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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유연성 상실이 가장 심각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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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유연성 상실이 가장 심각한 문제"

[화제의 책]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그는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 가장 '껄끄러운' 반MB(이명박) 논객 중 하나다. 왜? 그는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시장주의자'다. 비주류 경제학자라면 '좌빨'이라고 몰아붙이면 되겠지만, '시장주의자'가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둘 중 하나는 '가짜 시장주의자'라는 것이니 난감할테다.

이준구 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와 언론을 통해 발표한 사회참여적 글을 묶은 책 <쿠오바디스 한국경제>(푸른숲 펴냄)를 냈다. 제목 그대로 '한국경제가 지금 어디로 가는가'를 묻고 있는 책이다. 그가 생각하는 정답은 간명하다. '오른쪽'이 아니라 '옳은쪽'을 향해야 한다. 즉, 이념이 아니라 합리성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오른쪽이 아니라 옳은쪽을 향해"

▲ 이준구 교수의 <쿠오바디스 한국경제> ⓒ프레시안
'강의를 통해 사회적 소신을 밝히는 교수'에 만족하던 이 교수가 '논객'이 된 것은 지난 2006년부터다.

"갑자기 보수의 물결이 우리 사회를 휩쓸게 되면서 오직 한 가지 소리만 들려오기 시작하는 게 아닙니까? "시장은 좋고 정부는 나쁘다. 환경규제든 부동산규제든 모두 풀어버려야 한다. 기업의 기를 살려줘야 우리 경제가 살아난다. 부자를 못살게 굴면 안된다." 어디를 가든 이런 소리만 들릴 뿐 이와 다른 소리는 전혀 들을 수 없었습니다. 신문을 펴들고 그 안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어느 신문인지만 알면 그 안에 무슨 얘기가 씌어 있을지 뻔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여론이 무작정 한쪽으로만 쏠리는 걱정스러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통 보수의 회오리 바람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것도 합리적 보수가 아닌 거의 도그마에 가까운 보수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수 일변도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을 느꼈습니다."

이 교수는 스스로 '보수와 진보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주류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다는 평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비판의 화살은 왜 줄곧 '우파'를 향해 있는가? "지금 보수가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념적 입장을 떠나 객관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져야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합리성'을 잃어버린 보수집권세력

더구나 그가 보기에 현재 집권한 '보수'세력은 매우 위태위태하다.

"우리사회의 보수, 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현 정부는 거의 우파 이념의 포로가 되어 있는 듯 행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어느 나라의 보수도 우리나라처럼 이념적으로 경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동기야 어찌되었든, 그들은 유연성을 상실한 과격 이념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유연성 상실이 현 정부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입니다. 이념을 떠나 유연한 자세로 정책을 평가하면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제대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처럼 합리성과 유연성을 잃어버린 보수 집권세력이 집권 이후 밀어붙이고 있는 "좌파 정부 10년의 대못 뽑기"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정책을 공부한 사람은 소위 개혁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압니다. 개혁을 한답시고 추구한 변화가 결국 개악이 되고 마는 사례가 셀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고 계획이 치밀하다 하더라도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지기는 무척 어려운 것인 현실입니다. 정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만이 이것저것 바꿔놓기만 하면 개혁이 된다고 믿을 따름입니다. 제가 보기에 정부는 지금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실험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정책 프로그램은 검증되지 않은 소박한 아이디어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 정책을 실행에 옮겼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그들의 기대와 판이하게 다를 가능성이 큽니다. 설익은 아이디어의 섣부른 실험은 예기치 못한 재앙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라는 강력한 지원군을 동원, '위헌 판결'을 끌어내 성공적으로 무력화시킨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한반도 대운하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추진하는 4대강 살리기 등은 이명박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종부세에 대해 "어떤 세금이든 나름대로 문제점을 갖고 있고, 종부세도 몇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특별히 나쁜 세금은 아니다"며 "그런데도 종부세를 당장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보수진영과 정부를 보면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대운하에 대해서는 "적어도 국민의 반수 이상이 반대하는 사업을 강행하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한 도박"이라면서 "설사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첫 삽을 뜨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틀림없이 나타날 극심한 국론 분열과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정부가 감당하기 힘든 정치적 부담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고 경고했다.

"종부세 완화,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교수는 세금을 주요 연구대상으로 하는 재정학자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완화 정책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세대별 합산과세가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에 기반한 이명박 정부의 종부세 완화 정책은 세금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수평적 공평성'(동일한 경제적 능력의 소유자는 동일한 조세 부담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저버리고 있기 때문.

이 교수는 같은 아파트의 옆집에 사는 두 부부의 경우를 들어 헌재 결정이 왜 '수평적 공평성'을 저버리고 있는지 설명했다. 501호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파트 등기가 되어 있는 반면 502호는 부부 공동명의로 등기가 돼 있다면, 이 두 세대는 2007년까지는 종부세를 똑같이 납부했지만, 헌재 결정으로 502호만 종부세를 돌려받게 됐다는 것. 정부는 단독 등기 주택 소유자들의 반발을 한시적으로 상속.증여세를 감면해줘 공동명의로 등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미봉책'으로 이 문제를 덮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세제도를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운영하다 보면 아무 원칙도 없는 누더기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 이 교수는 "정부는 그동안 종부세의 실질적 무력화를 추진하면서 단 한명도 억울한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다"며 "이제 수만, 아니 수십만 명의 억울한 사람이 나왔는데 이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람직한 조세제도가 가져야 할 성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세부담의 공평한 분배"라면서 "조세부담이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재는 '결혼중립성'이라는 사소한 중요성을 갖는 원칙을 충족하기 위해 수평적 공평성이라는 헌법과도 중요한 원칙을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시 세대별 합산과세로 돌아가지 않는 한 수평적 공평성의 회복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라며 "솔직히 말하면 이제 저도 종부세에 대한 미련이 없다. 이런 누더기 꼴로 남아 있느니 차라리 없어져버리는 게 더 낫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종부세가 제대로 시험되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퇴장의 운명을 맞게 된 것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누구를 위한 정부냐"는 물음


▲이준구 교수. ⓒ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이명박 정부의 '경직된 이념'이 더욱 위험한 이유는 현재 세계경제는 대공황 이래로 가장 큰 위기에 처했기 때문. 특히 현 위기는 시장의 실패, 또 시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정부 실패의 결과다. 이 교수는 "시장의 탐욕이 시스템의 위기를 가져오고, 결국 그 뒤치다꺼리는 납세자의 몫이 된다. 정부가 시장의 고삐를 놓쳤을 때 얼마나 큰 위험이 닥칠 수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규제완화'를 고집한다. 또 부자를 더 잘 살게 해줘야 저소득층도 그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트리클 다운 효과'를 반복해 주장한다.

이 교수는 "그 동안 이명박 정부는 경제.사회 정책의 기조를 오른쪽으로 돌려놓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렇게 이념을 앞세우다 보니 민생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념도 결국 민생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했다"고 평가했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는데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종부세 등) '부자 감세'에만 정신이 팔린 이명박 정부가 '실패한 부시 정부'를 뒤따를 수도 있음을 경고했다.

"부자를 더 부유하게 만들어줘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은 구시대의 낡은 패러다임입니다. 이 패러다임에 기초를 둔 레이거노믹스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레이거노믹스의 잔광을 되살리려 안간힘을 쓴 부시 행정부는 미국 국민을 불행의 구덩이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8년으로 충분하다"라는 구호가 왜 한순간에 미국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이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명박 정부에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말보다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을 더 열심히 듣도록 노력해달라"며 "누구를 위한 정부냐는 물음이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이미 자신들의 눈에 '좌빨' 교수로 찍힌 이 교수의 조언을 현 정부가 얼마나 귀담아 들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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