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로 이 글에서 "송영선", "동아"일보 "김순덕"이라고 실명을 밝히지 못하고 $$$, △△, XXX 등으로 모자이크 처리하는 까닭은, 내가 보기에 저런 망언은 자체로 충분히 명예훼손스러운 소리기 때문에, 말한 사람의 실명을 밝히는 것만으로 혹시나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지나 않을까 겁을 집어먹은 탓이다. 덧붙이거니와 내가 혹시나 OO일보와 △△일보를 혼동한 것이 아닌가 염려는 말기 바란다. 유력한 신문사가 보이는 다양한 행태 중에서, 특히 비행으로 보이는 일을 무력한 신문사들이 준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저질을 저질로 받아친 신해철의 응수는 개그콘서트의 "안 되겠니?" 이후 오랜만에 나를 실컷 웃게 만든 고질 개그다. "아줌마나 천황 밑으로 가라"와 "내가 북한 가면 인민가수, △△ 논설위원은 총살감" (신해철은 실명으로 말했지만 내가 무서운 나머지 모자이크 처리했다)이라는 카피는 자유분방한 논객으로서 김어준이나 진중권이 보여주는 말버릇의 쿨한 특성을 많이 닮았다. 박정희 무덤에 "침을 뱉는다"고 한 시인의 섬세한 정서를 착취해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장사속으로 활용한 조갑제의 뻔뻔한 도발을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로 (물론 장사속을 전혀 감추지 않고) 진압한 블랙 코미디와 경합할 만한 좋은 상대다. 본적이 어디냐고 묻는 경찰에게 "우리 아버지 신두(腎頭)"라고 답한 무애도인 춘성 스님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탈속한 선사가 아니고 정치사회 안에 속하는 시민으로서는 무애의 높은 경지임이 틀림없다.
▲ 가수 신해철 씨. ⓒ문화방송 |
나는 전에 신해철의 입시학원 광고출연 논란에 관해 "연예인에 대한 일시적인 관심" 정도로 치부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신해철 개인에 대해 부당한 과소평가이자, 연예인들에 대한 먹물계급의 편견이었음을 완전히 자백한다. 북한이 로켓(또는 미사일)을 발사했다가 절반 실패 또는 절반 성공한 일을 두고 국내 보수파 일각에서 나타난 패닉 현상을 "호들갑"이라고 꾸짖는다든지, "국제법상 어떻게 되는 건지, 연료 주입시간이 몇 주가 걸리는 게 과연 무기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안 하고 6.25 사변 시절로 들어가 공포분위기 조성으로 가"는 풍조를 비판하는 것을 보면, 존 레넌이나 밥 딜런의 사회비판의식만큼이나 뚜렷한 분별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세목에서는 신해철과 생각이 다른 부분이 내게는 많다. "핵의 보유는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가장 효율적이며 거의 유일한 방법임을 인지할 때, 우리 배달족이 4300년 만에 외세에 대항하는 자주적 태세를 갖추었음을 또한 기뻐하며, 대한민국의 핵주권에 따른 핵보유와 장거리 미사일의 보유를 염원한다"고 덧붙인 내용에 대해서는 전부 반대한다. 핵무기는 어떤 목적에도 효율적일 수가 없고, 배달족의 자주적 태세와도 이 일은 상관이 없으며, 대한민국의 주권 또는 어떤 다른 명분을 아무리 들먹여도 나는 핵무기나 장거리 미사일 따위는 보유하지 않기를 염원한다. 위악 삼아서 과장한 문구라고 에누리를 해서 읽더라도 여전히 남는 민족적 위신에 대한 갈망을 나는 민족적 열등감으로 본다.
그렇지만 신해철의 발언 자체는 한국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 대단히 소중하게 존중되어야 할 자산에 해당한다. 존중하는 것과 동조하는 것은 별개다. 신해철의 가치관이나 배짱에 반대한다면 그런 의견을 반박하거나 성토할 수 있다. 내가 싫어하는 의견을 수용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자유시민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것과 협박 또는 저주는 다르다. 반대하더라도 존중과 품위를 유지할 의무는 양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한다. 하물며 국회의원이나 언론인이라는 인종이 스스로 저질이기를 원한다면 저질 응수를 받아 싸다.
$$$의원의 말은 지면을 절약하기 위해 접어두고, "총살형" 운운한 △△일보 XXX논설위원의 망언이 왜 저질인지만 잠깐 보자. 영국 영화 <아버지를 마지막 본 게 언제지?(And When Did You Last See Your Father?)>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청소년기에 여자친구와 사랑을 나누고 주고받는 대화에서, "아버지가 싫어. 아버지와 너 둘 중에 한 사람을 총으로 쏴야 한다면 아버지를 쏠 거야"라고 하자, 여자친구가 "그 따위 소리는 다시 하지 마. 누구든 죽기를 바란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라고 받는다.
다른 예를 하나만 더 든다.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시리즈 5, 에피소드 10, "All By Myself")를 우연히 봤는데, 열다섯살과 열여섯살 짜리 자매가 서로 험하게 싸우다 다쳐 병원으로 실려온 장면이 나온다. 얼굴을 서로 할퀴어 피를 뒤집어 쓴 형상으로 병원에서도 계속 서로 욕질을 하다가, 동생이 언니에게 "네가 죽기를 바란다"고 저주한다. 우연히 그 직후 언니의 뇌에 문제가 생겨 뇌사 상태에 빠지자, 동생은 "언니가 살아서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내가 했던 저주가 되면 안 돼!"라고 울부짖는다.
이런 영화나 드라마의 제작진은 자기들이 코미디를 만든다는 자각이라도 있지만, △△일보 XXX논설위원에게는 자기 말이 저주일 뿐 개그로서 재미도 없다는 자각이 없어 보인다. 남북한이 따로 유엔의 회원국으로 가입한 1991년, 당시 노태우 정부는 북한을 하나의 정부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남북한 동시 유엔 가입에 대한 북한의 동의를 남한 외교의 승리로 간주했다. 신해철의 "찬양"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곧 북한을 이적단체로 본다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하고, 그렇다면 그런 "이적단체"더러 두 개의 정부로 함께 유엔에 가입하라고 (즉, 남한 정부를 인정해 달라고) 설득한 노태우 정부부터 국가보안법 상의 "고무"죄로 고발해야 아귀가 맞는다.
형제자매가 자라면서 싸우는 일은 흔하다. 아들이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도 예삿일이다. 의견이나 정서가 달라서 말다툼이나 논쟁을 하다보면 심사가 뒤틀려 심술이 나는 것까지도 보통이다. 하지만 심술을 발전시켜서 상대를 저주하기 시작하면 철딱서니가 없는 짓이고, 공론형성을 임무로 봉급을 받는 인종들이 철없는 십대의 무책임한 말투밖에는 흉내낼 것이 없다면 불쌍한 단계를 지나 반사회적인 범죄에 가까워진다.
여기저기 뒤져보니 $$$의원은 나이가 오십대 중반씩이나 되지만, △△일보 XXX논설위원은 신해철과 연세 차이도 별로 없다. 그래서 곰곰이 따져보니, 유신시대에 대학교를 다녔든 전두환 시절에 고등학교/대학교를 다녔든, 남을 저주해서 칭찬받는 버릇은 충분히 양성될 수가 있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치기보다 먼저 조직 내부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도록 세뇌하는 경향은 모든 폭력조직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히틀러의 유겐트, 알카에다나 하마스의 소년단원들, 그리고 가미가제 등은 소년 관창을 전쟁 목적으로 이용한 신라의 기성세대와 동일한 발상에서 파생한 변종들이다. 일반적으로 자유사회라 불리는 영미와 유럽에서도 애국심 교육의 바탕에는 적을 공격할 때 선봉에 서라는 집단적 전투의식이 깔리기 마련이다.
싸워야 할 때 싸워야 하고, 죽기로 싸워야 할 때 죽기로 싸워야 하는 것은 동어반복인 만큼 틀릴 수가 없는 말이다. 문제는 언제가 죽기로 싸울 때냐는 것이다. 아버지가 너무 속물이라고 아버지와 죽기로 싸울 아들도 있을 수 있고, 언니와 말다툼하다가 언니가 죽기를 바라는 동생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개는 일시적인 분을 못 참은 탓으로, 실제 그렇게 돼 버린다면 나중에 누구보다도 본인이 평생 후회할 것이다. 성숙이란 일시적인 심술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대 저들"이라는 이분법에만 사로잡혀 증오의 노예가 잠시 되었더라도, 고개를 떨치며 정신을 차리고 상황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균형감각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임을 존중하고, 내 맘대로 윽박지르지 않는다면 성숙한 사람이며 곧 쿨한 사람이다.
그런데 $$$의원이나 XXX논설위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 대부분이 신해철만큼만 쿨하다면 대한민국이 자주 누리는 국제적인 우세 한 가지는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엊그제 뉴질랜드 국회의사당을 구경 갔다가 안내를 맡은 직원에게, 회의장에서 몸싸움이 일어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로비에서 의원들끼리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간 적은 있었지만 회의장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 직원이 대답하는 사이, 다른 직원은 아시아에서 그런 일들을 자기도 뉴스에서 봤다고 끼어든다. 작년에 벌어진 바리케이드, 소화기 살포, 그리고 해머로 문 부수기 등을 염두에 두고 물은 것인데, 집에 돌아와 뉴스를 보니 이번에는 외통위에서 또 몸개그가 벌어졌다. 우선 신성한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일을 왜 몸개그로 봐야 할는지부터 설명이 필요하겠다.
노무현-부시 사이에 맺어진 한미 FTA가 수정 없이 미국 의회를 통과하리라 기대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점은 다 접어두고 그냥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회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만 생각해도 무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미국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모든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해 왔고, 더군다나 한미 FTA에 관해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해서 재협상을 공언하고 있다. 도무지 한국 국회가 서둘러 비준을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안건이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석사를 받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박사를 취득한 후 뉴캐슬대학 정치학과에서 조교수를 지냈다는 경력으로,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자리를 차고앉은 박진(한나라당, 서울 종로) 의원이 앞장을 섰다니 더욱 기가 막히다.
▲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위해 박진 위원장을 엄호하고 있는 송영선 의원. ⓒ프레시안 |
의사봉을 야당의원들에게 빼앗기자 손으로 "탕탕탕" 쳤다는 것도 개그지만, "절차상 하자"라고 시비가 붙자 자기들끼리 다시 모여 "재의결"을 했다니, 한국 슬랩스틱의 최고봉이었던 배삼룡 옹이 병원비를 못 내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표절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박진 의원이 몸소 조롱거리로 전락해서 국민들에게 쓴웃음을 선사하려고 했기라도 한다면 좀 낫겠지만 그럴 리는 없어 보인다. 케네디스쿨 석사에 옥스퍼드 박사가 미국 의회의 속성을 몰라서 저랬다면, 신정아 비슷한 연상이 자꾸만 일어나려고 하니 그럴 리도 없다고 서둘러 도리질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는 것은 결국 화랑 관창에서부터 십자군, 유겐트, 가미가제, 홍위병, 마피아, 탈레반, 하마스, 알카에다, 그리고 최근 들어 OO, XX, △△일보 따위 암호명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의 유력하거나 무력한 언어폭력조직들을 한 줄로 배열했을 때 시야에 들어오는 철딱서니다.
쿨하지 못한 철딱서니는 한나라당만이 아니라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에서도 보이고 있다는 점을 못 보면 대한민국 국회판 슬랩스틱의 진수를 이해하지 못한 셈이다. 한미 FTA 비준을 서두르는 짓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논란의 여지없이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회에서 품위 있는 조롱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재협상이 시작되는 날을 망신기념일로 삼는 데에 동의하라고 사전에 못을 박아두는 데에 있었다. 한나라당 지도급 인사의 입에서 가령 "재협상이 벌어지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따위의 허풍이 나와 널리 공표되도록 유도한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협상이 만약 벌어졌을 때 어떻게 둘러대는지를 국민들로 하여금 잊지 말고 관찰하도록 호소하는 것이다.
하기야 드잡이질이라는 것도 "경국대전 이래" 우리 국회의 전통이자 관습이라고 얼버무린다면 지난 일까지는 봐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이제 6월로 예정된 본회의 절차에서는 좀 쿨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겠니? 한나라당이 아무리 서둘러봤자 미국의 연방의원들이 지역구 유권자들의 항의를 무릅쓰고 '명박리'의 체면을 세워줄 리는 없으니 어차피 재협상은 불가피하다는 자신감을 좀 보여주면 안 되겠니? 그냥 표결에 참여하면 관행상으로 싱거우니까, "육탄반대"를 위협해서 다른 사안에서 적당한 수준의 양보를 얻어낸 다음 못 이기는 척 표결에 임해주면 안 되겠니?
여기까지 쓰고 나니, 신해철만큼 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늠이 된다. 가미가제 특공대 소년의 마음에 관용에서 비롯되는 인류애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것은, 조선중앙방송 앵커에게 신경민 씨의 유머감각을 바라는 셈과 같지 않겠는가? 그러니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들, 그리고 △△일보의 XXX논설위원에게 신해철만큼만 쿨하기를 바라는 것만으로 신해철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하면 도저히 항변할 재주가 없다. 쿨한 신해철이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할 리는 없다고 맘을 놓고 하는 소리지만, 혹시나 $$$의원과 △△일보의 XXX논설위원이라면 뜬금없이 신해철의 명예를 위한답시고 나를 고발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법치 전문가에게 상담해보기 전까지 장담 못하겠다. 이래저래 명예와 법치라는 말들이 요즘 무척이나 고생이 심한 듯하여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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