안 하는데도 상 많이 받는 학생 봤는가. 부모가 때마다 인사하는데 교사에게 맞는 학생 봤는가. 특히 촌지 안 하거나 선물이 마음에 안 드는 경우 부모는 둘째 치고 아이한테 면박 주며 열 살도 안 된 아이의 어린 마음을 후벼 파는 것은 명백한 보복이다.
교사와 학부모가 돈을 주고받는 것은 '상거래'이지 '교육'이 아니다. 올바른 길을 가는 수많은 참스승들을 보호하고 이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리교사에 대한 징계는 엄해야 한다. 그리고 촌지 논란은 개혁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을 바로잡자는 것이다. 이는 타협의 대상도 아니고 두 번 생각할 일도 아니다.
촌지 받으면서 교원 평가 거부할 자격 있나
교사들은 교사가 존경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나도 그런 사회를 바란다. 그러나 단지 교사라 해서 우리가 존경해 줄 수는 없다. 교사가 교사다우면 당연히 존경하는 것 아니겠는가. 교사라는 직업을 방패 삼아 또 어린 학생들을 볼모 삼아 힘없는 학부모들을 상대로 나쁜 짓을 일삼는 교사들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학부모와 국민들은 교사들에게 변함없는 비난과 조소를 보낼 것이다.
교사들은 이제까지의 관행을 반성하고 스스로 나서야 한다. 촌지 근절을 제안하는 교장에게 별 희한한 이유를 내세워 반대하지 말고, 촌지 받지 말자는 교사 왕따 시키지 말고, 그리고 권익위가 나서게 하지 말고 교사들이 앞장서 뿌리 깊은 촌지문제를 없앤다면 우리는 당장 존경할 것이다. 이 낯 뜨거운 촌지관행이 계속된다면 나부터도 교사들의 교원평가에 열렬하게 찬성할 수 밖에 없다. 교원평가는 촌지 하나만으로도 그 당위성이 성립된다.
교사와 학부모 간에는 명백한 힘의 관계가 내재되어 있다. 아무리 스승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 할지라도 도가 지나치면 이는 결국 권력에 대한 자발적 순응의 결과일 뿐이고 또 거기엔 대가가 개입하게 마련이다. 졸업과 함께 스승의 품을 떠났던 제자가 어느 날 찾아와 손에 쥐어주는 그런 '촌지'가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교육자가 제자의 원망의 대상이 되고 학부모에게 조소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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