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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가 '사고'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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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가 '사고'치는 진짜 이유

[정희준의 '어퍼컷'] '병역 면제'에 목 맨 한국 야구

3년 전 1회 대회 당시의 광분을 넘어설 분위기다. 언론은 한국팀의 승리를 찬양하는 기사를 마구 토해내고 있다. 특히 '외신'이 많이 등장한다. 언론에 따르면 외신들이 준결승 경기 결과를 '일제히 크게 보도했다'는데 '한국 야구에 대한 놀라움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한국 야구의 위용에 세계는 깜짝 놀라고 있다'고 한다. 세계가 경악했단다.

이럴 때가 바로 우리 언론에겐 '외신 배달 시즌'이다. 지금 한국 언론에게 주어진 최고의 임무는 '외신 전하기'가 아닌가 싶다. 한국팀이 승리한 후의 기사들 대부분은 그냥 '외신짜깁기'다. 문제는 짜깁기를 해도 꼭 일제시대 신파극조의 짜깁기만 한다는 것이다. 뭐 그리 놀라고 경악할 일이 많은가. 그리고 경악을 해도 왜 꼭 '세계가 경악했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나. 그냥 '미국 야구계가 참으로 심하게 놀랐다' 그러면 되지 무슨 놈의 세계? 우리나라 언론은 이웃집 김씨가 놀라도 '세계가 경악했다'고 하나?

▲ 21일(현지 시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에서 6회초 김태균이 홈으로 쇄도, 득점을 올리고 있다. ⓒAP=뉴시스

세계는 조용했다

한반도에 스포츠가 들어온 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포츠는 민족적 콤플렉스를 치유해주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확인시켜주는 '집단 세례'의 기능을 해왔다. 그런데 100년이 지나도록 스포츠는 '이성의 영역'에서 점점 더 먼 쪽으로 흘러갔다. 21세기 한국의 스포츠는 아직도 자기만족, 자아도취의 세계일 뿐 아니라 대중 마취와 집단 환상을 조장하는 대중 종교의 성전이고 집단 자위의 집결지가 되어가는 듯하다. 대중문화를 아편에 비유한 학자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스포츠는 '국민 히로뽕'이다.

마침 미국에 있는 관계로 여러분께 이곳 현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미국은…, 조용하다. 놀랐다는 사람도 아직 못 봤다. '경악'했다는 그 '세계'는 어느 동네에 있는 세계인지 잘 모르겠다.

WBC가 시작한 이후 꽤나 많은 이곳 사람들에게 물어봤지만 대부분은 그런 대회가 있다는 정도만 알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참고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포츠와 관련된 사람들이다.) 궁금했다. 저녁 무렵 스포츠바에 가봤다. 실내 여기저기에 TV가 열 개쯤 매달려 있다. 온갖 스포츠 중계가 화면에 펼쳐지지만 스포츠바에서도 미국팀 경기가 아니면 WBC는 볼 수 없다.

참으로 궁금해졌다. 그래서 신문을 펼쳐봤다.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 신문인 <USA투데이>를 사서 스포츠섹션을 펼쳤다. 스포츠섹션만 무려 열 쪽이다. 그러나 WBC기사는 딱 내 손바닥만 했다. 사진 포함해서. 지난 18일 미국이 푸에르토리코를 상대로 극적인 9회말 역전승을 거둔 기사도 내 손바닥을 넘지 못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야구팬들은 다르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메이저리그 야구팬일수록 WBC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미국 야구팬들에겐 메이저리그 팀들의 스프링캠프가 더 중요하다. 그들에겐 미국팀의 WBC 우승 여부보다 이번 시즌 뉴욕 양키즈 중견수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WBC 2라운드 경기 대부분의 관중 수는 현재 진행 중인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관중 수(보통 1만~2만 명)에 못 미쳤다. 사실 현재 우리 언론이 인용하는 그 외신 기사들도 그 중 상당수는 스프링캠프 훈련지에서 쓰였을 것이다.

메이저리거가 많으면 강팀?

한국팀이 결승에 진출하자 이런 '외신'을 전하는 기사들도 많이 보인다. '한국, 이렇게 강한데 왜 빅리거가 한 명뿐인가' 하는, 매우 훌륭한 질문이다. 미국팀은 전원이 메이저리거고 한국팀이 10대 2로 바퀴벌레 잡듯 눌러버린 베네수엘라는 스무 명이 넘는다. 일본도 다섯 명인데 우리는 달랑 추신수 한 명이다. 그런데도 한국팀은 항상 이긴다. 3년 전 WBC에서 4강이었고 작년 올림픽은 전승으로 우승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메이저리거가 많을수록 강팀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은 WBC의 경우엔 정확하게 틀린 답이다. 메이저리거들에게 3월은 몸을 만들어야 할 스프링캠프 기간이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의 WBC 경기 출전은 스프링캠프처럼 몸만들기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래서 절대 무리 안 한다. 조금만 다쳐도 나머지 경기 전부를 포기한다. 메이저리거가 가장 많은 미국팀에 부상 선수가 가장 많은 이유가 사실은 이것이다. 특히 투수들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더 예민하다. WBC가 투수들의 투구수를 제한한 초등학교 야구 같은 희한한 규정도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배려한 것이다.

게다가 WBC에 출전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엔 불안하고 찜찜하게 대회 기간을 보내야 하는 선수도 있다. 대회 기간 중에 소속팀 포지션이 변동이 있을 수도 있고 또 트레이드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사실상 스프링캠프에 가 있는 것이다.

사실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를 위해 출발한 WBC는 정작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선수들에겐 애매한 존재다. 우선 선수들이 WBC 출전을 꺼리는 데다가 구단은 선수를 보내더라도 조건까지 내건다. 구단이 정한 포지션 외에는 출전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추신수도 외야수로만 뛰게 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많을수록 그 팀은 강할 수 없다는 게 WBC의 현재 상황이다.

한국팀이 사고치는(?) 원인?

그럼 한국팀은 왜 강한가. 마침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다. 바로 '병역 면제 추진' 기사다. 이거다. 한국 야구의 힘의 원천 말이다. 승리의 열쇠다.

스포츠는 분위기를 많이 탄다. 그래서 분명한 '내 실력'과 '네 실력'이 있음에도 원정경기냐, 홈경기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지고, 감독이 누구냐, 주장이 누구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 경기 결과에 무엇이 걸렸느냐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차이는 경기 막판 기진맥진해 더 이상 뛸 수 없는 사람을 주저앉게도 만들고 죽어라 뛰게도 만든다.

지난 올림픽 야구 준결승에서 대회 기간 내내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던 이승엽은 일본을 상대로 8회 극적인 역전 홈런을 날려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런데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그는 그간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울면서 간신히 말을 이어갔는데 그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그 동안 후배들한테 너무 미안해서…" 국민한테 미안한 게 아니고 후배들한테 미안했단다. 그 후배들이란 어떤 후배들? 바로 메달을 못 따면 군대 끌려가야 할 후배들이었다. 그래서 강민호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는데 승짱이 홈런을 쳐 울었다"고 했다.

군대 문제는 이렇듯 피끓는 스물넷 청년과 관록의 서른셋 사나이를 울린다. 이들이 3월에 하는 야구는 배나온 메이저리거들이 하는 몸사리는 야구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 야구가 퇴출되는 바람에 이들이 군면제를 받을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WBC는 그래서 한국선수들에겐 절박한 대회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온 국민이 WBC에 홀리는 바람에 얼떨결에 병역 규정까지 바꿔가며 선수들에게 병역 면제를 선물한 적이 있다. 그러나 국제 대회 때마다 분위기에 휩쓸려 병역법이 요동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다가 특히 비인기 종목이나 다른 예술 분야와의 형평성이 문제가 돼 지금은 WBC가 병역 면제 대상 대회에서 빠져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역시 '기분파' 아니던가. 분위기만 한 번 타면 또 모르는 일이다. KBO 입장에선 'AGAIN 2006'이 간절했을 것이다.

▲ 21일(현지 시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에서 10-2로 베네수엘라를 꺽은 한국팀 선수들이 한국 응원단에 인사하고 있다. ⓒAP=뉴시스

MLB 장단에 울고 웃는 한국야구?

결승까지 올라가니 국위선양이라며 병역 면제 이야기가 또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있다. 따져보자. 전 세계에서 야구 하는 나라가 몇이나 되나. 스무개 정도 밖에 안 된다. 이번 대회도 출전국 수가 총 16개에 불과하다.

또 WBC는 과연 어떤 대회인가. 그리 '반듯한' 대회가 아니다. WBC는 올림픽에서 퇴출되자 메이저리그가 급조해서 만든 일종의 '초청 대회'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라는, 일개 국가의 프로리그가 만든 이 대회는 야구의 세계화를 통해 야구를 상품화, 즉 돈벌이 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메이저리그는 WBC를 계속 키울 심산이다. 이렇게 되면 야구가 다시 올림픽 종목이 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한국 선수들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병역 면제의 기회를 빼앗아 간 것은 사실 메이저리그다.

이런 문제 많은 대회의 성적으로 무슨 병역 면제를 논하는가. 국위선양? 지금이 무슨 일제시대인가 아니면 보릿고개 시절인가. 이들 덕에 정말로 덕 본 사람들이 있다면 한국팀이 결승까지 올라가 주는 바람에 광고 수입이 엄청나게 들어온 방송사와 취재 거리 찾아 피곤하게 헤매는 대신 책상에 앉아 외신 번역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기자들 정도일 것이다.

병역 면제 받고 싶으면 메이저리그 하라는 대로 할 게 아니라 세계야구연맹과 함께 노력해서 야구가 올림픽종목에 다시 포함되도록 해야 한다. 왜 KBO는 허구헌날 '뒷구멍'으로만 일을 하려 하는가. 그리고 야구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 받은 종목이고 야구 대표선수라면 우리나라 운동선수 중 재벌급이다. 그 정도면 감사히 생각하고 매사에 정정당당 하기 바란다. 군대 면제 받아 눈물이 났다고? 다른 종목 선수들 눈에선 피눈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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