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정부는 국채를 22조 원 발행하고 세계잉여금 2.1조 원, 기금 여유자금 3.3조 원, 그리고 기금 차입금 1.5조 원 등을 확보하여 이를 재원으로 추가경정 예산 편성에 나서겠다고 한다.
이렇게 확보된 28.9조 원 중 11.2조 원은 대규모 감세와 경기침체로 인해 발생하는 세입결손 보전에 쓰이고, 나머지 17.7조 원은 일자리 유지·창출 및 민생 지원에 쓰인다.
(세계잉여금이란, 재정 운용 결과 당초 예산상 목표로 잡았던 세수액(稅收額)을 초과해 징수되었거나 지출이 세출예산보다 적어 사용하지 않은 금액이 발생한 경우, 이 초과 징수된 세입과 쓰지 않은 세출불용액(歲出不用額)을 합한 금액을 말한다.)
2. 이명박 정부가 제공한다는 일자리의 질은…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정부가 추경을 통해 만들어낸다는 일자리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청년 일자리, 공공근로 일자리, 노인 일자리가 그것이다.
(1) 청년 일자리의 경우 정부는 478억 원을 투입하여 학습보조 인턴교사 2만 5000명을 채용하고, 323억 원을 투입하여 대졸 미취업자 7000명을 조교로 채용하겠다고 한다. 이들 일자리들은 6개월간 한시적으로 유지되는데 개인당 월평균 근로소득은 전자의 경우 32만 원, 후자의 경우 77만 원 정도에 해당된다.
(2) 공공근로 일자리의 경우 정부는 2조 원을 투입하여 40만 명에게 6개월간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이 경우 1인당 월평균 근로소득은 83만 원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된다.
(3) 또 정부는 277억 원을 투입하여 3만 5000명의 노인들에게 6개월간의 한시적인 일자리를 제공한다. 1인당 월평균 근로소득은 13만 원 정도 된다.
이명박 정부가 추경을 통해서 제공한다는 일자리는 모두 다 6개월의 시한을 가진 한시적인 일자리이고 그 질은 매우 낮은 것이다.
3. 이명박 정부는 왜 질 낮은 일자리만을 제공하는 것일까
이것은 기본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동반성장전략보다는 불균형성장전략을 선호하는 레이거노믹스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연평균 20조 원 이상의 부유층 감세는 영속성을 가져야 하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2~3조 원의 사회안전망은 영속성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들의 사고방식은 1930년대 루스벨트 행정부의 사고방식과는 180도 그 방향이 다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1930년대 루스벨트 행정부는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사회보장세를 신설하는 등 사회보장제도의 초석을 다졌다. 물론 당시는 경제위기 상황이었고 또 제도 시행 초기였기 때문에 그 세율은 높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계층간 고통분담'을 지향했고 증세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루스벨트 행정부의 '계층간 고통분담· 동반성장전략'은 1930년대에는 그 세율이 낮아 괄목할 만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지만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큰 성과를 거두어 이른바 '미국경제의 황금기'를 가져오게 된다.
다음에 소개하는 그림과 표는 지난 2월 17일 한국환경회의 주관 녹색뉴딜 토론회에서 한국개발연구원(KDI) 유종일 교수가 발표한 발제문, <녹색뉴딜 비판과 대안>의 일부분이다.
<소득상위 0.1% 계층의 소득점유율>
<세계 각 지역의 일인당 GDP 성장률>
(주) EC는 유럽중심부, EP는 유럽주변부, LA는 라틴아메리카. (출처) : 유종일, "녹색뉴딜 비판과 대안", 2009. 2 |
4. 추경은 한시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시민단체는 지금은 추경을 편성할 것이 아니라 수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이런 요구를 하는 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정부는 추경안 발표문을 통해 자신들의 경기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에 추경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정부의 경기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에 추경을 요청하는 것이라면 세입예산, 세출예산 모두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경기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에 세입예산, 세출예산 모두를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라면 2008년 잘못된 경기예측으로 인해 감행된 천문학적인 감세 또한 철회되어야 하는 것도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윤증현 장관은 추경관련 기자회견에서 일관성 운운하며 감세철회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는데 잘못된 것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것을 '일관성'이라 강변할 수는 없다. 일관성이란 수미일관되게 모든 것을 옳은 방향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정부의 경기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에 세출예산을 변경하는 것이라면, 정부의 경기예측이 빗나갔기 때문에 세입예산 또한 변경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일관성'이다. 그리고 2009년 세입예산의 전제가 된 각종 감세법들도 모두 다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5.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일자리 창출방안은…
시민단체들의 기본입장은 연평균 20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감세를 철회하고 그 재원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월급여 수준은 120~200만 원 수준(연급여로 1440~2400만원)에 해당하는 일자리 100만개 이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5일 민생민주국민회의(준)가 발표한 일자리창출 정책대안에 따르면 시민단체들은 총 16조 2759억 원을 투입하여 양질의 일자리 91만 8148개를 만들자고 한다.
[표] 민생민주국민회의(준)의 일자리창출 정책대안 종합 추계
(출처) : 민생민주국민회의(준), "일자리창출 정책대안" |
6. 정부의 추경안, 지방경제에 도움이 되나
현행 지방교부세법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르면 대규모 감세로 연평균 20조 원의 내국세가 줄어들게 되면 대략 8조 원의 지방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줄어들고, 더불어 2~3조 원에 달하는 부동산교부금 등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재정을 2008년 수준으로 현상유지라도 하게 하려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10조 원 이상의 지방 교부금을 별도로 교부해야 한다.
물론 대규모 감세조치로 인한 총국세 세수가 2009년 12조 원, 2010년 22조 원, 2011년 25조 원 이런 식으로 줄어 나기 때문에 지방재정 교부금도 2009년 6조 원, 2010년 10조 원, 2011년 12조 원 이런 식으로 줄어 들겠지만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 문제를 지방채 인수를 통해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5조 3000억 원(2009년)을 빌려 주는 형식으로 지방재정의 결손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MB정부의 이런 정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지방채 인수가 지방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감소로 인한 지방재정 불균형 심화라는 문제점을 전혀 해소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방교부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단순히 지방재정 보완장치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고 지방재정 불균형해소장치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MB정부의 지방채 인수정책은 이런 지방재정 불균형해소장치 복원에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지방채 인수가 1990년대 일본에서처럼 지방재정의 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이다. MB정부가 중앙정부의 대규모 감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지방교부금 교부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지방부채를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면 지방재정건전성은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1990년대 일본의 중앙정부는 MB정부처럼 대규모 감세를 하지도 않았었고 그 부담을 지방정부에 전가하지도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일본 지방정부들은 비효율적인 토목공사에 몰두하여 재정건전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켰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지방정부들은 1990년대 일본 지방정부들과 같이 비효율적인 토목공사에 몰두하고 있고 대규모 감세의 부담을 고스란히 전가받게 되었다. 향후 지방재정 건전성이 심각하게 나빠질 수도 있다는 신호다.
7. 정부의 추경안, 저소득층에 도움이 되나
정부는 한시적인 생계구호 대책의 일환으로 국고 4181억 원과 지방재정 1204억 원을 투입하여 저소득층 50만 가구에게 6개월간 월평균 18만 원씩 지원한다고 한다. 물론 이런 정책들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지나치게 한시적이고 소규모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행정부는 이런 식으로 뉴딜정책을 추진하지는 않았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인 정운찬, 이준구, 양동휴, 유종일 교수같은 학자들이 자주 강조하는 것이지만 뉴딜의 핵심은 테네시강 개발 등등의 토목 공사가 아니다. 1930년대 뉴딜과정에서 토목공사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았었다. 오히려 영구적인 성격을 가지는 사회보장제도의 구축이 뉴딜의 핵심이었다.
우리 정부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사회 안전망 구축에 지나치게 소극적이어서는 곤란하다. 소비 성향이 매우 낮은 고소득층을 챙기느라고 소비성향이 매우 높은 저소득층 대책에 소극적이면 경기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기 회복이 더뎌지면 저성장 국면이 장기화되어 1990년대 일본처럼 '저성장 → 소비심리위축 → 저성장'이라는 악순환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8. 4대강 정비사업이 미래대비형 투자인가?
정부는 이번 추경안에서 미래대비형 투자의 하나로 4대강 정비사업을 지목하고 1조 원을 투입한다고 한다. 그러나 4대강 정비사업처럼 시급성도 없고 경제적 효율성도 없는 사업은 미래대비형 투자라고 볼 수 없다.
정부가 진정으로 수질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전국적으로 10만 개에 달하는 도랑 등 소하천 관리부터 제대로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의 환경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 도랑의 22%가 5급수라고 한다. 5급수는 생활용수로서는 전혀 쓸 수 없고 공업용수로 쓰더라도 특수정수처리를 해야 이용할 수 정도의 물을 말한다. 전국 도랑 중 22%가 그런 수질상태란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이렇게 시급성이 요구되는 부분은 외면하고 4대강 본류에서 뱃놀이식 관광사업이나 하자는 식으로 4대강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추진되는 4대강 정비사업은 결코 미래대비형 투자사업이 될 수 없다. 사업의 경제적 효율성이 극도로 낮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1990년대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4대강 정비사업과 같은 안이한 방식으로 관광유도형 토목 공사를 남발해서 감당하기 어려운 빚더미에 앉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9. 정부 추경안, 중앙정부 재정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나
정부의 추경안 발표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는 GDP 대비 38.5%, 영국은 47.5%, 미국은 62.8%, OECD 평균은 75.4% 이렇게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자료는 매우 심각한 오해의 산물일 뿐이다.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정부부채 산출기준은 전혀 다르다.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의뢰로 한국재정학회가 연구·발표한 보고서(연구 책임자는 옥동석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반회계. 특별회계, 일부 기금의 국채. 차입금. 국고 채무부담 행위 등만을 국가 채무에 포함 시키고 있다.
그러나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일반회계, 특별회계 이외에도 기금 전체와 준정부기관 전체의 우발채무와 충당금을 제외한 부채 전체를 정부부채에 포함 시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정부부채 통계를 단순 비교하면 곤란하다. (참고 : 준정부기관은 공기업과는 개념적으로, 그리고 법규적으로 구별된다.)
한국재정학회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우리나라 정부부채를 선진국의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GDP 대비 76.3%에 달한다고 한다. 그것이 33.2%에 불과하다는 정부 발표와는 큰 차이가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정부는 매우 협소한 국가채무 기준으로 우리나라 정부부채 규모를 축소하여 발표하고 재정건전성 지표에 여유가 많다며 대규모 감세를 하고 대규모 국채발행을 하려 하고 있다.
자주 반복하는 것이지만 1990년대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일본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았었다. 일본 정부가 이명박정부와 유사한 방식으로 경제적 효율성이 극도로 낮은 토목공사에 열중하고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사이 정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0. 정부의 추경안, 경기회복에 도움이 되나
연평균 20조 원에 달하는 부유층 감세를 철회하고 그 재원으로 경기부양을 한다면 성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정상적인 과정을 회피하고 대규모로 빚을 내고 지방정부에 부담을 전가하면서 경기 부양을 하게 되면 재정건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심각한 부채의 늪에 빠지게 되면 그 자체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위축감을 불러 일으키고 국민들의 심리적 위축감은 경기회복에 큰 걸림돌이 된다.
모든 빚이 다 그러하듯이 빚은 가까운 시일 내에 갚아내지 못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속성이 있다. 1990년대 일본도 정부의 기대와 달리 4~5년 이상 경기회복이 되지 못하자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우리나라라고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더구나 현재 정부는 공공연하게 경제적 효율성은 따지지도 말라고 하면서 경제적 효율성이 극도로 낮은 토목공사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이명박 정부의 무분별한 태도는 이명박 정부 스스로에게나 한국경제에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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