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한다. 언론계는 박희태 대표의 제안이 재벌의 방송진출만 막을 뿐 신문사의 방송진출은 그대로 허용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없다고 한다.
아니다. 가치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일고의 가치는 있다. 한나라당의 '본색'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나라당의 '맹점'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동안 주장해왔다. 한나라당이 재벌과 신문의 방송참여를 강변하면서 두 가지 논리를 제시해왔다. 일자리 창출, 그리고 여론 다양화다.
박희태 대표의 제안은 이걸 뒤집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음을 실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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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수학 수준으로도 잴 수 있다. 한나라당이 내세운 일자리 창출 목표에 견주면 '재벌 노, 신문 예스'의 수정안이 얼마나 큰 모순에 빠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재벌엔 없는 게 신문사엔 있다. 바로 제작 인프라다. 수백 명의 제작인력과 제작지원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최소 투자'가 가능하다. 기존 제작인력에 필요한 인력만 덧붙이는 식의 편제가 가능하다.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 재벌은 막고 신문사에겐 여는 방송법 개정은 한나라당이 제일의 명분으로 내세운 일자리 창출과는 어긋나는 발상이다.
이 역시 초등사회 수준으로도 알 수 있다. 신문사에만 방송진출 길을 열어주는 게 여론 다양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여론 다양화를 꾀하려면 다원화해야 한다. 여론시장에 언론상품을 내다파는 주체를 다원화된 사회구조에 맞게 여러 갈래로 펼쳐야 한다.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이 비판에 직면했던 것은 바로 이런 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여론 다양화를 꾀한다면서 실제로는 돈 많고 힘 센 재벌과 특정 신문사에만 방송 진출을 길을 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근데 이마저 더 좁혀버렸다. 이미 여론시장에 한 자락을 깔고 있는 (특정) 신문사에만 방송진출 길을 열어주려고 한다. 이들이 방송사를 겸영한다고 해서 기존 신문 논조와 전혀 다른 논조를 보일 리가 없는데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한다. 여론시장의 규모와 갈래를 키우는 게 아니라 여론시장 내의 파이 배분 방식만 바꾸려 한다.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여론 다양화가 아니라 여론 독점이 강화된다. 특정 신문사의 여론지배력에 지상파 방송의 전파력을 덧붙임으로써 특정 이념 특정 논조의 여론이 더 확고하게 여론시장을 장악하게 된다.
명확하다. 박희태 대표의 제안은 양보안이 아니다. 포장만 바꾼 재출시 상품에 불과하다.
알아야 한다. 잘못 꿴 첫단추를 놔두고선 어느 것도 바로잡을 수 없다. 두 번째 단추구멍에 세 번째 단추를 끼워넣는다고 매무새가 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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