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습 직권상정을 선언하고 의사봉을 두들기려는 고흥길 위원장과 이를 저지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 ⓒ연합뉴스 |
한나라 "직권상정 인정"…민주 "날치기 미수 사건"
일차적인 쟁점은 미디어법이 문방위에 정상적으로 상정됐느냐는 논란이다.
나경원 간사 등 한나라당 문방위원들은 직권상정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고흥길 위원장이 22개 미디어 관련 법안을 직권상정했다"고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은 "날치기 미수 사건"이라며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고흥길 위원장이 "상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기 때문에 정식 상정으로 인정할 수 없고, 상정을 하면서 법안 명칭도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무효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경원 의원은 "지난 19일 회의에서 22개 법안에 대해 고 위원장이 특정을 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 없다"고 반박했다. 22개 법안리스트에 쟁점법안이 망라돼 있는 만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상정을 하기 위해서는 법안 명칭은 반드시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19일 회의에서 특정한 22개 법안 목록 제목은 '저작권법 개정안 등 22개 법률안'이기 때문에 고 위원장이 "미디어법 등 22개 법률안"이라고 말한 것은 상정 요건에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고 재반박했다.
법안을 상정하면서 법안에 대한 자료를 문방위원들에게 배포했느냐도 논란이다. 고 위원장이 "행정실, 의안 전부 배부하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민주당 의원들이 뛰쳐나가며 아수라장이 됐다. '선진과 창조의 모임' 이용경 간사도 "의안 상정은 의사일정에도 없었고, 의안을 받지도 못 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나경원 의원은 "이미 의원들 개인 노트북에 온라인 전송을 했다"고 반박했다.
고 위원장이 '의사일정의 추가'의 근거로 제시한 국회법 제77조도 논란이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의원 20인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가 있어야 하고, 그것도 반드시 이유서를 첨부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러나 오늘 이같은 적법한 동의절차가 있었다는 발표는 아직 없다"며 "한 마디로 옹색하기 짝이 없는, 석연치 않은 의안상정이었고 고흥길 위원장은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같은 절차적 논란 속에도 고 위원장이 "법안을 상정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린 것은 사실이어서 해석의 우위는 한나라당 쪽으로 기울어 있다.
▲ 직권상정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한나라당 문방위원들. ⓒ프레시안 |
고흥길 '개인 플레이'? 치밀하게 기획된 역할극?
갑작스런 직권상정이 고 위원장의 개인 플레이인지, 청와대 의중이 작용한 치밀한 작전에 따른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고 위원장의 '개인 플레이'라면 한나라당 입장에선 성공작이다. 육탄전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해 '상임위 상정'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 것이기 때문. 진성호 의원은 '사전에 직권상정을 논의 했느냐'는 질문에 "우리로서는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지만, 사전 논의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고 위원장의 개인플레이로만 사태를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진성호 의원의 진술과 달리 사전 논의 여부에 대해 나경원 의원은 "더 이상 말씀 안 드리겠다"고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고 위원장은 전날 언론 인터뷰와 이날 회의 초반까지만 해도 직권상정에 부정적인 분위기를 풍김으로써 야당의 긴장감을 크게 낮춰놨다. 나경원 의원도 이날 26일 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함으로써 '상임위 기습 상정'에 대한 야당의 저지선은 더욱 느슨해진 상태였다.
이와 같은 정황으로 인해 한나라당이 이미 기습 직권상정을 방침을 정하고 '역할극'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한발 나아가 야당은 상임위 차원의 작전이 아니라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날 오전 열린 한나라당 최고중진회의에서 이상득 의원이 직권상정을 강하게 요구하는 등 '강경기류'를 이끌었다는 점이 의심의 고리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이상득 의원이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이번에 밀리면 안 된다'며 강행처리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청와대의 강행처리 명령이거나 국회 대통령을 자처해온 이 의원의 지시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국 급랭, 한파 몰아칠 듯
날치기 논란, 청와대 지시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쟁점법안의 핵심인 미디어법을 상임위에 상정시킴으로써 전략적 우위에 서게 됐다. 나 의원은 상정 법안의 '2월 국회 내 처리' 여부에 대해 "2월 처리를 고집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느긋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민주당이 제의한 '국회 내 사회적 논의 기구'에 대해서도 "앞으로 민주당과 얘기해보겠다"고 여지를 뒀다. 그러나 일단 법안이 상정된 이상 향후 남은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선 한나라당의 스케쥴이 반영될 가능성이 넓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2월 국회의 '뇌관'을 건드리는 무리수를 둠으로써 엿새 남은 임시국회의 파행은 물론이고 향후 정국도 꽁꽁 얼어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홍준표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온건파들도 이를 우려해 미디어법 직권상정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친 바 있다.
문방위원이자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서갑원 의원은 기습상정 직후 허탈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2월 국회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문방위 사태 직후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고 대응 전략을 숙의하고 있다. 다른 상임위까지 연계시킨 전면 보이코트가 확실시 돼 2월 임시국회의 정상적 진행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한나라당이 일각에서 거론되는 3월국회 소집을 요구하며 추가적인 밀어붙이기에 나설 경우, 국회에는 한파가 불어닥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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