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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사과'보다 더 참담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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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사과'보다 더 참담한 것

[김종배의 it] 권 여사가 '내조의 여왕'이 아닌 다음에야…

참담했지만 그래도 한 가닥 위안거리는 건지는가 싶었다.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덤터기를 쓸까봐 사과문을 올린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죽지 않은 양심'을 확인하는 줄 알았다.

근데 묘하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요소가 눈에 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말은 다르다. "받은 것" 이 아니라 "빌린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과문을 발표하기 전에 "미리 만나서 의논했(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근래에 알았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차원이 완전히 다르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면책' 여지를 확보하게 된다. 권양숙 씨에게 건네진 3억원('조선일보'는 10억원이라고 보도했다)이 "빌린 것"이라면, 더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사실을 재임 중에 몰랐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부적절' 소지는 남을지 몰라도 '불법' 소지는 옅어진다.

▲ 노무현 전 대통령. ⓒ뉴시스

인정하고 싶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전직 대통령이 '검은 돈'을 받은 게 아니라는데, 전직 대통령이 '검은 돈' 때문에 사법처리 되는 정치적 비극을 면할 수 있다는데 그 어떤 국민이 마다하겠는가.

헌데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또 다른 말이 덜미를 잡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정치를 오래 했고 원외생활도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신세를 지다 보니 남은 빚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과문에서 밝힌 "미처 갚지 못한 빚"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치에 맞지 않고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주장에 따르면 권양숙 씨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도록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권양숙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개인적으로 돈을 받았을까?

여염집 부인이라면 모르겠다. 남편에 헌신적인 '내조의 여왕'이라면 모르겠다. 남편에 부담을 주기 싫어 혼자 짊어지고자 한 것으로 넓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권양숙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영부인이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대통령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 상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공인'된, 그래서 세상이 주목하는 사람이었다. 영부인이 남편이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던 때(2005-2006년)에 언제 탈이 날지 모르는 사람과 가장 민감한 '돈 거래'를 하면서 남편 몰래 했다는 것을 납득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다고 치자. 이치에 안 맞고 상식에 부합하지 않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 그럼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

권양숙 씨가 2005-2006년에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3억원(또는 10억원)을 빌렸다면 기록에 남았어야 한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재산공개내역 어디에도 그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2006년 12월 말 기준으로 권양숙 씨에게 1억 6400만원의 채무가 있는 것으로 기재된 적이 있지만 이건 분양받은 아파트 중도금을 내기 위한 대출금이었다. 더구나 이 부채는 2008년 2월 14일 기준 재산공개내역에선 사라졌다. 갚았다는 뜻이다. 지금에 와서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스스로 시인하고 사과할 성질의 채무가 아니었던 것이다.

혹시 이런 걸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3월 박연차 회장에서 써줬다는 15억원 차용증에 포함된 빚이었을까? 이렇게 이해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악성이 된다. 그럼 돈을 빌린 시점을 바꾼 것이 되고, 재임 중에 빌린 돈을 퇴임 후에 빌린 것처럼 '포장'한 것이 된다. 이건 '세탁'이다.

무너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제 사과문을 올리는 순간, 더 멀리 보면 노건평 씨의 행적이 드러나는 순간 마지막 호평은 무너졌다. '그래도 도덕성은 인정해야 한다'는 외줄기 호평마저 무너져 내렸다.

이보다 더한 참담함을 감내할 국민은 없다. 차제에 밝혀야 한다. 어제 발표한 사과문이 또 다른 논란과 의혹을 낳는 걸 스스로 막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조사에 응하여 진술할 것"이라고 했고,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먼저 자세한 내용을 다 밝히고 나서면 마치 수사에 미리 선을 그으려고 하는 것처럼 비칠 것 같아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지만 납득할 수 없다. 사법에 대한 태도와 국민에 대한 태도를 가르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참담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러지 않았는가. 연단에 올라 "청탁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 때의 호언이 진심어린 것이었다면 다시 연단에 서야 하다. 그 때 그 연단에 서서 고개 숙여야 한다. 검찰 조사실을 응시할 때가 아닌 것이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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