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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서운하지만…그래도 지켜야 할 소중한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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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주노총, 서운하지만…그래도 지켜야 할 소중한 조직"

[위기의 민주노총, 길을 묻다⑥] 정인열 코스콤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

민주노총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으로 지도부가 불명예스러운 총사퇴를 했다. 이번 사건은 그 발생부터 이후 처리 과정까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지도부는 물러났지만, 그것이 이번 사태가 드러낸 민주노총의 위기까지 정리해주지는 않는다. 이번 사건은 민주노총의 문제가 안팎으로 심각함을 대외적으로 확인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동운동의 위기' 논의를 통해 수차례 지적됐듯이 민주노총이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염두에 둘 때, 이런 상황은 노동운동은 물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연속 인터뷰를 진행한다. 민주노총에 애정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전·현직 노동운동가를 만나 20년 민주노조운동 역사를 딛고 다시 일어설 민주노총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이수호 민주노총 지도위원,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에 이어 마지막 길 묻기는 정인열 코스콤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이다.

릴레이 인터뷰 정리를 위해 현장 좌담이 이어진다. 좌담은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장, 강석도 전교조 안산광덕초 분회장, 현정희 공공노조 의료연대분과장과 함께한다. <편집자>

스물 세살이던 2000년 코스콤에 처음 들어가 7년을 일하고 2년 가까이 파업을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된 지 고작 2년일 뿐이다.

정인열 코스콤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은 "사실 민주노총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사실 지난 2년도 코스콤 비정규직 투쟁을 하느라 다른 곳은 쳐다볼 틈이 별로 없었다. 조합원이 되기 전엔 "민주노총이 아니라 민노총인 줄 알았을 정도"로 잘 몰랐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지도부와 "정서적 거리감이 있는" 80만 평 조합원에 가깝다.

본인 스스로도 여성인 정인열 부지부장은 이번 핵심 간부의 성폭행 사건을 얘기하며 일관되게 "감추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떤 조직이든 문제는 있을 수 있지만 결함을 곧 치부로 생각해 은폐하려 하면 결국 장기적으로 조직에 심각한 훼손을 불러온다"고 수 차례 얘기했다.

이런 생각에는 짧다면 짧은 그의 노동조합 경험도 작용했다. 파업 기간 중에 간부 2명이 저지른 폭행 사건을 "제대로 평가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못해" 결국 벌금 380만 원을 지부에서 대출해줄 정도로 일이 커졌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정인열 부지부장은 "조직이 자기비판이 없고 감추려고 하면 결국 (지도부의) 권력화로 이어지고 온갖 권모술수가 난립하게 된다"고 말했다.

▲ 스물 세살이던 2000년 코스콤에 처음 들어가 7년을 일하고 2년 가까이 파업을 했다. 민주노총 조합원이 된 지 고작 2년일 뿐이다. 정인열 코스콤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은 "사실 민주노총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지도부와 "정서적 거리감이 있는" 80만 평 조합원에 가깝다. ⓒ프레시안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지도부와 밑바닥과의 소통은 고사하고 "조합원들은 더 냉소적이 되기 쉽다." "실제로는 조합원의 의견도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조합원 핑계가 되고", 그럴수록 조합원은 더 민주노총을 외면하게 된다.

그는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아주 잘못됐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비록 오랜 파업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부담되는 것은 잘 안하려 한다"는 서운함도 있지만, 그것은 꼭 그만큼의 기대였다.

코스콤 비정규직은 지난해 12월 노사 합의를 통해, 65명의 직접 고용으로 오랜 투쟁을 정리했다. 하지만 직접 고용이라는 큰 틀만 합의했을 뿐, 임금 등 근로 조건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다. 더구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에서 패해, 별도로 고용 여부를 논의하기로 한 11명은 얘기조차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는 그 11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다음은 지난 20일 만난 정인열 부지부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조직의 결함을 곧 치부로 생각해 은폐 발상이 나온다"

▲ 사실 나는 민주노총을 잘 모른다. 그런데 이번 성폭행 사건을 보면서 민주노총은 이 사건을 일종의 '문제(problem)'로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코스콤 비정규직지부를 만들면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된 것으로 안다. 이제 2년이 채 안 됐는데, 이번 사태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정인열 : 사실 나는 민주노총을 잘 모른다. 그런데 이번 성폭행 사건을 보면서 민주노총은 이 사건을 일종의 '문제(problem)'로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성폭행 사건은 어느 조직에서든지 언제든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대응이 문제다.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피해자를 최대한 보호할 것인지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조직적 피해를 막기 위해 피해자의 희생도 감수하겠다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은폐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사실 조직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은폐가 좋은 것이 아니다. 성폭행 사건이든 다른 문제든 마찬가지다. 조직이 갖고 있는 결함을 곧 치부로 생각하기 때문에 은폐하겠다는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감추면 장기적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코스콤 비정규직지부도 마찬가지였다.

"자기비판 없이 감추려 하면 권력화로 이어진다"

프레시안 :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활동을 하면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

정인열 : 조직은 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저런 문제는 고쳐서 바로잡자"고 얘기할 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문제를 계속 제기하면 "아니 왜 자꾸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은 간부 2명이 파업 기간 중에 술에 취해 다른 술집 손님과 싸움이 난 적이 있었다. 어쨌든 파업 중이었기 때문에 간부가 저지른 그 사건은 평가가 필요했다. 공식적으로 사과도 했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는 똑같은 잘못에 대해 묻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논리는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감추기 위해서다.

감추면 늘 문제는 더 커진다. 더 조직 상황을 악화시킨다. 앞서 말한 사건의 경우도 나중에 결국 그 간부 2명의 벌금 총 380만 원을 지부 돈에서 대출해주는 데까지 확대됐다. '파업 기간 중이니 간부 개개인의 돈이 없으니 빌려주자'는 논리였지만, 당시는 지부가 정말 돈이 없을 때였다. 심지어 조합원 생계비를 15만 원을 주냐, 20만 원을 주냐를 놓고 몇 시간씩 토론할 때였으니까.

그날 너무 속상해서 울기도 했다. 그 380만 원이 아니었으면 1인당 5만 원 씩 더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집행부 회의에서 통과됐다. 사실 투쟁을 하다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완전히 개인적인 일 아닌가. 그런데도 "안 그러면 감옥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는 주장이 먹히더라. 더 속상한 것은 조합원 한 명이 오랜 파업으로 치질에 걸려 병원을 가는데, 40만 원 만 지부 돈으로 빌려달라는 것은 일언지하에 거절해 놓고 그랬다는 것이다.

조직이 자기비판이 없고, 감추려고 하면 결국 권력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 온갖 권모술수가 난립하게 된다.

프레시안 : 보통 조직이 오래되면 윗 사람들이 관료화, 권력화 된다고들 한다. 그런데 코스콤 비정규직지부는 만들어진 지 2년이 채 안 된 신생노조 아닌가?

정인열 : 역사는 짧았지만 그간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파업이 오래되면서 회의론도 있었고, 우리의 경우 근 1년 넘게 교섭 없이 투쟁만 했기 때문에 더 했다.

▲ "조직이 자기비판이 없고, 감추려고 하면 결국 권력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리 지키기에 급급해 온갖 권모술수가 난립하게 된다." ⓒ프레시안

"숨기기로는 당장의 조직 유지만 가능할 뿐, 결국 심각한 훼손 불러올 것"

프레시안 : 그런 일을 많이 겪었다면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태에 대해 많이 놀라지는 않았을 것 같다.

정인열 : 놀라지 않았다. 비슷한 부분이 많다. 무언가 잘못을 숨기려 한다면 그 이후 행보는 그 사건이 드러나도 자리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민주노총도 임원 일부가 사퇴 안 한다고 버티다가 여론 때문에 물러난 것 아닌가.

프레시안 : 물러나지 않으려 했던 임원들의 생각이 조직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얘긴가?

정인열 : 당사자들은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처리 방식으로는 조직을 지킬 수 없다는 얘기다. 당장의 조직을 유지는 할 수 있지만, 그 일이 결국 간접적으로 미치는 파장은 결국 조직에 심각한 훼손을 불러온다.

조합원들도 더 냉소적이 되기 쉽다. 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가도 지도부는 또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니까.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조합원들은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일로 여긴다. '자기들끼리 매번 치고 받고 싸운다'는 생각이 광범위해지고 관조적이 된다.

이번 일을 겪은 뒤 한 조합원은 "이건 성폭행이 문제가 아니라 조직이 문제"라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어떤 사건이든 그 대응 방식에 따라 조직의 미래가 달려 있다.

프레시안 : 현장에서 보기에 이번 일로 조합원들의 민주노총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나?

정인열 : 그런 부분은 없다. 사실 우리 지부의 경우 워낙 파업도 오래 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민주노총에 섭섭한 것이 워낙 많았다. '민주노총이 우리에게 해준 것이 뭐냐'는 여론이 팽배하다. 당연히 자기 일이라고 생각 안 한다.

프레시안 : 그래도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열심히 투쟁한다고 하는데 왜 현장의 비정규직은 그렇게 느낄까?

정인열 : 현장에서 투쟁이 벌어질 때 조합원들이 느끼는 민주노총의 역할은 '집회할 때 나와서 얘기해주는' 정도다. 그 이상이 없다. 체감하는 수준이 그렇다는 얘기다. 사람이 필요할 때 민주노총에 요청하면 '우리도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면 당연히 조합원들은 '매번 조직력 강화를 얘기하면서 민주노총도 조직력이 없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물론 민주노총이 투쟁 사업장을 전혀 지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타이밍을 잘 못 맞췄다. 투쟁 사업장에서 필요로 할 때, 즉각적 지원이 잘 안 된다. 심지어는 '조합원과의 소통'을 얘기하면 일부에선 민주노총 핑계가 나온다. '민주노총도 잘 안 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냐'는 얘기다.

"민주노총? 80만 조합원이 아니라 지도부를 의미하는 말일 뿐"

▲ "의결은 조합원이 하는 것이다. 집행부는 그 내용을 받아 행동으로 옮기는 기관일 뿐이다. 그런데 소통이 잘 안 된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조합원과의 소통은 노동운동의 오래된 과제인데 잘 실현이 안 되는 듯하다. 코스콤비정규직지부보다 조합원이 더 많은 곳도 많다.

정인열 : 의결은 조합원이 하는 것이다. 집행부는 그 내용을 받아 행동으로 옮기는 기관일 뿐이다. 그런데 소통이 잘 안 된다. 물론 현실적 어려움은 있다. 조합원들이 말을 잘 안한다거나 의견 묻는 걸 싫어한다거나. 이해는 가지만 조합원이 왜 말을 안 하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도록 유도하는 것이 집행부 역할 아닌가.

집행 간부가 있어 얘기하기를 껄끄러워 한다면 빠져줄 수도 있다. 대의원, 분회장 교육을 따로 해서 토론을 잘 이끌어 자연스럽게 의견이 나오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파업이나 교섭 과정에서 현실 타협을 하게 되더라도 그 과정이 중요하다. 조합원 대다수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결정하면 집행부가 하고 싶어도 못 한다. 그런데 집행부가 하기 싫어서 여론을 몰아가는 것은 문제다. 내가 직접 만나 본 조합원 가운데는 '투쟁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회의를 들어가면 늘 나오는 말이 '조합원은 투쟁 싫어한다'는 얘기뿐이다.

실제로는 조합원 의견도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는 조합원이 핑계가 된다. 민주노총도 밖에서 보기엔 그렇게 보인다.

민주노총에 대해 왜 일반 조합원의 공감대가 없는지는 사실 간단한 이유다. '민주노총이 오늘 이런 저런 것을 요구했습니다'라고 할 때 민주노총은 나 같은 80만 조합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 집행부인 것이다. '내 요구'가 아니라 '저건 지도부가 정부에 대고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정서적으로 떨어져 있다. 서로 생각이 같지 않다.

바닥부터 소통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수호 지도위원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에 공감한다. 조직의 지도부가 집단 관료화되면서 그 조직의 의견을 지도부 몇몇이 대표한다고 하지만 조합원의 의견을 대표하지 않는다.

"소통 안 되는 이유? 스스로 대장이라고 생각하니까"

프레시안 : 그래도 대의원대회도 있고 각종 의사결정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조합원 의견이 위로 수렴될 수 있는 구조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바닥과의 소통이 잘 안 될까?

정인열 : 80만 조합원의 책임이 크다. 참여하라고 하면 먹고 살기도 팍팍하고 피곤한데 노조 활동까지 하기를 싫은 것이다. 민주노총 간부를 욕하지만 스스로도 민주노총에 참여할 생각은 안 한다.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점점 더 방관자가 되는 것이다.

물론 조직 간부들의 생각도 문제다. 이석행 전 위원장이 물러나면서 "모든 것은 내가 안고 간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내가 언제 이석행 위원장에게 내 책임까지 물어달라고 했나? 그런 적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런 말이 나올까? 자기가 대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책임도 자기가 혼자 다 질 수 있다는 생각은 평소에는 내가 하자는 대로 다 따라와야 한다는 생각이랑 결이 똑같다.

지도부가 그런 의식을 갖고 있으면 민주노총에는 위원장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만 모이게 된다. 의견이 다른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기도 어렵고 실제 집행에 반영되기는 더 어렵다.

그런 면에서 조직이 어찌 보면 이명박과 똑같다. 잘못 뽑았어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잘못된 정책을 쓰면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럴 때면 '니가 뽑아놓고'라고 반박한다. 정부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노총은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모두가 평등한 조직이 노동조합이다.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고 선거에서 이겼으니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 "정부야 원래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노총은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모두가 평등한 조직이 노동조합이다.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고 선거에서 이겼으니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소통을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무엇을 해야 하나?

정인열 : 조합원 스스로는 절대 안 바뀐다. 자기 목에 칼이 들어와야 행동으로 옮긴다. 그래서 지도부와 집행 기관이 있는 것인데 무엇보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변화가 절실하다. 단지 죄송하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 조직적으로 무엇부터 개선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장으로 직접 내려가 조합원의 의견도 들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그런데 조합원의 의견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조합원이 반대한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인열 : 아무리 설득을 해도 조합원이 끝끝내 반대한다면 어쩔 수 없지 않나. 막무가내로는 안 되니까. 그런데 조합원이 핑계가 되면 안 된다. 노력해보지도 않고 조합원들에게 정보도 주지 않고 정서 탓만 해서는 안 된다. 왜 비정규직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안 받아들이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이런 판단의 근거가 되는 공정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 그 이후에는 설사 잘못된 결정을 조합원이 내렸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간부들이 지레 겁먹고 나서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우리도 노조를 처음 만들고 증권노조에 가입하려 했을 때, 상근자 6명 가운데 3명이 반대했다. 정규직노조 눈치를 보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다는 얘기도 했다고 하던데, 결국 찬성하는 3명이 당시 위원장을 잘 설득해서 가입할 수 있었다. 우리야 결과가 좋았지만, 노력해봤는데도 반응이 너무 안 좋다며 포기하는 간부도 많다.

"소중한 조직이지만…현장에서는 '말만 한다'고 느낀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민주노총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당사자로서 느낀 경험이 많았을 것 같다.

정인열 : 사실 나는 민주노총이 아주 잘못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만 놓고 보면 민주노총이 일종의 사업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1년의 사업, 2년의 사업 이런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얘기만 있다. 그래서 앞서 말한 대로 투쟁 사업장에 대한 지원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현장 조직 입장에서는 돈도 없고 인력도 모자라니 민주노총이 도와주면 좋은데, 요청을 해도 바로 집행하기가 어렵다. 절차상의 문제, 인력의 문제 등이 원인이다.

그리고 민주노총은 부담되는 것은 잘 안하려고 한다. 지원을 해줘도 방송차 갖다 놓고 집회를 해주는 정도다. 연행이 될지도 모르거나 이런 위험한 투쟁은 잘 안 한다. 이랜드노조도 홈에버 월드컵점 점거 농성 들어가니까 바로 민주노총이 와서 '빨리 빼라'고 했다던데, 결정적인 순간에 그렇게 나온다. 그러니까 현장에서는 '도와주는 것 없다, 말로만 외친다'고 나오는 것이다.

프레시안 : 그나마 노조에 가입한 비정규직 조합원 말고, 조직되지 않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민주노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본인도 2년 전까지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니었지 않나?

정인열 : 가입하기 전에는 민주노총의 존재를 정말 몰랐다. 너무 미안할 정도로 몰랐다. 이름도 '민주노총'이 아니라 '민노총'인 줄 알고 있었다. 언론에서 경찰이 자꾸 그렇게 말하니까. 일종의 그저 친북 단체인 줄로만 알았다.

프레시안 : 들어와서 보니까 달라진 점이 있나?

정인열 : 정책적으로 하는 것이 많다는 것 알았다. 실효성은 잘 모르겠지만 비정규직법 개악하면 안 된다고 기자 회견이라도 열고 하지 않나.

그런데 민주노총은 투쟁은 잘 안하는 것 같다. 교섭만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탁상행정이랄까. 정책만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만, 교섭이 힘을 받으려면 투쟁도 필요한데 투쟁력이 별로 없다. 조직이 힘이 없어서 그렇다.

"코스콤 합의 이후? 근로조건 협상에서 이견이 너무 크다"

▲"주기적으로 각종 사안에 대해 토론도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의원들이 자기 조직 논리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조합원의 의견을 모아서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프레시안
프레시안
: 무엇을 고쳐야 할까?

정인열 : 사실 나는 그런 큰 조직을 경험해 보지 못해 잘 모른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것만 토대로 놓고 보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존중하고 토론을 통해 의견을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조합원 생각을 수렴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각 노조 별로, 지역 별로 작은 모임들이 활성화 돼야 하지 않나. 주기적으로 각종 사안에 대해 토론도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의원들이 자기 조직 논리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조합원의 의견을 모아서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현재 코스콤 비정규직 상황에 대해 얘기해 달라. 지난해 12월 29일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에서 승소한 65명을 3개월 이내에 직접 고용 하기로 하고 근로조건 교섭은 별도로 하기로 사 측과 합의했었다.

정인열 : 합의한 뒤에 실무교섭이 진행 중이다. 임금과 복리후생 등을 놓고 얘기중인데 이견이 좁혀지질 않는다. 회사가 내놓는 것은 정규직의 50%도 안 되는 임금과 파업 이전의 복리후생 수준 뿐이다. 파업 전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그러면 애써 1년 넘게 투쟁했던 사람들은 패배감을 갖게 된다. 고생했는데 달라진 것이 별로 없으니까.

게다가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연봉제를 얘기하고 있다. 3월 29일 이전에 교섭이 끝나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당시 별도로 합의하기로 한 11명은 얘기조차 나오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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